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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마가복음 4:35-41

by 【고동엽】 2021. 12. 18.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마가복음 4:35-41

35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 자 하시니 36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 라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 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 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 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 음이 없느냐 하시니 41저희가 심 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 고 하였더라


오늘 우리는 민족적으로 IMF라 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경제 대공황의 시기를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 유명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이런 스피치를 남겼습 니다.
"미국 국민여러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두려워한다는 사실 그 자체 하나뿐입니다."
그는 경제위기나 정치 위기보다도 두려움이란 심리 적 상태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워하게 되면 우리는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행동이 마비 가 됩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 시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 다. 갈릴리 동편에 가셔서 예수께 서 안식도 취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 고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은 주무시고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 납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물 이 배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제자들은 당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을 깨웁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시면 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 다.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하느 냐?
"
두려움을 경계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려 움에 사로 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 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현 대인들은 익명의 공포, 미지의 공 포, 대상도 알 수 없는 두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유우머 시리즈 가운데 무서워 시리즈가 다 생겼어요. 아마 이 얘 기를 하면 50대 이상은 하나도 웃 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 니 내가 얼마나 늙었는가를 진단해 볼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서 공포 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자신 입니다. 그래서 '무섭나' - 내가 무섭다는 뜻이지요? '무서워유' 당신이 내 공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뜻이지요. 남자들은 여자를 두려워합니다. '무서운걸' 그런 것 도 있어요. 아직도 못 깨달아 지신 분이 있어요. 여자들은 남자가 두 려워집니다. 그래서 '무섭군' 합니 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하두 살 맛이 나지 않으니까 생의 무력증에 시달린 나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하 루 사는 것이 너무 공포스러운 나 머지 아침에 일어나면 '무섭데이' 그럽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수지 로 이사 온 다음에 제일 걱정이 뭐 냐하면 비 오는 것이 걱정입니다. 주차할 때 우리 교인들이 고생하지 않을까. 어제도 비가 온다고 예보 가 되었거든요. 오늘 정상적으로 하면 비가 와야 되는 겁니다. 그지 요? 그래서 저는 '무섭지비' 그러 고 삽니다. 50대 이상은 한참 생각 하고 웃어요. 참 재미있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 1부 예배에 참 석하신 어떤 분이 목사님 하나 빠 졌어요 그래요. 뭐 빠졌습니까 그 러니까 모든 것이 무서운 것을 뭐 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무섭다' 래요. 우리가 공포에 사로 잡힌 그 러한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일어나시자 마자 파도와 바다를 잠잠하게 하십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풍랑을 극복하고 예수님과 함께 바다 저 편으로 건 너갑니다. 오늘 이 시대의 풍랑, 민 족적인 풍랑, 가정적인 풍랑, 이 풍 랑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의 꿈이 기다리는 저 편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오늘 본문은 이 풍랑이라 는 과정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가르칩 니다.
풍랑을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필 요합니다. 우리가 본문의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자, 큰 광풍 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 딪칩니다. 배가 요동치기 시작합니 다. 자, 뱃전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 했고, 심지어 배에 가득하게 되었 는데 아직도 예수는 주무시고 있었 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니 어 떻게 이런 상황속에서 예수께서는 잠을 청할 수가 있었을까요, 정말 예수님이 주무셨을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피곤하니까 주무셨겠지 만 자, 광풍이 몰아 부치고 배가 흔들리고, 자, 얼굴에 막 비가 뿌리 기 시작하고 물이 들어오고 뱃전에 아우성인데 아직도 주무시고 있었 거든요, 저는 예수님이 처음에는 주무셨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는 깨 어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무시 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셨을 거예요, 틀 림없이. 그럼 왜 일어나지 않으셨 나? 예수님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어떻 게 이 물결속에, 이 파도에 반응하 는가 그것을 보시고 싶어했던 것이 예요. 상당히 의도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시험이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test다. 예 수께서 제자들을 test한 사건이다. 이 풍랑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 고 싶어하셨던 것입니다. 왜 이런 시험을 하셨을까요? 인생의 바다에 는 풍랑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 가 지나가면 또 다른 풍랑이 다가 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풍랑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인간 관 계의 풍랑, 관계가 단절되어 상처 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밤을 잘 수 없는 고통의 가슴앓이를 계 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갑자기 한 순간 건강 이 꺾여 버린 그런 풍랑을 겪고 있 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이 거대한 풍랑 하나를 겪고 나면 다른 풍랑에는 상당히 자신이 있거 든요. 풍랑을 겪을 줄 아는 마음의 준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저 는 그래서 예수께서 이 풍랑을 허 용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사 실 이번 IMF가 왔을 때 기성세대 들은 상당히 느긋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6.25 와 비슷한 민족사의 풍랑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IMF 가 결코 먼 안목으로 볼 때 우리 민족에게 유해한 결과만을 가져오 지는 않을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어요. 특별히 젊은 세대에게 도움 이 될 것이다. 신세대, 제가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information이 많고 똑똑하고 유능 하고 유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젊 은 세대의 약점중의 하나는 이 어 려운 환경을 부딪치는 거센 용기가 좀 부족합니다. 만약 이 풍랑을 지 나간다면 우리의 신세대도 저는 달 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그런가하면 문제는 뭐냐하면 이 풍 랑이 어떤 때는 전혀 예고없이 다 가온다는데 우리를 당황시키는 요 인이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랑, 사실 인생의 많은 풍랑은 이 런 것들입니다. 갑자기 다가와서 상처를 남기고 홀연히 이 풍랑은 떠나갑니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성지 순례를 해 보시면 이 갈릴리라는 이 바다, 갈릴리 바다는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어요. 그리고요 저기 앞에 보시면 헬몬산이 보입니 다. 아주 높은 산입니다. 이 헬몬산 은 해발 2760m , 굉장히 높은 산 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보면 항상 눈이 덮여 있어요. 헬몬산에서 차 가운 물이 좁은 협곡을 타고 내려 와 갈릴리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 런데 이 갈릴리 바다는 아열대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상당히 덥습니 다. 이 찬물이 헬몬산에서부터 내 려오면서 이 아열대성의 더운 갈릴 리 바다의 표면의 물과 부딪치면서 갈릴리 바다는 예고하지 않았던 급 작스런 풍랑을 일으킵니다. 갑작스 런 파도가 일어나요. 저는 이 갈릴 리 바다야말로 우리 인생에 대한 적절한 심볼, 상징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 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의외 성의 풍랑, 이 환란, 그래서 우리는 더 당황하고 더 불안해 하는 것입 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런 풍랑은 인생에서 쉴새없이 다 가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 을 준비하라고 주님은 가르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때문에 풍랑이 면제된다 - 이렇게 가르치 신 적이 없어요. 예수께서는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세상 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풍랑의 면 제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풍랑은 오지만 풍랑을 뚫고 나아갈 수가 있다.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가 있 다. 여러분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 랍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환 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느라' 사도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 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 여러 가지 시험이라는 말을 원어 성경에 서 보시면 여러가지 색깔이라는 말 입니다. 인생은 형형색색의 시험 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시험을 대 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가 만약 불시험을 당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아라' 우리는 평범한 시 험도 있지만 어떤 시험은 불같은 시험, 그런데 이런 불같은 시험을 경험할 때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는 말라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 다. 사실 본문에 나타난 갈릴리 바 다의 풍랑, 제자들이 경험했던 이 풍랑은 오늘 성경에 보시면 큰 광 풍이라고 그랬습니다. 희랍어 성경 에 보시면 이 '큰'이란 형용사, 수 식어가 '메갈레'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메 가톤급의 풍랑이예요. 거대한 풍랑. 내 삶의 근저를 흔들어 버리는 풍 랑, 그리고 내 삶의 존재를 위협할 수 있는 풍랑, 이 거센 풍랑이 덮 친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나 이 풍 랑만 겪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인 생의 어떤 풍랑에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풍랑을 허용하 신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사랑하시 는 여러분, 우리가 거센 풍랑이 일 고 있는 이 바다를 지나가 우리의 꿈의 언덕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풍 랑은 있을 수가 있다. 시련은 있을 수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풍랑을 넘어서서 저 바다 건너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번 째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 어야 합니다.
자, 40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깨어 일어나면서 풍랑이 일어나고 있는 바다를 향해서 명하십니다. 바다야 잠잠하라 그리고 바다는 유 리알처럼 투명한 고요한 바다로 변 화되었습니다. 자, 이 사건 직후에 예수께서 두 마디 말씀을 하세요. 하나는 너희가 어찌하여 무서워 하 느냐, 그리고 또 하나는 뭐에요 40 절에 보시면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사랑하시 는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혀 믿음이 없었다 그렇게는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 부의 직업 포기하고 예수님 좇아 나섰을 때 예수께 대한 신뢰가 없 었다면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 님이 메시야다, 구세주다, 저 분 따 라가면 인생이 변한다, 우리 인생 이 희망을 얻을 수가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따라 나선 것입 니다. 그런데 이 풍랑이 일어났을 때, 이 순간 이 현장 속에서만은 제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에요.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어느 한 순간, 인생의 어느 한 사 건 앞에서, 어떤 특수한 한 현장에 서만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제자들 의 입장이 그런 입장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그래 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셔 야죠. 우리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잠만 주무십니까 일어나서 뭔가를 좀 하십시오. 하십시오. 당 황하니까 예수님 보고 지시하고 있 어요. 예수님 보고 막 명령하고 있 습니다. 그런 인생의 에피소드는 언제나 일어 날 수가 있습니다.

한번은 미국의 유명한 헐리우드 의 여배우가 비행기를 탔어요. 비 행기 타는데 옆에 아주 노신사 한 분이, 멋있게 생긴 노신사 한 분이 있더래요. 그런데 그 분이 자꾸만 기침을 하는 거에요. 콱 콱 하고 계속 기침을 해대는 거에요. 안쓰 러워진 여배우가 자기가 마셔야 할 차를, 주스를 드리면서 선생님 감 기에는 주스가 최고예요. 주스 많 이 마시세요 물 많이 마시구요 그 리구요 선생님 제가 마침 약이 하 나 있어요 타이레놀 아스피린 비슷 한 약을 드리면서 이 약 잡수세요 그리고 담요를 내어드리면서 제 담 요 푹 한번 싸 보세요 땀을 내세요 물 많이 마시고 담요 싸고 한 잠 주무시고 나면 퍽 괜찮을 거에요. 너무너무 감사해서 이 신사가 죄송 하지만 누구십니까 좀 특별한 여자 같거든요 저는 헐리우드의 여배우 빌리 벌크라고 합니다. 유명한 사 람이래요. 나는 모르겠어요.그러니 까 이 노신사가 아 그러냐고 그러 면서 손을 내밀면서 나는요 저 메 이요크리닉의 닥터 메이욥니다 그 러더래요. 네, 저 유명한 메이요크 리닉의 파운더인 닥터 메이요. 공 자님 앞에서 문자 쓴 거죠.

우리가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예 수님 이렇게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예수님께 막 지시할 때가 많아요 자, 그런데 예수님은 잠 들어 있었 다 말이죠. 제자들은 주님의 침묵 을 견디지 못해 하는 것입니다. 예 수님의 침묵, 혹은 예수님의 평안 을, 예수님의 무관심, 예수도 이런 상황, 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하늘도 무심하다, 하나님도 나에게 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여러 분 예수님은 무관심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는 척 하면서 제자들 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에요. 그러 나 제자들은 그 믿음을 적용시키는 일에 실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떻게 우리 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 진 자가 될 수가 있을까요? 여러 분, 우리가 제대로 믿음 가지려면 환경만 보아서는 안 되요 환경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현실이란 거대 한 파도 앞에서 제자들의 믿음은 위축되고 있었고 그 믿음은 고사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 는 것 그 현실에만 우리 인생의 시 선을 고정시키면 우리는 위축당합 니다. 우리는 낙심합니다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럴 때는 여러분, 보 려고만 하지 말고 들으려고 하세요 들으려고. 무얼 들어야 하는가 주 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그 음성은 작은 음성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 나 주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 는가 이 고통의 현장, 이 낙심과 불안의 환경, 시련의 역경의 현장 속에서도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 씀하고 있을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고요히 말씀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아니 한가. 사랑하시는 여러 분. 그 음성 들으면 힘이 나요 그 믿음은 말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 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 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 로 말미암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 는 것 그것이 믿음을 일으키는, 그 믿음을 생성시키는, 그 믿음을 성 장시키는 원천입니다. 여러분, 저는 성경과 멀리 하면서 신앙 생활 제 대로 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어요
여러분, 이런 역경이야말로 거룩 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 시간입니 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음성 을 들어 보세요. 이 말씀은 믿음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이길 것입니다.우리 는 재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는 여 러분, 우리가 풍랑의 바다 건너가 려면 주께 대한 믿음, 이 믿음 가 지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로 , 우리가 이 풍랑의 바 다를 건너 저 바다 건너편에 도달 하기 위해서는 세번째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확신해야합니다. 사 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이 누 구이신가를 확신 할 수 있어야죠. 자, 오늘 본문에서 보면 예수께서 이제 풍랑이 일고있는 바다를 향해 서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 면 바람을 , 바다에 일고 있는 바 람을 예수님이 꾸짖으셨다 그럤습 니다. 꾸짖으셨다 이런 특이한 단 어가 사용됩니다. 바람을 꾸짖으셨 다. 본래 이 꾸짖는다는 단어는 복 음서에 읽어 보시면 예수께서 악령 들을, 귀신들을 꾸짖을 때 사용되 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 람을 꾸짖는다 여기에 사용되었어 요. 그래서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풍랑의 배후에는 어 쩌면 악한 세력, 사단의 역사함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 습니다. 모든 고통이 악마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고 통은 사탄때문에 일어날 수가 있습 니다. 나를 좌절시키고, 나를 낙망 시키고, 나를 주저앉게 만드는 일 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합 니까? 일어나 예수님 처럼 예수님 의 권세를 의지하고 꾸짖으셔야합 니다. 파도야, 잠잠하라. 고통아, 사 라져라 . 문제야, 극복될지어다. 예수님의 권세를 갖고 나아가면 사 랑하시는 여러분, 고통은 극복될 수가 있습니다.
자,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 졌어 요. 이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던 사 람들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보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자, 4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 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 였더라' 자, 저희가 심히 두려워 하여 저분이 누구신가? 바람과 파 도도 잠잠케 하시는 저분은 누구일 까? 이 질문을 던졌어요. 사랑 하시는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의 초기에 우리가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라는 질문 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는가? 우리는 이런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합니다. 예 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가 있을까? 이 신앙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우리는 이런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신앙을 접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참된 예수 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라는 질문 에서 '누구'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야되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그 확신이 없이,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진정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 다. 저분은 누구일까? 바람과 파 도도 복종하시는 저분은 누구일까? 제자들은 어느새 깨닫고 있는 것이 예요. 무엇을 깨달았을 까요? 바 람을 잠잠케하시는 저분은 바람을 지으신 분이 아닐까? 파도를 잠잠 케 하시는 저분은 파도를 지으신 분이 아닐까? 한순간 그들은 인간 예수의 사실에서 부터 그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는 하 나님이십니다.
"Jejus is God"
예수 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이 고 백을 넘어서지 못하고 진정한 크리 스챤이 될 수가 없어요.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창조자이십 니다. 창조자일뿐만 아니라 그 는 만믈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섭 리자이십니다. 풍랑을 잠잠하게하 고 평안을 줄 수가 있는 분, 인간 의 내면의 내 마음 속에 있는 풍랑 도 잠잠하게 하고, 나를 평화로 인 도할 수가 있는 분, 나를 구원할 수가 있는 분, 예수는 구원자 . 믿 으십니까? 예수는 창조자 그리고 예수는 섭리자, 예수는 통치자 그 리고 예수는 구원자. 한순간 그들 은 신앙의 놀라운 발견 앞에 도달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 늘 본문에 보시면,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본문의 이 텍스 트를 잘 공부해 보시면 놀라운 사 실은 제자들이 처음에 무서워 했지 요? 그런데 무서워 한다는 단어하 고 41절에 그들이 뭔가를 깨달으면 서 두려워했다 . 이 두려움의 단어 는 다른 단어예요. 다른 단어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성 경의 한 번역에 보면, 이것이 희랍 어 원문 번역에 가까운 것인데 영 어 번역에 R.S.V. 라는 번역이 있 습니다. 'Revised Standard Version'이 있습니다. 그 번역에 보면 41절에 ' 저희가 심히 두려워 하여 ' 이 낱말을 이렇게 번역했습 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 감으로 가득찾다. 영어로 'filled with awe' 'awe' 라는 단어는 우리말의 '어!' 하고 비슷해요. 이 것은 아주 놀라움입니다. 경이로움, 한순간 그들은 놀라운 경이 속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는 예수님을 아마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지 몰라요. 그러나 한 순간 그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 니다. 하나님, 아! 파도와 바람을 잠잠케 하시는 분, 그 순간 그들 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 이 함께한다. 예수님이 함께한다, 뭐 좋지. 그러나 내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다. 그러면 문제 가 달라지는 거예요. 창조주 하나 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 나님,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니예요? 풍랑이 일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풍랑이 문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은 뭘까요? 안정은 뭘까요? 그것은 풍랑이 없다. 그것이 안정 이 아니예요.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믿으시기 바랍 니다. 예수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안정이예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이것이 승리인것을 믿으시기 바랍 니다. 주님이 함께하신다. 그밖에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65년전에 유고 슬라비아에 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틴 에이저 소녀가 되었습니 다. 틴 에이저 시절에 그가 성경 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불 타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선 교사를 자원했습니다. 카톨릭이었 기 때문에 카톨릭 수녀가 되었습니 다. 그래서 인도의 캘커타에 왔습 니다. 그가 온지 얼마 안되어서 그는 거리를 지나다가 한 병든 여 인을 발견합니다. 병들어서 엎어 져 있는데 오래된 모양이예요. 아 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요. 몸의 한쪽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쥐들 이 와서 파먹고 있었습니다. 이 참 담한 모습을 바라보고 그는 지나가 다가 발걸음을 멈춥니다. 어떻게 할까? 그 순간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 힘없는 연약한 여자가, 아녀자가 무엇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지나가려 고 했어요. 그런데 뭐가 당겨요. 마 음에서 뭐가 당겨요. '네가 도와 야한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런 기 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 는 못해요.' 그때 이런 음성을 듣 습니다. '내가 도와도 못하겠느 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가능 하겠죠. 그는 돌아 가려던 발걸음 을 돌이켜, 가서 이 여인을 들쳐 엎습니다. 자기 집으로 옵니다. 그 리고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한사 람이 두사람, 세사람 늘어가기 시 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도시 에 행정 관리를 찾아가서 마침 그 가 머물고 있었던 숙소 곁에 있었 던 빈 힌두 템플 하나가 있어서 그 템플을 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클리닉으로 만들었 어요. 숫자가 늘어갑니다. 여러분 수년전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나 갔 죠?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현대의 이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 가운데 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감동을 남 기고 떠나간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 입니다. 수년 전에 이 여자가 죽 기 전에 이 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 에 영국 BBC 뉴스에 크리스챤 언 론인이었던 멀컴 머코리치라는 분 이 이 캘커타를 방문해서 이 테레 사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 다. 그때만해도 거동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테레사에 게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그가 가 만히 병원에서 관찰해 보니까 사람 들이 병원에서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행복한 모습이란 말이 죠.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 다. 테레사 수녀님에게 '힘들지 않 으십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런 흥미있는 대답을 했어요. '힘 들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 다. 주님이 합께 하시기 때문입니 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저는 신앙 생활의 요체를 이 간단 한 세 마디가 다 요약했다고 생각 을 합니다. 힘들지요. 우리가 신앙 을 가졌다고 해서 힘든게 없어진것 은 아니예요. 힘든건 힘들어요. 힘 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 시는 여러분, 힘들거예요. 이 시기 를 지나는 것이 힘들거예요. 그러 나 우리는 여전히 즐거울 수가 있 습니다. 만약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 확신만 가질 수 있다면. 왜냐 하면 우리가 타고있는 배에 주님이 함께 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 으십니까?

여러분, 본문이 시작되는 맨 처 음에 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 시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의 시 작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날 저물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 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 항해 를 제안하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 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계 획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 바다를 건너가자. 제안한 분이 그분이십니 다. 그는 이 바다를 건너갈 계획 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 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 어요. 우리에게 항해를 제안하신 분, 그리고 이 항해 속에 함께 하 시는 저분, 저분이 항해를 계획하 셨다면, 이 풍랑도 하나님의 계획 의 한 부분일 수가 있습니다. 고 난은 뜻이 있습니다. 풍랑에는 하 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주님만 함 께 하신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 풍랑도 우리에게 플 라스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바다 저 편을 향해서 우리는 다시 용기있게 일어나 우리는 비젼의 항해를 시 작할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 다. 이것이야말로 이 파도를 극복 하고 인생의 위대한 새로운 창조 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우리의 신 앙의 고백의 시작입니다. 사랑하시 는 여러분, 이 위대한 고백을 붙 잡으십시요.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왜요? 주 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 배에 주 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주님 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 도로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경험하 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 다. 힘들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은 여기서 끝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재기할 수가 있고 또 우리 는 앞을 향해서 나갈 수가 있습니 다. 만약 이 풍랑이 일고 있는 바 다, 이 작은 배 그 안에 예수님이 타신 것만 볼 수가 있다면, 상상 을 해보세요. 이 시간 여러분 기도 의 깊은 묵상 가운데서 갈릴리 바 다의 작은 일엽편주의 배를 타고있 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보십시요. 당신과 친구들 , 가족들이 함께 당 황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있습 니다.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 한편에, 저 뒷편에 주무시고 있 는 예수님이 보이십니까? 그는 우 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풍랑 속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고 있 습니다. 그분은 조용히 일어나십니 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내가 함께 하고 있지아니하냐? 그는 잠시 후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파도여, 잠잠 할 지어다.' 이 주님만 함께 하신 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주님 붙잡으세 요. 그 주님 의지하세요. 주님! 함 께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도와 주세요. 그 주님만이 내 신앙의 새 로운 재기의 동력이고 내가 바다 저편을 향해서 승리의 항해를 마침 내 이룰 수 있다는 우리의 고백의 근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 함께하시는 주님 붙잡겠사 오니 도와 주시옵소서.
이 말씀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항해가 너무 힘들고, 너무 고달프 고,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되 는 그런 형제와 자매들이 계시죠? 조용히 같이 기도할 때 여러분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세요. 그리고 함께 기도해 보세요. 주님! 여기 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가슴 이 무거운 형제와 자매들이 있습니 다. 그러나 주님 , 이들을 사랑하시 기에 그곁에 다가와 그와 함께 더 불어 있기를 즐겨하시는 주님! 저들이 주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 아닙니 까? 참새 한 마리도 그대로 떨어 지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 셨던 주님, 너희가 참새보다 귀하 다고 말씀하셨던 주님, 저들을 사 랑하신다면 그대로 오래 버려두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곁에 다가와 주시옵소서. 이제 저들의 가슴 속 에 그 고통의 풍랑을 진정시켜 주 시옵소서. 파도와 물결이 잠자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저들의 고통 떠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 으로 모든 고통과 풍랑은 떠날지 어다. 주님 능력으로 임하시사 새로운 용기, 새로운 비젼을 주시 사 일어나 주님 손 붙들고, 하나님, 이 항해를 승리롭게 완수할 수 있 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함께 하시니 일어나겠습니다. 능력의 성령으로 임하여 오시옵소서. 평 화를 주시옵소서. 믿음을 더해 주 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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