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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감사

엡 5:20-21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다 / 옥한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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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다/ 에베소서 5:20-21

 

 

오늘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매우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여러분이나 저나 이 말씀을 읽으면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범사에'라는 말과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라고 하는 말에 '범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면 우리는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낍니다. 감사하라는 말 앞에 '항상'이라는 수식어가 있으면 기가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무조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은 시종일관, 어떤 상황을 만나도 변함없이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강도 높은 의미를 가진 말씀을 읽으면서 가책 받지 아니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 가운데는 목사인 저 자신이 가장 많은 가책을 받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를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려고 무척 노력을 하고 또 감사도 많이 하지만 이 본문 말씀이 요구하는 선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 자신이 숨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담을 느낍니다. 저같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잘못하면 이런 말씀도 그저 쉽게 이야기하고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남의 말 할 때는 쉬운 겁니다. 자신이 지키지 못해도 가르칠 때는 쉬운 겁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1988년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한창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중요한 이슈가 사형 폐지론이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라는 후보는 사형 폐지론을 주장했습니다. 사형제도는 없애야 된다며 전국을 누비면서 유세를 했습니다. 어느날 CNN의 토크쇼에 그가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쇼에는 유명한 버나드 쇼라는 앵커가 담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듀카키스를 앞에 놓고 이 버나드 쇼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신다죠?" "네, 그렇습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묻겠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그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한 후 살해 당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선생님은 여전히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서 이 사람은 당황했습니다. 머뭇머뭇하고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그들이 받은 인상이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자기와 상관이 없으니까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지 진짜 자기 일이 되면 그런 소리를 할 사람 아니라는 인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토크쇼 때문에 그가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는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하고 설교하기는 쉽습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하고 얼마든지 큰 소리로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좀더 진지하게 이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쳐다보는 남편이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랜 지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아무리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고쳐주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병은 점점 더 깊어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연 그 입에서 감사가 나올까요?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될 어린 장애아인 자녀를 갖고 씨름하는 부모가 그 입에서 정말 감사가 나올까요?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까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입장에서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 말씀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이상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적당히 보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태도로 이 말씀을 넘겨도 괜찮을까요?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자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놓고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꼭 깨달아야 됩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지, 왜 항상 감사하라고 하시는지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름으로'라는 말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한분 만으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금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변명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한번 여러분 마음에 되새겨 보십시오. 그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나의 죄를 짊어지고 저 무지하고 잔인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흘 만에 그를 죽음에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그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붙드는 사람은 어떤 죄를 범했든지 어떤 과거를 가졌든지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세례 받으시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공로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이 말은 "내가 너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노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기가 막힌 신분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그 예수님을 우리는 마음에 모시고 삽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예수님 한분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이 나에게 없다 할 지라도 나에게 예수님이 계신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설혹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지라도 예수님 한 분만 소유하고 그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진정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고 어떤 조건에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찬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런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이 말씀이 나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밀치면 안됩니다. 만약 지금까지 예수님 때문에 범사에 항상 감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면 옥 목사가 가슴에 가책을 받고 여러분에게 고백하듯이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고쳐야 됩니다.

 

우리나라에 영감 있는 시인이 있습니다. 송명희 여사를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뇌성마비로 한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가만히 음미를 해 보십시오.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까?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자 무엇이라고 감사합니까? 남이 갖지 못한 것 내게 있고 내가 가진 것 남이 없는 것을 비교하면서 오히려 '주님, 나는 세상 사람이 가지고 즐기는 것 없어도 예수님 한분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눈으로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수준에 저 자신이 도달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런 수준에까지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많이 가졌다고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 감사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자기 뜻대로 다 소원성취 하는 사람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수만 명을 상대하고 삽니다.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하는 사람을 한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진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명령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명령하실 때에는 그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뒤따라 보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 저는 못합니다." "잔소리 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해. 내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줄게."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라." "어떻게 항상 감사합니까?" "할 수 있어. 내가 네게 능력을 준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명을 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결론을 하나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 만큼 믿습니다.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길이 막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옵니까? "하나님, 제 앞길 캄캄하지만 주님이 제 앞에 있는 구름을 걷어내고 어둠을 쫓아 주실 날이 올 줄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시니 이런 고난을 주시는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의 믿음은 알아줘야 합니다. 감사하는 것 만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느 정도 믿고 계십니까? 감사하는 것 만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것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100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무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눈만 뜨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그 입에서 찬송이 나올 정도로 주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을 가지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복을 누가 빼앗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감사하는 것만큼 다릅니다. 누구하고 다릅니까? 세상 사람하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평이 심합니다. 불평은 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계속 감사가 나옴으로써 내가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감사가 없습니까? 그러면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감사하는 것 만큼 강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천성적인 장애를 안고 나온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어떤 자매의 말을 들으면서 저 자신이 자주 도전을 받습니다.

 

"목사님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실 말이 아닐 것입니다. '복은 무슨 복인가?' 우리는 당장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 애 때문에 가정이 얼마나 화목한지 모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 아빠가 예수 믿고 돌아왔습니다. 아마 애가 저러지 않았으면 아빠는 예수 안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 애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애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 받고 인정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고통 당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 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이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이 사람 만큼 강한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습니까? 누가 이 사람을 꺾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좋아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 집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세상 사람 앞에 매력적인 존재가 됩니다. 감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부터 돌아가셔서 의도적으로 감사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나는 무조건 감사할 수 있어.' 하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불평하던 것을 감사하면, 지금까지 남을 원망하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감사하면, 지금까지 만족하지 못하던 것을 감사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날보고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나는 감사해야 돼. 아버지에게 순종해야 돼.' 하면서 어떤 형편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할 것들을 찾아 하나님 앞에 감사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믿음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강해집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매력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런 멋있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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