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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절제의 열매/고전 9:24-27

by 【고동엽】 2021. 12. 1.

절제의 열매

고전 9:24-27

미국의 농구 코치 가운데 커튼 피시 먼스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조금 유명하게 이유는 이 사람이 인도하는 농구팀이 항상 꼴 등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데 놀라운 사실은 구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코치를 해직하지 아니 하고 그대로 썼다는 사실입니다. 거 의 하위권에서 맴돌고 꼴등하는 것 이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이 커튼 피시먼스라는 코치가 자기팀도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그러기위해서는 심리적 전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심 리적 설득을 자기 선수들을 데리고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 러분! 우리팀이 게임에 나갈 때 마 다 항상 지는 팀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가지 마십시다. 이번 게임만 은 여러분이 나가실 때 이런 생각을 하고 나가세요. 우리는 항상 이겨왔 던 팀이다. 그래서 이긴 척 하고 나 가십시오. 영어로 pretend라는 말이 죠. Just pretend 그냥 한번 계속 이 겨왔던 팀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나 가십시오. 이긴척하고 나가십시오. 그리고 이번 게임이 평범한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이겨서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에 최후에 마지막 결 정전 게임까지 올라왔다. 올라온 척 하고 그렇게 pretend하고 여러분 한 번 나가십시오. 그렇게 해야 자신감 self confidence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졌어 요. 코치가 화가 났습니다. 막 화가 나서
"아니 여러분, 내 말을 뭐로 들으셨습니까? 내가 그렇게 호소하 지 않았습니까?"
이런 코치를 한 선 수가 가만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 더래요.
"코치님, 그냥 우리가 이번 게임도 이긴척 하세요. 그냥. 이긴 척"
이 에피소드의 교훈은 우리가 경 기의 승리를 위해서는 심리적 전술 이 필요할 지 모르지만 승리라는 것 은 심리적 전술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실력이 있어야 죠. 실력이 없으면 이길 수 없습니 다. 그리고, 실력이라는 것은 훈련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훈련이 라는 이 단어를 성경에서는 독특한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 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훈련이야 말로 승리와 패배를 결정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겠 습니까? 이 절제라는 말은 본래 희 랍어의 '애크 크라테이아'라는 단어 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크라토스라 는 단어로부터 나온 말인데, 이는 우리가 가진 모든 종류의 욕망을 훈 련을 목적으로 자제한다는 그런 의 미를 가지고 있는 뜻입니다. 영어로 이 단어를 번역할 때 self-control 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성 령의 열매를 말할 때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그리 고 마지막 열매가 뭐예요? 절제의 열매입니다.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마지막 열매 이니까 우리는 생각하기를 제일 중 요하지 않은 열매라는 인상을 가질 지 모르겠어요. 바울이 강조할 때 아마 제일 중요한 의도로 강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절제없이는 다른 선행하는 모든 인 격적인 열매들이 맺어지지 않아요. 그만큼 절제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한해가 다 지 나가고 있습니다. 올 한해가 처음 시작할 때, 금년에 올 초에 우리 마 음속에 나름대로 금년 한해를 향한 우리들의 꿈이 있었습니다. 목표가 있었습니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비 젼이 있었습니다. 그 꿈과 목표가 얼마큼 이루어 지셨습니까? 얼마큼 우리들의 꿈과 목표가 이루어 질수 있었느냐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했느 냐 이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 나 control 하고 우리 자신을 얼마 나 잘 훈련했느냐 저는 거기에 달려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절제라는 것은 우리가 절제합시다라 는 절제의 결심, 결단만으로 가능하 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절제할 수 있는 어떤 동기가 부여되 어야 합니다. 어떤 동기부여적 삶의 열망이 필요합니다. 절제하기 위해 서는 어떤 삶을 열망해야 하느냐 이 것이 제가 묻고 싶은 중요한 질문입 니다. 절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 떤 삶을 열망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본문에서 찾 아볼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쓰임받는 삶을 열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쓰임받는 삶을 열망하게 된다면 절제하게 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에 위 치하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속에서 바울 은 인생을 게임에 비유합니다. 혹은 신앙생활을 게임에, 경주에 비유하 고 있습니다. 인생은, 신앙생활은 일 종의 게임입니다. 당시에 아테네에 서는 이미 올림픽 비슷한 게임들이 이루어져 있었고, 당시에 고린도에 서는 소위 이투미안이라는 체전이 매년 고린도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이런 게임의 룰이라 든지 규칙, 문화에 대해 매우 익숙 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사 람들은 이 게임에 선수로 출전하는 자체를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습니 다. 최대의 명예, 인생을 살면서 명 예는 이투미안이라는 게임에 선수로 한번 나가보는 것이다. 그것을 명예 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최대의 불 명예는 뭐냐면 이 게임에 선수로 뛰 던 선수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실격 당해서 선수로써 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의 불명예로 생각했습니 다. 이런 배경속에서 문화적 습관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을 다시 읽어보 십시오. 바울은 틀림없이 이런 문화 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오늘의 본 문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특별히 마지막 절을 읽어 보시 면 다같이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 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 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 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이 버림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뭐냐? 신학자들이 여러 가지 토론을 합니 다. 혹시 바울이 다시 구원을 잃어 버릴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 아니겠 느냐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서 학 자들은 그런 의미는 아니고, 이것은 바울이 현재 주님께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고 있는데 이방인의 사도 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쓰임을 받고 있는데 내가 어느 한순간 자격을 상 실하고 주님이 나를 더 이상 쓰시지 않는다는 그런 사태는 일어날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버림이라는 단어를 어떤 성경번 역에는 disqualify 라는 단어를 사용 해서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실격했 다. 자격을 상실했다. 자격을 상실하 게 될까봐 바울이 두려워했다. 지금 은 나를 쓰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 안되겠 다. 내가 너희를 더 이상 쓸수가 없 다. 뭐 그 사람을 다시 지옥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더 이상 주님 에 의해서 쓰임을 받지 못한다 이것 은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이 겠습 니까? 1988년 그리 오래전 일이 아 니죠. 불과 12년 전인가요? 9월 27 일 월요일 아침 캐나다의 CBC 아 침뉴스에서
"오늘은 우리 캐나다의 국가적 수치의 날입니다."라는 아나 운서의 멘트로 뉴스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캐나다의 국가적 영웅, 세계적인 육상선수, 세계에서 가장 빨리 뛰는 선수를 보유하고 있 다고 자랑스러워 했던 캐나다 국민 의 hero, 영웅이었던 벤 존슨이 약 물복용으로 선수의 자격을 박탈당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기 록은 깨끗이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약물복용을 했습니다. 기자가 인터 뷰를 했습니다. 벤존슨에게 왜 약물 을 복용했냐고... 솔직히 저는 그 동 안 훈련을 게을리 해 왔습니다. 의 욕이 없었습니다. 캠피언의 명예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할수없이 저는 약물을 복용했습니다. 그렇습 니다. 그에게 의욕이 상실되었을 때 더 이상 그는 훈련을 기피하게 되었 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계속 쓰임을 받고 싶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정말 열망한다면 우리는 훈 련을 기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또 기피해서도 안되겠죠? 그래서 바울 은 오늘 이 마지막 절을 다시 읽어 보시면요. 바울이 자신의 결심을 단 호한 결단을 말합니다. 내가 내 몸 을 쳐서 복종시킨다. 내 몸을 쳐서 내가 복종시킨다. 그 이유는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가 다시는 쓸 모없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기 때 문이다. 나는 계속 쓰임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훈련한다. 절제한다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요한복음 15장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 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 니다. 사실은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그 이유가 있는데 너희로 항상 과실을 맺는 삶을 내가 보고 싶어한다. 과실을 맺는 삶, 열매를 맺는 삶, 다시말하면 이것은 유용한 삶, 쓰임을 받는 삶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써 주실려고, 사용 하실려고 부르셨단 말입니다. 선택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쓰임을 받으 려고 한다면, 내 은사가 많든 적든, 달란트가 크든 적든, 내 모습 그대 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 들림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 여,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 가 유용하게 쓰임을 받는 인생을 살 려면 무엇보다 절제가 필요하다라는 사실입니다.
거꾸로 우리가 절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쓰임받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끝까지 쓰임받고 싶어요. 이 모습 그대로 쓰임받고 싶어요. 유명해지진 않아도 좋아요. 그러나 쓰임받는 인생 살고 싶습니 다. 이 쓰임받는 삶을 열망하는 사 람마다 절제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새천년에 쓰임받는 삶을 열망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시길 바 랍니다. 쓰임받는 삶을. 아멘하는 사 람만 쓰임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 아멘- (그러니까 다 아멘 하네요)
우리가 절제있는 삶을 살려면 두 번째로 목표있는 삶을 열망해야 합 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아마도 두가지의 게임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요. 자, 24절에 보시면
"운 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달음 질, 육상의 race를 생각했겠죠. 또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 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또 달음질이 나와요. 그 다음에 싸우기 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고 이 것은 무슨 게임을 연상했을까요? 허 공을 치지 않는다. 아마도 복싱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권투경기를 연 상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어 집니 다. 자, 여러분 이런 광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육상게임이 시작됩니다. start line에 서서 출발신호와 함께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한 선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골 라인, 결승 라인은 저쪽에 있는데 결승라인과 정 반대 방향으로 죽어라고 사력을 다해서 열심히 뛰어요. 무서운 속도 로 스피드로 뛰었어요. 반대방향으 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력을 다 해도 땀을 흘려도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거죠. 이따금씩 사각의 링에 오 른 복서가 열심히는 해요. 열심히 하면서 땀을 흘리면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는데 그냥 허공을 향해서 휘 둘러요. 그는 결코 승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종종 우리 가운데는 열심 은 있는데 목표를 잃어 버린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표 없는 열심, 목표없는 최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게임은 패배일 수 밖에 없습 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가 정 말 왜 우리가 제대로 자기 인생을 훈련하지 않습니까? 목표가 없기 때 문입니다. 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면,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에 준 한 진정한 훈련이 이루어져 갈수가 있을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절제된 삶을 훈련된 삶을 추구할수 있으리라 생각이 되 어 집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사람 가운데 린든 비 존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탐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몸무게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미세스 존슨 여사가 first lady가 남편에게 경고도 했겠고, 호 소도 했겠고, 애걸도 했겠죠. 하지만 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몸무 게가 불어 났어요. 그러니까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던지 남편에 게 어느날 이런 자극적인 말을 했다 고 합니다. 한국에는 그 말이 있는 데 미국의 영어에는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말이 자극적으로 들렸다고 해요. 뭐라고 했냐면 자기 남편보고
"여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 이어떻게 나라를 다스립니까?"
한국 유식한 부인같으면 수신제가 치국평 천하도 모르오 이렇게 했겠죠. 그 말이 없으니까 자신을 다스리지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 냐 그런데 이말이 화살처럼 박혔대 요. 그것이 자극이 되고 충격이 되 었대요. 내가 미안하오. 내가 노력 하겠다고 내가 좋은 대통령 되겠다 고 그리고 좋은 대통령 될려면 건강 해야 하겠고, 건강하기 위해선 몸무 게 이제부터 조정하겠다고. 당신하 고 약속하고 1년동안 20파운드 줄이 겠다 그리고 그 한해동안 23파운드 를 줄였대요. 그리고 훨씬 정치력도 높아지고 아주 건강하고 명석한 판 단을 하면서 그 해를 잘 보냈다고 합니다. 뚜렷한 목표라는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윈드 존슨은 23파운드 성공했다고 하지만 우리주변에도 20파운드 이상 의 기적적인 몸무게를 줄인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20세기 말에 일어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 리교회 김기태 목사님을 아시나요? 20파운드가 문제가 아니라 20kg을 줄였습니다. 지난간 여름에 제가 탐 식 설교를 했었죠? 설교는 제가 했 는데, 은혜는 그쪽으로 갔어요. 나 한테 오지 않고. 지금은 날씬한 몸 으로 서 있습니다. 그 분이 언제 그 렇게 뚱뚱했는지가 과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감량에 성공했 습니다. 아마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매일 뛰고, 매일 소식한대요. 그러니 까 성공할 수 있었죠. 저는 왜 이것 이 20세기 10대 뉴스에 나오지 않나 궁금해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기 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 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여기에 다툰다는 말이 내 온 에너지 를 다해서 소모한다. 승리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 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 든일에 여러분 절제의 영역은 한가 지 영역만이 아니라 여러 영역입니 다. 우리가 식욕도 컨트롤해야 하고, 성적 욕망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명 예욕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우리 안 에 있는 온갖 이기적인 욕망도 컨트 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컨 트롤되지 않으면 모든 일에 절제하 지 않으면 승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뚜 렷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무 엇을 위하여 절제하자는 것인가? 바 울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절제하겠 다고 말합니까. 바울에게 있어서 목 표는 아주 분명합니다. 그것은 뚜렷 합니다. 자, 오늘 본문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 구절 23절이 되겠는데요. 우리 같이 2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복음때문이었어요. 복음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내가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내 사명 완수 하기 위하여. 이 복음 전도의 위대 한 소명을, Vision을 이루기 위하여 나는 내 자신을 절제하겠다. 그렇습 니다. 새로운 천년을 향해 가면서 먼저 목표 설정을 하세요. 새벽기도 도 하면서 앞으로 남은 며칠만이라 도 뚜렷한 목표설정을 하세요. 그리 고 내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절제하겠다. 목표있는 삶에 대한 열 망 그것은 여러분과 저의 삶속에 절 제의 삶을 가져 오게 될 줄로 믿습 니다. 목표있는 삶을 열망합시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상급받는 삶을 열망하십시오. 우리가 절제하기 위 해선 어떤 삶을 열망해야 합니까? 첫째로, 쓰임을 받는 삶, 둘째로 목 표가 있는삶 셋째로 상급받는 삶을 열망하십시오. 당시 올림픽 게임이 나, 소위 이투미안 게임의 승자에게 주는 최대의 명예는 저 유명한 월계 수 면류관이었습니다. 월계수는 나 무죠. 최대의 명예를 상징하는 상임 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오래가지 못 해요. 두면 나중에 시들어 버리죠. 지금은 그런 것 안 주지만 옛날에는 월계수 면류관이었다구요. 시들어 버려요. 썩어버려요. 바울은 이런 걸 생각할 때 시들어 버리고 썩어버리 는 월계수 면류관 하나 쓰자고 오래 간직하지도 못 할 면류관을 위해서 사람들이 시간을 컨트롤하고, 땀을 흘리고 자신을 조절하고 욕망을 조 절하면서 그렇게 애를 쓰는 데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원한 가치를 위해 서 노력하고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 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삶속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느냐. 바 울은 이 질문을 묻고 싶었던 것입니 다. 그래서 어떻게 말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25절을 읽어 보 시죠. 25절 다같이
"이기기를 다투 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 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 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 라"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썩지 아 니할 면류관 그것은 어떤 면류관일 까요? 썩지 아니할 면류관 어떤 이 는 황금 면류관 그러더라구요. 금면 류관.
천국에 가서 금으로 된 면류관 쓸 것을 기대한다고. 뭐 그럴지도 모르 죠. 저는 그 금이 상징이라고 생각 해요. 저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한 면류관은 물질적 면류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면류관에 대 한 study 성경공부를 해 보시면 이 런 낱말들이 나옵니다. 어떤 면류관 이 나오냐면, 영광의 면류관, 자랑의 면류관, 혹은 기쁨의 면류관, 혹은 소망의 면류관. 이런 것들이 물질적 인 것들이 아니죠. 데살로니가 전서 2장에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사람들에게 전도 를 해요.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요. 전도하는 과정이 쉽지 않죠. 전도를 해 보면 한사람 예수 믿게 하는 것 이 얼마나 힘듭니까? 붙들어 놓으면 도망가고, 한 사람 예수 제대로 믿 게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 다. 더군다나 믿은 사람을 신앙적으 로 잘 세워주는 일 정말 어려운 일 이예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해서 그 사람들의 신 앙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데살 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 서 데살로니가 전서 2장 마지막부분 에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여러분은 저의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 의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희망의 면류관, 여러 분은 저의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 니다. 여기서 면류관은 무엇을 얘기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을 얘기하 고 있습니다. 천국가서 내가 그렇게 전도하려고 애썼던 사람이 나 때문 에 예수 믿고 천국와서 영생을 함께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야 그렇게 나를 속썩이더니 예수 믿고 여기 와서 영원을 같이 누린 다.'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기쁨 이 영원을 갈꺼예요. 영원한 기쁨. 그리고 내가 전도한 사람 자랑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저 사람 제 가 전도했거든요. 저 사람 제가 전 도했어요. 하는 이 끝없는 자랑. 이 자랑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그 영 원한 가치를 지닌 자랑. 여러분 주 님앞에 서는날 그 놓칠 수 없는, 그 영원히 계속될 그 명예를 위하여 그 명예를 바라본다면 그것이 상급이예 요. 우리의 상급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자는
자, 그 상 때문에 race에서 경주 자들은 그 마지막 면류관을 위해서 뛰는 것입니다. 그 상급을 위해서. 제가 상 얘기를 하니까 성경 공부하 다가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목사 님, 뭐 그리 상 얘기를 하십니까? 어렸을 때는 상이 좋았지만 우리가 지금은 유치원생들이 아니지 않습니 까? 그 유치했던 유치원 다닐때나 상타면 좋아했지 지금은 어른이 되 었는데요. 제가 그분한테 그랬습니 다. 집사님, 노벨상 줘도 안 받아요? 노벨상이라면 생각해 보지요 그러더 라구요.
여러분, 노벨상보다도 더 명예스러 운 우리 주님앞에 인정받아 영원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그 면류관을 그 상급을 얻기 위하여 그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내가 투자 한 사람, 내가 눈물 흘려 전도한 사 람, 전도하고 세운 그 사람 내년에 는 그 목표가 있다면 주일학교교사 도 하시고,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해 보세요.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라요. 미국의 필라델피아 근교에 가면 듀퐁 가든이라는 아주 아름다 운 가든이 있습니다. 저는 워싱턴에 살았는데 한 두시간 반쯤 되나? 저 도 여러 번 간 적이 있습니다. 손님 들을 모시고. 이 듀퐁가든이 만들어 졌을 때 듀퐁백작이 자기 부인을 위 하여 만든 아름다운 가든에 많은 손 님이 왔어요. 손님들에게 자랑을 하 면서 그 정원을 돌고 있을 때 사람 들이 칭찬했겠죠. 너무 아름다운 가 든이라고. 참 예쁘다고. 이때 듀퐁 백작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이 정 원에 대해서 저만큼 자랑스러워 할 분은 없을 것입니다. 또 저만큼 정 원 때문에 기뻐할 사람도 없을 것입 니다. 왜냐하면 이 정원은 사람들을 시켜서 한 것 뿐만 아니라 저의 아 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처음 에 손수 일을 하여 저의 정성이 들 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꽃 을 심고, 가꾸고, 뿌리고 그 모든 일 을 제가 같이 했기 때문이죠. 나의 정성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 정원을 볼 때마다 기쁨과 자랑을 느낍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우리가 전도한 사람 우리가 세운 사람을 만날 때 똑같은 감격을 느낄거에요. 내가 전 도한 사람, 내가 눈물 흘린 사람 내 가 이 땅에서 뿌려진 눈물과 봉사와 정성의 씨들이 천국에서 열매를 맺 는 광경을 보았을 때 우리는 크게 기뻐할 거예요. 영원히 기뻐할 거예 요. 그 놓칠수 없는 상급 그 마지막 면류관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 간다 는 사실 이 얼마나 특권이에요? 그 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절 제할 수 있다. 내 시간도 다른데 쓰 지 않고 보람있는 일에 쓰겠다. 이 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 제한다. 빌립보서 3장에서 고백하기 를 푯대를 향하여 목표를 향하여 위 에서 부르신 부르심에 상을 위하여 나는 좇아 가노라.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금년은 다 지나갔습니다. 새로운 천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에는 내가 주님앞에 저 영원을 통해서 놓치지 않을 상급을 주 앞에 자랑스럽게 붙들기 위하여 새로운 천년은 훈련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QT 훈련도 받으시고, 제자훈련도 받으시고, 기도훈련도 받으시고, 전 도훈련도 받으시고, 또 봉사의 장에 서 직접 봉사를 통한 훈련도 받으시 고 여러 가지 봉사의 기회들이 있는 데 거기에 들어가서 참여하시고 그 러면서 내가 짤막한 인생이 끝난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부족하지만 저를 쓰셨는데 여기 저의 열매들이 있습 니다. 이 열매들에는 나의 눈물과 기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주 앞에 영원을 두고 자랑스러워 할 상급과 명예를 위하여 새 천년을 절제의 열 매를 안고 들어서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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