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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1)

by 【고동엽】 2021. 12. 31.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열왕기하 5:9-14)

이스라엘 주변국 가운데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보다 국력이 강했고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족들 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국방장관 나아만은 나병환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병에 걸리면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지만 아람나라는 장관직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입니다.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나라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분은 모든 병을 고치고 문제를 푸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아만 장관이 수행원을 거느리고 엘리사가 살고 있는 곳을 찾아왔다는 것이 본문의 시작입니다. 나아만 장관은 아람나라 왕의 추천서를 휴대하고 국빈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아람 왕의 친서는 이스라엘 왕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내가 총애하는 나아만 장관이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귀국에 어려운 병을 잘 고치는 명사가 있다기에 장관을 보냅니다. 왕께서는 나아만 장관의 병을 꼭 고쳐 귀국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불치의 병인 나병을 고쳐 내라니 이건 침략의 구실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예방을 받은 엘리사는 전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쉽고 간단했습니다. 10절을 보면 직접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을 내보내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해법은 간단하고 쉽습니다. 사람의 처방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해결 방법이나 처방은 단순합니다. 그런데 너무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못하거나 순종하지 못합니다.

나아만 장관도 그랬습니다.
11절 이하를 보면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나아만 생각하기에는 아람나라 국방장관이 찾아왔다고 하면 집밖으로 뛰어 나와 영접하고 큰 소리로 손을 흔들며 기도해 고쳐 줄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내다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니 이건 예의도 대접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람나라에는 레바논 산맥에서 시작하여 동편으로 흐르는 바르발 강이 있고, 황금의 강이라 부르는 아마나 강이 있었습니다. 두 강은 수량이 많고 물이 맑았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물이 적고 더럽습니다. "그 좋은 강 놔두고 여기까지 와서 더러운 물에 씻으란 말이냐"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고비입니다.

전통적 양반의 체통은 배가 고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수염을 쓰다듬고 배부른 척 헛기침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수염이 석자라도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얘기하고 먹는 것이 현실적 자세입니다. 나아만은 다분히 체면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부류의 사람입니다. "내가 누군데 나를 그렇게 대접해? 이럴수가, 내 체면에 그런 짓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체면이 병을 고칩니까? 자존심이 문제를 해결합니까? 아람나라 장관직이 나병을 치료합니까? 나아만은 나병과 교만병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만병이 치료되지 않으면 정신병, 영혼의 병, 육신의 질병도 치료되지 않습니다.

11절을 보면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때 나아만이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그곳을 떠나 버렸다면 그는 제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모두가 화가 나있습니다. 여당은 자기네 말 안듣는다며 화가 나있고, 야당은 여당이 나라 망친다며 화가 나있습니다. 노사도 화가 나있고 언론도, 시민단체도 학교도 화가 나있습니다. 청와대도, 국회도, 서울시도 화가 나있습니다. 그 화 때문에 모조리 화병에 걸려있습니다. 나아만이 화가나 물러간 것처럼 우리 시대도 화난 사람들이 모든 걸 집어던지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화나고, 분나고, 속상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다둑거리고 안심시키는 것입니다. 결코 화풀이하는 것이 되어도 안되고, 집어 던지고 깨트리는 것이 되어도 안됩니다. 쉽게 던진 엘리사의 말 한마디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이 처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다양한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1. 나아만의 첫 번째 반응입니다.
그의 반응은 신경질적이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날 거기서 그대로 떠났으면 그는 평생 나병으로 고생하다가 장관직도 그만두고 죽었을 것입니다.

적당한 체면유지나 자존심은 품위 유지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문제를 품지도 못합니다. 가나안 여인도 체면 집어던지고 딸을 살렸습니다. 앞을 못보던 바이메오도 소리 지르고 눈을 떴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긍정적 반응을 하느냐, 부정적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풀리기도 하고 얽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2. 수행원들의 반응입니다.
13절을 보면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되 내 아버지여 더 큰 일을 행하라 명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라며 나아만을 만류했습니다.

대부분 아랫사람들의 생리는 윗사람이 화내면 덩달아 화를 내고 비위를 맞추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종들은 "이러시면 안됩니다. 손해 될게 없지 않습니까? 한번만 참고 해보시지요"라며 나아만을 설득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포진해야 합니다. "이건 말도 안됩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당장 돌아가십시다. 그리고 분풀이를 해야합니다. 요절을 내버립시다"라며 분을 돋구는 충동질을 했다면 나아만을 망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타일러 주는 사람, 조언해 주는 사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3. 나아만의 두 번째 반응입니다.
14절을 보면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14절 한 구절 속에 몇 가지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내려가서입니다.
문제를 풀려면 내려가야 합니다. 즉, 자세를 낮춰야 합니다. 아람국에선 장관이지만 하나님 앞에선 장관이 아닙니다. 회사에선 회장이고 사장이지만 교회에선 하나님의 종입니다. 학교에선 총장이고 교수지만 교회에선 총장이나 교수가 아닙니다.

야고보서 4:6을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문제를 풀기 위해 요단강으로 내려갔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하라는대로 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순종입니다. 아브라함도 말씀대로 했습니다. 노아도 하라는대로 했습니다. 베드로도 하라는대로 했습니다. 마리아도 말씀대로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가 다 잘되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경험대로, 내 지식대로 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하라는대로 했습니다. 50%만 순종하면 50% 확률이 있고, 100% 순종하면 100%의 확률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에 100%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얻은 축복은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리라는 것, 천하 만민이 후손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된다는 것 등 셀 수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말씀대로 합시다. 그대로 합시다.

셋째, 일곱 번 몸을 잠그니...
이것은 가감없는 철저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6번째도 그대로였습니다. 7번째 몸을 잠그고 난 후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순종했을 때 문제가 풀린 것입니다. 만일 그때 나아만이 제 성질을 못 이겨 두세번 몸을 잠그고 난 후 "되는 게 뭐냐! 뭐가 이따위냐! 가자. 사우나탕으로, 찜질방으로, 불가마로 가자"라며 뛰쳐나왔다면 헛수고로 끝났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약점은 참을 줄 모르고 서두르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도 서두르고, 수도 옮기는 것도 서두르고, 사립학교 법도 서두르고, 응답도 서두르고, 기도도 서두릅니다.

예배도 시계 드려다 보고 서두르고, 나갈 때도 뭐가 그리 급한지 뒤도 안돌아보고, 현관에 서있는 담임목사도 안쳐다보고 총총히 가버립니다. 밥도 서둘러 먹고, 여행도 서둘러 물만 마시고 사진만 찍고 세계일주를 해버립니다.

제 개인 생각은 국가보안법도 고칠 수도 있고 폐지할 수도 있고 그대로 둘 수도 있습니다. 법이란 융통성이 있고 개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론이 산산조각 나면서까지 서두를 이유가 뭡니까? 서울 옮길 수도 있고 그대로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옮기는 것 때문에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고 두 패로 갈라져 싸우면 나라 꼴이 되겠습니까?

왜 서둡니까? 천천히 하면 안됩니까? 나아만이 조급증을 견디지 못해 요단강에서 뛰쳐 나왔다면 그는 문제를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4절 끝을 보면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왜 일곱 번이었을까요? 일곱은 완전 수입니다. 완전히 내려가라, 완전히 순종하라, 완전히 너를 낮춰라, 완전히 맡기고 실천하
라는 뜻입니다.

나아만은 일곱 번 순종하고 문제를 아주 쉽게 풀었습니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라는대로 안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문제만 쉽게 풀린다면 일곱 번 잠그는게 뭐그리 어려울게 있겠습니까? 문제가 안풀립니까? 7번 하라는대로 하십시오. 완전히 순종하십시오.

4. 엘리사의 초연한 자세입니다.
감격한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감격하며 가지고 온 예물을 내놓았습니다.
16절을 보면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물질로 환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 당시 아람과 이스라엘의 양국관계가 돈을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사상 전반에 걸쳐 산더미같은 문제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개인문제, 가정문제, 사업문제, 자녀문제, 가족문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물어야 합니까? 쉽게 풉시다. 내려갑시다. 하라는대로 합시다. 말씀대로 합시다. 일곱 번 그대로 합시다. 그리하면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가 하나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절망이 아닙니다. 인간의 포기가 하나님의 포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종점은 하나님의 출발점, 인간의 포기는 하나님의 성취,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의 성공,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생명의 시작임을 믿읍시다.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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