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을 지키는 5대 관문 잠언 4:20-27 출처보기
▲요새 개혁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개혁은 자기 개혁입니다.
요새 여러 관리가 중시되지만 가장 중요한 관리는 자기관리입니다.
자기 은혜와 자기 사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명에 눈을 뜰 때 위대해집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준비된 길이고
지금 섬기는 교회와 교우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사명 때문입니다.
삶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만남을 이미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힘과 비전과 도전을 받고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목회자에게 성자의 모습이 나타나거나, 목회자가 말씀을 잘 전하면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요새 성도들은 지어진 큰 교회, 주차장과 공동묘지가 있는 교회 등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관리, 교회경영, 교회성장 같은 새로운 분야가 생겨났고, 교회성장 세미나도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외형과 시스템은 발달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공허해졌습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인생을 지키는 5대 관문>
◑1. 귀
본문 잠4: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의해서 듣고, 잘못된 말은 듣지 마십시오.
귀신은 귀를 통해 잘 들어옵니다. 귀에 들리는 소리가 귀신이 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혹되지 않으려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지 말고, 들어야 할 것은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마음을 미혹하려는 숨은 적들의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그런 소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바른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명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양식도 잘 먹지 않고 사명을 이행하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요새 각 교회생활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많지만,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영혼의 양식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실 모든 예배와 집회는 ‘말씀을 듣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듣지는 않고 말만 많아도 안 되고 남이 말할 때, 무시하거나 딴 짓을 하거나 한눈을 팔아도 안 됩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말이 남에게 들려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기도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는 것보다, 말을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 눈
본문 21-2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말씀을 눈으로 많이 읽고, 그 읽은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지키면
믿음과 평안과 생명력이 넘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육체의 건강으로 연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치유의 은혜를 입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보통 병들었으면, 기도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환우는, 신령한 사람이나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소문난 사람으로부터 안수를 받으면
치유가 최고로 일어나는 줄 압니다. 그러다가 미혹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본문은 병의 면역력을 높이고 치유의 은혜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말씀을 읽고 지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말씀을 읽으면 거룩한 지혜가 생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보호도 따르고, 생명력도 넘치게 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이 말씀은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 사물과 상황을 바르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이단에게 빠지지 않고, 극단주의 extreme 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둘째, 꿈과 비전과 목적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매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부정적인 상황도 긍정적으로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가족과 친구와 동지도 긍정적으로 보십시오.
누군가를 멋지게 보면, 정말 그런 존재가 됩니다.
반면에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의심이 그렇다고 합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하나에서 열 가지가 다 의심스러워 진다고 합니다.
결국 상대방을 잘못 보게 되면, 그 피해는, 자신도 당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잘 보지 못하면..
똑똑한 것이 잘난 체하는 것으로 보이고, 겸손한 것이 소극적인 것으로 보이고,
활기찬 것이 까부는 것으로 보이고, 잘 웃는 것이 실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쁘게 보면, 그렇게 보는 자신부터 나빠지지만
좋게 보면, 그렇게 보는 자신부터 좋아집니다.
▲때로는 눈을 뜨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눈을 감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특히 남의 허물에 대해 눈을 잘 감아주십시오.
눈을 감고 기도하면 오히려 영안이 열립니다.
엘리사의 종은, 도단 성을 에워싼 아람 군대를 보고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엘리사는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고 태연했습니다.
보이는 현실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현실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선한 작업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 음지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3. 입
본문 잠4: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이 구절에서 ‘구부러진 말’은 ‘진리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을 뜻하고
‘비뚤어진 말’은 ‘불순종하고 반대하고 냉소하는 말’을 뜻합니다.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입을 잘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입에서 잘못된 말이 나오려고 하면 즉시 “아차! 내 죄와 허물을 잊고 있었구나!”라고 고백하며
자기 입술을 힘써 지키십시오.
▲말은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가십, 비방, 뒷담화 등으로 남에게 잘못된 말을 하면, 오히려 자신의 미래가 파멸됩니다.
인터넷 댓글도 마치 상대가 내 앞에 있다고 여기고 신중하게 달아야 합니다.
누가 내 댓글을 보겠는가 하고 익명으로 마구 내지르면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은 다 보시고 그 말한 대로 갚으십니다.
결국 말로 남을 찌르는 것은 자기를 찌르는 셈이 됩니다.
남에게 말로 상처와 해를 끼치면, 그 말이 자기에게 더 큰 상처와 해로 돌아옵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입술을 잘 조절해서, 악한 말을 금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하십시오.
온순한 혀는 생명과 희망을 낳지만, 패역한 혀는 패배와 절망을 낳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정죄와 비난의 말을 하면 자신도 정죄와 비난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남에 대해 말할 때는, 늘 여백과 여지를 남겨두고, 온유하게 말하려고 하십시오.
▲장단점과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것 때문에, 남을 쉽게 정죄하고 비판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다르게 창조했습니다. 자기 장점을 가지고 남의 단점을 경멸하고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은혜로, 그 장점이 있게 되었음을 생각하고, 단점을 가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존중하십시오.
성도는 남을 비웃고 욕하고 정죄하면서 의인인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인척 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의하게 말로 승부하려고 하지 말고, 정당하게 삶으로 승부하려고 하십시오.
말로 이기려는 문화는 후진문화이고, 삶으로 앞서려는 문화는 선진문화입니다.
◑4. 발
본문 26-2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 “네 갈 길을 신중하게 닦으라.”는 뜻이고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는 .. “신중하게 어떤 길을 결정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그 길로 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합니다. 무엇이 악입니까?
본문 27절 말씀을 보면, 잠언 기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을 악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이 힘들거나 지루하면 사람들은 보통 자극을 찾습니다. 그때 발이 극단주의로 향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지나쳐서 좋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합니다.
좋은 것도 지나치면 안 됩니다.
전도할 때 도식적인 말은 사실상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때는 예수님 외에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 외에 어떤 사람도 필요 없고, 성경 외에 어떤 책도 필요 없다고 극단적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그것은 또 다른 교만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협력도 받아야 하고, 다른 경건서적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특히 이원론에 빠지지 않게 발걸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내세워 가정이나 일터를 경시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가정과 일터에서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영성과 도덕은 서로 배타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과 윤리를 영성이 부족한 인간적인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이원론 이단자들의 속임수입니다.
경건한 삶이란 기도하고 금식하는 삶만이 아니라, 성도다운 교양과 품위가 있는 삶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질서와 약속도 잘 지키고
이웃을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삶도 성령 충만한 삶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교인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예배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삶의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와 고집과 성급함으로 욕을 먹으면, 그것은 참된 영성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기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더 나아가 기도한 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가장 좋습니다.
전도하는 발걸음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바른 길을 따라 가는 발걸음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5. 마음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기자는 귀와 눈과 입과 발도 잘 지켜야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잘 지켜야 할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기 때문입니다.
즉 죽고 사는 일이 마음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행복도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무서운 것입니다. 마음은 인생을 지키는 핵심 관문입니다.
거대한 배나 잠수함이나 항공기에서, 작은 조종실에 이상이 생기면 큰 사고가 생깁니다.
마음은 인생의 조종실과 같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인생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굳건하면 어떤 거친 환경도 이겨낼 수 있고
고통과 시련을 오히려 성숙과 축복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참된 생명력과 영성도 마음을 지킬 때 나타납니다.
<그러면 마음을 지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첫째, 욕심을 극복하라는 말입니다.
왜 인생이 무너집니까? 가장 큰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속이는 것도 욕심 때문이고 잘 속는 것도 욕심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왜 사람이 속습니까?
속이는 사람이 철저히 속여서 속기도 하고 부주의 때문에 속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 안에 욕심이란 공범이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사기를 치게도 하고, 사기를 당하게도 합니다.
욕심을 가지고 많은 것을 탐내면 결국 많은 것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나눔으로 욕심을 계속 덜어내는 삶을 통해, 욕심을 거룩한 욕심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 매달 정기구독 권수가 5000권을 넘어섰습니다.
큐티나 가정예배 교재로 쓰는 교회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1권에 1000원씩 공급하는 이 사역이 지속되는 것이 저희도 신기합니다.
매달 어디선가 신기하게 배달되는 예기치 못한 은밀한 헌신의 손길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월새기'를 계속 읽다 보면 욕심이 없어지는 것을 느껴요.
읽을 때마다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져요.” 그렇습니다. 행복은 욕심을 극복할 때 주어집니다.
▲둘째,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감사와 행복을 부르지만, 부정적인 마음은 불평과 불행을 부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범한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감사하고, 시련 중에서도 감사하십시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체질화시키십시오.
문제를 당하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소서!
이 문제가 잘 해결되게 하소서!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죽게 되면 죽고 잃게 되면 잃겠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처럼 감사와 겸손이 넘치는 기도로 마음을 잘 지키면, 그의 앞날은 반드시 찬란하고 복된 앞날이 될 것입니다.
▲셋째, 마음속에 있는 거룩한 소원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소원은 언젠가 이뤄집니다.
존 윌리엄스의 청년들을 위한 거룩한 소원이 YMCA를 생겨나게 했습니다.
앙리 뒤낭의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거룩한 소원이, 국제 적십자사를 생겨나게 했습니다.
심슨 목사님의 참된 선교사역을 위한 거룩한 소원이, 기독교선교연맹(C&MA)을 생겨나게 했습니다.
그처럼 교회부흥을 위한 소원, 선교사를 힘써 돕겠다는 소원,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많이 돕겠다는 거룩한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그 소원이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 대규모 살육과 전쟁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살육과 전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 비극이 생깁니까? 깊이 원인을 파헤쳐보면 결국 빈곤문제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또한 미래에 있을 자원과 식량 부족에 대한 공포감도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제품의 발명도 중요하지만
자원과 식량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기술 개발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지구촌의 긴장완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후대들은 그런 기술들을 개발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하는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도 잘해야 합니다.
이 땅의 압도적인 평화와 다수의 행복은, 주님이 오셔야만 해결될 것이라고 너무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주님 오시면 온전한 평화가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비전을 가지고
“내가 지구촌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할까?”를 생각하며 자기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잘 준비함으로써
평화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불씨와 불쏘시개 역할도 잘해야 합니다.
앞으로 천국 갈 때까지 조금 더 평화의 터전을 놓고,
평화의 기운을 지구촌에 선사하고 가겠다는 비전은 잃지 마십시오.
나이가 많다고 해서 꿈과 비전까지 약화되면 안 됩니다.
육신이 약해져서 육신적인 일을 못하면 기도하는 일에 나서면 됩니다.
육신이 연약해졌기에 더 간절하게 기도하면, 기도의 능력은 더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우리 교회에서 지구촌에 큰 기여를 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 인물이 나오게 하소서!
제가 천국에 가기 전에 그 일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가게 하소서!”
꿈과 비전은 천국에 갈 때까지 뚜렷해야 합니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마음과 생각을 잘 지키십시오.
거울을 보고 “나도 많이 늙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우울해지면서 더 늙습니다.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면, 환경은 더 힘들게 느껴지고, 상처도 더 크게 느껴지고
그 전에 받은 은혜까지 다 쏟게 됩니다. 육신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게 하십시오.
삶의 전쟁에서는 혹시 패배해도 마음의 전쟁에서는 결코 패배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반역자는 ‘자기’이고 가장 험한 장애물은 ‘자기’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자기 마음에 어둠과 슬픔과 허무가 깃들지 않게 하십시오.
인생은 어차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성도의 복된 길을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만 무너지지 않고, 자기가 가진 꿈과 비전만 무너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멋지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정원을 가시밭이 아닌
백합화 향기가 나는 밭으로 만들어서, 인생을 잘 지키고 승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건을 통하여 흐르는 네 가지! (신 7:24-25) (0) | 2021.12.02 |
---|---|
풍성히 나눠주는 은혜를 구하라 고후8:1~11 (0) | 2021.12.02 |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 (로마서 10장 9-10절) (0) | 2021.12.02 |
인생의 의문을 극복하는 믿음 욥19:25~27 (0) | 2021.12.02 |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빌 3: 12~16) / 임영수 목사 (0) | 2021.1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