이름이 바뀐 사람들! (요 1;35-42)
브라질 오지에서 의료선교를 하던 선교사 멜란드 부부는 평생 5번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 백인
멜란드 부부가 풀리어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인이라고 하는 말속에는 과거에 자기들을 괴롭혔던 이들이라는 증오심이 들어 있었습니다.
2. 존경하는 백인
그러나 이들은 비난과 조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인디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인디언들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질병을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부부는 인디언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그 부부를 <존경하는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3. 인디언 백인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들 부부는 인디언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같은 옷을 입었습니다. 인디언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언어도 배워 유창하게 되었습니다. 10년만에 인디언들과 같아졌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그를 <인디언 백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4. 하늘의 천사
그러던 어느 날 이들 부부는 길을 가다가 가난한 어린 소녀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길거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안방처럼 앉아 부상당한 소녀를 정성껏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던 추장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하늘이 보내 에서 내려온 천사같습니다>
그 후 인디언들은 그들 부부를 <하늘의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5. 브라질의 성자
지금 브라질 사람들은 그를 <브라질의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같이 이들 부부는 이름이 5번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름을 바꾸는 경우는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내 이름은 본래 윤호(潤鎬)였습니다. 윤택하게 태어 났다고 하여 윤호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당시 황주에 사과밭이 있었습니다. 사과를 달라는 사람에게 가마로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면장이었습니다. 당시 면장에 재산이 많아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피난나와서 여렵게 살면서 그 이름이 맞지 않으니까 문호(文縞)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글 가운데 파묻혀 살라고 하는 소망적인 의미입니다.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 많은 데 3가지 경우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 들으면 기분 좋은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들으면 기분이 좋은 이름이 있고, 들으면 기분이 나쁜 이름이 있습니다.
고 재봉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살인마로 들려서 끔찍합니다. 이 완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매국노로 들리기에 기분이 나쁩니다. 유 영철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여자들을 죽이는 악마같아서 섬짓합니다. 조 세형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도둑놈이 얼른 연상되어 금방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에디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발명왕 생각이 나서 의욕이 생깁니다. 베토벤, 헨델, 바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떠올라 기분이 상쾌하여집니다.
신약 성경의 최대의 인물은 바울일 것입니다. 그의 바뀌기 전에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자기가 자기 이름을 짓지는 않습니다. 사울의 아버지가 사울이라고 지은 것은 큰 사람이 되라는 소원이 들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문이 큰 가문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학부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로마 시민권이 그 당시 가장 큰 권한이었는 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가장 득세하고 있었는 데 사울은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만하면 사울은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태어났을 때에 큰 사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까지도 사울은 자기가 큰 사람인 줄 알았으나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지극히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자>라고 하는 뜻의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름이 바뀐 사람 바울 이름은 오늘날 가장 존경스러운 선교사 이름이 되었습니다. <바울 선교회>가 있습니다. 가장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의 이름을 듣기만 하면 사람들이 너무나 즐거워지는 이름으로 바뀌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 사람 이름을 대기만 하면 <밥맛없어!>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불명예스럽겠습니까?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발굼치를 잡았다>라는 뜻입니다. 욕심쟁이라는 의미입니다. 안 좋은 이름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가 죽이려고 하자 하란 땅에 가서 20년을 살았습니다. 갈 때에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떠났는 데 돌아 올 때에는 아내 4명, 자녀 12명 그리고 수많은 종, 수많은 소 양 염소 떼를 이끌고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20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 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한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가서 홀로 앉아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창 32;9-11)
야곱은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며 응답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덧 날이 밝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야곱은 그 때부터 다리를 절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생 다리를 절었습니다.
그 때 야곱과 천사가 이런 말을 주고 받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워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듣기 좋은 이름입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의 이름을 대기만 하면 모두가 즐거워지고 생각만하여도 좋은 이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번에 미국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비행기가 공중에 <나는 도날드를 사랑한다>(I love Donald)라고 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한 총각이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 사랑의 고백을 들어 주지 않으면 공중에 3,000불 정도 내고 그렇게 쓴다는 것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대는 것이 애인 이름입니다.
2. 축복받는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름을 들으면 축복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고 저주가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병철, 정 주영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부요가 떠오릅니다. 록펠러라는 이름을 들으면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로스 차일드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최고의 부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라는 이름을 들으면 거지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히틀러, 스타린,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저주스러운 영상이 머리를 채웁니다.
아간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저주가 가득차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전 이름은 아브람이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전 이름을 사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아브람은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입니다. 고귀한 사람을 축복의 사람으로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사래라는 뜻은 왕녀라는 의미입니다.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역시 고귀한 사람을 축복의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의 이름으로 바꾸어 주신 후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정말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창 17;15)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아들을 낳고 목사님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무엇이라고 이름을 지을지 몰라 고민하다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발할 발(發), 빛 광(光)자를 넣어서 발광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의미는 좋지만 발음은 좋지 않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계속 실패하고 쓰러지기만 할 때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이름을 재기(再起)라고 지었습니다. 다시 일어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성이 양씨였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아들만 낳았습니다. 딸이 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 때 딸을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좋아서 귀녀(貴女)라고 지었습니다. 너무나 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성은 방씨였습니다.
양이라는 성을 가진 부부가 아들을 낳으면 아치, 딸을 낳으면 공주라고 짓기로 미리 이름을 지어 놓았다는 유모어도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너무 서두르고 덥적댔습니다. 그래서 신중하라고 신중(愼重)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버지 성은 임씨였습니다.
아브라함, 사라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의 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가 되라는 기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름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에는 어느 누군가의 소원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속에 축복을 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누군가의 축복의 가득 들어 있습니다. 축복의 불씨를 살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외쳐 보십시다.
<내 이름에는 축복이 들어 있다>
<내 이름에는 축복이 들어 있다>
3. 사명받은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이름을 들으면 하나님을 향한 사명이 불타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슈바이쳐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흑인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불타는 사명이 떠오릅니다. 마더 테레사라는 이름을 들으면 인도 칼타코에서 빈민들을 위하여 일생을 불태운 거룩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황 우석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줄기 세포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불치병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하여 살려 보려는 몸부림이 떠오릅니다.
앞으로 난치병 환자들에게 줄기세포를 심어주면 새로운 건강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치병 환자들에게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6월 7일 관훈 크럽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난치병 환자의 배아줄기세포 배양실험에 성공했지만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가 외국의 침탈과 동족상잔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니 이제 하늘에서도 세계에서 어깨를 쭉 펴고 살아보라는 천운을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줄기 세포 발견은 산업혁명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을 노 무현 대통령이 불시에 방문하여 장관으로 오라고 제안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소나 돼지와 대화하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현미경을 보며 판단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그 외에는 남들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가 남을 곳은 연구실이고, 벗해야 할 것은 현미경이다>
자기는 과학자의 연구실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정치할 사람이 아니라고 장관자리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명의 사람입니다.
아인슈타인도 그랬습니다. 대통령으로 제의를 거절하였던 이름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가 하는 일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자기 사명이 뚜렷하였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의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을 만나자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2)
베드로라는 뜻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신 것은 반석이 되라고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이름도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수님의 이름은 기묘자입니다. 모사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나는 좋게 이름이 바뀐 성도들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예루살렘에 기독교 박해가 심하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야고보도 죽였습니다.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박해가 심하자 성도들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괄목할 만하게 성장한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로 몰려 들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문을 예루살렘 교회가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로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와보니 탁월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돌아 가지 않고 안디옥 교회에서 일하였습니다. 점점 더 양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안디옥 교회 교인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를 돌아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교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우리 교인들을 보고 <정말 예수쟁이>이라고 불러 줄가?>
이런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들도 이름이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름이 바뀌어 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예배중에 성령님이 임재하셔서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1. 들으면 기분 좋은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2. 축복받는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3. 사명받은 이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 이 승복(40)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지가 마비된 소아마비입니다. 그는 미국 명문 대학 하버드 의대와 죤스 홉킨스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유명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한국에 와서 한국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름이 승복이었는 데 미국에서 SB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바꾸어를 <슈퍼 보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이름을 또 바뀌었습니다. <슈퍼 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8살에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1982년 전 미국 체육대회에서 3등을 하였습니다. 1988년 한국 올림픽에 출전하려고 연습하던 중 1983년 불의의 사고로 척추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아래 신경이 끊어져서 휠체어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활 훈련 끝에 손은 어느 정도 쓰게 되었습니다. 리포트를 낼 때나 시험을 칠 때 모두 이 손으로 해냈습니다. 그는 사고 후 뉴욕대와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남들이 4∼5시간 자면 저는 그 3분의 2만 잤어요>
환자들은 휠체어를 탄 저를 처음 보면 흰 가운을 입은 환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해냈습니다.
지금 그는 존스홉킨스대 의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내년쯤 이 대학의 조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그를 슈퍼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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