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
살전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이제 한 달 후 3월 1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번 사순절 주제는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라는 주제로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주제를 가지고 먼저 말씀드리고 사순절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나와 너를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이고 또 너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이 끝나게 되면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교우들 또한 모든 이웃에 대한 개념이 새로워지는 그런 은혜가 주어졌으면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그런 세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 개념부터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네가 소중하고 이웃이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하고 그들이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뜻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번 이 주제를 통해서 “너를 세우고 나를 세우는 지혜”를 배웠으면 합니다. 그래서 네가 행복해야 결국 내가 행복하고 네가 잘 되어야 결국 내가 잘 된다는 것을 체험했으면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아주 짤막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앎으로 구원을 받았고 은혜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나거나 무사안일주의에 빠지지 말고 서로 영적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영적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서로 충고하고 용기를 북돋우고 위로하고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이 서로 용기를 북돋우고 격려하고 덕을 세우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이웃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언제나 이 덕을 세우는 삶을 중시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며 교회가 건강해야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진다는 것
교회에는 많은 신앙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피차 남남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남남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영적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형제라고 부르고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은 모두 이 교회로 하여금 화목한 교회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평화가 나의 인생의 평화로, 나의 가정의 평화로, 나와 너의 평화로운 관계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 화목하게 하는데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교회가 평화로운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교회가 불화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교회가 불화하면 일주일 내내 행복함과 즐거운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가 화목해야 할 이유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교회들을 가보면 서로 열심이 지나쳐서 갈등이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주 서툰 정신입니다. 여러분, 불화하면서까지 열심을 내면 안 됩니다. 누구를 위한 열심입니까. 그것은 열심이 작은 것 보다 훨씬 해악적인 열심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봉사관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끔 보면 교회라는 공동체를 깨고 불화하게 조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참 조심해야 합니다. 너의 불화는 곧 나와의 불화로 전염됩니다. 이 불화도 전염됩니다. 우리 모두 교회라는 공동체를 화목하게 아주 조화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교회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이점에서는 앞서가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곧 나의 평화로, 나의 삶의 평화로, 나의 영적생활의 평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건강해야 결국 내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
너는 곧 남이 아닙니다. 네가 행복하고 잘 되어야 결국 내가 잘되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마냥 시기만 할 일이 아닙니다. 네가 잘 살아야 그 은혜가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국가 경제가 나빠지니까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까. 내 주위의 사람들이 사업이 어려워지니까 그 영향이 곧 바로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이 관계의 오묘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사업을 할 때 334법칙을 지킨다고 합니다. 사업을 할 때 수입을 10에서 3을 동업자에게로 돌립니다. 내 동업자가 잘 되어야 곧 내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을 생산자에게로 돌립니다. 생산자가 잘 되어야 곧 내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4를 내가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로가 안정적으로 잘 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업자를 속이고 생산자를 속이고 내가 몽땅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몽땅 내 것이 됩니까. 그래서 결국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축구경기에서 혼자 영웅심이 강한 선수가 문제입니다. 이 선수가 팀의 조화를 깨버립니다. 공을 골인 시키려면 혼자 몰고 가서는 절대로 넣지 못합니다. 축구경기에서 서로 공조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내가 행복해야 곧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아내를 구타하고 무시하고 갈등이 계속되면 결국은 내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남편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을 무시하고 구박하고 나가서 험담을 하면 그 결과가 누구에게로 돌아오겠습니까. 결국은 내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부모를 괴롭히고 형제를 괴롭히고 회사를 괴롭힙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보면 참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어째서 우리나라는 부수기부터 하고 회사에 불을 지르고 일을 못하게 방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파괴입니까. 그것이 아주 서툰 공동체를 깨는 행동입니다. 이제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엊그제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제목이 “배려”라는 책입니다. 이 세상은 복잡하고 경쟁이 심한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힘은 능력이 아니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배려의 힘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주인공 “위”라는 사람은 아주 유능한 젊은이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류회사 수석으로 입사를 합니다. 이 젊은이가 죽어라 일을 했습니다. 주변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에 무관심하고 배려도 없이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 업적을 남기려고 성공욕망에 사로잡혀서 가정도 등한히 하고 오직 일만했습니다. 그래서 한때 고속승진을 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잠시는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 바람직한 태도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젊은이가 어느 날 회사가 어려워지게 되자 정리대상의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로부터 이혼청구소송을 받습니다. 그때 이 젊은이가 비로소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열심히 살아온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이 젊은이는 비로소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가 고뇌하고 고민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젊은이의 눈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가족이 눈에 보이고 아내가 이혼소송을 낸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 젊은이가 살아가면서 이웃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만 열심히 벌어다 주면 다 되는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내와 갈등합니다. 자식과 갈등하고 이웃과 갈등합니다. 배려하고 베풀어야 그것이 곧 나에게 행복으로 성공으로 돌아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은 “서로 권면하고 모두에게 덕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이유는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래야 내 지체들이 영적으로 온전히 서게 되기 때문이고 셋째는 그렇게 해야 그 열매가 나에게 행복으로 성공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함께 살며 조화를 이루며 배려하는 덕을 이루는 삶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교제하도록 지음 받았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주위에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시끄럽게 부대끼면서 재미있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언제나 혼자 있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때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왜 내 주변에는 사람이 오질 않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조용하게 혼자 놀고 혼자 앉아있는 아이들이 문제입니다. 혼자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함께 하고 교제하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은둔자가 아니고 늘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병자들과 함께 하셨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건강한 영적성장이 이루어집니다. 늘 혼자 있으면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생활도 주일날 출석만으로는 교제가 되질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다가가서 만나야 합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교제가 이루어지고 헌신하게 되고 섬기게 됩니다. 이 교회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섬김의 삶입니다. 서로 받아주고 서로 세워주고 서로 권면할 때 나도 영적성장을 이루고 너도 영적으로 자라 가는 것입니다. 이 인간관계가 없으면 인내하고 섬기고 친절을 베풀고 용서하고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기회가 없어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능을 주시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왜 주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그 재능을 나의 유익을 위해 주시고 너를 섬기라고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재능 한가지씩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재능은 나 혼자 있을 때에는 효과 있게 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재능과 네게 주어진 재능이 합해질 때 가장 빛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십시오. 아무리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혼자서 악기를 연주하면 무슨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나와 네가 함께 할 때 화합이 이루어져서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아름다운 곡조가 흐르고 화음이 이루어지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성숙한 모습은 서로 함께 할 줄 알고 서로를 위해서 헌신하고 사랑하고 덕을 세우고 살아갈 줄 아는 모습에서 성숙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이 함께 하는 삶이 아주 서툰 사람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이 잘 조화된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면 그날부터 조용하던 공동체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화음을 깨집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서툰 젊은이가 아니고 나이 먹고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 가운데서 그런 분들이 있음이 불행한 일입니다. 그 보다 더 불행한 것은 나이도 들고 신앙생활도 오래한 분들 가운데도 그런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화합하질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덕을 끼치지 못하고 화목을 깨는 분들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언제 누군가를 위해서 섬기고 헌신하고 배려하고 희생할 기회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얼굴이 예뻐지고 싶으십니까. 제가 결론으로 얼굴에 칼 안대고도 예뻐지는 비결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연예인이 예쁜 얼굴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두 가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아 저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형 수술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여자 연예인이 아주 예뻐진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얼굴이 예뻐진 이 연예인에게 물어보니까 둘 다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얼굴이 예뻐진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다시 물어보았더니 잠자는 습관이 달라졌다고 대답했습니다. 전에는 몸이 지치고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씻고 잠자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아무리 피곤해도 들어와서 한두 시간 동안 하루 동안에 있었던 감사했던 일 10가지를 노트에 적고 그것을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동안에 감사했던 일이 엄청난 것이 아니고 아주 사소한 것들을 골라내서 감사하고 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무사하게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나를 안내해준 매니저에게 감사하고, 화면에 예쁘게 나오도록 옷을 골라준 코디에게 감사하고, 방송국에 갔을 때 먼저 나에게 인사해준 분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하루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이 있었음을 감사하고, 그동안 오해 있었던 일들을 발견하고 먼저 찾아가 사과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 감사하고,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을 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모든 사람이 다 내 형제 같고 인간관계가 좋아져서 모두를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지는 마음이 주어지는 것을 감사하고, 그렇게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 잠이 달게 되고 그 다음날에는 컨디션이 좋아져서 내 얼굴이 이렇게 예뻐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것이 얼굴에 칼 안대고도 예뻐지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항상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 서로 권면하고 모두에게 덕을 세우라고 강조하신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내가 있어야 네가 존재하고 네가 있어야 내가 존재합니다. 내가 너를 섬길 때 네가 행복해지고 네가 행복해져야 그 행복이 곧 나에게로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갈 때 우리의 본분을 다하게 되는 삶을 명받았습니다.
이번 사순절은 그동안 살아온 우리의 삶의 태도를 수정하고 그동안 보지 못하고 살아가던 부분들을 보고 그동안 소홀했던 관계들을 새롭게 풀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웃을 섬기고 배려하고 헌신하고 그들이 있음이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결과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문제들,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문제들, 직장에서, 주변에서 일어났던 풀지 못하고 그냥 마음에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들이 다 풀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풀어진 마음에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하던 행복함과 감사함이 가득 채워지고 여러분의 생활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고 마지막으로는 여러분의 얼굴이 칼 안대고도 예뻐지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기기 위해 구원받은 존재/ 갈 5:13-15 (0) | 2022.01.10 |
---|---|
인생의 모델 /빌 3:17-18 (0) | 2022.01.10 |
앙망하는 생활 /사 40:28-31 (0) | 2022.01.10 |
책임 있는 자리 /마 5:29-30 (0) | 2022.01.10 |
벽을 넘어서 /행 8:1-6 (0) | 2022.0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