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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한 교회, 증거하는 교회(행 5:1-11)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1. 29.
성결한 교회, 증거하는 교회
행5:1-11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오늘은 교회가 성령강림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셨던 초대교회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 우리의 교회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찾아보고자 합니다.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가 드러낸 능력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부활하시고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순절 날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자 제자들이 한 것이 예루살렘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 지역의 말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놀랍게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놀라며 당황하여"(행2:12) 수근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가 일어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하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묻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 하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그날 하루에만 삼천 명이나 되었을 정도로(행2:41) 제자들의 증거는 힘이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 못 걷게 된, 걸인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해주자 이를 보고 놀라서 솔로몬 행각에 모인 무리들을 향해 베드로가 행한 설교를 듣고 믿게 된 이들이 남자만 약 오천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행4:4). 행4:31은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하고 공회에 끌려나가 제사장들을 위시한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수없이 위협을 받기도 하고(행4:18, 21, 5:28) 채찍질을 당하기도 했으나(행5:40)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행5:42)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힘있게 증거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전하는 사건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날로 왕성하여 예루살렘 시를 뒤덮으며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을 때 일어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부부가 어느 날 그들 소유의 땅을 팔아 교회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땅 판 값의 전부를 바치지 않고 그 중에서 얼마를 빼돌려 감추고는 나머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의 계시로 그 사실을 알고있던 베드로 앞에서 그것이 땅 판 값의 전부인양 거짓말하다가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충격적이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몽땅 팔아 그 절반만 바친다 해도 대단한 것이고 칭찬받을 만 한 일인데, 다 바치지 않았다고 부부를 즉사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건의 의미를 조금 자세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감추었다"로 번역된 헬라어가 오늘 본문에서 말고 유일하게 다시 나오는 딛2:10에서는 "훔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에서 같은 단어가 쓰인 곳이 수7:1입니다. 수7:1은 여호수아와 함께 견고한 성 여리고를 손쉽게 점령한 이스라엘 군대가 이어서 작은 성 아이를 치러 올라갔다가 대패한 일을 전하며 그 참패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아간이라는 자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물건을 "가졌음"으로, 즉 하나님의 것을 훔쳤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들어오는 데에 재산을 팔아 바치는 것은 전혀 강요된 것이나 의무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말하기를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한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들의 땅을 그냥 갖고 있을 수도 있었고 팔아서도 자기들 마음대로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은 다 바치지 않고 얼마를 떼어놓고 바친 일을 두고 베드로가 하나님의 것을 훔쳤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는 하나님 앞에서 또는 사도나 교회 앞에서 그 땅 판 값을 다 바치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 후에 그들의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후에는 더 이상 자기 것이 아니며, 그 때부터는 거기서 얼마를 떼어놓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아간의 도적질 사건과 아나니아의 도적질 사건 사이에는 의미있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점령해 가고 있을 때 아이성에서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질 물건을 훔친 사건과, 새 이스라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점령해가고 있을 때 아나니아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것을 훔친 사건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의 행진을 멈추게 하는 일이라고 하는 공통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죄는 단지 하나님 것을 도적질한 부정직성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한 거짓말로 속이려 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 약속드린 바를 온전히 행하지도 않고 온전히 행한 것처럼 거짓말하여 칭찬과 존경과 명성을 얻으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산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경과 명성 또한 훔치려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그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따로 따로 베드로 앞에 서면서도 꼭같이 말할 만큼 사전에 의논하여 입을 잘 맞추었듯이 계획된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들은 그 거짓말로 베드로를 속이려 했지만 사실은 본문 3절에서 베드로가 말하듯이 "성령을 속인 것"이었고, 4절에서 말하듯이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한 것이었습니다.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적 사건은 단지 특정 개인에게 일어난 하나의 소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하여 놀라운 증거의 능력을 보이며 예루살렘을 점령해가고 있던 승리하는 복음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간에 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끼워넣은 의도가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로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 증거의 능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성결한 교회, 성결한 신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호수아 영도 하의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의 승전보를 기록하던 도중에 아간의 도적질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기록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승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려는 뜻이라고 믿습니다.






거짓되고 속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각각 베드로 앞에 선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하나님께서 모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하신 것은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단호하심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거짓과 위선으로 더럽혀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로 보아야 합니다. 죄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잠시라도 함께 머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도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했고, 11절에도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훔치며 하나님을 속이고 능멸하는 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함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사도행전의 기자가 강조하여 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는 과연 하나님의 것을 훔치며 하나님을 속이고 능멸하는 일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자기의 소유를 판 돈의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을 때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자신이 사탄의 간계에 넘어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뼈아픈 경험을 가진 베드로였기에,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발동하는 사탄의 역사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나니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사탄을 즉각 간파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탄의 사특한 역사에 대한 베드로 자신의 또 하나의 경험을 기억합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대답함으로써 예수님으로부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영광스럽기 이를 데 없는 굉장한 칭찬을 받았습니다(마16:13-19). 그런데 그러자 곧바로 사탄은 베드로의 마음 속에 들어가 간교한 역사를 발동했습니다. 베드로의 그 고백이 있은 후 비로소 예수님께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셨는데,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여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대답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던 것입니다.(마16:21-23)






우리는 여기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항상 사탄이 파고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 사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인의 믿음이 굳게 서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는 것이 사탄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진실하게 서지 못하도록 우리를 더럽히고 넘어뜨리려고 온갖 궤계를 부리는 사탄의 역사를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늘날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사명을 받았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증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교회가 성결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세상사람들과 아무런 차이도 없이 거짓과 위선 속에 머물러 있어서는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도구로 쓰임 받기는커녕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결해야 합니다. 성결한 교회이어야 증거의 능력을 갖습니다. 누가 성결하지 않은 교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귀기울여주지 않는 교회가 어찌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교회 구석구석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침투해있는 사탄을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거슬려 준동하는 사탄의 역사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더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성결한 교회 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증거의 능력을 지닌 교회가 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결한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성결해지기를 갈망하며 성결한 삶을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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