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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2)

by 【고동엽】 2021. 12. 31.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서 3:12-19)

얼마 전 미국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나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비자기간이 지난 걸 모르고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가려던 곳을 가지 못하면 상한 기분이 오래토록 가시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다시 비자를 받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가기가 어려운 곳이 천국입니다.

본문은 영원한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조건과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 동안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와 오늘 우리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동일하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Ⅰ.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유혹에 넘어가면 못 들어갑니다.
10절을 보면 "너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했고 11절을 보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먹지 말라고 하신 과일을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모든 유혹은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뱀은 세 가지로 유혹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먹는 것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도 먹는 것이고 마약도 먹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꽃뱀은 남자를 유혹하고 꽃미남은 여자를 유혹한다고 합니다. 둘 다 눈으로 보기에 멋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탐심이 죄를 짓게 만들고 악을 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혹은 마음을 흔들고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아버지와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던 어떤 아들이 있었습니
다. 그러던 어느날 유혹이 그 아들을 찾아왔습니다. 유혹이 속삭였습니다. "답답한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가라 거긴 술이 있고 여자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라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그 아들은 뒤돌아보지 않고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도착한 도시엔 유혹이 말한 대로 술과 여자와 향락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간 돈은 곧 바닥이 나버렸고 돈이 바닥나면서 친구도 여자도 그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갈 곳도 머물 곳도 입을 옷도 먹을 것도 없어졌습니다. 그 도시 어느 곳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유혹에 넘어간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이며 오늘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동서남북에 유혹이 널려있습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스포츠신문도 연극도 인터넷도 잡지도 주간지도 사회구조도 유혹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세속주의와 이단사이비운동의 유혹입니다. 거기 빠지면 헤어나는 길이 없어 결국은 멸망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 어느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볼일을 보러 들어가던 다른 여학생이 머뭇거리자 담배를 피우던 여학생이 팔을 붙잡아 끌면서 한번 피워보라고 담배를 주었습니다. 망설이자 딱 한번만 피워보라며 주는 바람에 받아 몇 모금을 빨았습니다.

그 아이가 피운 것은 마약 담배였습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마약 서클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 조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학교도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마귀와 장시간 입씨름을 하거나 말미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사단아 물러가라" 단순하고도 명확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유혹이나 시험은 초기에 막아 버리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끌고 여유를 주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천국을 네 눈으로 보았느냐 예수를 만난 일이 있느냐 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2) 믿지 않으면 못 들어갑니다.
12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것을 악한 마음이라고 했고 그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1:23을 보면 "주께 붙어있으라"고 했습니다. 악심을 품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가는 곳은 한 곳 뿐입니다.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죄 사함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안 믿으면 죄 사함도 구원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못됩니다. 마귀의 자녀가 됩니다.
누구든지 안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3:15에서 주님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18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들락거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직분을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찬양대를 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믿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3) 불순종하면 못 들어갑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라고 했고 4:11을 보면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누구든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안식이란 편히 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참된 안식은 나 홀로 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쉬는 것입니다. 외롭고 지친 사람이 편히 쉬기 위해 무인도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고독을 키우러 가는 것입니다.

위로가 될 만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참으로 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위로라는 말의 뜻은 곁에 있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곁에 있다고 반드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5년 전 4월,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이름을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문병을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혀 몰랐었나요?", "평소에도 문제가 있었나요?", "앞으로가 문젭니다. 조심해야죠.", "나 아는 사람도 똑같은 병으로 수술했는데 1년 못 넘기고 갔어요.". "혹 집안에 그런 병으로 죽은 사람은 없었나요?"
도대체 문병을 온 건지 취조를 하는 건지 빨리 가지도 않고 뭉개고 앉아서 떠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 그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병이라고 찾아와서 캐묻는 사람, 충고하는 사람, 따지는 사람, 부정적 경험을 늘어놓는 사람, 그 병의 원인을 따지고 해석하려 드는 사람, 마치 의사인 양 진단하고 약을 추천하는 사람,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래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위로자가 못됩니다.

문병 가서 지킬 에티켓(예의)이 있습니다.
·알려고 하지 말 것
·오래 머물지 말 것
·환자에게 도움 되지 않는 경험이나 다른 환자의 이야기를 하지 말 것
·병을 해석하지 말 것
·정죄하지 말 것 등입니다.
죽음으로 슬픔당한 가정을 문상할 때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이나 차림을 피할 것
·정중하게 출입할 것
·여러 사람이 문병할 때는 떠들지 말 것
·절보다는 기도로 조문례를 표할 것
·기도하는 시간(문상)을 너무 길게 하지 말 것
·조문용어를 바로 사용할 것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다 죽기 마련이에요." "힘들고 괴로운 세상 먼저 잘 떠났지요."
남편을 먼저 보낸 상가에 가서 "재혼해서 좋은 남자 만나."
아들 먼저 보낸 상가에 가서 "불효자식이네요. 먼저가다니 안난셈 치세요."
"어쩌다 그랬어요? 어디서 그랬어요? 왜 그랬어요?"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문상객 조문객이 아니라 상처를 주기 위해 작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소망 중에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정도의 조문 후에 적든 많든 조의를 표하고 그곳을 떠나는 것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불순종 하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하고 복 받고 은혜 받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불순종 하고 저주받고 멸망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불순종 하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단 한명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Ⅱ. 누가 들어갑니까?
히브리서 3:14을 보면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했습니다.

올림픽 경기 종목 가운데 손으로 붙잡는 운동은 레슬링과 유도를 들 수 있습니다. 승패는 누가 먼저 상대선수를 붙잡느냐로 결정됩니다. 붙잡은 것은 놓치면 집니다. 본문은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잠깐 잡는 것은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잠깐 기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끝까지 믿고 기도하고 일해야 합니다.

외과의사가 환자를 수술할 때 가장 경계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박테리아균 즉 바이러스의 감염이라고 합니다. 제 아무리 수술이 잘 되어도 악성세균에 감염되면 위험하게 됩니다.

컴퓨터의 경우도 전 세계의 정보를 다 입력했더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모든 정보가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믿음이 깨지고 망가지는 것도 지극히 적다고 소홀히 취급한 영적바이러스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견고히 잡으라."고 한 것입니다.
믿음이 견고하면 비바람이 불어도 시험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10년 걸려 지은 건물이지만 3분이면 무너뜨립니다.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고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서울대 의대 교수인 정도언 박사는 "무의식 속의 갈등은 얌전하게 있지 못하고 우리를 늘 자극하고 괴롭힌다. 갈등의 심부름꾼은 불안이다."라고 했습니다.
불안, 근심, 염려는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깨뜨립니다. 그런 것들을 이기려면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그런 것들도 해결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죄사함 받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흔들리면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비바람이 불고 시련이 오고 폭풍이 몰아쳐도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믿음 지키고 예수님 의지하고 삽시다.

출처 : 여호와닛시♥
글쓴이 : 주님의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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