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에서! (대상 11:15-19)
남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방에서 아내가 부침개를 하고 있는 데 고소한 냄새가 솔솔 들어 왔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수발들고 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딸아! 네 엄마가 만들고 있는 부침개 하나 먹고 죽고 싶다. 한 조각만 가지고 오거라> 딸은 얼른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오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장례식에 쓸 음식이라고 안 준 데요> 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살맛나지 않는 세상 죽자> 그리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살맛나는 일보다 마음을 찡그리게 하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살맛나는 세상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 가요?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일가요?
나는 살맛나는 이야기를 들려 드림으로 오늘 말씀을 열려고 합니다. 국립묘지 이야기입니다. 국립묘지 앞에서 꽃 장사를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국립묘지를 찾는 이들에게 꽃을 파는 이였습니다. 어느 날 딸이 꽃을 파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할머니 좀 보세요. 우리가 꽃을 팔면 사람들이 묘지에 놓고 울면서 추모하다가 돌아가지요. 그러면 저 할머니는 몰래 그 꽃을 걷어다가 우리 가게 옆에서 펼쳐놓고 팔고 있어요. 저런 비양심적인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도둑질이지요. 슬픔을 당하는 사람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고인에 대한 실례지요. 우리 장사 안 되게 하지요. 공짜로 돈을 벌지요. 혼내주세요>
이 말을 듣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딸아! 세상은 같이 사는 것이란다. 생활이 어려워 할머니가 저렇게라도 살려고 하는 데 도와주지는 못 하나마 방해하지는 말자>
그러나 딸은 말했습니다. <저런 거머리 같은 사람은 다시는 저러지 못 하게 혼내 주어야 해요>
그러던 어느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날이었습니다. 국립묘지를 찾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꽃도 수거할 것이 없어서 왔다 갔다만 하였습니다. 딸은 꽃 가게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손님이 없어서 무료하기만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잠간 나갔다 온다고 가게를 비우셨습니다.
딸은 책을 읽다가 창 너머도 국립묘지를 바라보면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이 묘지 저 묘지 앞을 다니며 꽃다발을 놓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편 할머니는 그 꽃다발을 몰래 거두는 것이 보였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 왔습니다. 딸은 이 모습을 바라면서 아버지에 할머니에 대한 사랑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사랑이 있는 세상,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 뭉클한 살맛나는 세상 이야기를 대하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막지대입니다.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우물물을 마시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강대국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군사들과 함께 베들레헴 근처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너를 죽이면 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빼앗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사실은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장군, 어느 군사가 저 땅으로 쳐들어 저 땅을 빼앗아 줄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은 그 땅을 빼앗고 말겠다는 꿈을 불태우면서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전략을 짜던 중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왕이 저 땅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하시니 목숨을 걸고 가서 떠다 드리자> 그리고 물을 길러 적진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물을 떠 왔습니다. 몰래 들어가서 몰래 떠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목숨을 건 싸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돌아 와서 세 사람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베들레헴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셔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드시지요>
다윗은 그 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자기에게 그렇게 충성하는 신하를 보았습니다. 감격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물을 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그 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단을 쌓고 그 위에 부었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베들레헴을 빼앗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후에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블레셋으로부터 도로 빼앗아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서로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누구 얼굴 하나 찡그림이 없는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일가요? 반대라면 살맛나는 세상일가요? 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이 놈들아! 저 앞에 베들레헴을 보아라. 내 고향이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문턱이 베들레헴이라 전략상 너무나 중요하다. 앞장서라. 그리고 생명 걸고 싸워라. 내가 어려서 자라면서 마시던 물을 한 컵 떠 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총살이다>
신하들은 벌벌 떨면서 칼과 활을 들고 앞으로 나가면서 말합니다. <지랄하네. 자기가 앞장 서 보지> 이런 분위기라면 볼 장 다 본 엉망의 군대일 것입니다.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가요?
1. 목표가 있는 세상
목표가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블레셋은 강대국입니다. 무적의 군대입니다.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꿈이 있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저 땅을 점령하리라> <저 땅을 빼앗고 말리라> 꿈이 있는 세상, 하여야할 목표가 분명한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나는 이 일을 하고 말리라는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전진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에게는 분명한 꿈이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윌리암 캐리 목사님은 인도 선교의 문을 연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그는 인도에서 선교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주어서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하여 인도어를 능통하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성경 번역에 착수하였습니다. 피를 말리는 노력을 한 결과 성경 번역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머리를 식히려고 산책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강아지가 촛불을 건드려서 쓰러 드렸습니다.
그 동안 번역하여 놓은 성경 원고를 다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를 때려죽이려고 하다가 그는 갑자기 강아지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까지 번역한 성경 원고는 불완전하기에 하나님께서 강아지를 통하여 불태워 버리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더 들어도 더 좋은 번역이 나올 줄로 믿습니다. 강아지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강아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내려놓고 다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경 번역을 하였습니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도중에 난관이 있고 장애물이 있어서 극복합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힘이 다시 솟구칩니다. 꿈이 있기에 살맛이 나는 세상이 됩니다.
아무리 블레셋이 강하고 무서워도 꿈이 있는 사람에게는 점령당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큰 백지에 보일락 말락 하는 조그만 점을 하나 찍어 가지고 학생들에게 한 장 씩 나누어 주고 물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학생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들을 무시하십니까? 안 보일 것 같지요? 못 볼 것 같았지요? 점이 보입니다. 잘 보아야 하는 것이지만 분명히 점이 있습니다.> 이 때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조그만 점만 보고 그렇게 큰 백지는 안 보이니? 볼 것은 안 보이고 잘 안 보이는 점만 보고 말하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짜증나는 작은 문제들만 보고 실망하고 좌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큰 것을 보아야 합니다. 큰 꿈을 보십시오. 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보십시오.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을 빼앗으려고 하는 꿈을 크게 보고 있었습니다. 앞에 있는 블레셋 적들이야 하나님이 함께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꿈이 분명한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고 목표가 분명하게 살아가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2. 서로 알아주는 세상
서로 알아주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세 사람은 다윗왕의 심정을 알아주었습니다. <고향 땅을 얼마나 가고 싶으실까?> <예루살렘을 빼앗으려면 베들레헴은 길목이니 얼마나 점령하고 싶어 하실까?>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원수 나라이니 얼마나 물리치고 싶어 하실까?>
세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을 달려 드리려고 목숨을 걸고 가서 우물물을 떠왔습니다. 이 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신하들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신하들아! 나는 너희들 마음을 알았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 네가 얼마나 충성하는지 알았다. 우리나라가 베들레헴 땅 점령이 필수라는 사실을 너희가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 물이 어찌 물이니? 너희들의 피가 아니니? 목숨을 걸고 떠온 귀중한 물을 어떻게 내가 마시겠니? 너희들 심정을 내가 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정말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되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고 사랑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입니다.
다윗과 세 신하 이야기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크로닌 의사가 쓴 책을 나는 많이 읽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천국의 열쇠>라는 명저가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자기 밑에 있는 간호원이 자기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아서 환자 한 명을 죽게 하였습니다.
크로님은 병원장에게 탄원서를 썼습니다. <이 간호원은 자격 미달이니 파면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간호원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탄원서가 올라가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크로닌 의사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크로닌은 이 말이 곧 자기가 예수님 앞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나도 주님 앞에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 저 간호원을 누가 정죄할 수 있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 어느 간호원이 일부러 사람을 죽이겠느냐? 정말 실수요, 정말 모르고 한 것이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크로닌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탄원서를 들고 간호원 앞에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간호원은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간호과장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능한 간호원이 되었습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이해하여 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아껴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과 세 사람이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누구나 알아주는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주어도 예수님만은 모든 것을 다 알아 주시는 분이기에 예수님에게는 항상 군중이 따랐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7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창녀에 귀신들린 여자를 좋아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여자가 성녀가 되리라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족들도 버렸습니다. 친구들도 냉대하였습니다. 모두가 무관심하고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아 주셨습니다. 정상적인 여자가 되기만 하면 가장 놀라운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아 주셨습니다.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창녀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제자들도 다 도망갔지만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 갔습니다. 로마 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예수님을 무덤을 새벽에 찾아 갔습니다. 남자도 없는 뱃장을 가졌습니다. 제자들도 잃어버린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쳤습니다. 많이 거두어서 자기가 일부를 착복하였습니다. 모두가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 속에는 고독이 들어 있고 그 많은 돈을 여리고 사람을 위하여 쓰고 싶어 하는 심정을 알아 주셨습니다. 그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 집에 들어 가셨습니다.
드디어 삭개오는 말했습니다. <예수님! 내 재산을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세금을 더 거둔 것이 있으면 4배씩 갚겠습니다.>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예수님 앞에서 삭개오는 전적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남존여비하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남자가 존재하기에 여자는 비참하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해석은 달라졌습니다.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서다> 점점 이해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요즈음에 나온 유머입니다.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에 부탁을 하였습니다. 두 차가 도착하였습니다. 늙은 남편은 자기를 안 데리고 갈까 두려워 빨리 차에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일군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이 차는 폐기 처분할 물건을 실은 차입니다.> 다 보내고 못 쓸 물건만 나중에 실으려고 대기 중인 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늙을수록 서로서로 이해하고 알아주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맛나는 세상이 됩니다.
3. 하나님 사랑이 있는 세상
하나님 사랑이 있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렸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을 부어 드리면서 다윗은 틀림없이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물은 베들레헴 우물물입니다. 하나님께 이 물을 드립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을 돌려주옵소서. 그 땅을 점령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후에 그 땅은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 땅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이 때 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는 성경 말씀이 없습니다. <왕이시여! 그 물을 우리가 목숨을 걸고 길어 온 물인 데 왜 땅에 부으십니까? 왜 낭비하십니까? 우리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다시 그 물을 떠올 마음이 들겠습니까?> 이렇게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같이 드린 분위기를 성경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결론 나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북 사리원에 있는 계동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계동 교회는 장로님이 모두 7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4명 장로님이 6.25때 공산당들에게 순교를 당한 유명한 교회로 교회사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강덕기 장로님입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공산당과 예수를 믿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항상 생명을 건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당이 그 교회 들어 왔을 때 강덕기 장로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강 장로를 잡아 교회 기둥에 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인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강 장로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두 눈을 후벼냈습니다.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그래도 부인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두 분이 있을 때는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았는데 두 눈이 빠지고 나니 하늘나라가 보인다.> 그리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공산당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배반당하는 것 같은 모멸감을 가졌습니다. 총으로 쏘아서 간단하게 죽이지 않고 총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국군이 그 마을에 들어 왔습니다. 미처 도망하지 못 한 공산당들이 붙잡혔습니다.
강 장로를 때려 죽였던 공산당도 잡혔습니다. 국군들과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을 강 장로를 붙잡아 매어 놓았던 바로 그 기둥에 붙잡아 맸습니다. 그리고 강 장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다. 네 마음대로 하여도 좋다. 죽여도 좋다. 네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두 눈을 빼고 때려 죽여도 좋다>
그 때 강 장로 아들이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순교를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기둥에 묶여 있는 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있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의 결론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살맛나는 가정에서, 살맛나는 직장에서, 살맛나는 교회에서,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까? 오늘 본문과 같은 세상입니다.
1. 꿈이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2. 서로 알아준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3. 하나님 사랑이 있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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