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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백성에게 강림하소서(사 64:1-9 ) : 대강절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18.

새문안교회 대강절 첫째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 바로 뒤에 있는 10-11절을 보면 오늘 본문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 거룩한 성 시온을 비롯한 하나님의 백성의 성읍들이 다 황폐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즐거워하던 그 거룩하고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폐허가 된 조국 땅의 모습을 보고 겪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단지 황폐해진 성읍들과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족속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며 이스라엘의 신앙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한 것은 이방족속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오만하게 행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고 그 고통이 매우 큰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게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후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살던 이방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 허물어진 성읍들을 다시 세우며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건축하고 이스라엘의 신앙공동체를 복구하는 일에 심한 불안감과 위기감을 느끼고는 온갖 위협과 간계로 이스라엘의 재건을 방해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하고 좌절감에 빠지며 그 신앙과 생활이 다시 해이해지는 정신적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희망의 서광도 보이지 않는 진퇴유곡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온 탄원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시급히 강림해 주시기를 바라는 이스라엘의 간절한 청원을 봅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1상) 합니다.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 한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침묵을 깨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감추어져서 나타나고 있지 않는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기를 간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개입과 그의 권능의 역사가 당장 빨리 나타나야 하겠다는 목마르고 애타는 심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 한 것도 이러한 절급한 심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에는 온 천지와 만방이 그 앞에서 떨 것이라는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하반절부터 3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을 잘 드러내줍니다: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했습니다. 여기서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한다는 말이 1절 하반절과 3절에 두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산들"이라 한 것은 실제의 산을 말하기도 하며, 거대하고 위압적인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기만 하면 현재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모든 세력이 다 무너질 것임을 믿는 믿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절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라고 한 것은 아마도 옛날 출애굽 당시에 모세를 통하여 수많은 이적기사들을 행하신 일을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의 압제와 그 군대의 위세를 다 흔들어버리시고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시며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이루어주신 그 하나님의 능력이 새로이 나타나서 바벨론의 포로상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위기에서 구원해주시고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회복을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 기도 속에서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재앙과 고난은 그들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인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절 하반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우리가 범죄하므로 ...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 우리의 죄악이 ...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라고 거듭 거듭 모든 일이 그들의 죄 때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다"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지냈음을 말해줍니다. 또 5절에서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범죄하며 부정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이 기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의식의 회복과 구원의 간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9절은 그것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이것은 결국 잊어버렸던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되찾아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이 기도 속에서 이스라엘이 되찾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하나님은 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고 우주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공의의 심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1절 하반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이 그것을 잘 드러내줍니다: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했습니다. 4절에서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고 ...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시며 ... "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5절에서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한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홀로 참 하나님이시고 우주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이시라는 것입니다. 8절을 봅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그들의 죄과에 대한 반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그래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용서와 구원에 대한 기대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라는 말은 그 반성과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만이 그들의 살 길임을 깨닫는 각성도 함께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한 것은 그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강림을 간구하는, 선지자의 입을 빌린, 이스라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그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는 이스라엘의 의식과 자세를 여러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시대를 넘어서서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이들의 바른 자세에 대한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자세를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입니다. 오늘 본문이 드러내주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고 우주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공의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는 우리가 처한 상황의 근본원인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가 지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곤경과 좌절과 위기에 처해있다고 생각되십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된 데 있어서 우리들 개인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 앞에서의 죄와 불충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그 무엇이나 그 누구에게서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신앙의 문제점을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그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죄와 불충에 대한 회개와 겸손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고 지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우상에 마음을 빼앗겼던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의지하지 않았던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던 우리들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했던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은 인류의 죄와 그로 인해 인간에게 닥친 죽음과 모든 고통과 불행을 해결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의 첫 주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마음과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합니다. 오직 그 안에서만 모든 문제의 해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간구한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달은 바를 마음 속에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고백적 지식과, 우리의 죄에 대한 진실한 인식과, 참된 회개와, 겸손과 순종에의 다짐으로 기쁘게 주님을 맞이하는 이번 대강절과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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