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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를 허물고 있는 목사의 열심

by 【고동엽】 2022. 1. 11.
오늘날 교회를 허물고 있는 목사의 열심


한달에 한번 가족들이 광주로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일.
지난 금요일 밤 야근 이후 터미널에서 가족을 만나 숙소로 왔다. 토요일은 아들의 소원인 주인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노는 것으로 시작됐고 보성차밭 여행과 다시 강아지 놀이로 끝이났다. 보성차밭을 둘러본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 참 소중한 경험이 됐다.


그리고 주일.
지난 번 시간관계상 가까운 교회를 찾았다가 낭패(?)를 본 경험을 떠올리며 성희찬 목사님이 계시는 은성교회로 찾아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역시 그곳에서 우린 따뜻한 보리밥과 맛깔난 된장찌개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있었다. 변함없는 성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우린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사역을 기억하였고, 잘 모르겠다는 아들에게 '리뷰'를 하면서 다시금 참교회의 표지인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본질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면서 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이런 모습(참교회의 표지)을 발견할 수 없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짧은 생각중에 결론으로 얻은 것은 오늘날 목사들의 '열심(바로 표현하자면 욕심)'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소명에 대한 확인 등 원리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느끼지만 간단하게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통해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직면한 문제는 너무 잘 해보려고 하는 것, 너무 (교인을)배려해주려 하는 것, 너무 이해시키고 싶은 것, 더 지혜롭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 더 잘 가르쳐보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성경말씀이 가르쳐 주는 것을 그대로 더하거나 빼지 않고 전하는 것, 그렇게 믿고 가르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더 이해하기 싶도록 어떤 부분은 강조하고 생략하며, 너무 어렵고 딱딱한 부분은 단순화시키고 청중(?)의 입장을 고려하여 전달하는 것이 교회의 참 표지 중 하나인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적당히 교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교회의 성장(?)에 유익하며 사랑있고 배려심있는 목사의 덕목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교회를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분명 다소 투박하더라도, 다소 세련되지 못해 보이더라도, 다소 부족해보이더라도 신구약 성경말씀과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그분의 뜻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 창궐하는 인본주의의 교묘한 공세를 패퇴시키고 하나님의 계시앞에 진실하게 서는 유일한 비결이 아닌가 싶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들의 능력이며 자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 가거나 못미치는 것이 바로 죄이며, 그렇게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좋은 목사가 되고 싶은 이'들의 죄악이라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구약의 여러 선지자와 예언자들의 증거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 사도와 교부들의 증언, 교회개혁자들의 회복에 이은 여러 개혁교회의 고백들에 충실한 믿음에 굳게 서 동일한 가르침과 믿음을 전하고 받는 바른 목사와 교회들이 이 땅 이곳저곳에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여 그런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귀한 사역자들이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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