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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만족을 원하십니까? (시 23:1-6 )/ 박조준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참된 만족을 원하십니까?
시편 23:1~6


오늘 아침 읽은 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아마 성경 중에 이 시편 23편만큼 많이 읽혀지는 성경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 시편 23편을 암송하시는 분도 많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적극적이고 희망에 가득찬 믿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시편을 쓴 다윗은 베들레헴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양과 목자와의 관계를 체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아니가 많아서 그의 살아온 일생을 돌아보면서 이 시를 쓰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자신의 일생에 범죄와 패배로 얼룩진 오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나간 과거에 사로 잡혀 소용없는 후회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다윗은 사도바울과 비슷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일 생각했습니다마는 바울은 "뒤엣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을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새해를 마지 하여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다윗의 시 23편을 한 절씩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에 미국의 어느 큰 회사에서 사장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후임 사장님을 모셔야겠는데 이사회에서는 오랜 시간 숙의 끝에 아주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인 경우 부사장이나 전무가 사장이 되는데 회사의 이사회에서는 수천 명의 사원의 근무 성적을 조회해서 가장 유능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통솔력이 탁월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청년 사원을 일약 사장으로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이보다 큼 출세가 어디 있으며 영광이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사장으로 취임하여 큰 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고 보니 밖에서 보던 그렇게 좋은 자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물건 많이 만들어야만 재고 없이 판매해야지요, 수천 명의 사원 중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지요,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을 쓰다 보니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밥맛도 없어지고, 의욕이 줄어들고, 자신감이 살아져 결재를 하려하면 두려움이 앞서서 사인을 할 때 손이 떨리게 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젊은 사장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치료의 진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하루는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이 "사장님, 제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 드리고 있습니다마는 좋은 분 한 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그 분을 만나 뵈면 사장님에게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선생님, 그분이 누구 신데요?" "예, 그분은 찰스 알렌이라는 목사님이신데 Houston. TX에 계십니다" 이 사장님은 정신과 의사님의 소개를 받고 회사 비서실에서 연락을 하여 약속을 받고 약속한 그 날에 회사 자가용 비행기로 Houston, TX 에 있는 감리교 목사 찰스 알렌을 찾아갔습니다.


젊은 사장의 사정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알렌 목사님은 조그마한 종이에 처방을 하나 써 주면서 "사장님, 여기 도움이 될 수 있는 처방을 섰는데 성경 시편 23편을 하루에 다섯 번씩 읽으세요, 일어나자마자 한번, 조반 잡숫고 한번, 점심 드시고 한번, 저녁 잡수시고 한번, 그리고 주무시기 전에 한번 읽으세요. 잘 아시는 말씀이니까 빨리 빨리 읽으실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천천히 한 글자 한 단어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미해 가면서 읽으세요. 그리고 사장님이 바쁘실 터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좀 시간이 있을 때 다섯 번 읽으면 되지 않겠나? 하실런니 모르는데 그렇게 하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가령 하루에 약을 다섯봉지 먹어야 하는데 식전에, 조반후, 점심후, 저녁후, 취침전에 한 봉지씩 먹어야 할 약을 바쁜데 그럴 것 뭐 있나 시간 있을 때 먹어야지 하면서 다섯 봉지의 약을 한 봉지에 털어 넣어 먹고 물 마시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시키는 대로 반드시 하세요.


이 젊은 사장은 알렌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일어나자 마자 한번, 조반 먹고 한번, 점심식사 하고 한번, 저녁 들고 한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번 이렇게 하루에 다섯 번씩 시편 23편을 정독했습니다. 그랬더니 일주일을 계속하는 동안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평안 하니까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자니까 피곤이 덜해지고 의욕이 생기고, 밥맛이 좋아지고, 확신이 생기니까 최종 결정을 해야 한번 사인을 할 때도 힘있게 할 수 있어 큰 회사를 잘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남모르는 고민이 있습니까? 범사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밤에 잠이 오지 않으십니까? 구미가 없으십니까?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염려와 근심에 사로 잡혀 있는 분이 계십니까? 찰스 알렌 목사님의 처방을 하번 따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심령이 치료받는 것을 체험하게 되실 줄 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입니다. 오늘 아침 성시 낭독한 시편 100편에도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자신을 가리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를 목자와 양으로 표현한 것은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모릅니다. 양은 짐승 중에서도 지혜롭지 못한 짐승입니다. 다른 짐승들은 밖에 나갔다가도 자기 집을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개는 10리 20리 아주 멀리 갔다가도 자기 집을 찾아옵니다. 닭도 밖에 밭에 나가 놀다가 저녁이 되면 다 찾아 들어옵니다. 고양이도 이집 저집 다 돌아다니다가도 자기 집에 돌아옵니다.


그런데 양은 밖으로 나갈 줄은 아는데 집에 찾아 들어올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뜻을 고집합니다. 우리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현명하고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늘 본향을 떠나서 이 세상에 와서 얼마동안을 살다가 우리 본향 하늘나라로 가야만 하는데 그 본향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심령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러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행로 주변에는 갈 길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쓰려져 죽은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의 갈길을 찾지 못해 헤매면서도 자기 고집이 얾나 강한지 모릅니다.


본래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의 인도 함이 없이는 제 집을 찾지 못합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목자에 의해서만 양의 우리로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방위할 능력도 업습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갈 때만 평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아니해서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됩니다.


철학자 럿셀의 말대로 '우리 인간은 우주를 정복할 정도로 강한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자기 마음 하나를 가누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을 때만이 안전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성 어거스팀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고백한 그 말은 정말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만족도 참된 평안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올 때에만 만족과 평안이 있습니다.


양은 의존하는 짐승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양과 같이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그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습니다. 왜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교만해서입니다. 글쎄 어떤 분은 "나는 교만하지 않는데요"라고 말씀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내려오는 말 중에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너나할것없이 다 교만합니다. 이 교만을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자를 싫어하십니다. 교만하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하자를 물리치십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이 있는 한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려면 내가 양과 같이 어리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자가 아니라 나의 목자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Moond신학교 총장이셨던 Sweeding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손자가 없으시다" 이 말씀이 맞습니까? 왜요? 가령 제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하고 부르면 인간의 경우로 말하면 제 아들은 하나님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 아들도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개인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목자도, 아내의 목자도 말고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유리 방황할 때 주님이 나를 찾으셨다는 사실이 주님은 나의 목자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주님은 나에게 죄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를 회개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나로 하여금 생명의 길을 걷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 시편 23편이 비록 여섯 편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이지만 '나'와 관계된 말 나의, 나를, 내, 내가, 나와, 내게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열네번 나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나와의 관계입니다. 내 아내가, 내 남편이, 내 부모가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아야 합니다.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시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세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면 어떤 축복이 임합니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이 세상은 한마디로 부족한 세상입니다. 모자라는 세상입니다. 문제는 밖의 환경이나 물질적인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가지면 만족할까요? 돈을 10억원가지면 만족할까요 100억원가지면 아니 1000억원가지면 만족할까요? 요사이 TV나 라디오의 뉴스를 켜면 돈 이야기입니다. 안 잡수실 것을 잡수시다가 걸린 이야기들입니다. 지겨울 정도입니다. 들어보면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밥걱정은 안 해도 될 사람들 같은데 부족해서 좀 더 먹으려다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마디로 말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의 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고,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누리면 누릴수록 더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목자로 삼으면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 적인 것 물질적인 것 보이는 것 가지고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짐승은 먹을 것 있고 잠자리 있으면 만족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저녁 배불리 먹고 들어가 잘 수 있는 집이 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밤새 잠못자고 끙끙대며 고민하는 개 보셨습니까? 그런 개 없습니다. 배불리 먹으면 그냥 제집에 들어가 잡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업하고, 아무리 좋은 옷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 먹고, 아무리 좋은 집 쓰고 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은 겉으로 보면 하나의 동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짐승이 갖지 못한 가장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을 닮은 것이기 때문에 이 영혼의 만족이 없을 때 세상의 무엇을 가지고도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여기 어린애가 배가 고파서 웁니다.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면 잠시 울음을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 후에 또 웁니다. 왜요? 배가 고픈데 사탕을 먹어서는 만족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배가 고파서 우는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밥을 먹어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마리아 지방 수가동네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점심 준비를 위해 동네로 들어가고 예수님 혼자 동네밖에 잇는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런데 대낮에 물을 길러 나온 여자를 만났습니다. 옷차림은 보통이상으로 화려하게 했는데 그 모스에 생기가 없어 보였고 눈이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 이 여자는 육신 적인 향락이 전부인줄 알고 젊은 나이에 남자를 다섯이나 바꿀 정도였고 그래도 만족이 없고 지금도 남의 남자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말씀했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육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남자를 다섯이나 바꿀 정도로 만족을 찾아 헤매었지만 거기서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시들해 있던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그 순간 이 여인은 과거 어느 남자에게도 얻지 못한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신 적인 만족이 아니라 영적인 만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 여인은 마을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하며 증거 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것 가지고 만족하지 못하던 이 여인,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던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참된 만족, 부족함이 없는 삶의 충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은 나의 목자로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예기치 않았던 환난에 처했을 때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일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에벤에셀 하실 분이 많이 계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는 길을 살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설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았고 보이지 않는 손과 팔이 함께 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양이 자기 목자를 잃고 초장을 떠났을 때에도 목자는 양을 다시 울안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동안 곁길로 갈 염려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매일 매일 나를 푸른 초장에서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의의 사고를 만나 죽을 자리에 임했다가 겨우 살아남게 되면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주셔서 살아남게 되었다"고 감격해 삽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경에서 건져 주신 것만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고를 당하지 아니하고 지내게 된 것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그 재산이 다 없어지고 말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도우심으로 사업을 다시 하게 되고 재산도 전과같이 회복되었다면 이것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업이 이처럼 어려운 때 잘 되어 재산의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몸의 심각한 병으로 거의 소망이 없는 자리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운 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병이 없이 건강하게 나날을 지낼 수 있다면 이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것은 성도의 확신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범사에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권력을 쥐고 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보세요. 그때 이런 고백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은 다윗의 고백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가 거절된 적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될 때 그것을 아끼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 구하세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을 간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주십니다. 믿음으로 간구하고 의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저는 오늘까지 하나님께 간구해서 이루어진 것은 저에게 모두가 유익한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세상의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을 생각지도 않는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족에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 이상 다른 것을 더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가가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더니 평생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참된 만족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에 참된 만족을 체험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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