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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고치며 살자! (요한복음 5:1-9)/(고)이중표목사

by 【고동엽】 2022. 1. 2.

병을 고치며 살자! (요한복음 5:1-9)/(고)이중표목사

 


사람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몸에 병이 드는 것입니다. 병이 들면 살아가는데 고통과, 활동에 장애와,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내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빼앗아갑니다. 그러므로 병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병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병들 때까지는 건강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병상에 누웠을 때 '아, 병들지 않고 산다는 것이 큰 은혜인데 내가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병들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온 세상이 다 우리를 병들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생동안 병원에 한 번 가지 아니하고 사는 것도 복이지만 그런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병들었다가 고치며 사는 사람, 이 사람만이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일생동안 어떤 병이 내게 엄습할지라도 병을 고치면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3년동안 계실 때 하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특별히 제자들을 가르치며 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하신 일은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뒤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사람에게 세 가지의 병이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병이 있습니다. 영혼의 병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입니다.
둘째, 정신적인 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감정의 상처를 입고 우리의 심령이 병들어서 정신적인 건강을 잃어버린 병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다 정신적으로 병들어있습니다.
셋째, 육체의 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적인 질병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병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병들어 있고, 정신적인 병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삽니다. 부모에게 효도 못하는 것도 병들어서 그럽니다. 부부간에 싸우고 사는 것도 병들어서 그럽니다.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하고 날마다 싸우고 사는 것도 병들어서 그럽니다.
오늘 이 나라가 병들어 있습니다. 사회가 병들어 있습니다. 학교가 병들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구원하러 왔다.'는 말은 고치러 왔다, 건강을 주려고 왔다는 말입니다. 영혼의 건강, 정신적인 건강, 그리고 육체적인 건강을 주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는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라고 말했습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민족, 이 세계 인류에게 선포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처럼 보이나 속은 병들어 있습니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환자들이 살고 있는 수용소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지구를 하나의 병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이 있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행각 다섯이 있는데 그 안에는 소경, 절뚝발이, 손 마른 자들 등 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모든 병든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왜 거기 모여 있느냐? 전설에 가끔 이 연못의 물이 동하는데 그때 누구든지 먼저 그 연못에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전설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거기에 와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38년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오랜 줄 아시고 가까이 가셔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병자는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는 뜻입니다. 죄인은 구원받는 것이고 환자로 보면 치유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과 치유는 동일한 의미요, 곧 구원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았고 질병의 치유는 죄로부터 구원으로 일치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 중에 병이 다 고쳐진 줄로 믿습니다. 육신의 병도 고쳐지고, 마음의 병도 교회에 올 때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마음의 병들이 고쳐집니다.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아픔과, 영혼의 병이 말씀을 듣는 중에 고쳐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첫째, 병에서 자기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먼저 자기가 병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병의 원인을 알아야 됩니다. 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병이 원인 모르는 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건강하다는 자신감 때문에 전혀 의사의 진찰을 받지 않았기에 치료할 수 없는 위험한 경지까지 가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기 검진으로 얼마든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진을 받지 않아서 사경에 이른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병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온 몸이 다 건전해도 한 지체가 약하고 병들면 그것으로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봐야 합니다.
저는 요즘 놀라운 사실을 봅니다. 외모가 건강한 교인들이 증세가 이상해서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아보고 사형 선고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물어봤습니다. "병원에 가본 일이 있습니까?"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습니다." 평소에 너무 건강하기 때문에 병원에 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병원에 가서 사형선고를 받고 자기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1년에 한번 정도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더라면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의 눈물이 납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자기 몸의 검진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병드는 것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병들면 고치면 됩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면 됩니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수리하면 되는 것과 같이 고치면 됩니다.
인간의 열망 가운데 가장 강렬한 열망은 병든 사람이 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강렬한 것이 없습니다. 병들었을 때는 낫기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신의 병은 알았으나 자신의 병의 원인은 몰랐습니다. 모든 현대인들이 많은 종류의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고침받지 못하는 것은 이 38년 된 환자와 같이 그 병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병을 빨리 알아야 하고 그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을 찾아내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환자에게 가까이 가셔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그를 고쳐주신 후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병을 고쳐주시고 '너 다시는 그 병에 걸리지 마 조심해' 그렇게 말하지 않으시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면서 이 38년 된 환자의 병의 원인을 죄로 진단하십니다.
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염균에 의한 병도 있고, 유전으로 온 병도 있고, 조상이 물려준 병도 습니다. 과로해서, 과식해서 생긴 병도 있고, 스트레스, 심적인 충격, 불안, 초조, 염려와 고민으로 생긴 병도 있습니다. 체질적으로 온 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병의 원인은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사망과 고통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모든 병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면 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유전병은 조상의 죄값입니다. 과식도 죄입니다. 탐심을 가지고 먹었으니까요. 과로도 죄입니다. 욕심으로 일했으니까요. 스트레스도 죄입니다. 자기 마음을 주께 맡기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므로 성도는 병이 들었을 때 자기 죄를 회개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여기 'Health'(건강)는 'holy'(거룩)에서 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속에서 병이 나갑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암균이 왔다가 나가는거에요. 불평할 때, 고민할 때 병이 왔다가 한번 웃으면 병이 나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부를 때 나갑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는데 어떤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중에 중풍병자를 맨 네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리로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립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한 말씀하십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네가 병 나았다'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서의 구원은 다른말로 말하면 병에서의 구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죄와 병은 같습니다. 병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죄지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병이 전염되듯 죄도 전염됩니다. 병이 유전적으로 오듯 죄도 부모로부터 유전이 됩니다. 죄지으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기듯 병들면 다 떠납니다.

둘째, 교회는 환자가 모인 병원입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환자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환자들이 모인 것처럼 병원과 교회에도 환자들이 붐빕니다.
여기 베데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벧'(집)이라는 말과 '헤세드'(자비)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은 자비의 집, 긍휼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데스다는 교회와 같습니다. 베데스다에 환자가 모이듯 교회는 환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병원에 가면 여러 환자가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병들어 있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프다고 흉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소아마비 증세가 있는 사람이 손을 떤다고 흉보는 사람 없습니다. 마비 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왔기 때문에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얼마전에 어떤 자매가 수술을 받았기에 병문안 심방을 갔더니 남편 되시는 분이 자기 아내가 방귀를 뀌었다고 기뻐해요. 방귀를 뀌었다고 기뻐하는 곳이 병원입니다.
교회도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허물을 흉보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 서로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병원에 오면 환자가 병이 낳아서 빨리 퇴원해야 합니다. 병이 길어지면 환자도 고생이지만 온 가족이 죽을 고생입니다. 빨리 병을 고쳐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병든 인간성이 변해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는 너무 오랫동안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척도, 친구도 그에게서 관심이 떠났을 것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잊혀진 존재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불행한 병자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나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38년동안 병들어 있었으니 날 때부터 병들었다면 나이가 38세요, 10살에 병들었다면 48세입니다. 부모도 돌아가셨을 것이요, 병이 길어지니까 친척도 다 떠났을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은 있어요. 그러나 찾아올 사람이 없습니다.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곁에 있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와서 못된 인간성, 못된 성격 고치지 않으면 그 주변에 사람이 없습니다. 다 떠나버립니다. 세상에서도 가는 데마다 불평하고, 불만하고, 남 흉보는 사람은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 병자를 좋아합니까 그래서 여기 와서 빨리 고쳐야 됩니다. 머뭇거리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엡 4:25). 우리에게 거짓된 병이 있는데 이것을 빨리 고치고 참된 것을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입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26절). 분을 내어서도 안되지만 혹 분을 내게 된다면 해가 질 때까지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도적질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십일조 안바치는 것도 하나님의 것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놀고 먹는 것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그냥 먹으니까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입이 병들면 함부로 욕하고 항상 상스러운 소리를 합니다. "너희는 악독과 노함과 분냄" 이것은 마음이 병들어서 그럽니다. 이것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셋째, 병은 예수님이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다른말로 말하면 '병에서 고칠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만 불러도 병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고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실 때 38년 된 병자가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약 먹어서 고쳤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용한 의원이 고쳤다.'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병은 예수가 고쳤다.' 이렇게 말합니다.
38년 동안이나 병을 앓아왔으니 얼마나 많은 의사에게 자기 병을 보였겠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약을 사서 먹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효험이 없을 때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물이 동할 때 있는 힘을 다 해도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삶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 "물이 동할 때 나를 물속에 넣어줄 자가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병을 고친 후에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14절)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시장에서 만난 것이 아닙니다. 골목에서 만난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자리를 들고 가라고 했는데 그는 성전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를 들고 성전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 병이 나았으니 내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찬송하리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하면서 그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약을 먹고 병을 고치는 환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병을 고쳤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병을 고칠 때 예수님은 내 인격을 고친다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스위스의 의사요, 심리학자였던 폴 투르니는 "질병을 치료하기 보다는 환자를 치료하는 심정으로 환자를 섬긴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데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을 치료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여기 와서 은혜를 받되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내 영혼의 병을 고쳐야 됩니다. 내 정신의 병을 고쳐야 됩니다. 우리는 고생할 때 고생으로 끝나지 말고 고생을 통해서 연단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실패할 때 실패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됩니다. 내가 눈물 흘릴 때 눈물만 흘리지 말고 눈물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됩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완전히 그 사람의 삶의 현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병든 자리에서, 우굴거리는 환자의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생을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별세의 은혜인 것입니다. 병만 고친 것이 아닙니다. 중심이 바꾸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은 고치고도 타락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살았으나 정신은 살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 속에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죽지 않고 주었으며 무덤에 갇히지 않고 부활했다"고 말합니다. 이 은혜가 별세의 은혜입니다. 병은 고쳤으나 영혼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몸은 죽었다가 살았으나 정신이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별세의 은혜를 받아 세상을 바꾸어 살아야 합니다. 이 승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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