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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우물을 파라! (행 1:12-14)

by 【고동엽】 2021. 12. 12.

부흥의 우물을 파라! (행 1:12-14)

 

 

저는 오늘 부흥을 위해서 우리가 뜨겁게 기도하자고 하는 호소와 같은 설교를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남아있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큰 부흥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 (요14:12)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부흥, 권능의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교회나 성도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교회나 성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있는지 의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 부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큰 권능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을 받았던 제자들이 그 다음에 어떻게 해서 그런 권능을 받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분문에서 부흥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자들은 어떻게 하였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은 교회가 생기는 과정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고 올라가면 사도행전 1-2장인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 120명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여서 전혀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교회의 산실은 기도였습니다.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중에 성령이 임하시고 그리고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사실 열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지만 자기 생업을 모두 제쳐두고 예수님의 약속만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렸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하루 기도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을 기도해도 삼일이 되어도 아무 일이 없어요. 어지간한 사람은 포기하고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120명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20명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열흘 째 되던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불같은 하나님의 영이 충만히 임하더니 제자들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방언이 터졌습니다.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몰려 들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원리가 우리의 교회 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모든 교회 일은 기도에 전혀 힘쓰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항상 기도하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모든 교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 부흥을 약속해 주셨는데 드러난 부흥이 차이가 있는 것은 기도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흥의 복은 2천여 년 교회 역사 동안 언제나 우리에게 동일하게 효력이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에게 부흥의 약속 위에 우리는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흥의 물줄기가 우리 밑에 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우물을 파기만 하면 강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터져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파지 않으면 물줄기 위에서 목말라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부흥의 우물을 팝니까? 기도로 파는 것입니다.
120문도가 마가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기도에 힘쓰기를 원하십니다. 2천년 교회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도가 준비될 때, 초대 교회와 같은 성령 강림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1700년대 영국에서 있었던 존웨슬리에 의한 부흥도 기도의 결실입니다. 거의 같은 때, 미국 장로교 목사였던 조나단에드워드에 의해 제 1차 영적 대각성운동, 챨스피니를 중심으로 한 제 2차 대각성 운동도 기도로 터진 부흥의 우물입니다.
항상 부흥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의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으면 부흥이 임하였습니다.
지금은 더욱 그러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적으로 부흥을 부어주시는 때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만 바라보면 살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다급하다고 생각해서 지금 내게 주어져 있는 일들에만 온통 마음을 쏟고 살기에 하나님께서 지금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 모르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눈을 들어 전 세계에 일어나는 성령의 파도를 보아야 합니다. 요엘서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하였는데, 지금이 그 때입니다.
지난 100년 간 기독교 역사 이래로 가장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이 마가 다락방에 부어진 이후 지난 1900년간 예수 믿었던 사람보다 최근 100년간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더 많다면 믿어지십니까?
1800년까지 전 세계 기독교인은 99%가 미국인, 유럽인이었습니다. 1900년에도 91%가 미국인,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에는 70%, 1980년에 50%, 1995년에는 28%로 줄었고, 대신 비유럽 사람들이 72%가 되었습니다. 2001년 80% 그리스도인들이 비 서구 지역 사람들입니다. 한 100년 동안 엄청나게 기독교인 분포가 바뀌었습니다. 그 말을 복음이 전 세계 모든 민족에게 급격하게 퍼져가고 있었고 전 세계 모든 지역으로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성경의 예언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지 않습니까?

1970년대 이전 전 세계 공산국가는 복음의 사각 지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구, 중국,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북한까지 엄청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중국 교회 안에는 사도행전에서 일어났던 모든 기사와 이적이 생생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도자들이 중국 마을마다 다니며 전도를 하고 대여섯 명이 전도되면 처소 교회를 세웁니다. 그러나 예배당도 목회자도 성경도 없습니다. 전도자들이 떠나면 대책이 없습니다.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들은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그 5명이 50명이 되고 500명이 되고 5천명이 되고. 향이 전체가 다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선교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40년 전에는 선교사가 와서 선교하던 나라입니다. 제 기억에 아버님이 목회할 때,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아프가니스탄 사태 때 한국 교회는 대단히 어려운 때를 보냈지만, 그 사태를 통해서 전 세계에 한국이 선교대국이라는 사실이 다 알려졌습니다. 지금 한국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나가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대량의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영적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진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하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부흥을 위하여 기도의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성령의 파도가 한국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능력으로 증거되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한국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매우 영적으로 위기에 있습니다. 지금 한국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조롱과 비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받으실지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마귀는 교회 안팍에서 기가막힌 일들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아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상상할 수 없는 조롱과 저주의 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음란한 나라가 되어 있습니다. 임박한 심판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렇게 가면 심판 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권능이 나타나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부흥이 아니면 심판입니다.
지금 한국을 향하여 경고하는 예언의 메시지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문제를 절대로 간단하게 보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한국에 권능과 함께 나타나는 능력의 역사, 부흥을 반드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이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부흥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말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지만, 제 설교가 이러한 예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다면 이 부흥이 저절로 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무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를 기도하는 자리로 몰아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인지 모릅니다. 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당황해 하지도 말고 분주히 돌아다니지도 말고 사람 환경을 원망하지도 말고 기도의 우물을 파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습니다. 그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같고 사회적인 문제같고 가정적인 문제같고 가정적인 문제같고 자녀들의 문제같고 건강의 문제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내모시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자들이 서야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내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혹시 경제적인 위기가 닥쳤거나, 가정에 위기가 왔거나, 건강에 위기가 왔다면 ‘아, 하나님이 나를 기도의 자리로 내모시는구나.’ 깨닫게 되기시를 축복합니다.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사람들을 찾아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환경을 탓하면 진짜 망하는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만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다리고만 있으면 결코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500명이 넘었지만 그들이 모두 성령강림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 120여 명에게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4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은 당시상황으로 보아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없는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처형했던 사람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가급적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야 안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0명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 어머니의 2층집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 사람이어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마다 머물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던 장소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120명이 어느 집에 모였다면 금방 드러나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더라도 다 뿔뿔히 흩어져 있었다면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겠는데, 120여명이 마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신 것은 바로 마가 다락방에 모여 있으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소였습니다. 지금의 교회와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이들만이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부흥을 경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었어도 마가 다락방에 함께 모이지 않았던 이들은 부흥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여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기도하되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과 교회로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은혜를 받겠지만 이 세상을 뒤집는 진정한 부흥의 역사를 위해서는 모여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모이는 일은 그 당시 제자들도 그랬지만, 우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여서 열흘 동안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은 생업을 전폐하고 열흘 동안 기도한 일이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를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틀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흘을 기도해도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 중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120명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비로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나라가 걱정이 되고 한국 교회가 안타까울수록 정말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한국의 영적인 분위기를 바꾸십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제가 설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을 주셨다는 증거가 되기를 원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한국에 부흥을 주십니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그 기도의 우물을 파는 이들을 통하여 부흥이 터져나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흥의 구경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한복판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새벽에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자리에 여러분이 힘을 합하여 모여야 됩니다. 100명이 기도하는 것과 5백명이 기도하는 것과 천명이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기 위하여 부르시는 자리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놓지지 말기를 바랍니다.


금요 성령집회가 매주 열립니다. 직장 ,가게가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분도 많습니다. 빠질 핑계가 좋지 않습니까? 그래도 오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늦은 시간이라도 와서 한 시간이라도 기도하고 갑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도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강하게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떠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하에 튼튼하게 지었으니 망정이지 웬만한 건물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강하게 기도할 자리로 우리 교회를 지으신 모양입니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이 아니면 파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에 “말세에 성령을 만민에게 부으신다.”고 했습니다. 부흥과 심판이 동시에 임합니다.
성도 여러분,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편에 설 것입니까? ‘오늘 목사님 설교는 제 신앙 유형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렇게 마음 문을 닫고 계신 분이 혹 있으시다면, 정말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간절히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부흥도 파멸도 아닌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마지막 때가 될 수록 더 그렇습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옵니다. 여러분은 부흥의 때에 서셔야 됩니다.

1906년 미국 LA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성령 부흥이 미국의 영적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국 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말라 비틀어진 교회가 될 뻔 하였습니다.
유럽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거부하였던 교회입니다. 20세기 초, 웨일즈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통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독일 교회 지도자들은 그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과 관계된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쇠퇴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온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 안에 사탄의 영이 역사할 때 바로 1930년대에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쥐었을 때 독일 교회는 나치의 배후에 적그리스도의 마귀 세력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귀의 세력과 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미국도 그렇게 될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교회는 1900년도 성령의 부흥을 통하여 다시 부흥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흥의 약속을 믿고 기도의 우물을 팠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주사 거리]라는 책을 쓴 프랭크비틀맨은 당시의 일을 기록하면서 나는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으로 부흥을 주시도록 간구하였던 우리 기도가 응답되고 있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LA 아주사 거리에 부흥의 열기가 일어나던 그해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프랭크비틀맨 목사는 이 일을 천국과 지옥이 이 도시에 동시에 임한 것처럼 보였다. 고 했습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임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흥과 심판은 같이 임합니다.
부흥 아니면 심판입니다.


저도 죄의 유혹과 갈등 속에 힘든 내적 싸움을 싸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단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과 심판에 대하여 깨닫고 난 다음 어느 날 새벽 기도회 때 하나님께서 너는 죄와 결별할 마음이 분명한가? 를 물어 오셨습니다. 이제는 붙잡고 있는 유혹의 끈 놓으라! 는 메시지가 너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그런 메시지를 들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젠 무슨 낙으로 사나?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정말 눈이 뜨였습니다. 임박한 심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한가하게 갈등할 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 제가 이제는 죄의 유혹의 끈을 놓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죄와 싸움은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동일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나 죄와 유혹의 끈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이미 몇 주간 동안 다 겪어보셨지 않습니까? 지금 한 순간에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될 때가 올지 모릅니다. 한번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시면 무슨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여러분, 언제까지나 망설이고 주저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동안 하나님 뜻대로 바르게 살지 못했던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단호하게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 제 심령에 우리 가정에 우리 한국에 이 민족에 계획하신 부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권능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하나님, 이 민족을 살려주십시오. 한국 교회를 살려주십시오.”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의 자리로 여러분이 나오셔야 합니다. 이제는 죄와 결별해야 합니다. 마음에 유혹의 끈을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발 아래 부흥의 물줄기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기도로 부흥을 경험한 교회입니다. 초창기 선교사들도 한국 교인들이 기도에서는 그들을 능가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한 선교사가 어느 지방에 갔을 때 새벽에 기도 집회가 있음을 듣고 참석하기 위해서 5시에 나가보니 세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도회는 그가 오기 전에 끝났던 것입니다.
새벽 기도회가 공식적으로 처음 시작된 날의 기록을 보면 새벽 2시부터 400명의 신자가 밖에서 기도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매일 700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시계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런 기도가 있었기에 상상할 수 없는 부흥이 있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한 주의 평양 교회 통계를 보면 그 주에만 평양 시내에서 4천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골 곳곳에도 많은 교회가 생겨났고 심지어는 선교사나 전도자가 방문한 적도 없는 곳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는 고향으로 성경을 가지고 돌아가 그것을 이웃에게 계속하여 읽어주었고 결국 그 마을에서 50명이 넘는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교회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시작이 물 세례라고 추측하고는 각자 집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모여 교회를 설립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일이 지금 다시 이 땅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우물이 터졌습니다. 그 우물들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이었는데, 원수인 블레셋이 메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바로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흥을 갈망하며 기도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다시 이 땅에 부흥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이 지금 우리에게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감리교단이나 나라, 이 민족이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지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애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부어주십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기쁨이 없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불화한 사람은 화목한 사람이 되고, 조급한 사람은 오래 참는 사람이 됩니다. 냉정하고 정이 안 가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충성스런 사람이 되고, 오만불손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도시가 변화되고 나라가 바뀝니다. 과거 유럽이 미개한 야만인 나라라는 말을 들었으나 세계 가장 앞선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된 것처럼 변화됩니다. 처음에 복음이 영국에 전해질 때는 이 민족에게는 도무지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고 하는 보고를 당시 복음 전도자들이 바티칸에 보고서를 썼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바꿉니다.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생각해 보면 걱정 밖에 안되고 통일의 물꼬가 터져도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내십니다. 통일을 위한 권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매일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 한번 교회에 나와 보십시오. ‘이 큰 예배당 언제 채우나?’ 그랬는데 예배당을 완공하고 난 다음부터 이 예배당은 정말 가득 가득 모여서 기도하는 장소로 하나님이 쓰시고 지금도 매일같이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는 예배당이 되었습니다. 어제 토요일 교회에 나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8천 평이 넘는 예배당이 어제는 이 큰 예배당에서도 모임 장소를 구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부흥의 우물을 파는 교회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모이는 속회도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집에서 선교회가 모이고 기도하는 처소가 되어 마가 다락방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유명해지기를 축복합니다.
마가 다락방이 바로 마가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을 가시세요. 우리 집이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우리 집이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 부흥의 우물을 파는 기도 처소로 사용되어서 우리 집에서 모이는 모임 속에서 하나님의 부흥이 임했다고 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유명한 집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교회로 다니는 것에만 만족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를 원합니다.
부흥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은 고기는 막대기로 찔려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산고기는 막대기로 찌르면 살아납니다. 사람이 정말 산 영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던졌을 때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기도에 대해서 강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부흥의 자리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구경하고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이 아니고, 그 부흥을 직접 경험하는 자리에 그 중심에 서기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기도하기에 이미 늦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흥에 제외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에 대한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카메론페리 박사라는 분이 30세에 목사가 되어 60세까지 30년간 목회를 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도하면 고쳐주신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남들이 잠든 시간에 한 시간씩 하나님과 고요한 시간을 갖는 겁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렇게 4년을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쁨이 충만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능력을 받고 두 달 동안 전도한 것이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전도한 30년 보다 더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우리 성찬을 받겠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받으면서 기도의 사명자로 서기를 결단합시다.
“성령의 권능으로 제게 역사해 주시고 우리 가정에 역사해 주시고 한국 교회에 역사해 주시옵소서.” 성찬을 받으면서 꼭 그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 제가 이제는 부흥의 우물을 파는 자가 되겠습니다. ” 하나님 앞에 약속을 드리고 성찬을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오순절에 사도들이 경험했던 그 성령을 오늘 이 시간에 내려주셔서 내 생애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전에 성령을 받았던 사람에게는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능력있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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