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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함 위에 부어지는 부흥! (행 5:12-32) |

by 【고동엽】 2021. 12. 15.

정결함 위에 부어지는 부흥! (행 5:12-32)

 

 

미국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이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을 보고 놀란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 맨 먼저 읽히는 성경이 레위기였다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 이야기나 에덴동산의 이야기, 노아의 홍수이야기, 아니면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부터 읽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신나고 흥미진진하게 성경을 읽겠습니까? 그런데 딱딱하고 재미도 없는 레위기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의 읽지 않는 책을 유대인들은 가장 중요시 여겨서 맨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왜 그럴까요? 레위기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는 한 마디로 도살장입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성전 여기 저기에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짐승들이 죽어 가면서 내는 비명 소리들이 들립니다. 짐승들이 우리 죄를 대신 젊어지고 비참하게 죽어 가는 소리들 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레위기의 핵심 단어는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해야 함을 가장 충격적으로 가르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이, 거룩한 성전에서, 홈이 없는 거룩한 제물을, 거룩하게 바쳐야 한다! 이것이 레위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거룩함을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유대인을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함을 너무나 원하십니다.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신 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당연히 거룩함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죄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가 진정한 예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후 광야 교회가 세워졌을 때도 그리하였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똑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레위기서 10장에 보면 성막이 건립된 직후에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불로 나답과 아비후를 삼켜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첫 전투 여리고 전투에서 대승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히 당부하십니다. 여리고성에 있는 어떤 것도 누구도 가지면 안된다, 다 하나님의 것이니 모아서 불태우기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리고 전투에서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을 숨겼다가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거룩해야 하고, 숨겨진 죄를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때가 되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려는 유혹이 강해집니다. 그래야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살 길은 더욱 정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면 일어날 길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세워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이 어려워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질 때 더욱 정결해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같이 큰 건축비에 대한 재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솔직히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큰 헌금을 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땅 팔았습니다. 집 팔았습니다. 이것이 판 것의 전부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반만이라고 바쳐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십일조, 꼭 정직하게 못해도 일부라도 “이것이 십일조입니다.” 이렇게 바쳐주면 교회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는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헌금 안해도 좋으니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돈을 가지고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기로 작정하시면 하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도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이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할 것이면 헌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거짓말로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숨겨진 죄가 있는데 그 교회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문제가 커 보여도 실제로는 작은 문제가 있고, 실제로는 작아 보여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건축비 상환은 큰 문제처럼 보여도 하나님을 바라보면 작은 문제이고, 하도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거짓말하는 일은 작은 것처럼 보여도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교인이 있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큰 헌금을 한 사람이 헌금을 바치고 그 자리에서 죽어나갔다면 그 교회는 시험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온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직후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했습니다. (11절) 실제로 우리 중에 누가 거짓말 했다가 생명을 잃어버렸다면 우리가 얼마나 긴장하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늘 자신들과 같이 신앙 생활했던 사람이고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을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바나바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서 죽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무엇을 깨달았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막대한 헌금을 드린 자도 성령 하나님을 속이고, 주의 영을 시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부로, 내 마음대로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니구나.”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때 인간의 허영과 거짓과 불순한 동기로 하면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13절에 보면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를 우습게 여기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스도인들 안에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이 참으로 대단한 곳이구나. 함부로 대하거나, 우습게 여겨서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사도들과 교인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겁이 났다는 것입니다. ‘나같이 더러운 사람이 악수해도 될까? 혹시 나도 죽는 것이 아닐까?’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만약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교회에 나온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것과 똑같이 살아서는 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12절에서 말하기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특징이었습니다.
여러분, 정결함이 오면 교회에 기사와 이적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는 조건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정결함입니다. 그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너무 강하게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에 보면 병든 자가 고침을 받기 위하여 교회가 기도할 때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능력은 정결함 위에 나타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고쳐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 자기 죄를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고백할 때 십자가의 약속이 정결함을 주시겠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의인의 기도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기도는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병든 자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는, 거룩하게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를 통해 계속해서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믿고 주께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으로 교회는 시험에 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신령해졌고 더욱 부흥되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진심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저를 정결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를 정결하게 하소서!”

그런데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자 노골적인 핍박도 같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꺼내주었습니다. 감방은 든든하게 잠겨있었고 보초들이 문에서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지만 주의 사자는 감방 문을 열고 사도들을 안전하게 이끌어냈습니다. 교회가 정결함을 얻자 온갖 기적과 간증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감방에서 나온 사도들이 멀리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서 조용히 숨어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성전으로 다시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했고 다시 잡혀왔습니다. 그럴 것이라면 천사들이 왜 감옥에서 꺼내주었나 싶습니다. 어차피 붙잡혀 갈 것인데.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 것은 사도들을 살리시고 편안하게 지내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사역이 중단되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순종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다시 전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붙잡아 온 자들이 두려워 하고 붙잡혀 온 자들이 당당해졌습니다. 정결함이 임하고 주의 권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서움이 없어지게 됩니다. 사도들에게 더 이상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순결한 성도와 교회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상황이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입니다.

매주 목요일 새벽마다 모이는 믿음으로 사는 남자들, 거짓 없는 고백의 시간을 갖습니다. 남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아내 속썩인 것 아이들한테 잘못한 것 직장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 회개하고 손잡고 뜨겁게 기도합니다. 목표는 남자 성도들의 신실함과 상호 신뢰입니다. 이것이 수십억 헌금을 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고 거짓말을 반드시 회개하는 것만 가지고도 교회는 정결함을 지킵니다.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살았습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거짓말하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도 성령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유난히 제 눈에 특히 뜨이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성도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능력이 충만했으면 사람들이 그 그림자라도 잠깐 덮여도 문제가 해결되고 병자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지나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환자를 데리고 길가에 나와서 해가 어느 쪽에 떠있는가. 그러면 그림자가 어느 쪽으로 드리울까? 그리고 그 자리에다가 환자를 누워놓고 베드로가 지나가는 길에 그림자라도 스쳐지나가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 이 말씀이 지금 한국 교회에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그림자 조차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건물을 지으려고 하면 "시끄럽다. 집값 떨어진다. 교통혼잡 일어난다." 하면서 결사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대로 될지어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예배당 그림자가 우리 집에 더 많이 드리우니 전세값이 올라가고, 예배당 그림자가 우리 집에 걸쳐있으니 훨씬 더 옆집보다 집값이 비싸지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도시마다 마을마다 예배당이 안 보이면 죽은 마을 같고, 교회가 없으면 불안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으면 기쁨이 없으니 제발 우리 동네에 교회를 세워달라는 민원과 정부의 협조공문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순결해지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게 될 때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처럼 교회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주위에 좋은 간증을 남기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기독교인들이나 교회를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마저도 자신을 거룩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예배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거룩하신 하나님’ 대신에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같은 표현들을 더 좋아합니다. 거룩이 교회 안에서도 인기가 없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소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라고 불리는 이들이 거룩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공하고 형통하고 평탄함만을 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이와 다른 것은 오직 술을 안마시고 담배 안 피고. 일요일에 교회 다니는 것뿐입니다. 그 외의 보여줄 것은 없습니까? 여러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말 거룩한 사람들이야. 그들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야.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정말 하나 되는 사람들이야. 그들에게는 능력이 있어.” 정결함과 사랑과 능력,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줄 수는 없습니까? 누가 성결하지 않은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귀기울여주지 않는 교회가 어찌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정결함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어떻게 들립니까? 이 말씀이 우리 교인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메시지가 될까? 안타까왔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정말 오늘 말씀을 듣고 “그래, 나는 거룩해야 돼. 하나님, 우리 교회가 거룩한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숨겨진 죄가 없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런 간절한 소원이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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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계십니까?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선생님께는 이런 음식이 좋습니다.” 하고 말하면 그는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음식만 말씀하시네요.” 합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것입니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선생님은 이런 음식을 드십시오.” 라고 말하면 그는 “왜 꼭 제가 싫어하는 것만 먹으라고 그러세요.” 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에 갈 사람은 정결함이 너무너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점점 그렇게 됩니다. 정결함이 중요하지, 거룩한 것이 중요하지.‘ 그러나 지옥에 갈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불의를 자랑합니다. 천국에 갈 자는 선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갈 자는 악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천국이나 지옥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삽니다. 그렇게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어느 한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전 인생을 통하여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교회의 정결함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항상 사탄이 파고듭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부흥을 그냥 내버려두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 사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잘 되는 것같은데, 속으로는 완전히 마귀에게 완전히 빼앗겨 버리고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어떻게 이기고 정결할 수 있습니까? 죄는 저절로 나오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정결하게 우리 자신과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까?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면 됩니다.

구약의 정결법에 따르면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먹으면 부정을 탑니다. 시체는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만지거나 시체가 있는 건물에 있으면 그 사람도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적을 봅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나옵니다. 그 병은 부정한 병입니다. 누구나 그 사람과 접촉하면 그 사람은 부정해 집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과 접촉을 했기 때문에 부정을 타야 합니다. 만약 그 여자가 다른 사람을 만졌다면 그 사람은 부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을 때 예수님이 부정하게 되신 것이 아니고, 부정했던 이 여인이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세상에 부정한 것과 거룩한 것이 만나 둘 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거룩하게 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 26:28)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요일 1:7-9)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 10:10)

오늘 우리는 거짓이 유행하는, 거짓이 편만한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정직해야 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삽니다. 우리 자녀들이 삽니다. 그러러면 우리는 교회를 그저 다녀서는 안됩니다. 거룩한 성도로 서로 세워주기 위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정결함을 지켜주고 정직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참 안타까운 것은 한 사람이라도 거룩함이 중요하다고 정말 생각했다면 그렇게 둘 다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두 사람 중에서 남편이 탐심 때문에 거짓을 계획했다고 합시다. 아내만이라고 정직할 수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내가 “여보, 우리 정직합시다. 이러면 안 되잖아요. 이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지 않아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이라도 정결하게 바로 서있으면 공동체가 정결해지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보, 정직합시다. 여보, 우리 거짓말하지 말아요.”
교회도 교인들 때문에 거짓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인 때문에 없던 죄도 같이 지는 교회여서는 안됩니다. 교우들끼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집사님, 우리 정직합시다. 우리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이 시간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십자가를 붙잡습니다. 제 심령을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 가족을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 이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그래서 이 땅이 이 민족이 정결함을 얻게 해주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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