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1:18-23
제목: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뜨거운 진노
본문을 봉독하겠습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에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하시는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 고전적인 방법, 뜨겁게 진노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가 행하는 모든 범죄에 대해서 신적 불쾌감을 분명히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행동을 심판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특정한 개인이 받는 심판은 거의 없습니다. 한 집단, 공동체의 리더십, 왕족, 왕실, 또는 지주 계급들, 고위 엘리트들 이런 집단이 받는 심판이 대부분입니다. 구약에서는 평범한 개인이 받는 심판 기록은 거의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개인, 일반 교우들을 상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거라고 기대하거나 그렇게 심판이 임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왕조에 대해서 왕국에 대해서 지배층 집단에 대해서 심판을 했습니다. 그러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심판한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예,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심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소돔과 고모라는 청동기 시대 때의 도시인데 성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압제했던 엘리트 집단이 소돔과 고모라 성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리고성 안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리고성을 지금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도시 전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고대의 성은 2000명 이내의 지배층 집단이 사는 지배층 집단 거주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특수한 개인을 정조준한 심판을 행했다는 것 보다는 지속적으로 약자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배척하고, 묵살했던 누가 보더라도 엄청난 죄가 누적된 집단에 대해서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집단.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거의 나타나지 않죠. 하나님은 특수한 개인, 죄를 지어도 자기 개인의 삶에 불편을 초래하는 약간의 곤경을 초래하는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하늘로부터 오는 불의 심판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다’는 동사를 주목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1장 17절에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고 되어 있죠. 1장 18절은 어떻게 돼 있죠?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신실하게 붙어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본받아 자신도 신실해지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여러분 근데 1장 17절에 이 믿음이란 말 자체가 번역이 매우 어색하게 되었는데요, 원래 믿음직스러움에서 믿음직스러움으로 번역돼야 됩니다. 로마서 1장 17절 번역을 이렇게 해야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믿음직스러움 때문에 사람의 믿음직스러움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뜻으로 번역해야 됩니다. 로마서의 대부분은, 믿음이라고 번역된 모든 부분은 ‘믿음직스러움’이라 번역해야 됩니다. 로마서의 번역이 잘못된 번역이 많습니다. 믿음직스러움, 하나님의 믿음직스러움이 인간의 믿음직스러움을 초래한 것이 바로 복음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1장 18절 보세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났다.” 1장 20절 보세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하여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런 본문은 바울이 지금 옆에 창세기를 펴놓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또 하나는 하늘로부터 진노를 경험한 경우는 소돔과 고모라, 노아홍수 세대, 바벨탑 축조세대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세대는 첫째로 노아홍수 세대, 두 번째로 바벨탑 축조 세대, 세 번째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같은 이런 재기 불능의 심판을 당했던 정말 악한 우상숭배로 가득 찬 곳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제일 마지막 23절에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모양으로 바꾼 것, 이것은 에스겔서 8장 10절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바로 각종 곤충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들의 우상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이 그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고작 종교적 표현을 좀 잘못했다고,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티나무 밑에서 찾았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심판하시는가?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신해 태양을 숭배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태양신 숭배주의자라고 나를 공격하시는가? 이렇게 우리가 초보적인 질문, 소박한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대신에 미루나무 숲에 가서 또는 느티나무 아래서 또는 태양신을 숭배한 소박한 그런 자연물을 매개하여 하나님을 숭배한 사람들 그런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본격적인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고대 부여에서, 고구려에서 동맹이라는 축제를 하면서 하늘의 천신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것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정죄의 대상이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는 정죄의 대상은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종교적인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종교적 우상숭배, 이것이 하나님이 격분했던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셔야 될 것은 소박한 고대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적어서 미루나무 앞에서, 수풀에서, 또는 상수리나무 아래서 예배를 드렸다, 여러분 이것은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사사기 6장에 보시면요, 아비에셀 사람, 오브라 산당, 상수리나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상수리나무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예배 처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세계 최초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갔다 했고요, 헤브론 상수리나무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걸 가르킬 때 성경은 초보적이고 소박한 자연물을 매개한 하나님 숭배를 단죄하거나 우상숭배라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우상숭배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하나님의 도덕적, 영적 통치를 막는, 사회경제적 질서를 파괴하는 다른 사람의 삶의 토대와 생명권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사회적 범죄, 사회정의를 파괴하는 범죄, 약자를 학대하는 범죄, 이런 것들과 관련된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우상수배를 심판하십니다. 여러분 고대 이스라엘 아합 왕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죠? 제 1계명을 위반했죠? 맞죠? 그죠?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1계명을 위반한 사람이,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했던 아합과 이세벨, 오므리 등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1계명을 위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더니 제일 마지막에 무슨 죄를 범했습니까? 우상을 숭배한 아합과 이세벨이 아홉 번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 다음에 셋째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망령되이 일컸지 말라. 그 다음에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밭이나 전토를 탐내지 말라도 위반합니다. 아합 왕은 디르사 왕궁 확장 사업을 할 때, 나봇의 포도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자기 왕궁을 확장하기 위해서 자유농민 포도원을 뻬앗으려고 거짓 증거자를 불러 세워서 죽이고, 살인하고 끝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이 말은 뭐죠? 십계명에 제 1계명을 어긴 자는 반드시 이웃의 재산을 탐내는 데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서울에 있는 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사람, 저 대치동에 있는 사람, 저 금천구 시흥동에 사는 사람이 벌레에게 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뱀에게 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 자연에 산다 뭐 이런 사람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도 벌레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관심 있는 것은 탐심입니다. 할 수 있다면 이웃이 집을 사는데 좀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내가 아파트를 사서 팔았다 샀다 팔았다 이걸 반복하면은 내가 재산이 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파트 과수요가 발생하고 전혀 토지정의가 회복이 안 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은 강남에 있는 한 사람이 심판을 당할 가능성은 없지만은 강남이 만일에 이렇게 토지 정의를 파괴하고 주거 불의를 행하면은 강남 전체가 지진으로 무너져 버릴 수가 있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자면은...그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에스겔 16장 49절입니다.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심하게 맷돌질하고 학대했기 때문에 망했거든요. 오늘날 아파트로 상징되는 이 탐심이 너무 극심하게 번져서 어떤 정책도 아파트 탐심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남은 길은 하나님의 심판밖에 더는 없다고 봅니다. 다음 정부도 불가능합니다. 다음 정부도 불가능하고 그 다음 정부도 불가능합니다. 어떤 법도 인간의 탐욕을 막지 못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탐욕이 재테크랑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재테크를 억압하면은 국가가 나빠집니다. 이것을 정부는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가법은 어기지 않는데 공동체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이 무시무시한 탐심 숭배가 대한민국에 퍼져 있거든요. 그래서 무서운 진노를 경험해야 됩니다. 일본이 15년간 아파트 부동산 가격이 거품이 돼서 대침체가 시작됐거든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거거든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많은 탐심으로 부를 생산해서 고도 소비를 즐기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하나님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걸 아셔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의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안이 이것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의를 내가 추구하지 않더라도 나는 아파트 탐욕 숭배에 빠지지 않고 나는 넓고 넓은 중간지대에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열심히 따르지는 않을지라도 나는 불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의를 추구하지 않고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대열에도 가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음에 나타난 의에 적극 동맹 맺지 않고 결속되지 않으면은 우리의 이 중립지대라는 것, 우리의 도덕적 윤리적 이 회색지대라는 것은 쉽게 악으로 치우쳐서 악편향적으로 악에게 이끌려가는 무시무시한 원심 이탈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됩니다. 저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아주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부동산 개발업에 몰두해서 인생이 완전히 곤두박질치는 것을 봤습니다. 이 사람이 부동산 개발업에서 초기에 한 4년 동안 돈을 벌었다가 완전히 망해서 빚을 갚는데 11년 걸렸습니다. 나이가 저보다 훨씬 어린데 얼굴이 완전 노인처럼 바뀌었습니다. 왜 이렇게 노인처럼 바뀌었냐고 그랬더니 채무를 갚는데 11년이 걸렸는데 문제는 그 채무를 어떻게 갚았냐 하면은 또 부동산 투기를 해서 갚았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망해가지고 채무를 갚는데 11년 걸렸는데 그 채무를 갚는데 또 부동산 투기로 그걸 갚았기 때문에 지금도 이분은 부동산 개발업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인생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구나 그런 걸 느끼거든요. 여러분, 우리 모두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이 심판 대열에 끼지를 않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주변에 “아 집사님 제가 길목 좋은 안산에 오피스텔 투자 하나 아는데 이번에 집사님 은퇴지요?” 하면서 이번에 그래서 우리 김삼용 교수님이나 저 같은 사람이나 장용훈 교수를 살살 꼬아가지고 아 매달 250만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 합시다 이렇게 해서 교수들이 은퇴해서 망하는 경우 굉장히 많습니다. 순진하게 있다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그 의를 추구하여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파생된 신실함을 가진 그런 의인이 되어서 이 탐심의 파도를 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탐욕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이 쫙 깔려 있습니다. 아마 우리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오지 못할 겁니다. 제가 하도 이런 설교를 해대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전혀 접근을 못하더라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두가 의로운 부자가 되어서 남을 심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그 부를 기꺼이 거룩하게 쓰는 아름답고 행복한 부자가 되길 바라고 탐심 우상숭배자의 대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여러분, 안전끈이 있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탐심이 대한민국 천만 서울 시민을 지배하고 열병처럼 우리를 지나갑니다. 하나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감염병이 부동산 투기 감염병이고, 부동산을 통해서 재테크를 이루려는, 영끌 모아 부동산 사서 아버지 하나님 안정된 괘도에 오르기 원하는 자들입니다. 한 채의 집도 갖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수십 채 집을 가지면서 주거부정을 범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그들을 심판하여 주시옵시고 이웃의 눈물을 자아내면서 재테크를 심하게 해서 성공을 구가하는 그들에게 합당한 심판을 보여주옵소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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