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창조성을 얻는 길 (잠언 2장 1-12절)
<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
작년에 둘째 딸 한나의 성적이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학교 사정상 장학금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료 목사님 교회 근처의 기독교학교로 전학시켰습니다. 전체 500명이 넘는 학생 중 한국계 학생은 단 3명 있는데 한나 학년에는 아무도 없어서 한나가 친구도 없이 매일 점심을 혼자 먹을까 염려했습니다. 다행이 중국계 댄이란 단짝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댄은 중국표준말 맨더린(Mandarin), 중국 광동어 캔토니즈(Cantonese), 영어, 일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5개 언어를 할 줄 알아서 둘이 있으면 한국말로 대화합니다.
어느 날, 댄이 말했습니다. “아이! 속상해! 엄마가 내 통장에서 20만 불을 빼갔어!” 한나가 처음에는 20만 원으로 잘못 들었다가 정말 20만 불인 줄 알고 2억이 넘는 엄청난 돈을 가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댄은 크고 멋진 자기 차도 있고 홍콩에 자기가 운영하는 쇼핑몰까지 있었습니다. 홍콩 쇼핑몰 매니저가 어떤 옷의 구매의사를 밝히는 메일을 보내면 댄이 꼼꼼하게 그 옷의 모양과 가격과 시장조사 등을 한 후 구매지시를 내립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쇼핑몰을 운영하며 상당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댄이 한국에 놀러올 때 우리 집이 작고 초라한데 어디서 자게 할까 한나가 걱정해서 제가 “목사 집이 작고 초라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그냥 우리 집에서 같이 자라.”고 했습니다. 만 17세의 고등학생 소녀가 학교 성적도 최고이고 5개 언어를 알고 미국에서 홍콩의 쇼핑몰을 운영하고 외국인 친구를 만나러 방학에 혼자 해외에 가는데 마치 서울에서 강원도 놀러가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얼마나 독립심이 대단합니까?
반면에 지금 많은 한국 학생들은 입시위주 교육에 시간을 다 빼앗겨서 멘토나 조력자 역할을 해줄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창의성을 배우고 발휘할 시간도 없고 독립심을 가질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대학설명회에도 부모가 나서서 입시를 부모도 함께 치르는 상황입니다. 결혼할 때는 물론 결혼 후까지 독립심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입시위주 공부의 부작용입니다. 그렇다고 입시위주의 공부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도 아닙니다.
얼마 전에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란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그 제목의 정확한 개념을 아는 한국 사람은 상당히 적을 것입니다. 그 제목을 ‘시간에 대해’라고 해석하면 마치 시간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같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주인공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특별한 능력으로 사랑을 이루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입니다. 그런 영화 제목을 왜 ‘어바웃 타임'이라고 했을까요?
한국 사람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16년 동안 영어를 엄청나게 공부하고도 about의 핵심 개념조차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공부해도 시간만 낭비되고 영어 실력은 죽도록 안 느는 것입니다. 반면에 네트영어는 단어와 숙어와 문장의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시켜주기에 영어공부 효율이 극대화됩니다. 현재 주입식 영어교육에서는 하나를 알면 곧 하나를 잊어버리지만 네트영어는 하나를 알면 잊지 않고 그 위에 계속 지식이 축적되게 해서 공부한 만큼 실력도 쌓이고 재미도 있습니다.
about은 bout이란 단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bout은 ‘이쯤저쯤 하기, 이쪽저쪽 하기’란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 개념을 상황에 따라 구체화시키면 ‘이쪽저쪽에 서기(결투, 양쪽에 서서 승부내기), 이쯤에서 저쯤까지의 시간(한바탕의 시간), 이쪽에서 저쪽까지의 일(한바탕의 일)’ 등을 의미하는 단어가 bout입니다.
about은 bout에 ‘상태를 나타내는 철자’인 a가 앞에 들어가서 ‘이쯤저쯤 상태(이쯤저쯤)’란 뜻이 된 것입니다. 또한 영어는 같은 단어로 모양, 위치, 상태, 시간을 같이 표현하기에 about의 뜻은 한국말로 ‘이쯤저쯤, 이리저리, 여기저기, 요모조모, 이쪽저쪽’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 개념을 알아야 about이 들어간 무수한 숙어, 관용어, 문장 등이 쉽고 정확하게 해석됩니다. 그러나 about을 ‘약, 대하여’라고만 알고 있으면 정확한 개념을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숙어와 관용어를 따로 많이 외워야 합니다.
물론 ‘about 1 o'clock’이란 표현은 ‘약 1시에(1시 이쯤저쯤에)’라고 해석해서 ‘약’이라는 뜻이 통하고 ‘about him’이란 표현은 ‘그에 대해서(그의 요모조모를)’라고 해석해서 ‘대해서’라는 뜻이 통합니다. 반면에 ‘walk about’이란 표현은 ‘약 걷다, 대해서 걷다’라고 하면 이해가 안 되니까 ‘산책하다’라고 숙어로 외웁니다. 그러나 그것은 about의 뜻만 알면 전혀 외울 숙어가 아닙니다. walk about의 정확한 뜻은 ‘여기저기 걷다’란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look about은 ‘두리번거리다’라고 숙어로 외우지만 그것은 ‘여기저기 쳐다보다’란 뜻입니다.
결국 about의 뜻만 정확하게 알면 about이 들어간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숙어를 따로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I am about to go.”란 문장도 about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으니까 ‘be about to’는 ‘막 하려고 하다’란 뜻이라고 그냥 외웁니다. 그러나 그것도 about의 뜻만 정확하게 알면 전혀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즉 ‘about to go’의 뜻은 ‘갈 것(to go) 이쯤저쯤에 있는’이란 뜻으로서 ‘막 가려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 학생들은 about이 포함된 생활영어 표현까지 외웁니다. 예를 들어, “The market is about here.”는 “그 마켓은 이 근처에 있다.”라고 외우지만 그 말은 원래 “그 마켓은 여기 이쯤저쯤에 있다.”란 뜻입니다. 영화를 보면 군대에서 “뒤로 돌아!”라고 할 때 교관이 “About turn!”이라고 소리칩니다. 그 말은 “약 돌려! 대해서 돌려!”라고 하면 해석이 안 되니까 무조건 외우는데 그것도 about의 뜻만 정확하게 알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려!”란 개념임을 알고 전혀 외우지 않고도 쉽고 정확하게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 ‘About Time’도 그 영화에서는 ‘시간에 대하여’란 개념이 아니고 ‘시간 이쯤저쯤 하기’ 즉 ‘과거와 현재로 왔다 갔다 하기’란 개념입니다. 그래서 About Time을 그 영화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굳이 한국말 표현으로 제목을 만든다면 <시간 넘나들기> 혹은 <시간을 넘나든 사랑 찾기> 등으로 붙여야 원 제목에 충실한 제목이 됩니다.
지금 한국 학생들은 16년 동안 영어를 죽도록 공부해도 기초 단어인 about의 개념 하나도 잘 모르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영어교육 패러다임에서 어떻게 영어실력이 늘겠습니까? 그래서 네트영어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금 about을 네트영어로 정의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한 네트영어 사전을 5000페이지를 목표로 만들고 있는데 현재까지 약 1400페이지를 완성했습니다. 때가 되면 네트영어 단행본도 나오고, 네트영어 사전도 완성되고, 네트영어 교육방송도 세워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네트영어의 비전에 동참할 뜻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뜻은 있지만 힘이 없어서 그 비전 진행이 늦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움직여주시면 조만간 그 비전이 만개할 날이 올 줄 믿습니다. 네트영어를 통해 일주일에 30시간 영어공부 하는 것을 3시간만 공부하고도 훨씬 더 영어실력이 늘고 나머지 27시간을 자기 재능을 살리는 공부와 일에 더 집중하면 얼마나 더 창조성이 넘치게 되고 자기개발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독립심도 강해질 것이고 또한 여가를 잘 활용해서 훨씬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나 학교에서는 학교 지침대로만 공부하면 쉽게 A를 맞을 수 있어서 남은 시간에 자기 달란트 개발과 관련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여가도 즐기면서 심지어는 댄처럼 사업체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입시위주로 주입식 공부를 하면 좋은 대학은 가도 인물이 나오기는 힘듭니다. 그처럼 주입식 교육보다는 찬란한 꿈을 꾸게 하고 지혜와 창조성을 고양시키는 교육을 통해 인물이 되도록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혜와 창조성을 얻는 길 >
지혜와 창조성이 넘치면 공의와 정의와 정직 즉 모든 선한 길을 잘 깨닫습니다(9절).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공평하고 정직하게 행동할 때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그를 보호해주시며(7-8절), 또한 마음과 영혼도 즐겁게 됩니다(10절). 그러면 성공적인 인물이 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그처럼 지혜와 창조성이 넘쳐서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이 구절에서 “내 계명을 간직하라!”는 말씀은 말씀을 기억하란 말씀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기억하고 귀로도 열심히 들으려고 하고 무엇보다 말씀을 향해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면서 지혜와 지식과 명철도 넘치게 됩니다(6절).
또한 말씀을 가까이 하면 상상력과 창조성도 넘치게 되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낼 용기와 자신감도 얻습니다. 더 나아가 기쁨과 감사와 소망도 넘치게 됩니다. 결국 인생의 행복과 축복은 말씀에 반응하는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큰 축복이 준비되지만 말씀을 외면하면 시련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흉년 때문에 말씀의 자리를 떠나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거기로 가면 편하게 잘 살 줄 알았지만 거기서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 은혜를 주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나오미가 용기를 내어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결국 나오미 가족은 슬픔이 기쁨이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되는 회복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를 따라간 며느리 룻도 이방 여인으로서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효심도 귀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말씀이 있는 곳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복된 존재가 되려면 말씀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학력과 능력과 자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말씀을 경청하는 태도입니다. 말씀대로 완벽하게 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 중심적으로 살려는 태도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창조성이 넘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아도 얼마든지 인물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습니다.
2.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 지식과 명철을 달라고 간절히 소리 높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바른 말씀을 따라가면 복된 길이 열리는 줄 알고 마귀는 잘못된 말씀으로 영혼을 유혹하고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다른 음성은 따라가지 않는다.”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잘 분별해듣습니다. 한 사람이 이스라엘에 가서 원래 목자의 옷을 입고 그 목자와 거의 똑같은 소리를 냈지만 양들은 그 소리를 분별해내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처럼 성도는 바른 말씀을 잘 분별해 따라가야 합니다.
지금 잘못된 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바른 말씀을 잘 분별해냅니까? 그것이 쉽지 않기에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뜻으로 넘치게 되면 말씀을 잘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살면서 한 번도 낙심하지 않고 늘 잘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늘 유혹을 잘 물리치며 전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 모습이 부족해도 기도만은 포기하지 마십시오. 돈이 없어도 괜찮고 성격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힘만으로는 살 수 없는 줄 알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기도제목에도 응답하시고 더 나아가 그 마음에 찾아와주셔서 믿음과 평안도 주시고 지혜와 창조성도 넘치게 해주실 것입니다.
3. 연구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지식과 명철을 달라고 기도한 후에는 광부가 은을 구하고 감추어진 보배를 찾듯이 지식과 명철을 열심히 찾아 나서야 합니다. 즉 멘토를 찾아 지혜를 구하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도 얻고 기도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성공과 축복의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지식들을 취합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느낌으로 행동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지만 어린아이는 감각을 따라 그저 눈에 반짝반짝 빛나면 좋아합니다. 폭주족 학생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지?”고 하면 “멋있잖아요?”라고 대답합니다. 멋있으면 죽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멋있게 보이니까 술과 담배를 하고 조직폭력배를 동경합니다. 그처럼 미성숙한 사람은 멋과 느낌을 따라 생각 없이 움직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한 번 더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이 항상 긍정적입니다.
시편 1편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왜 그런 묵상이 줄어듭니까? 너무 바쁜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현대인의 딜레마입니다. 편히 살자고 열심히 돈을 버는데 돈을 벌수록 더 바빠지면서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고 가족 간에 대화 시간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남들이 달린다고 무작정 같이 달리면 안 됩니다. 급하게 서둘러서 일이 잘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바빠도 평소의 습관을 따라 기도하고 기도를 마무리할 무렵 깊은 묵상을 하면 그때 지혜와 창조성도 넘치게 됩니다.
살면서 너무 쓸 데 없는 약속을 많이 만들지 마십시오. 안 해도 되는 약속은 가급적 피하고 불필요한 약속은 지혜롭게 취소하십시오. 너무 사람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만나지도 마십시오. 자기 시간을 내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깨달은 것을 기록하고 때로는 시도 한 수 써보십시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열심히 달린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사색할 때 더 달라집니다. 그처럼 삶의 여백과 안식을 가지고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며 하나님 안에서 사색하면 더욱 성숙해지고 지혜와 창조성도 넘치게 됩니다.
4.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이 구절에서 ‘완전한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삶에서 나타내는 지혜’를 뜻합니다. 그리고 ‘행실이 온전한 자’란 행동이 완벽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 중심적으로 살려는 자’를 뜻합니다. 행실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성도의 행실이 나쁘면 하나님의 이미지도 나빠집니다. 또한 성도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도 거짓말쟁이로 만들게 되기에 늘 정직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평생 딱 4번 안수를 했는데 그 4번 모두 불치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동료 목사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그런 역사가 있는데 자주 안수해주시면 어때요?” 그 목회자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안수를 남용할 수 없습니다. 낫든 안 낫든 무조건 손부터 얹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 나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안 나으면 그 안 나은 사람은 무의식중에 ‘하나님은 거짓말쟁이! 무능력자!’라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함부로 안수할 수 없어요.”
함부로 안수한 뒤 안 나으면 안 나은 사람이나 그를 지켜본 사람에게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여기는 영혼의 상처가 생길 것이 염려되어 함부로 안수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안수하니까 오히려 네 번 안수할 때 네 번 다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행동에 하나님의 명예가 걸린 것을 알고 더욱 정직하고 바르고 신실하게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창조성과 지혜를 주시고 능력과 분별력도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무책임하고 고약한 태도는 “아니면 말고!”란 태도입니다. 왜 요즘 정치인들이 신뢰를 잃습니까? 표를 얻으려고 공약한 후 나중에 “아니면 말고!”라고 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확인되지 않는 자극적인 폭로를 한 후 나중에 “아니면 말고!”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병자를 낫게 해주겠다고 갖은 기대를 다하게 해놓고 나중에 “아니면 말고! 자기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하고, 그럴 듯한 예언과 예언기도를 한 후에 나중에 “아니면 말고!”라고 하는 식으로 나오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모욕을 받게 됩니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하나님의 체면을 심각하게 구기는 사람이 버젓이 ‘치유의 종, 예언의 종, 위대한 사도’란 타이틀로 많은 대중들을 현혹합니다. 돈키호테가 따로 없습니다. 이제 “아니면 말고!”란 식으로 무책임과 말과 행동을 남발하는 사람은 정확히 책임을 묻고 때로는 미국처럼 법적인 강력한 조치도 취해야 합니다. 너무 엄한 조치인 것 같지만 그래야 순진한 영혼들의 믿음이 농락당하고 가정이 파괴되고 재산이 털리는 2차, 3차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도 수많은 언론에서 수많은 점쟁이들과 역술가들과 예언가들이 김정은이 곧 죽는다고 예언했습니다. 그게 무슨 예언입니까? 학자들이나 보통 시민들도 그런 예견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아니면 말고!”라고 하다가 한번 맞으면 옛날 신문기사까지 보여주면서 자신이 용하다고 선전합니다. 그렇게 부정직하게 살면 지혜와 창조성은 생기기 힘들고 결국 자기 인생 하나도 책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예언과 인생 상담을 받습니까? 그 시간에 성경을 더 보면 훨씬 귀한 영안과 지혜를 얻습니다.
< 지혜와 창조성이 넘치는 삶 >
현대는 영적 분별력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힘이 더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앞세워 잘못된 소리를 잘 분별해내야 합니다. 그런 분별력이 없으면 비교의식에 젖고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대중에 휩쓸리는 삶을 살다가 결국 인생과 시간을 크게 낭비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대개 큰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남의 떡을 크게 보는 약점입니다. 그래서 만족을 모르고 자기 자리를 이탈하고 허무한 공상을 하다가 불행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직장인은 생각합니다. “내가 식당을 차리면 돈을 많이 벌겠다.” 그러나 자기 식구 입맛 맞추기도 어려운데 손님들 입맛 맞추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매일 수십 번의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는 일이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식당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달란트를 찾아서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이 서울에 살면서 늘 시골을 동경했습니다. “시골에서 염소 키우고 농장 하면서 과일나무도 키우면 얼마나 좋겠나?” 결국 퇴직금으로 농촌에 가서 염소 농장을 하는데 참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 이면의 어려움을 깨닫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쉽게 어떤 길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특히 대박을 안겨준다는 소리에는 마음과 귀를 완전히 닫으십시오. 남의 성공을 보고서 성공을 추구하면 대개 성공하지 못합니다. 정직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와 창조성을 얻어서 자기 일을 찾아 할 때 진정으로 성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배에 한 주일만 빠져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내적인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속박이 아니고 행복과 능력과 축복의 원천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따라 살면 지혜와 창조성이 넘치게 되고 분별력도 커지면서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11-12절).
현대는 지식 경영시대입니다. 자본도 중요하지만 지식이 더 중요하고 다수도 큰 힘이지만 지식은 더 큰 힘입니다. 그러나 많은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기에 남도 쉽게 가질 수 있는 지식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자기만의 창조적인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머리로 아는 지식은 컴퓨터의 지식을 절대 따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컴퓨터를 사람이 만듭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방에 널린 지식을 잘 활용해서 복된 삶과 성공을 위한 창조적인 지혜를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창조적인 지혜가 어디서 생깁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기도할 때 생깁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삶의 지혜와 성공의 지혜로 승화시키려고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고 사색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늘 정직하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창조성으로 인물 되는 길을 준비하고 마침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주일설교(14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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