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결과는 주님께 맡겨라

by 【고동엽】 2021. 12. 29.
 
처음 목록가기
 

결과는 주님께 맡겨라 출처

 

이재철 목사님 설교 “비전의 사람” 후반부 발췌, 편집.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유혹에서 떠나야 한다.

 

반드시 결과를 보고자 하는 것은 경제 원리이다. 그것은 업적주의다.

경제 원리, 업적주의가 꼭 나쁜 것은 아니고,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극단적으로 그 쪽으로만 치우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많은 한국의 대통령, 정치인들이

자신의 재임 기간 안에 모든 결과를 보려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도인들도 똑 같다.

내가 행한 일의 결과를 내 시대에서 내 눈으로 보려 한다면

우리는 정도를 벗어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주님을 섬기는 사역의 결과를 내 세대에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원을 살면서,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경제 원리로만 본다면 바울은 철저히 (자기 세대에서) 실패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에서, 자기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또는 감옥으로 자기를 찾아 오는 사람들(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그의 만년의 고백을 들어보면, '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은 다 자기를 떠났으며'(딤후 1:15)

“아시아에있는모든사람이나를버린이일을네가아나니”(딤후 1:15)

 

바울이 처음 복음을 전할 때 자기와 함께 했던 자도 다 자기를 떠났다고 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딤후 4:16)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결과로부터 자유하는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하여 그 자신을 계속 매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 땅을 떠난지 3백년이 지나서, 저 천국 하나님의 품속에서

그 결과를 지금까지 영원히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요셉은 자기 세대에 결과를 본 사람이고, 바울은 보지 못한 사람이다.

우리는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결과로부터 자유할 때 – 마음을 비운 자가 누리는 평안을 맛본다.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나머지 결과는 주님께 맡기자.

 

▲가가와 도요히코를 키워낸 나가노 목사 이야기

 

20세기초, 일본에서 갓 안수를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는 어느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동서남북 100킬로미터 이내에 단 한명의 교인도 없는 곳을

찾고 보니 북쪽 '가나사와'라는 지역 이었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곧 그 지역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 둘을 놓고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 교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6개월 동안 교인이 아무도 오지 않으면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그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보내 주신 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무려 5년이나 꿋꿋이 지켰습니다.

 

*청년 ’가가와’가 찾아오다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천막 교회의 커튼(입구)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들어왔습니다.

초췌한 청년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지난 5년 동안 했던 그 어떤 설교보다도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그 청년을 데리고 식탁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이 청년이 "욱--"하더니 식탁 위에 피를 쏟았습니다.

그는 폐병환자였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순간적으로 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이런 괘씸한 사람이 있나?

이 사람을 지금 당장 쫓아 버려야 하나,

아니면 내가 이 핏덩이를 쓸어내고 계속 함께 밥을 먹어야 하나?'

 

그런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처음 보내주신 사람인데...'

 

나가노 목사는 자기 손으로 핏덩이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가져다가 청년과 다시 계속 먹었습니다.

 

*방황했던 청년 시절의 가가와 도요히코

그 청년은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이 그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폐병환자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파문을 당했습니다.

 

이 청년이 생각할 때

'성경은 거짓말이구나, 예수도 거짓말이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폐병을 옮길 만큼 경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폐병 환자인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대해 주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살 직전에 나가노 목사를 만나다

이 청년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자살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는 목사가 있는데,

거기를 한번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나가노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저녁에 밥을 먹다가 피를 쏟았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밥을 차려 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 청년이 다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가가와 도요히코, 완치 후 빈민사역을 하다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그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됩니다.

 

그리고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빈민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변비라고 합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같이 굳어 있어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장갑을 끼고 손으로 후벼 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그 빈민들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지만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지처럼 더러운 빈민의 항문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 냈습니다.

 

*"나는 배운대로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일본 기자가 도요히꼬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도요히꼬 목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배운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국에서 가가와 도요히코의 영향

그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을 모셔서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했습니다.

일본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이 철수합니다.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나라에서 일본 민간인들이 철수할 때

현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본패망 당시에 중국 땅에 있던 일본인의 숫자는

200만 명에 달했으나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천황의 항복 성명과 동시에 장개석 총통이 포고령 1호를 내렸습니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 배후에는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의 사역에 대한 감동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나가노 목사 – 실패했으나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나가노 목사는 평생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논리로 본다면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가 과연 실패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없었더라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없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빈민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 때

그 심중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중국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때

그 속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