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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무늬만 개혁신학 마비된 보수주의

by 【고동엽】 2021. 12. 10.
무늬만 개혁신학 마비된 보수주의




소위 개혁신학을 지향한다는 K신학대학원의 A교수가 같은 학교 동료 교수들에 의해 형사고발을 당했다더니 지난 11월 14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받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징역 6개월’ -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먼 용어이다. 남을 해치는 불량배나 사기꾼이 그런 형을 선고받았다면 그저 그러려니 여기면 된다.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교수는 현직 목사요 목회자를 양육하는 신학대학원의 교수이다. 더구나 스스로 개혁주의 신학을 부르짖으며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가졌다며 자랑하는 K교단에 속한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신학 교수이자 목사인 사람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교단 내에 놀라는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의 중형을 선고받은 지 수 주일이 지났는데도 해당 교단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그가 근무하며 목회자 후보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신학대학원에서는 그런 판국에 화려한 종강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배우던 신학생들은 한 울타리에 있으면서 그 놀라운 사실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나는 C교수가 그런 정도의 중형을 받을 만큼 범죄행위를 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만일 그가 그런 중형을 선고 받아야 한다면 교단과 교단이 운영하는 대학 안에는 그보다 훨씬 무거운 중형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다수 있다. 징역 6개월이 아니라 그 이상의 형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 여전히 목사와 교수로 재직 중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C교수에게 상식을 뛰어 넘은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다. 그는 담당 검사가 3백만 원의 벌금을 구형한 것을 징역 6개월의 중형을 언도했다. ‘벌금 3백만 원과 징역 6개월 형’ - 통상적인 경우 검사가 실증을 근거로 하여 벌금 3백만 원을 구형했다면 판사는 자료들을 살펴 그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담당 판사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중형을 선고한 셈이다. 문제는 아무런 실제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징역 6개월이 선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해서는 판결을 내린 담당 판사 스스로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므로 전언증거와 자신의 심증에 따라 선고한다고 밝힌 것이다. 전언증거와 심증이란 말은 실제적인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사건에 연관된 실제적인 증거가 아니라 정황에 따른 증언자들의 착오와 위증 가능성을 고려하지 편파적 판결이다.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추정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극히 초보적인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 판사가 누구로부터 어떤 정보를 입수했기에 명백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현직 신학 교수인 목사에게 그 정도의 중형을 선고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없다.


만일 잘못된 증언에 의한 오판이라면 범죄혐의를 부인하는데도 중형을 선고받은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산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속 판사의 석연찮은 선고를 보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말 것인가?
나는 C교수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진실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적인 증거가 없고 신학 교수이자 목사인 본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터에 상식을 넘어선 중형이 선고된 것을 보며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개혁주의 신앙과 보수주의 신학을 부르짖는 K교단과 C교수가 몸담고 있는 신학교는 납득할 수 없는 축제를 벌일 것이 아니라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 써야 한다. 이 땅의 교회들을 보면 암담함을 느낀다. 교수들이 동료 교수를 세속 법정에 세워 석연치 않은 징역 6개월을 선고받게 했는데도 아무 것도 아닌 듯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무섭게 느껴진다. 무늬만 개혁주의일 뿐 신학과 신앙이 마비된 현실 가운데서 화려한 축제를 벌이고 있는 자들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광호, 2008.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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