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너희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행 1:4-11)

by 【고동엽】 2021. 12. 12.

너희가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행 1:4-11)

 

 


요한복음 강해가 끝나고 하나님의 강한 인도하심으로 오늘부터 사도행전 강해설교로 나아갑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영광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 복음에서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강력하게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강해를 하면서 성령의 놀라운 권능을 우리 모두에게 부어주실 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서 굉장히 마음이 흥분됩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 사람의 감정으로 흥분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과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 온 세상에 나아가 내 증인이 되리라” 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 뒤 큰 권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불과 몇일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흥분해서 씩씩거리던 예루살렘 시민들이 3천명, 5천명씩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빌립보에서처럼 가족들의 회심도 일어났습니다. 개인 회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란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두 주간 동안 다녀올 성지순례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로마에 있는 카타콤. 지하 공동묘지입니다.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피해 집도 버리고, 재산도 포기하고, 공동묘지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주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까지 무려 300년 가까이 지하 공동묘지에서 지낸 것입니다. 거기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기를 몇 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이 지하 동굴에 묻힌 시신만 200만구나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인구가 100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의 시신이 이 카타콤에 묻힌 것입니다.
어떻게 로마 교회 성도들이 300년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카타콤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정말 흥미진진한 성경입니다. 이런 부흥은 지난 2천년 동안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고 믿지만, 성령의 권능은 일부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들으면 “나도 십자가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지만, 성령의 권능에 대하여 들으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성령의 권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성령의 능력을 받는다는 신앙 생활은 내 체질하고 잘 안 맞아!..”하고 별의별 의견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모든 기독교인에게 해당된다면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도 모든 기독교인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일이 사도행전을 같이 읽어내려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지고 계신 계획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신 삶은 권능의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어느 기관에서 불신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았더니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담배 안한다가 첫째이고, 제사를 거부한다, 욕하지 않는다, 예배드린다, 기도한다, 전도한다, 말 잘 듣고 성실하다. 그러나 좀 나약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인 상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은 정말 술 담배 안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그러나 정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수 믿는 사람 모습이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도전적입니다.
거인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들어갔던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모습입니다. 전쟁터로 나가면서 군대 맨 앞에 성가대를 앞장 세워 행진했던 여호사밧 왕의 모습입니다. 도대체 이런 발상을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할 수 없는 위협과 방해 앞에서 한 손에 칼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쟁기를 들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했던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자녀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권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도무지 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잡아 죽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 명을 죽였습니다. 감히 접근하기 힘든 사내였습니다. 언제부터 삼손이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할 때”였습니다. (삿 15:14)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권능을 받고” 온 세상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모두 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약간 과장을 해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편안하게 지낸 이야기는 절대 안합니다.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 표정을 보면 “그때가 좋았어요.”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고생할 때는 방위가 부러웠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전방 부대에서 고생한 사람 앞에서 방위 출신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다 해병대 출신 앞에서는 입을 다뭅니다. 특수부대 출신 앞에서는 모두 조용합니다. 고생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때가 좋았어!” 합니다. 편안하고 쉬고 즐기는 시간을 좋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천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천국에 가서도 이 세상 사는 동안에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은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어주신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뭔가 놀라운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사람은 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러신 분이기시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어떤 역사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밤잠을 자지 못하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만, 뭔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을 이루고 난 다음에 느끼는 희열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편안하고 조용히 살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내고 승리를 노래하고 흥분이 가득한 삶을 살 때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주의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창조 원형을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을 때 그 모습을 예수님의 십자가가 다시 회복시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제가 어려서부터 받은 예수님에 대한 인상은 주변에 아이들을 거느린 조용하고 인자하신 남자였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이 거의 다 그렇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선한목자 교회이지만 항상 예수님은 어린 양 한 마리를 품에 안으시고 많은 양떼를 이끌어가시는 분으로만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다른 인상에 대하여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은 너무 거칠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반드시 죽여야 될만큼 위험한 인물, 그냥 살려두면 너무너무 위험한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빌라도가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를 대적하는 무리에게 위험한 사람이었습니다.
풍랑 위를 걸어보신 예수님, 5천 명이 배고파할 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제자들에게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예수님, 성전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 죽은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로마 병정들에게 “내가 예수다!”하고 당당히 걸어나오신 분이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도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도 어떻게 보면 모험을 즐기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에게 물매만 들려 골리앗에게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에게 사자 굴에 세 친구에게 풀무불에 가게 하셨습니다. 기드온이 군대를 세울 때 모여든 3만2천 명을 300명으로 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어떻게 보면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권능이 없다면 하실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갖고 계신 계획이 이렇게 권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지만 아직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고 권능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오늘 여기에 성령의 권능을 받는 계획에서 애초에 하나님께서 제외시켜 놓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으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권능을 받는 삶을 살게 되는가?
8절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을 단순히 성경 구절로 받지 말고 나에게 주시는 약속 으로 받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이 약속이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할 것이라고 믿지 못합니다. 나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늘 그 믿음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려움이 올 때마다 하늘만 쳐다보면서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예수 믿는데 왜 나는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습니까? 예수님 언제 오십니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목이 빠져라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을 때 천사가 나타나 답답하여 말했습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권능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믿사남 모임에서 한 집사님이 고백하시기를 자신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었지만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는 지난 주간이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을 멸시하고 살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 중 변기수 목사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서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를 말씀하였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 열 명의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있는 온 회중에게 나타나 이들을 지켜주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백성을 가리켜 나를 멸시한 백성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이리라 하셨습니다.
이 집사님에게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았던 것 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셨는데, 안 믿는 것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이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여! 주여!”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세례를 이미 받았거나 받지 않아도 된다면 왜 이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 부분이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24:46-48)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 정도면 예수를 믿어도 너무나 잘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다음 49절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였습니다.
예수를 통해 죄 사함, 천국, 영생을 알게 된 것은 너무도 큰 복이지만 그 다음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을 것을 믿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 전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4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여러분, 마음에 이것이 성령의 권능인가 보다 성령님께서 지금 내게 역사하셨어! 이런 답이 오기 전까지는 이제는 말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여, 성령께서 정말 내게 역사하신다는 증거가 없다면 저는 이제부터 아무 말을 하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명령을 철저히 지키면 반드시 성령의 권능을 힘입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는 말씀이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권능을 받으리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내 증인이 되리라”는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그날로부터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그러기를 열흘이 지나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큰 불덩어리가 각 사람의 심령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그들 입에서는 전에 전혀 알지 못하던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부터 제자들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영국에 유학하던 한 자매에게서 받은 편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자매가 영국에서 유학 중 향수병에 걸려서 집에 돌아오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교회도 오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달려오고 싶었답니다.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살고 있던 집 주인인 영국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미칠 것 같은 마음에 문을 닫아 걸고 소리 소리 질렀답니다. '하나님!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보고 싶고 교회도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요. 나 어떻게 해요. 하나님, 유학이고 장래고 다 포기할 거예요. 나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엉엉 울면서 소리쳐 기도하는데. 그 순간 성령이 임했답니다. 방언이 터지면서 그렇게 애통한 눈물이 나오고 그리고 찬양이 나오더랍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영국이나 한국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 얌전한 자매가 거실에서 찬송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답니다. 그리고는 장장 4장에 걸친 편지를 보내온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여기에서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어요. 이렇게 기쁘고 평안하고 좋을 수가 없어요. 저 이제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되요.
환경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지만 성령의 권능이 임하니까 이기지 못할 시험이 없고 견디지 못할 어려움이 없어진 것입니다.


서울 어느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더니 잘 아는 집사님이 그 부흥회에 오신 것입니다. 직장에서 도무지 더 견딜 수가 없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안되어서 직장을 그만 둘 마음으로 한 주간 휴가를 내고 기도원에 올라간 마음으로 부흥회에 참석하였다는 것입니다. 부흥회 마지막 날, 그 집사님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부흥회 때 은혜 받고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직장으로 돌아가렵니다. 제 직장이 제게 주신 사명지요 직장 동료들은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30분 일찍 출근하여 직장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부터 하겠습니다. 환경과 사람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 집사님에게 성령의 권능이 임한 것입니다. .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마음의 문제, 생활의 문제, 공부 문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제자훈련을 받았어도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했던 제자들이었지만, 성령세례를 받은 후부터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 뒤를 따라다닐 때는 예수님 따로, 제자 따로 있었습니다.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연합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므로 예수님은 밖에 계신 분이 아니라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우리가 세례'받음으로 예수와 함께 연합해서 죽고 예수와 함께 연합해서 다시 사는 자가 된다 고 했습니다. 성령세례로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통하여 예수님과 연합되었음을 계속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나는 하나라고 하는 사실을. 그러므로 성령세례를 받고 난 다음부터 예수님의 역사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복음의 역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이 하시는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 사도행전을 읽어가게 되겠습니다만, 흥미진진합니다. 정말 놀랍고 놀라운 일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이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은 예수님으로 사는 성도들의 사역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를 생생하게 우리가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성령님으로 여러분 안에 와계신 주님을 주목하고 환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무시받고 계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과 어떤 태도로 살고 있습니까? 늘 함께 계신 성령님께 한번 말을 걸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고 살지 는 않으십니까?

아내가 무시하고 바가지를 긁는 집에 어느 남편이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남편이 관심도 사랑도 하지 않는다면 그 아내는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여러분도 별로 환영 받지 않는 모임에는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님을 필요로 하고 사모한다는 것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님 사모합니다. 저는 성령님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저에게 오시기 원합니다. 제 삶을 변화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성령의 권능을 받으리라, 내 증인 되리라, 세상을 변화시키리라 하셨으니 제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증인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십시오. 가족들에게 기쁨과 생명의 열매를 나눠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오십시오. 사모합니다. 초청합니다.” 이렇게 입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들이 보면 조금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성령님을 초청하여야 합니다. 이미 우리 안에 와계신 주님을 기뻐하고 더 의지하고 입으로 감사를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성령님께 계속해서 부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반드시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무너지고 하늘만 쳐다보지 마시고, 이미 여러분 안에 권능의 주체이신 성령님께서 와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성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성찬을 받을 때 여러분은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계획을 믿으십시오. 성찬을 받는 자로서 주님, 제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교회 사명에서나 주의 권능으로 쓰임받기 원합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다같이 하나님께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셔 감사합니다. 이제 성령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매일, 매주, 매달, 사사건건마다, 일을 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성령이여 나를 새롭게 하시고 능력을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을 입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을 만민이 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