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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로마서 40강

by 【고동엽】 2021. 12. 5.

다시 보는 로마서 40 롬13:11~14 박영선 목사님 롬40강

 

 

 

 

 

▶로마서 13장 11절에서 14절까지 말씀을 봉독해드립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일하시는 그 부대 틀 구조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부분을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 순복하라 하는 것이죠.

 

세상은 다만 권력싸움밖에 어떤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데가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려하시며 복 주려 하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런 역사관과 운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네가 놓여있는 정황과 구조 속에서 네 역할 네 자리를 지키라

 

그래서 국세도 바치고 지방세도 바쳐라.. 하는 데까지 왔지요.

 

 

 

그러한 커다란 구조 틀 부대 같은 것들을

 

제가 다 이렇게 묶어서 컨텍스트라는 말로 지금 쓰고 있습니다.

 

 

 

컨텍스트는, 이것보다는 작게 문맥 정황 등에 쓰이는 단어이지만

 

저희 말을 아직 못 만들어서 적당한 단어를 못 찾아서

 

제가 그렇게 컨텍스트와 텍스트 이렇게 둘로 나눠서 쓰고 있습니다.

 

 

 

컨텍스트를 두려워 말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컨텍스트를 텍스트로 오해하지 말라.. 이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만이 텍스트입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대 사회 조건

 

이런 것들이 다 사실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조건들을

 

예수를 믿고 거룩한 목적을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개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된다.. 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거룩하고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보잘것없는 지위와 무력한 역할을 맡기시는 현실이 이해가 안 되고

 

너무 작다.. 그런 불평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잘 아는 구절이니까 외워보죠.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제자도에 관한 예수님의 유명한 요구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라는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하자면 권력을 가지거나

 

스스로를 증명할 어떤 재주를 가지거나

 

또는 좀 심하게 나가서 배알도 내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부인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하나님이 우리를 컨텍스트 속에 넣어 놓으신다. 입니다. 여기가 어렵죠.

 

 

 

(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으니 중요한 지위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 자신이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잘 아시잖아요.

 

 

 

예수님은 당시대 아무런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앞서 그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입니다.

 

존재도 신분도 아니고 그저 다만 소리입니다. 광야에 외치는 소리.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이 컨텍스트 속에 있습니다.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죽어나갈 것입니다. 죽음의 길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죽어버리면 그만인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컨텍스트 속에서 가지고 있는 지위와 역할입니다.

 

당연히 아멘은 안하시겠죠.

 

 

 

그것을 모르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여러분 모두에게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매주 와서 이것은 억울합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이것을 개선하고 희망의 찬 어떤 답을 얻어가려고 매일 와서

 

매일 그 얼굴로 왔다가 그 얼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도 그 약속을 한 적이 없는데

 

성경에 한 약속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여러분들은 그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안심과 자존심을 채우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는 못 한다.. 그것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러니 우리 잘 아는 시편 90편을 보시면 시편에 있는 유일한 모세의 기도문입니다.

 

이런 기도가 실려 있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 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도대체 무슨, 무슨 기도 무슨 고백 무슨 탄식일까요.

 

모세는 120살을 삽니다. 40년은 바로의 궁에서 길러지고

 

그 다음 40년은 도망간 미디안 광야에서 그저 세월을 보내고

 

그저 그렇게 한 줌 재로 늙어가지요.

 

 

 

80살에 부름을 받습니다. 그 40년 동안 잘 아시는 대로

 

바로 앞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며 반석에서 물을 내며

 

하나님이 붙드시는 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호렙 산에서 율법을 받고

 

그리고 저들의 불순종으로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며 다 죽습니다.

 

 

 

그 배경을 가진 지도자. 얼마나 인생은 짧습니까. 얼마나 인생은 못났습니까.

 

우리의 죄가 주 앞에 있고 주의 분노에 일식 간에 다 죽어버리는

 

참으로 헛된 못난 인생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문은 그렇게 읽고 듣는 것같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 못난 것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베푸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내셨습니다.

 

 

 

호렙에서 만나셨고

 

만나를 먹여 이 40년 동안 내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고

 

내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다.. 그것도 보이셨습니다. 그런 기도이지요.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저들의 실패는 다만 실패일까요.

 

저들의 못난 것은 다만 못난 것일까요.

 

 

 

거기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못난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능력으로 그들의 생애를 모든 인류에게

 

모든 후손들에게 유익으로 남기고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둥실 솟아나는 하나님의 자기 본무는

 

이 못난 것 속에서 얼마나 크던가요.

 

 

 

우리의 죽어가는 인생과 우리의 못나고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인생 속에

 

하나님이 본문을 담으시겠답니다.

 

 

 

세상은 본문을 못 담죠. 마치 담아 보이죠.

 

문학을 보면 거기, 거기 곤혹이 있고 도전이 있고 절망이 있고 사색이 있고

 

감동이 있고 무슨 깊고 깊은 무엇이 있습니다.

 

 

 

예수를 보아도 그렇고 철학을 보아도

 

깊은 인간의 고뇌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어떤 그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본문이 없습니다. 왜요? 본문이란 죽음을 극복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 다 굴복할 수밖에 없으면 무슨 사치를 하던 무슨 깊이를 가지던 그것은

 

그저, 그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만 본문을 가지며, 부활을 용서를 회복을 승리를 영광을 영생을 잇게 하죠.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 인생 속에 담으시겠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자꾸 컨텍스트(자기 환경) 싸움을 하지요.

 

 

 

▶이사야 53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죠.

 

메시아는 이렇게 임할 것이다.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워서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입니다. 예수 안에 하나님이 무엇을 담았죠?

 

세상 죄를 씻으시며 죽음으로 끝날 인생을 부활로 승리케 하시며

 

하나님을 떠난 폐허된 인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찾아 오사 우리와 화목하심이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며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됩니다. 예수가 그것을 만드십니다.

 

그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그 길을 걸어야 됩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걸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이 세상 이 세상의 조건 현실 구조 틀 배경 무대 속에 여러분을 넣어놓으셨습니다.

 

여러분만이 본문을 담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가서 가만히 계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진 지위와 역할을 감수하십시오.

 

 

 

▶빌립보서 3장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어떤 성취가 없습니다. 벽돌을 쌓고, 쌓고, 쌓고 해서 성취한 업적이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살라고 합니다.

 

 

 

‘나는 뒤에 것은 모른다. 나는 오늘을 산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오늘 내가 살아있음으로

 

하나님이 오늘이라는 컨텍스트 속에 본문을 담으려 하신다.

 

그렇게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내 삶이 돌아보아야 무슨 가치가 있는가 어디까지 왔는가.

 

그런 것은 나는 모른다. 하나님이 나보고 하루 살라고 했다.

 

그 하루는 어떤 하루죠. 여러분 평생 겪으신 그 하루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하루고 벼락이 치는 하루고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자기의 존재감이 가장 거부당하기도 하는 그 날 말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본문을 담으시겠답니다.

 

 

 

그렇게 본인을 이해하고 하루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같이 오직 보이는 것으로 의미와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다만 종교라는 이름으로 떼쓰는 사람이 불과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 같이 뭐라고 되어있었죠? 잠자지 말고 깨어있어라.

 

술 취하고 방탕하지 말아라가 나옵니다.

 

 

 

이 본문을 좀 더 확대한 것이 에베소서 5장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어둠이란 뭐에요. 갈 바를 알 수 없는 것이죠. 빛이란 뭐에요. 보인다는 것이죠.

 

뭐가 보여요? 여러분 인생이 존재가 무엇인지 보이는 거죠. 뭘 할 수 있다고요?

 

세상의 도전과 시험 앞에서 텍스트를 담아낼 수 있다고요.

 

 

 

컨텍스트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요.

 

지위를 가져야하고/ 권력을 가져야하고/ 능력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신다.’를 아는 자의 인내와 성실과 겸손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자의 믿음이 비전에는 깊이가 있을 것입니다.

 

 

 

▶매일 시험을 봤지요. 너는 무엇이냐 왜 그렇게 사냐.

 

매일 현실이 우리를 와서 도전할 것입니다.

 

 

 

네가 열심히 예수 믿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너를 알아 주냐고.. 계속 시험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무슨 효과가 있냐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억울하면 나갔다가 나중에 오십시오.

 

예수를 믿는 것을 스스로가 납득하여 그 인생을 살 자신이 없거든

 

그러니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늘어놓는 지금 그 기도 말고

 

컨텍스트를 완화시켜달라는 기도 말고

 

내가 텍스트를 담아내는 존재라는 그것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15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너희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매일 매일 여러분의 삶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를 하시는 겁니다. 아직 안보이죠.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어리석은 자란 뭐에요.

 

자기역할 모르는 거죠. 자기 역할 모르는 것이에요.

 

 

 

이주일 씨는 예전에 유명했던 코미디언입니다.

 

못생겨서 써주지를 않아서 유랑극단 쫓아다니고

 

어쨌든 연예계에 데뷔를 하고 싶었는데

 

하춘화 씨 공연하던 공연장에 불이 났을 때 하춘화 씨를 구한 업고나온 덕으로

 

하춘화 씨가 밀어줘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단역을 맡게 되었죠. 어떤 환자가 죽게 되었는데

 

의사 가운을 입고 들어가서 눈을 까뒤집어보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한 마디 대사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일주일 내내 대사를 외우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되어 자기 순서가 되어서,

 

(환자의 눈을 살펴야 되는데, 너무 긴장해서) 자기 눈 까서 뒤집고 “운명하셨습니다.”

 

이러고 돌아와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죠.

 

 

 

왜 자기 눈을 깠을까요? 연습을 했으니까요.

 

환자가 어디 있어요? 자기 연습을 혼자 했으니까, 자기 눈을 깠죠.

 

그러니 나가서도 그랬죠. 그래가지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이주일 씨가, 그 시대에 우리에게 줬던 위로는 꽤 대단했습니다.

 

그가 그런 조건 속에서,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사실에

 

많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못생겨서 당하고 아무 연고도 없고 낙이 없다가

 

그렇게 대중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졌는데

 

그 유명한 것으로 잘못하지 않고, 본인의 못난 것을

 

그렇게 함께 은혜로 나눴던 흔치 않는 위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상을 받거나 확인하도록 보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얼마나 어려울까요.

 

 

 

그러나 만일 그것이 어렵고 그것을 뚫어낼 그것을 극복할 예수 믿는다는 말을

 

그것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기서와 같이 18절 유명하죠.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다. 는 무슨 이야기라고요?

 

생각 없이 넘어가지는 것이죠. 세월을 떠내려 보내는 것입니다.

 

 

 

술 먹는 것이 왜 방탕하냐. 술을 먹으면 깨어있을 수 없습니다.

 

의식이 책임이 자기 역할이 시간이 마구, 마구 지나가죠.

 

 

 

여러분의 인생을 마구, 마구 지나보내고

 

넋두리하고 분해하는 것으로 소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작음과 억울함을 그것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은

 

가장 큰 지위를 가지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고뇌와 같습니다.

 

 

 

한 인간의 가치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고

 

그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국가나 사회나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큽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인격자시고

 

우리가 하나님 없이 가져다붙이는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붙였던

 

어떤 덕목들과 이상들도 애국이나 인류애나 무슨 희생이나 무슨 유익이나

 

이런 것들은 무 인격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해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다만 척하고 다만 순진하고 다만 겸손하고

 

보다 큰 하나님의 일하심을 담아낸 인격이 되는

 

여러분이 당한 현실을 인격이 감수해내는 울고 한숨 쉬며

 

그러나 도망가지 않는.. 그래서 하나님여러분을 통하여 기적을 이루십니다.

 

 

 

그 인생을 스스로에게 확인하십시오. 그 기적을 이루십시오.

 

어떤 조건 어떤 시대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기적을 만나십시오.

 

성경에서만 보는 기적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서 보는 기적을

 

여러분의 생애에서 주인공이 되시고 그 주인공이 되는 그 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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