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δεδομένα 18,185편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새벽기도.설교 (시편 15편)

by 【고동엽】 2021. 11. 30.
주님의 성산과 장막이란 말은 절대적인 안전한 피난처 이런 뜻입니다. 누가 절대적인 안전한 피난처에 거합니까? 주님의 성산은 뭡니까? 나의 거룩한 산에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고 부서짐도 없고 망가짐도 없다 그게 바로 성산입니다. 둘 다 합해서 주님의 장막은 절대적인 피난처 안전한 피난처 주님의 성산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 평화로운 곳 이런 뜻입니다. 누가 절대적으로 평안합니까? 누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거하는 삶이 됩니까? 이 불확실한 시대에. 이렇게 묻는 겁니다. 이 불확실한 시대에 환난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이 시간에 누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아파트에 거하는 사람이 됩니까? 최고급 아파트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사는 사람, 신적 자비로 남을 돌보는 사람 공의를 일삼는다는 말은 신적 자비로 남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정직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공의는 신적 자비로 내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절박한 상황이 나에게 무한 책임을 강요할 때는 그 무한책임적인 이웃의 요구에 부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믿음이 많으면 여러분에게 믿음 많은 여러분들을 더 축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곤궁한 이웃을 여러분에게 붙여줍니다. 공의를 일삼도록. 여러분 여러분이 좋은 믿음의 사람이면 여러분 주변에 믿음으로 살 여러 가지 사건이 여러분을 에워싸게 되어 있습니다. 왜? 여러분을 복주기 위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복을 받기 직전에 완전히 병든 사람이 여러분 지나가는데 누워 있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의 한복판에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복 받기 직전에 여러분이 공평을 행하고 정직을 행하며 공의를 일삼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을 거룩한 장막 안에 감추어 주시기 위해서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살면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할 일들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사람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요한복음 7장 17절에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이 말이 하나님 내 말에 순종하다가 보면 내가 가르치는 교훈이 사람의 교훈인지 하나님의 교훈인지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복이 어디서 옵니까? 정직을 행하고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이웃 속에서 복이 들어옵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잘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이웃에 대해서 하지 말아야 할 소극적인 겁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이것 보십시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면 복이 옵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편의 벗은 누구에요? 여자 친구가 아닙니다. 아내입니다. 아내의 이웃은 누구에요? 남편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사람,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가 그 사람 인생에 도우미가 되어 주어야 할 그 사람이 바로 벗과 이웃입니다. 벗과 이웃에게 공평과 정의를 일삼으면 주의 장막에 거한다, 이 말은 세상이 그렇게 흔들리고 요동치더라도 내가 주님의 안전한 포구에 거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 세상 너무 불확실 하죠? 주식에 투자했다고 내가 분명히 투자했을 때는 유망주인데 한 3일 휴가 갔다 왔더니 기도원에서 기도 많이 하고 왔는데 주식이 막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성산,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고 손해봄도 없고 파산도 없고 이웃과의 관계가 부서짐도 없고 절대적인 안전한 피난처 성산에 거하는 사람은 일상생활 안에서 자비를 일삼고 불쌍한 자를 일상적으로 많이 돕기 때문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돕고 그리고 그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너무 자비를 많이 행했기 때문에 기억도 못할 만큼 일상생활에 숨을 쉬듯이 친절한 언어를 구사하고 이 말입니다. 숨을 쉬듯이 그 혀로 남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이 참소하는 혓바닥하고 메시아의 혓바닥 우리 예수님께서 그 혀를 쓰는 방법을 보겠습니다. 이사야 50장 4절입니다. 참소하는 혀와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여러분 교회 오신 여러분들은 그래도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새벽 마다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인 것을 보니까. 여러분이 평균적으로 보면 보통 믿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평균적으로 보면 여러분이 성경을 엄청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바깥에 나가면 여러분 그냥 목사님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는 수많은 궁핍한 영혼들을 살고 싶은 기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말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여러분이 이 혀를 사용하는 법을 연단을 받으면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아침마다 당신의 혀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래서 그 혀로 궁핍한 자들 영혼이 피폐해져버린 사람들 냉담해진 사람들을 말로 위로하는 것, 이번에 우리가 안성문화마을에 가서 여기서는 잘 안 나오던 거룩하고 멋있는 말들을 우리 교우들 평소에 한 번도 말을 나누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한 사람에게 5명 정도 정해서 꼭 그 사람과 내가 식사를 하든지 산책을 하든지 마음을 정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구역장님들은 그렇게 많이 하시고 계시죠? 그런데 대부분 분들은 그렇게 할 기회가 없습니다. 내가 목사도 아니고 구역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그냥 접근했다가 혹시 모함당할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랑은 모함 당할 가능성을 포함합니다. 내가 성의로 접근하고 뭔가 친해보려고 오버 액션까지 했는데 시큰둥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오래간만에 전화 한 번 했는데 웬일이세요 막 이렇게 물으면 전화한 사람 머쓱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오래 견디면 목사처럼 됩니다. 여러분과 우리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혀로 참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정직하게 행하고 그 이웃을 훼방하는 차원 그것을 넘어서서 이웃의 궁핍한 영혼을 말로 북돋는 이 일을 우리가 주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련회에 가서 여러분 열 마디만 하시면 아마 우리 교우들 사이에서 아주 평화가 더 창조될 겁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사람은 잠재적 적대상태로 느낍니다. 말을 걸어오지 않는 사람은 잠재적 적대심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우리 교회를 다녔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을 한 마디도 안 걸어온다 그러면 우리 사이에는 적개심이 잠재적으로 흐르고 있다 믿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을 함으로 평화를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손을 올리는 것이 뭡니까? 군인들이 손을 올리는 이유가 뭡니까? 총잡은 손을 올리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내 손이 지금 총을 잡지 않고 뭐에요? 여기 와있다 이게 평화라는 겁니다. 내 손은 총을 떠나있다 이게 바로 샬루트 경례하는 겁니다. 이렇게 경례하면 내가 무장상태에서 권총 방아쇠에서 이렇게 와있다고 공개하면서 나는 너에게 아무런 적개심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하이, 헬로우 하는 이유는 미국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하이라고 하는 이유는 폭력이 일시에 금방 폭발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는 당신에게 해칠 의사가 없다 그게 미국 사람의 헬로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무뚝뚝해도 총을 안 쏩니다. 그런데 외국 같은 곳에는 하이 같은 것을 안 하고 지나가면 상처 받아서 금방 달려갑니다. 한국 사람이 하이 하지 않고 지나가면 금방 빨리 먼 길로 갑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여러분께서 하이, 샬롬 이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인사하면 나는 당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나이 든 남자 교우들이 어린 사람들에게 샬루트 몸을 굽히고 그러면 이 교회에 평화가 싹틉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4절에 어떤 사람이 주님의 장막에 거합니까? 절대적인 안전한 피난처에 거합니까?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누구를 존경하고 누구를 모방하는 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심이 좋은 신앙 선배를 존경하다 보면 어떻게 된다고요? 신앙 선배를 존경하다 보면 나 자신도 여호와의 성산으로 올라가 있게 됩니다. 이게 참 좋은 일이죠? 그러니까 좋은 신앙 선배의 특징은 나에게 고통없이 신앙 진보를 이루게 만듭니다. 믿음 좋은 사람 옆에 살기만 하면 나는 그 사람을 모방하기만 하면 나는 저절로 믿음이 좋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믿음 좋은 사람을 친구로 얻는 사람은 신앙이 매우 좋아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대하며 망령된 자를 멸시할 사람을 멸시할 수 있고 이 멸시란 말은 인격적으로 모욕을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망령된 자들의 삶의 방법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며 이런 말입니다. 멸시한다는 말은 그것이 중하지 않다고 생각함, 망령된 자들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불면 날아갈 자들이라고 판단함, 이것이 망령된 자들을 멸시한다는 뜻입니다. 망령된 자들을 멸시한다고 막 그들에게 인격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언동을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망령된 자의 삶을 무게가 없어 빈껍데기라고 판단하는 것을 그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여호와를 삼가는 사람을 삼가는 것 여러분 이 복은 엄청 큽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믿음 좋은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딱 중간에 있어야 이 믿음 좋은 분들을 본 받는 다른 젊은 신자들이 또 나와야 되고 이런 신령하고 거룩한 위계질서가 있어야 됩니다. 신령하고 거룩한 위계질서란 말은 뭐냐면 집사, 장로 이런 위계질서 말고 인격의 감화를 주는 위계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함, 다시 말해서 자기가 한 번 서원한 것은 손해가 될지라도 변하지 않는 진실성,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 이것은 참 신뢰감을 줍니다. 우리 목사들에게 제일 안심시키는 사람은 누구냐면 어쨌든 그 자리에 나와야 될 때 나오는 사람 그 사람은 우리 목회자들이 볼 때는 만일에 어떤 때는 이 최집사가 빠지고 어떤 때는 오집사가 빠지고 이런 식으로 빠지면 자꾸 교대로 빠지면 아 반석 같은 인물이 없구나 그렇게 느끼는데 있어야 할 곳에 항상 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반석은 뭡니까? 이동하면 안 됩니다. 반석이 진정 반석되려면 그 땅속에 계속 있어 주어야 반석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반석이 가면 그 반석이 있던 곳은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한 사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겁니다. 목사가 무너지면 교회가 다 무너지고 중심 장로들이 무너지면 교회가 다 무너집니다. 중심 집사님과 권사님이 무너지면 교회는 그냥 무너집니다. 4분의 1이 무너지는 겁니다. 4분의 3은 4분의 1의 힘을 떠받치다가 같이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손해가 될지라도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서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서원은 이런 겁니다. 우리 교회 나오는 형제인데 본인이 옛날에 돈 잘 벌 때 십일조 하겠다고 서원을 했기 때문에 이 형제는 참 훌륭한 형제입니다.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형제인데 돈 잘 벌 때 십일조를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이 형제는 지금 3개월째 돈을 벌지 못하고 직장이 없는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가게에 가서 일용 노동자로 일을 했는데 4백 몇 만원을 헌금을 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은 자기가 옛날에 십일조를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 몇 개월째 자기는 월급도 받지 못하고 그냥 편의점 같은 곳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약 4백에서 5백에 가까운 돈은 그에게 중요한 생활비입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그것을 갚습니다. 그 정신으로 살기를 제가 부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원한 것, 이것 사람과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진실성을 테스트 하는 것, 손해가 될 때도 내가 서원한 것을 지키는가 내 인격에 진실성을 테스트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5절에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것은 돈이 좀 많은 고리대금업자입니다. 이 말은 나는 이자 많이 붙여서 고율로 이자를 줄 돈도 없는데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그런 말도 되지만 이 말은 내가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이런 뜻입니다. 내가 적은 친절을 베풀고 많은 친절을 되받으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뜻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 이렇게 사는 사람은 내가 경제적으로 나의 곤궁한 이웃을 괴롭히기 위해서 내 스스로 이익을 관철시키지 않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환난의 풍파가 닥쳐도 절대로 요동하지 않는 여호와의 초막 안에 장막 안에 감추어진 보물과 같이 된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풍파를 막을 길이 뭐죠? 일상생활에서의 이웃에 대한 선한 삶입니다.


결론입니다. 이웃에게 내 주변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원리를 관철시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 백성이 사는 이웃은 복 받겠습니까? 이웃은 복 받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면. 그러니까 이웃 복음화 하고 난 사람에게 땅 끝까지 가라는 겁니다. 이웃을 하고 나서 땅 끝까지 네 이웃처럼 살필지어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사무실에서 만난 사람이 이웃입니다. 여러분 주차할 때 쇼핑할 때 여러분 모두가 이웃들 앞에서 선한 말을 하고 정직을 말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신적 자비로 가득 차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는 환난, 풍파가 와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막 흔들리지 않습니다. 든든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거룩한 산에 반석 위에 세워진 집처럼 환난과 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안전 가옥이 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간증자들 6분의 간증자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아버지 그들의 고달프고 풍파 많은 인생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아버지 감동적인 간증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 유종덕 집사님의 하나님, 김종수 집사님의 하나님 최창순 집사님의 하나님 김명신 집사님의 하나님이 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평범한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하나님 우리들의 이름에 하나님 이름 붙여도 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 그들의 간증을 통하여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도 손들고 나가서 주님께 항복하며 우리의 간증을 우리 일생을 주님께 아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장맛비가 계속 옵니다. 날씨가 후덥지근할 때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아침에 출근할 때 지켜주시고 퇴근할 때 그 걸음을 지켜주시고 오늘 사랑하는 교우들이 환난 많고 풍파 많은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비밀한 장막 속에 하나님의 은밀한 깨우침으로 감동으로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