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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의 복음 (1)/디도 3:5-7

by 【고동엽】 2022. 1. 10.

성결의 복음 (1)

 

 

디도 3:5-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

 

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하심을 얻어 생

 

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우리교단의 총회는 100년차 총회였습니다. 이 100년차 총회에서 저를 총회장으로 선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총회를 마치자마자 공식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미국 시카고 인근인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그린우드에 가서 OMS 104년차 선교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OMS는 동양선교회라는 기구로 우리 성결교단을 창시한 선교단체입니다. 그래서 100년차 총회를 맞는 한국성결교단에 대해서 남다른 의미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LA에 있는 갈보리 채플을 방문하여 양교단의 협력관계를 협의하였습니다. 현재 갈보리 채플은 미국 내에 2,800여개의 교회를 가지고 있는 교단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나 세계적 명성으로 볼 때 우리교단과의 협력은 우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입니다. 논의 결과 양교단간의 공식적인 협정문제는 일단 먼저 교류를 한 후에 점진적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갈보리 채플의 실질적 리더인 싸우스 베이 갈보리 채플의 담임목사인 스티브 메이 목사님을 내년 기념행사에 축사를 부탁하였고 오신 기회에 목회자들을 위한 영적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주사 대학을 방문하여 아주사 대학교와 우리교단과의 협력관계를 논의하던 중 먼저 내년부터 한해에 고교졸업생 2명씩을 유학생으로 받아주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줄 수 있는 장학금을 최대한 수여하되 한국성결교회에서는 아주 우수한 고교졸업생을 추천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차후 우리교단은 인재육성에 주력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교단도 10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여 영적 대부흥운동이 무디를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대단한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886년에 시카고에 무디신학교가 설립되게 되고 이 신학교를 통하여 2만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는데 그 2만여 명 중에 만 오천여명이 선교사로 세계 각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수치입니다.

 

그들 중에 감리교회 교인이었던 카우만이라는 젊은이가 그의 아내와 함께 친구인 길보른을 전도하여 함께 기도하던중 이 세 명이 무디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고 그들은 공부하는 중에 세계선교에 뜻을 품고 기도하다가 마침내 졸업한 후에 1901년 일본으로 건너가 성서학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때 한국에서 김상준 정빈이라는 두 젊은이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이 두 사람은 성서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부를 마친 이 두 사람은 1907년 귀국 하여 5월 29일 서울 종로의 무교동에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전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국 성결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성결교회는 장로교회와 감리교회 보다 약 20년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5월 29일 주일이면 한국 성결교단은 선교 역사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결교회가 시작될 때 성결교회의 중심신앙과 신학을 세웠는데 그것이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는 네 가지 표제입니다. 이것을 4중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네 가지 신학은 신앙의 점진적인 발전을 뜻하는 것이고 신앙의 골격에서 그 중심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 생

 

 

 

이 중생은 신앙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첫 과정입니다. 즉 “나는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는 신앙체계입니다. 여러분은 천국에 갈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내가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나는 과연 천국갈 수 있는가”를 한번 물어보십시오. 이것은 교리 중에서 첫째 되는 핵심내용입니다. 천국 가는데 제 1의 조건이 “중생하는 일”입니다. 중생(重生)이라는 말은 “거듭난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3:5를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입문입니다. 그것은 중생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이제부터 나는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 고백은 쉽고 간단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이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성령의 부르심이 있을 때에만 고백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내가 예수를 알고 믿고 제자된 것은 내 뜻이나 공로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교리인 중생의 교리입니다.

 

 

 

성 결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나 임직할 때 그리고 안수식을 할 때는 “중생하고 성결한 체험을 하였습니까”하고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때 대부분은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성결의 은혜는 대부분 “내적인 은혜로 조용히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구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게 됩니다. 이 고백은 중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내주해 계실 때 그때 우리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나의 자범죄를 용서받게 되고 원죄의 죄책과 영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구원받음의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원죄의 부패성 즉 죄성에서 까지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의 상태에서는 의를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구별하고 죄로부터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여전히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각오했는데 또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것은 중생의 단계에서 성결의 단계에 이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각오했으나 또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각오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내 각오나 나의 의지는 별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나 각오 가지고 목숨을 버리고 순교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내안에 내주하셔서 도와주실 때 성결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에게 성령세례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시면 모든 타락에서 그리고 유혹으로부터 물리치는 힘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마 16: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중생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나서도 또 실패하고 실수합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본의 아니게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길에서는 나의 의지나 각오 가지고는 완성된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후에 아주 완성된 베드로로 거듭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마침내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때 그는 비로소 성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주어지는 모든 힘과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가 목숨을 걸고 다니며 전도하다가 끝내는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 힘이 자신의 의지나 결단이 아니었고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힘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의 단계는 “주님은 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하고 고백하는 중생의 단계에서 주님이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결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신앙의 삶이 여물게 되고 성결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성결의 삶은 내 안에 내주해 계시는 그 성령과 늘 상의하고 동행하고 상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용기와 능력과 무서운 의지력을 발휘하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갈보리 채플을 방문 했을 때 싸우스 베이 갈보리 교회 담임목사인 스티브 메이스 목사를 만났습니다. 이 목사님은 청년 시절 히피로 살았습니다. 마약에 중독되어 머리를 길게 하고 폐인처럼 길거리를 헤매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며 살아가던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어느 날 척 스미스 목사에게 발견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에게 이끌려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마침내 영적으로 회심하고 중생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 후에 이 젊은이에게 성령께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셨는지 그의 무질서 하던 삶이 일신되어 오늘은 능력의 목회자가 되어 만 명이 넘는 교회를 이루어 목회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오늘 전립선암을 통고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되느냐고 묻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히피였습니다, 마약중독자였습니다. 마약을 거래하다가 총에 맞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그 후유증으로 몸이 온전치가 못합니다. 나를 여기까지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주님이 나의 미래도 인도하실 것입니다. 나는 다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갈 따름입니다.”그런데 그의 모습에서 보인 느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삶과 죽음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주 비장하고 또 한편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내안에 내주하실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그때부터 모든 유혹을 극복하는 힘이 주어지고 모든 두려움에서 극복하는 힘도 주어지고 생사의 위기에서 극복하는 힘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성결의 삶의 은혜입니다.

 

 

 

신 유

 

 

 

이 신유라는 용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앙용어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힙 입어 고침 받음의 은혜를 말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여러 명의 병자들이 예수께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고침 받음이 모두 신유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몸의 질병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사함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혼의 구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질문하시기를 “네가 믿느냐“라고 먼저 물으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은 오셔서 육신을 고치시고 우리의 영혼을 고치시고 우리의 정신을 고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요한 일입니다.

 

 

 

재 림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승천 하실 때 “너희가 본 그대로 내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록22:7,12,20절을 보면 “내가 속히 오리라“고 세 번씩이나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기들 세대에 재림하여 오실 줄로 믿고 살았습니다. 사도바울도 독신으로 살면서 “나와 같이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주님이 곧 오실 것인데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보다 주님을 고대하고 살아가다가 재림하여 오실 주님을 만나는 삶이 좋다는 뜻입니다.

 

이 예수님의 재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인의 영광입니다. 참고 인내하고 수난과 고난을 이겨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악인의 심판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심판한다는 의미입니다. 일제 때 이 재림신앙이 너무나 간절하였고 뜨거웠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너무나 악랄했고 수탈과 강압이 거세었지만 일본을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미래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빨리 재림하셔서 일본을 심판하시고 천황을 심판하시고 이 타락한 세상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일본 군국주의와 배치된다고 해서 마침내 일본은 예배 금지령을 내렸고 마침내는 우리교단을 강제 폐쇄하고 해산령이 내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성결교회는 이렇게 재림신앙 때문에 무서운 고초를 당하고 감시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350여명이 순교하여 목숨을 잃었고 충남에 있는 병촌교회는 한날한시에 66명이 예배를 드리다가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성결교회가 시작되면서 내 걸었던 신앙표제가 4중 복음입니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이 4중 복음은 신앙이 발전하고 성숙해가는 순서입니다. 시작에서 완성까지를 이끌어 주는 신앙의 길잡이 입니다.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중생하고 죄씻음 받고 성령이 새롭게 하심으로 주어졌으니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시민이 되었느니라.”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발전하였으면 합니다. 신앙의 삶이 이렇게 여물어 갈 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고 내용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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