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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되어지는 신앙! (마 16:15-16)

by 【고동엽】 2021. 12. 11.

고백되어지는 신앙

 

마 16:15-16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

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다.

 

고백은 참 중요한 수단입니다. 고백은 나를 공개하는 것입니다.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나를 밝히 나타내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고백했을 때 이때부터 나의 숨겨져 있던 마음이 공개되고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없으면 짝사랑입니다. 짝사랑은 슬픈 사랑입니다. 나는 저 사람을 보는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슬픈 사랑입니까. 그래서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끝나는 것이 짝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참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맨 정신으로 못하니까 술을 마시고 가서 사랑을 고백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한술 더 떠서 사랑고백을 대행해 주는 업체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참 세상 재미있습니다. 사랑도 업체에 맡기면 대신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해줘서 받을 거냐 안 받을 거냐 대답을 받아다 주는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세상 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술을 마시고 가서 그 귀한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런 용기 없는 남자의 사랑을 받을 여자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사랑고백은 당당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멋이 있고 남자답습니다. 적어도 그런 남자라야 신뢰가 가고 일생을 맡겨도 좋겠다 하는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은 장점이 참 많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사랑을 해도 뼛속으로 사랑을 합니다. 한국 남자들이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에 단점도 있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누구보다도 가족들을 사랑하기는 하는데 그 사랑이 뼛속에서 멈추어 있을 뿐 밖을 나올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표현이 안 됩니다. 이것이 단점입니다. 도대체가 고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문제가 있습니다.

고백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고백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나의 진심을 상대방에게 전해주고 알려주는 가장 진솔한 전달수단입니다. 이 고백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신앙 생활하는데도 이 세상 만천하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하고 고백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만천하에 “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하고 자신 있게 공개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0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고백하고 공개하면 몇 가지 유익이 생깁니다. 하나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만천하에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공개하면 자신감이 주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스스로 조심하게 됩니다. 책임 있게 행동하게 되고 신앙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로부터 신앙인으로 인정받고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해 버립니다. 그러면 내게서 떨어질 사람은 떨어지고 멀어질 사람 멀어지고 새로 친구가 될 사람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의 생각과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대로 신앙생활이나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백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이 고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주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 물음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아주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 대답이 완벽한 대답이라고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고백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 보면 신앙을 고백하는데 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신앙생활의 요건입니다.

 

하나는 “주”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십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주”라는 말은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시대 때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로마시대 때 당시 노예들이 자기의 주인을 가리켜서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주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우선 주인에게는 당시 노예들의 생명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처분대로 살려주면 살고 죽으라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예는 자식을 낳아도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내 자식을 팔면 짐승의 새끼처럼 팔리고 죽이면 죽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의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주”의 개념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나의 주”라고 고백합니다. 그 말은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 주라는 고백은 당시 노예들처럼 나의 생명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일생을 그에게 맡긴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께 “주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한다면 그때부터 “나의 전 존재,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맡깁니다. 는 뜻입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주님께 맡기고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이라면 그 고백은 참다운 고백일 수 있습니다. 신앙은 그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나면 예수를 위해서 헌신하게 되고 절대 순종하게 됩니다. 신앙에서 순종하는 자세가 거기서 울어 나옵니다. 순종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는 뜻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자 록펠러는 예배 때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예배 시작 40분전에 나와 제일 앞자리를 찾아 앉아 예배드렸다고 합니다. 어느 기자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일찍 나오십니까. - “맨 앞자리를 누가 앉을 까봐 일찍 나옵니다. “맨 앞자리를 앉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 “그것은 나의 어머니의 유언 때문입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임종할 때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은 “너는 예배 때 제일 앞자리에 앉으라. 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록펠러는 예배시작 40분전에 나와서 맨 앞자리를 고수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것을 주님께 대한 순종의 자세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순종부터 할 수 있어야 큰 순종도 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유언도 그런 유언을 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예수를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님으로 고백했으면 나를 그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당연한 자세입니다. 그 자세가 종의 자세입니다. 순종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에서 주님을 나의 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입니다.

 

신앙고백에서 두 번째 고백할 내용은 “주님은 나의 구주시며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고백하기를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여기 “그리스도”라는 말은 “당신은 나의 구세주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구세주”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전수시켜 준분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고백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비로소 가치관이 바뀌고 생각이 변화되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한다면 나의 일생, 나의 가치관, 나의 목적이 그에게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 변화가 중생하는 것이고 성결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요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제부터 나의 삶을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라는 결심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삶 일체가 예수님 중심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자기 판단에 옳은 대로 살아갑니다. 그 삶을 자연인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변화 받은 삶이고 중생한 삶이고 성결한 삶입니다.

스페인 출신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라는 분이 87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골수이식을 하고 방사선 치료를 했습니다. 그 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 과정을 힘겹게 거쳐서 마침내 건강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치료 후 처음 런던 왕립 오페라 극장에 섰을 때 무려 3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무대에 던져진 꽃다발이 무릎까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박수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박수를 받고 그분이 한 말이 참 중요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금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 극장에서 저 극장으로 옮겨 다니며 노래 부르는 일을 그렇게 행복해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일년에 8번씩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서 공연을 다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깨달음입니다. 인간의 변화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나는 엄청난 변화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변화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고백의 힘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때 나는 없어졌고 나의 모든 가치관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 번째 고백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데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은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를 하고 베드로는 일약 수제자로 자리매김 합니다. 그리고 천국의 열쇠를 받습니다. 또 예수님은 베드로를 극구 칭찬하셨습니다. “그 대답은 네가 말한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신 대답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구두시험에서 “만점”을 맞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사람들은 예수를 성자 예수라고 부르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3대 성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아주 유식한 대답인줄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윤리적인 예수로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누구냐” 하고 물으면 “병 고치는 예수”라고 말하고 “먹이시는 예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를 위해서 누가 일생을 헌신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윤리적인 예수를 위해서 누가 순교를 하겠습니까. 예수는 그런 예수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기 때문에 그 예수를 위해서 인생을 내 놓고 목숨을 내놓고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질 때 우리는 이 믿음이 주는 이렇게 강한 힘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거기서 신앙의 힘이 나옵니다. 거기서 내 인생을 맡기게 되는 동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믿음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힘은 이렇게 폭발적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나의 평생을 좌우하십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37년 미국 뉴욕의 할렘 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루터 파월은 자메이카 출생인데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입니다. 이민 와서 아주 힘겹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오늘 현재는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만 미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일깨워 주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이 커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파월이 세례를 받을 때 그에게 세례 준 목사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고 하며 안수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파월은 그 기도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마침내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ROTC를 거쳐서 군인이 됩니다. 그리고 독일과 한국근무를 마치고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을 당합니다. 그리고 걸프전에서 영웅이 된 후에 마침내 오늘 미국의 국무장관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흑인인데 백인사회에서 그렇게 입지를 세워 나가는 동안 얼마나 모함을 받았겠습니까. 마치 바벨론에서 입지를 세워나가는 다니엘처럼 숫한 모함과 질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모함들을 다 이기고 백인들의 경원을 받아가며 국무장관이 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입지를 세웠는가 하고 물으면 그는 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세례를 받을 때 너는 하나남께서 택하신 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자라는 말씀을 늘 가슴에 꿈으로 믿음으로 확신으로 담고 살아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신앙의 고백이 참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이 아니고 나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고 고백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면 이 보다 더 든든한 빽이 없습니다. 이 믿음만 가지고 살아가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의 힘이 되십니다. 나의 배경이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의 소망이 되십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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