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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자빠졌네-이재철

by 【고동엽】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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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

 

웃기고 자빠졌네-
글/이재철 목사
한 분야의 정상에 오론 사랑에게는, 긍정적인 관점에서든, 부정적인 관점에서든 배윤 점이 있
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매사에 남다르지 않고서는 정상에 오콜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한국 코미
디 개그계의 독보적 존재인 개그우먼 김미화 님이 2004년 7월 15일. •아g다운 재단'이 운평하
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특강을 가졌습니다. 50여 개의 복지 및 사회단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을 옛고 있는 김미화 님은,코미디 개그계 최고의 '맘짱'(마융장)으로 S린다고 합니다.
김미화 님온 '나눔과 참여가 아름다운 이유'라는 제목의 강의를 동해,자신이 나눔의 삶애 참여
하게 된 동기와 과정을 진솔하게 고백했는데, '맘짱'이란 별칭에 어옳리게 그 내용이 감동적이었
습니다. 강의 망미에 그녀는 '행복_에 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개그우먼이란 직업인으로 살아
가는 자신의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며, 현재의 삶에 만족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신의 비석에 새겨지기 원하는 묘비명율 직접 리히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역시 김미화 님다운 기상천외한 발상입니다. 누군가가
공원묘지醫 산책하다가 큰 글씨로 "웃기고 자빠졌네"란 묘비명이 새겨진 비석을 발견한다면,십
중망구 웃용율 터트리지 않율까 싶습니다. 그러나 김미화 님의 그 묘비명이, 제게는 사뭇 의미
심장하게 들렀습니다. 동사 '자빠지다'는 넘어지다란 의미와 함께, 서 있던 것이 모로 기을어져
쓰러지거나,누워 버리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롤데면 폭풍에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를 가리켜, ••나무가 자빠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
다. 김미화 님은 이런 의미로 '자빠졌다'논 동사를 사용하였는데,이때에 •자빠졌다•는 것은 물론
•죽었다'는 뜻입니다. 김미화 님은, 개그우먼으로서 죽을 때까지 무대에서 사랑율 웃기다가 무대
에서 쓰러져 죽고 싶은 자신의 심정을, 개그계의 제1인자답게 _웃기고 자빠졌네"란 기발한 묘비
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죽기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생에 중실하기 원하는 그녀의 염원이 그 S
은 문장 속에 고스란히 함죽되어 있습니다.
행복이란 S평이나 병만 없이 만족한 상태를 일컫습니다. 상대적인 사랑, 즉 자신과 티인을 늘
비교아는 사랑이 참 행목을 누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나은 사
랑이 항상 있게 마련이고, 타인에 대한 열등의식은 어떤 형태로든 붕평과 붕만의 산실이 될 따
융입니다. 따라서 업상의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현재 자신의 처지에 자족
합 수 있어야 아고, 그것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천직의식움 지니는 것으로부터 시
작됩니다. 독갈은 일을 해도 단순히 억고 살기 위해 혹은 어찔 수 없이 행하는 자가 결코 행복
할 수 없다면, 동일한 그 일을 하늘이 주신 천직으로 여기는 자는 어떤 상할에서도 스스로 받행
움 느끼지는 않습니다.
민약 김미화 님이 고관대작의 부인을 부러워하거나,자신의 직업올 신분상승을 위한 발판 정도
로 여기는 자라면, 개그우먼으로서의 그녀는 행복과는 거리가 명어도 한참 일 것입니다. 그러
나 김미화 님은,죽는 순간까지 웃기고 자빠질 것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자신의 직업율 천직으
로 여기고 있기에,개그우먼으로 살아가는 자기의 삶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고백은, 제게 잔잔한
감동율 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그녀 스스로 밝혔듯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주어진 삶
에 자족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참 생명과 진리를 전하는 목사의 길융 천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기고 자빠졌네-란 김미화 님의 묘비명을 접하면서, 저 역시 죽기까지 제가
가야 랑 목사의 김옳 걷다가, 그 길 위에서 목사로 자빠질 것움 다시 한 번 다징하게 되었습니
아율러 김미회 님의 묘비명은 저로 하여금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자빠지다•는 동
사는 다른 동사의 활용형 뒤에 불을 경우, 보조 동사인 '있다'의 속된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웃기고 자빠지다'는 알의 본래 뜻은 '웃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기고 있다' '웃기고 자빠지
다•란 망은 문자 그대로 웃긴다는 뜻이긴 하지만, 실제 우리의 대회 속에서는 강한 부정적 의미
로 더 자주 사용되곤 학니다. 이를테면 전혀 사리에 닿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혹은 비정상적
인 짓율 서슴없이 행하는 자콜 가리켜 "웃기고 있네" 톡은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표현합니다.
이때의 의미는 우습다는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을론 김미화 님은 이런 의미로
그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사람을 웃기는 전직에 중실하겠다는 염원을 그
런 식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도 ■웃기고 자빠졌네■란 그녀의 묘비명율 접하면서 또 다른 생
각을 하게 된 것은, 우리 자신울 포함하여 이 세상에는 어처구니 없이 웃기고 자빠진 사랑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타이를) 물동 속에 막대기를 넣고 휘저으면 금방 물거품이 일어납니다. 그 물거3은
크기가 다 일정하지 않습니다. 큰 몰거풍이 있는가 하면 형편없이 작은 을거풍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물거3이 스스로 으스대며, 작은 물거품을 업신여기고 경엽하는 경우g 상상해
보십시다. 물거풍의 세지에서는 톡 있올 수 있는 일임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랑인 우리가 보기
에는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제 아무리 큰 물거풍이라 한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는 매한
가지입니다. 큰 물거품은 오히러 크기가 작은 물거품보다 더 빨리 소열되기 업습니다.
사실이 이러학에도 큰 융거풍이 자기 실상을 알지 못한 재 작은 율거풍융 마구 업신여긴다면,
그야말로 웃기고 자빠진 물거품 아니겠습니까? 한순간에 형체마저 완전히 사라지 버리는 물거
품에 비하면,판구십 년에 이르는 인간의 수명은 참으로 장구하다 합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원
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수명 또한 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원 앞에서는 인간과 몰거풍 사
이에 아무런 시간적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사랑을 업신여기며 살아
가는 자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면 이 역시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사랑의 욕안으로는 태임을 S 수 없습니다. 태양의 빛이 너무나도 강한 탓에,맨눈으로 보러 했
다가는 눈을 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태양옮 똑바로 붐 수 있는 시각이
하루에 두 번 있습니다. 일줄과 일몰 때입니다. 그때만은 태양은, 벌거벗온 자기 모습올 만인
에게 거리임 없이 보여 줄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둘은 의복, 학또 재산. 직위, 화장
(<出©둥으로 업명생 자신율 가리고 살아갑니다. 요즈용은 성형수술로 외평을 아매 변형시겨 버
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증생과 사망은 그 무엇으로도 가려지지 않습니다. 병거숭이로 태어났다가 병거
숭이로 묻아가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님은, 인간은 60세까지 철이 콜다가 그 이후
에는 섬을 까먹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오래 살수록 더 깊은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보다는 철없
는 아이로 회귀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요즈옴엔 인간의 수명 연장과 함께 치매환자
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치매란 정상적인 정신능력, 즉 지능 의지 기억 둥의 능력올 상실한 상태
로,한미디로 철없는 아이 이전의 갓난아기 상태로 들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법거숭이로 태어난 바로 그 상태로 벌거벗고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죽을 때, 자기 관 좌우에 구명을 뚫어 자신의 양손이 보이게 하도록 했습니다.
까닭율 묻는 신하둘에게 않렉산더가 대답했습니다. ■천하의 알렉산더도,빈손으로 가는 것율
세상 사랑콜로 하여금 알게 하라." 이것이 인생이요,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인생은 다 동일학니
그럼에도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사랑 저런 사람을 업신여기며,스스로 으스대고 살아간다면, 웃
기고 자빠진 꿈거풍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요즈융은 돈이 인간의 목적이 되면서, 부모의
유산율 놓고 형제끼리 다투는 집안이 얼마나 많은지 모룬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무모의 유산
때문에 형제와 심각하게 반목중인 사랑들이 분명히 있윤 것입니다. 안타깝개도 그런 자들이 간
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부모 유산 앞에서 피톱 나눈 친형제와 처절하게 싸우는 자신의 언행이,자신이 營러증 유산음
두고 자기 자식둘 역시 다투기콜 재즉하는 즉매제가 원을 인식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 유산
묻 더 많이 자지하기 위해, 형제가 원수저럼 대립하는 것은 천료보다 돈옳 더 중시하는 까닭입
니다. 그렇다면 그 부모 일에서 자라난 자식들 역시 부모가 남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차지
하기 위해,수단과 방S욷 가리지 않을 것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지 않습니까? 자식들의 재산 싸
움움 자신의 삶으로 부추기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자식둘이 화목하게 살
기롭 원한다면, 그 또한 웃기고 자빠진 사람임에 톨림없습니다.
지금 언급한 이야기는 웃기고 자빠진 인간사의 지극히 작은 한 단면업 뿐이요, 전 세계에서 정
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웃기고 자빠진 인간의 사례는 영거하기조차 동가
능할 정도입니다. 각 나라의 신문과 TV뉴스시간은, 매일 웃기고 자빠진 사랑둘의 이야기골 전하
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웃기는 것은, 이 세상 사람이 다 죽어도, 자신만은 천년
만년 살 것 같은 인간의 착각입니다.
인간이 웃기고 자베진 삶융 거리낌 없이 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어이없는 착각에서 유
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기 위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료 범했습니다. 피조물은 어떤 경우에도 피조물업 뿐, 무에서 유콜
가능케 하는 창조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던 아담은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진 인간이었습니다.
아담의 큰아둘 카인은 자기보다 뛰어난 동생 아별에 대한 질투심으로 동생움 삼해,인류 죄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 역시 웃기고 자빠진 인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웃기고 자빠져 살던 인간
들은 하나님g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범한 뒤 수물 그늘 속에 떨고 있는 아담을 하나님
께서 먼저 찾아오시어 죄의 어둥으로부터 볼러내어 주셨지만,그 큰 은혜품 입은 아담조차 하나
님옵 자발적으로 찾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4장에선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셋도 아듣옳 낳고 그
의 이름율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율 붕렀더라. - 성경 창세
기 4장 26정 맡쓩 셋은 아담의 셋째 아들, 그러니까 둘째아들 아벌이 큰아들 카인에게 살해당한
뒤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가 장성하여 아물울 낳은 뒤 아물의 이롬율 •에노스•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랑들은 비로소 야훼의 이름,즉 하나님의 이름을 자발적으로 부르기 시작했
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이융을 블렀다는 것은, 그 이전엔 인간이 한 번도 하나님을 먼
저 무른 적이 없었다는 안입니다.
왜 피조물인 인간은 그 이전에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요? 왜 셋이 아둘의 이름묻 •에
노스 라 지율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찾기 시작했융까요? 모든 부모는
자신의 영원이나 심오한 깨달움율 자식의 이름에 담아 즙니다.
제 이름은 한자로 '있옳 재(在)•자와 •밝움 절(哲)'자플 사용합니다. '재청'이란 제 이롬 속엔 제가
평생 밝은 곳에 거하기普 바라는 제 부모님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셋이 자기 아콜에게 지어
준 이各인 '에노스•는, •죽몰 수밖에 없는 존재•란 의미입니다. 셋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랑들은
뒤늦게 모든 인간은 ’에노스',즉 •죽옮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 것입니다. 셋은 그 중요한
깨달g율 자기 아콜의 이롬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아몰이 '죽율 수밖에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자기 한계, 자기 실상옳 일평생 맞지 않
고 살야가기용 바라는 영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콜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올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융을 한번 호칭해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하나님물 자기 생의
주인으로 모서 묻이고, 그분의 알씀움 따라 살기 시작했다는 앞입니다. 자신둘이 죽움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몰랐으면 모르도I, 자기 죽옴을 자각한 이상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인생 사용설명서콜 종아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
용옳 앙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본농과 욕망에 사로잡어 계속 웃기고 자빠저 사느라,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음 더 이상 허
망하게 갉아먹율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자신둘이 •에노스、즉 죽움 수밖에 없는 존재
임율 자각하지 못3던들, 그들은 창조주률 마냥 외면, 웃기고 자빠지는 삶을 계속 살면서도, 자
신들이 웃기고 자빠졌용을 꿈속에서조자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에노스임을 자각하는
것,자기 죽용융 인식하는 것은 이렇듯 중요합니다.
우리가 현재의 육세쿨 지닌 재 이 땅에서 사는 기간은 결코 무궁하지 않습니다. 그 기간은 언젠
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낭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니다. 그러나 그남은 반드시 오
고, 그 누구도 그날올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을 뜻하는 한자 '죽율 사(死)•는,'한 일(一)•자와
•저녁 석(幻'자, 그리고 '비수 비(匕)•자로 이루어저 있습니다. 즉,죽융이란 어느 남 방 비수처럼
普현듯 남아드는 것입니다.
(세번째 마지막 타이들) 한낮에 낳아오는 비수라면 재주껏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땅
거미가 갈린 어둥 속에서 날아오는 비수는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읗 동감한 자인,생
명의 소중함을 않고, 생명옳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좆아 자신의 생명움 가꾸게 됩니다. 참
된 생명의 추구도, 진리와 사랑의 삶도, 절제와 극기의 구현도, 모두 죽움올 아는 것으로부터 시
작됩니다. 죽용움 안다는 것은 생의 포기가 아니라 참된 생을 함한 새로운 줌발윰 의미합니다.
자기 죽움움 인식한 자만 웃기고 자빠진 삶에 마침표률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위
대한 수학이자 물리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였던 파스갈은, 그의 나이 31세 되던 해 끔적한 마차사
고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융 건졌습니다. 죽옴은 얻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걸에 있용옳
생생하게 경험한 것입니다. 그 죽음의 제험 후에 회심,파스칼은 하나님을 자기 생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자신물이 에노스임윤 자각한 셋 시대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올 쫓기 시작한 것과 같은 이유
에서였습니다. 그리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병의 고동 속에서 그가 남긴 글이
프랑스 정신의 죄고붕으로 봉리는 (팡세)입니다. 그가 에노스임을 자각지 못했던둘 태어남 수
없는 생명의 글콜이었습니다. 그 파스칼이 우리에게 내기를 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묻 부정하는가? 그렇다면 내기콜 걸어라. 만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편에
내기를 걸고 당신이 이긴다면, 당신은 무한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설령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
아 당신이 진다 해도 손해 S것은 전어 없다. 그러므로 주저하지 알고 하나님이 즌재한다는 편
에 내기풀 걸어라.
하나님의 존재룐 믿는 쪽에 내기콜 건 자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많씀을 인생 사용설명서
로 받아물이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삶을 바르게 구죽하게 됩니다. 그리고 육재의 호空이
끝나는 순간,그는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돌 믿었
용예도 막상 죽고 보니 하나님이 아예 존재치 않는다 해도, 손해 블 것이라곤 정맡 아무것도 없
습니다.
진리와 사랑울 좇아 이못에 덕과 선을 행하고 자식 앞에서 바른 삶의 본율 보인 그의 인생 자체
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많은 사람묻에게 아름다운 삶의 이정표로 남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
간의 삶이, 그가 세상울 떠난 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정표로 세워지는 것보다 더 보람되고 랭
복한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콜 부정하는 쪽에 내기큼 건 사랑이라면,지적 수준
이나 경제적 눙력에 상관없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웃기고 자빠진 삶움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콜 부정하는 그 자신이 자기 생의 하나님 노릇몰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랑
은 삶의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기에,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듈에게 상저료 입히게 마런이고,
그 결과,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삶의 족적은 산 사람들로부터 경원(敬通:공경하되 가까이하지
는 않융)당하고 않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부정하던 그의 코끝에서 호쫑이 멈추는 순간, 그
제야 하나님께서 정양 존재하심움 확인한다면,그때 그가 느일 황당함을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오래 전에 장시 상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아파트 화장실의 하수관은 벽 외부로 동
충되어 있었는데. 노후한 하수관 전부물 아파트 전체가 동시에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들音해 있
던 하수전욷 일거에 제거하자, 집집마다 화장실 바닥과 천장예 구영이 변 뚫러 서로 동하게 되
었습니다. 그로 인해 갑자기 온 아파트에 쥐가 둘끓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파트 지하에 한식
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 주방 하수구에 서식하던 쥐콜이 화장실에 뚫린 구면묻 따라. 온 아파트
폼 누비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어걸 수 없이 집안 곳곳에 쇠고기 미끼용 모인 끈끈이 판울 설
치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방중에 화장실의 운올 영고 불을 켰을 때였습니다. 커다란 쥐 안 마리가 끈끈이 판 한
중간에 둘러£어 있었습니다. 쥐가 끈끈이 판에 품었다는 것은 이제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데 그 최후의 순간에 쥐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아무 일도 없다는 둣, 끈끈이
판에 岩어 있는 쇠고기 미끼호 한가로이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힌마디로 웃기고 자빠저 있었습
니다. 그것은 쥐가 자기 죽옴움 전허 인식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끈끈이 판에 £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함돌 곧랐던 것입니다. 자기 죽음율 자각했던뜰 끈끈이 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
> 다하든지, 아니면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동료의 도용물 청할망정,그 위에서 그처령 한가유
게 웃기고 자베저 있지는 않았움 것입니다.
이 웃기고 자빠진 쥐가 실은 우리 자신의 실상인 것은 아닙니까? 자신이 에노스임욷 깨닫지 못
히여 이제« 하나님의 존재5 무정하는 쪽에 내기을 걸어왔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모습
은 영락없이 끈끈이 판에 불은, 웃기고 자빠진 쥐의 형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방중에 비수처
S 낳아클 죽용윰 의식지도 못한 재 마치 전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 숙에Ai, 단지 욕망과 본능을
좆아 사는 우리와. 죽용의 덫인 끈끈이 판에 s어서도 태연하게 쇠고기 미끼만을 담닉하고 있는
쥐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이 사실율 깨당는다면, 당장 내기콤 다시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존재? 부정하는
쪽에 걸었던 내기普 철회하고, 파스칼의 권유대로 하나님의 존재을 믿는 편올 선택해야 하지 않
겠습니까? 해마다 한식이면 많은 사랑들이 조상의 산소콜 찾습니다. (한식 寒우리나라 명정
의 하나)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남로서 4월 5일이나 6일쯤이 되며,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
찾아 제사은 지내고 사초(致;草)하는 등 묘를 돌아본다.) 앞으로 한식에는 단순히 성묘만을 위해
산소量 찾지는 마십시다.
우리 자신의 실체유 직시하기 위해 조상의 묘지률 찾으십시다. 그 묘지에서 언젠가 무넘 속에
드러누묻 우리 자신, 에노스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실상울 똑바로 대면하십시다. 그남이 언제인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그냥이 達현듯 비수저럼 날아듈 것임울, 마용속에 각인하십시다. 즘
비하게 늘어선 무명과 무명 사이에서 더 이상 지체치 알고, 하나님의 존재푠 믿는 편에 내기톱
거십시다. 그 죽용의 묘지에서부터,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온 중심을 다해 부르십시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리에 없는 에노스들을 구원해 주시려,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용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십시다. 그 순간부터 비로소 죽융이 비수처럼 낳아듈었용에도,오직 본능에
사로잡며 쇠고기 미끼에만 S안이 된 끈끈이 판의 S어 있는 쥐와 우리 자신은. 진정으로 구병
될 것입니다.
죽용움 깨트리고 부참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웃기고 자빠졌던 우리의 인생윤,당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새롭게 빚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재철 목사의 저서 '사랑의 초대'中 에서-©
____ ________________ 에수가증다오
굴£ ?시고 스크인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댓글로 따쯧한 소갑으로 감사쿨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왼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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