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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힘 /롬 8:31-39

by 【고동엽】 2022. 1. 10.

더 큰 힘

 

 

롬 8:31-39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늘 이 시대는 힘을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힘에 의해서 승패를 이루는 시대입니다. 힘이 있으면 다 이길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은 이 힘이 우상인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강하고 더 큰 힘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다 쓰고 있습니다. 여야는 서로가 더 큰 힘을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힘이 없으면 할 일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 힘이 강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치고 세계 어디를 가도 어깨를 피고 다닙니다. 재벌들은 이 힘이 있기 때문에 계열사들을 좌지우지 합니다. 이 힘이 참 묘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을 가지려고 그렇게 안달을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 보면 나타난 힘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나타난 힘 보다 숨겨진 힘이 더 크고 강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탈옥한 무장 강도가 총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남편은 무서워서 떨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보통 때에 강하고 결정적일 때 약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내는 오히려 의연하고 침착했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정말 잘못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정말 무서운 사람은 여성들입니다. 그때 아내가 무장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총을 놓고 여기 앉으세요,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할 테니 좀 기다리세요.” 아주 놀라운 태도입니다.

 

강도가 생각하니까 이 여자는 참 독한 여자였습니다. 이렇게 독한 여자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너는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여자예요, 당신이 지금 날 쏘아 죽이면 나는 천국에 가요, 그런데 뭐가 무서워요, 내가 가진 이 마음을 당신도 가질 수 있어요“. 이 여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말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밥을 지어 먹이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새벽 3시에 강도가 이 집에 들어왔는데 아침 10시에 이 강도가 순순히 총을 놓고 자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탈옥 무장 강도 사건은 이렇게 아무런 부작용 없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힘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타난 힘”

 

 

 

여기 이 탈옥 무장 강도는 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을 정복하고 있다. 이것을 컨트롤이라고 말합니다. 이 무장 강도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모두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힘을 과시할 수도 있습니다. 명령할 수도 있고 호령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밖으로 나타난 우리들이 흔히 느끼고 보는 힘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이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습니다. 나치, 일본군국주의, 공산주의, 국수주의, 독재정권 모두 이 힘에 의해서 이 세상을 지배했었습니다. 나치가 그 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공산주의가 그 힘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죽이고 그랬습니까. 독재정권이 얼마나 그 힘을 남용했습니까. 지금도 가정에서 큰 소리로 힘을 과시하는 집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아직도 이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국가들 간에도 이 힘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밤에는 이 힘을 가진 사람들이 활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제는 이 힘으로 지배하는 시대는 지나버렸습니다. 이제는 나라도, 회사도, 가정에서도 이 힘으로 다스리고 지배하고 과시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힘으로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엊그제 토픽 란을 보니까 5미터 되는 뱀이 1.5미터 되는 악어를 잡아먹다가 배가 터져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힘이 다가 아닙니다. 나폴 레온이 유럽을 정복한 후에 시세를 몰아 러시아까지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출정전날 밤 귀족부인을 초청해서 식사하던 자리에서 이 나폴 레온이 전쟁 계획을 설명해 주면서 너무 지나치게 승전을 자신했습니다. 때로 힘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과신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소리 치고 호언하고 지배하고 장담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부인이 “계획은 인간이 하지만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나폴 레온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인, 모든 것은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이룹니다.” 이것이 힘을 가진 사람의 만용의 태도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만용하게 되고 그 힘을 맹신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몇 달 후에 나폴 레온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유배생활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힘있는 자리에서 그 힘을 과시하고 남용했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물러난 후에 다 심판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겉으로 나타나고 보이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미치게 하고 숭배하게 하고 과신하게 해서 결국 넘어지게 만듭니다.

 

 

 

“부드러운 힘”

 

 

 

이 힘은 부드러운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힘”입니다. 민주주의 힘은 어떻게 보면 무질서하고 약한 것 같고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가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민주주의가 이 땅을 정복할 것 같이 기세가 등등하던 공산주의, 독재정권, 히틀러, 군국주의 일본을 무너트리지 않았습니까. 민주주의에는 총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들이 모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강한 것입니다. 독재자들이 이 힘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독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은 무조건 강해야 강한 줄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국 수상 처칠을 태운 차가 과속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때 처칠이 문을 열고 교통경찰에게 “이봐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지금 각료회의 가는 중이야”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교통경찰이 “예 얼굴은 수상각하와 비슷합니다만 법을 지키는 것은 비슷하지 않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감동받은 처칠이 경시총감을 불러서 그 이야기를 다 하고 그 경찰을 일 계급 특진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경찰총감이 “과속차량 적발했다고 특진시키라는 규정은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힘입니다. 이 힘이 얼마나 강한 힘입니까.

 

또 하나는 “햇빛의 힘”입니다. 이 햇빛이 참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 강한 비바람, 태풍이 불 때가 있습니다. 이 태풍은 참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무너트리고 온 세상을 뒤집어엎어 놓습니다. 이 태풍이 이 세상을 뒤집어엎고 무너트리고 부러트립니다. 그래서 태풍이 몰려오면 우선 마음이 두려워집니다. 그런데 이 태풍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옷깃을 더 단단하게 여밉니다. 이 힘이 아무리 강해도 땅속의 새싹을 돋아나게 하질 못합니다. 사람들이 입은 겉옷을 벗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꾸만 움츠리게 합니다. 그래서 태풍이 밀려오면 사람들은 더 단단히 무장하고 단속하고 더 강하게 붙잡아 맵니다. 그런데 햇볕은 소리 없이 내리 쪼이지만 땅속에 움츠리고 있던 새싹들을 돋아나게 하고 얼음을 녹이고 옷을 벗기고 꽃이 피게 만듭니다. 햇빛은 태풍보다, 독재보다, 폭군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드러움의 힘입니다.

 

그래서 브라운(H. Jackon Brown)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시냇물과 바위가 서로 대치하였을 때 시냇물이 언제나 승리합니다, 그것은 시냇물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고 끈질긴 지속성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것이 더 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혀와 이빨과 싸우게 되면 얼핏 비교가 되질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부드러운 혀가 어떻게 강한 이를 이갈 수 잇겠습니다. 그런데 천하없어도 이가 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얼핏 보면 혀와 이는 비교가 되지 않게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반드시 혀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단단하고 강하던 이를 다시 해 끼우고 틀 이를 끼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혀는 평생 갈아 끼우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있는 것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진정 더 큰 힘 “복음의 힘”

 

 

 

이 복음의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힘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능력은 햇빛보다 월등히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재정권과 비교도 되지 않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얼마나 강했습니까. 로마제국이 얼마나 강력한 군사력과 지배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그 로마는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신앙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조차도 로마는 영원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후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당시 로마에 전도하려던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초라했고 무력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독수리로 표현되었습니다. 창공을 자유자재로 날고 먹이를 발견하면 피할 동물이 없을 만큼 기개와 용기와 강력한 힘을 가진 독수리가 곧 로마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 로마는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무력했습니다. 로마가 한번 짓밟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초라하고 무력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당당하던 로마가 이 무력하고 초라하게 보였던 기독교로부터 마침내 정복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복음의 능력이 그 후 2천년동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힘이 곧 복음의 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힘은 무력이 아닙니다. 총칼도 아닙니다. 독재의 힘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이 내 속에 임재 하셔서 주시는 그 무서운 힘으로 세상을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아주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얼마나 자신에 찬 고백입니까.

 

우리는 이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힘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성령의 힘이 임재 함으로 얻어지는 그 힘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힘을 입고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내 안에 지금 내재해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분의 힘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 힘이 나를 정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 능력이 나를 움직이도록 나는 그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나를 움직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성령의 사람이 되고 복음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그 힘에 사로잡혀 살고 움직이게 되고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골프 선수 중에 최경주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골프선수가 골프시합 중인데 수요일 밤에 인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가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어떻게 경기도중이고 바쁠 텐데 왔느냐”고 물으니까 “그래도 예배를 드려야죠” 하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이 당당함과 용기가 힘과 돈과 무력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해 계심으로 주어지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 힘이 진정한 강한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84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해 겨울 어느 주일날 날씨가 추워 영하 34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우니까 성도들이 교회에는 평소의 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88세 된 골디 슈리버 라는 할머니는 100 리나 되는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교회에 올 때 그냥 혼자 나온 것이 아니고 100세 된 애나 해밀턴 이라는 할아버지를 50 리나 되는 거리를 가서 데리고 나왔고 또 30 리나 되는 거리를 가서 94세 된 프랜 스파코스 라는 할아버지도 함께 모시고 와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때 담임목사가 너무나 감동이 되어 “이렇게 추운 날 혼자도 아니고 여러분을 모시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작은 십자가를 진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직 목숨을 바칠 충성은 못 됩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기이고 힘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용기이고 힘입니까. 이 힘이 돈으로 주어지고 명령으로 주어지고 지위로 주어질 수 있는 힘입니까. 이 힘이 우리를 살리시고 도우시고 영생하게 하고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이 세상은 열심히 살고 부지런 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이 있고 기술이 있고 젊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야 하고 복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지고 수고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고기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수고가 부족하고 열심이 부족해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사람이 밤새워 성을 지켜도 도둑 한사람을 못 잡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과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이 힘으로 다 해결되었습니까. 돈으로 다 해결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은 내안에 내재해 계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힘에 순종하고 의지하고 살아갈 때 마침먼저는 내가 변하고 그리고 난 후에 이 세상이 변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한때 힘을 자랑하고 조건을 자랑하고 다니던 사울이 이 복음을 받고 변화된 후에 이 복음의 힘에 의해서 살지 않습니까. 그 힘을 의지해서 종횡무진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 있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의 말씀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에 의한 결과이고 고백이고 은해입니다. 이 같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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