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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헌신(롬 8:31-34)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온전한 헌신

로마서8:31-34

 

 

 

논 지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셨습니다.

 

 

 

가. 아낌없이 주는 사랑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1. 사랑의 정의를 내린다면 어떻게 내릴 수 있겠습니까? 아마 “사랑”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정의를 내리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 만화가 있었는데, 그 만화는 항상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은 함께 있는 것’ 혹은 ‘사랑은 손을 잡는 것’, ‘사랑은 마주 보는 것’, ‘사랑은 우산을 같이 쓰는 것’ 등 다양한 정의와 그림으로 사랑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흔히 ‘사랑’ 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13장에도 사랑에 대해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7절 말씀에는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같이 읽은 본문 말씀은 ‘사랑은 아끼지 아니하고 주는 것’이라고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대상에게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주게 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줍니다. 부모님들은 못 입고, 못 먹고, 어렵게 삶을 살아도 자녀들은 그렇게 살지 않도록 희생하면서 아끼지 않고 자녀들에게 다 줍니다.

 

저희 외할머니가 손주들이 많이 있었는데, 저희 외할머니한테는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마르지 않는 금고가 있었습니다. 그 금고는 할머니 치마 속, 고쟁이에 달려 있는데, 그 곳에서 손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용돈이 늘 나옵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우리 할머니는 참 돈이 많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자녀들이 용돈 주는 것을 다 모아 두었다가 당신을 위해서는 하나도 쓰질 않고 손주들이 손을 내밀면 그 많은 손주들 용돈을 다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끼지 않고 가진 것을 모두 주는 것입니다. 아끼지 않고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8)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8절 말씀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에게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 자비’의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의, 거룩’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악된 사람들에게 진노하시고 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벌하시기 전에 벌 받지 않도록 오래 참으시고, 벌하신 후에는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가운데 보다 더 근원적인 속성은 ‘사랑’이라는 속성일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부모에게도 ‘사랑’과 ‘의’의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 책망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 대한 근본적인 마음과 자세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고 벌을 주는 것이고 벌을 주고도, 감싸고 치유하고 세워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근본적인 속성도 ‘의’보다는 ‘사랑’이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에게 벌을 주기 전에 경고를 미리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을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해 벌을 주기도 하고,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은 사랑으로 감싸고 치유하고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 한 가지를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피조물들은 다 아름답고, 너무나 소중하고, 하나님께서 정말 아끼는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아끼는 피조물 속에 사람을 창조하고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는 아담과 함께 만드신 피조물을 둘러 보았습니다. 하나하나 아담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와 짐승, 이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아담이 짓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창조주가 가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아담에게 이름 짓는 특권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이름을 모두 지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도록 모두 위임해 주셨습니다. ‘네가 다스리고, 네가 관리하고, 네가 주장해라. 땅에 있는 모든 식물과, 짐승들을 너희에게 음식으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아담에게 모두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아끼지 아니하고 모두 주신 것입니다.

 

 

 

나. 아들까지도 내어주심 – 온전한 헌신

 

1.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사람을 사랑했건만, 사람은 하나님의 그 극진한 사랑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도 올바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사람에게 위임해 주셔서 사람은 자기가 당연히 소유하고 누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할 권리를 주시니깐, 피조물인 사람이 너무 교만하여져서 자기의 위치를 망각했습니다. 피조물이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니까 자기가 창조주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이 되고 싶다는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아낌없이 다 주셨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했습니다.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돌이키기 위해서 때로는 책망도 하고, 때로는 벌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죄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책망과 벌을 받을 때는 그때 잠시 돌이키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돌이키는 척 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또다시 신속하게 더 깊이 죄에 빠져갔습니다. 더 부패하고 타락해져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많은 하나님의 종들, 선지자들을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사람의 죄와 타락을 가르쳐주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가르치기도 하고, 경고도 했지만,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책망과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듣기 싫은 소리 한다고 자신들에게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배척했습니다. 심지어는 선지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 계속해서 그의 종들을 보내 주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돌이키도록 하셨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급기야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선지자들을 다 내어주시고, 그래도 되지 않으니까 그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죄와 부패와 타락이 너무나 뿌리가 깊어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죄를 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을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요 3:16)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단번에 말끔하게 씻어내기 위해서 가장 강력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너무 큰 죄를 대속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장 완전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단순히 이 땅에 여행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의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가장 수치스럽고 비참한 십자가 죽음을 당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에 내어 주셨습니다. 사망 권세에 내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볼모’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볼모라는 것은 힘이 약한 나라가 힘이 강한 나라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다시는 배신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왕의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고려왕조시대에는 원나라에 볼모를 보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왕조시대에는 청나라에 볼모를 보내는 일이 있었고,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패망한 뒤, 고종 황제는 그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아들을 다른 나라에 볼모로 보낸 것입니다. 다시는 그 아들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아들이 죽는 것도 아니고, 못 먹고 못 입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왕궁에서 화려하게 삶을 살던 그 아들을 남의 나라에 볼모로 보내는 것은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다시는 못 볼 곳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볼모로 보내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아들을 군대 보낼 때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잠시 몇 년 있다가 돌아 오겠지만, 군대에 가서 아들이 고생할 것을 생각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결혼식 때에 보면, 딸을 시집 보내는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보통 남자분들은 잘 안 우는데, 딸 시집 보내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또 결혼식 하는 딸도 어떤 때에는 너무 많이 울어서 주례하는 제가 당황스러웠던 경우도 있습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가서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은 군대에 보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시집 보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볼모로 보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는 것은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 내어 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 죽음에 내 놓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나머지 그 아들까지도 온전히 헌신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 자기 자신을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준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해서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람들에게 헌신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면, 정말 희생하면서 헌신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모들이 시간과 물질을 자녀들을 위해서 헌신합니다. 때로는 위급한 상황 가운데서 생명까지도 내놓고 헌신하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얼마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조창인씨의 소설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가시고기는 참 재미있는 고기입니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은 후에 어디론가 가 버립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가 남아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알들을 보호합니다. 그러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제 갈 길을 떠나 버립니다. 그러면 지쳐서 탈진한 아빠 가시고기는 그 자리에서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 버립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생명까지 희생하는 고기가 가시고기입니다. 그 가시고기를 하나의 모티브로 해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소설이 바로 가시고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그 사랑과 그 헌신으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은 것,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친구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끼지 않는 사랑으로 그 아들까지 주심으로 우리가 죄 가운데서 구원 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금 전에 55장 찬송을 불렀습니다만 하나님 앞에 그 사랑에 감격해서 경배를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헌신 때문인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헌신 받은 것을 감사하시고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다. 온전한 헌신의 요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온전한 헌신이 무엇인가를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친히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4:11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에 감복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낌없는 사랑으로 헌신을 받은 사람은 아낌없이 헌신을 하게 됩니다.

 

앤드류 머레이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있는데, 그 분이 죠지 뮬러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이 있습니다. 죠지 뮬러는 기도의 사람이고 고아의 아버지입니다. 그에게 ‘행복의 비결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축복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다는 것입니다. (Andrew Murray, Absolute Surrender(헌신), (77)) 여러분, 뮬러 같은 행복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그가 경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죠지 뮬러는 고아를 길러내는 것으로 헌신했습니다. 또 많은 선교사님들은 말과 문화가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헌신을 합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서 의술로 헌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헌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가난하고 혼자 사는 노인들의 보일러를 고쳐주고 혹은 새로 설치해 줌으로써 헌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양한 방법으로 헌신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소중한 물질로 헌금을 드릴 때 우리가 가진 소유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수재헌금을 하는데, 수재헌금을 우리가 조금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수재헌금을 하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어제 또 태풍이 와서 피해가 더욱 심해져서 더 많이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헌금을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감사해서 우리 헌신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자기가 받은 은사와 재능과 소유와 직업과 이 모든 것들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나를 위해서 사용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사랑을 받고 헌신을 받았기 때문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헌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헌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서 구원 받아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사랑, 상상하기 힘든 헌신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이 사랑과 이 헌신을 받은 여러분들, 세상 속에서 사랑의 삶,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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