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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 (롬4:17~25)
일반적인 속담 중에 “돈을 잃는 것은 작은 것을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격언 중에는 “돈을 잃는 것은 큰 것을 잃는 것이요. 친구를 잃는 것은 더 큰 것을 잃는 것이요 믿음을 잃는 것은 전부를 다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믿음은 삶의 뿌리이기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삶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언급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매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밥을 먹고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각가지 요리를 해서 먹어야 삽니다. 그러나 우리 영은 음식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금식하신 후에 몹시도 배가 고플 때에 사단이 주님을 찾아와 시험하였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그러나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신8:3,마4:4)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뜻은 인간의 힘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인생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00년 살 동안 그들은 농사를 짓고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홍해를 건너 시나이반도 바란 광야 등 사막에서 40년 동안을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도저히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어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40년 동안 먹이고 마시 우며 살게 하였습니다. 밤마다 하늘에서 만나라는 양식을 내려 먹게 하였습니다.(출16:4)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고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뜻은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 힘들고 많은 일들이 터집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지난 주간은 일주일 내내 캄보디아 관광객을 실은 민항기 추락 사건이었습니다. 13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몽땅 죽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관광을 갔다가 그만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애틋한 사연도 많았고 고생하며 성공하여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관광을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불귀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을 만날 줄 알았다면 그 비행기를 탔겠습니까? 그 중에는 kbs의 조종옥 기자 가족이 탔습니다. kbs 방송 기자정도이면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기자는 추측도 잘하고 예지 력과 판단력이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죽을 줄 몰랐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자랑할 것이며 이 세상에 무엇을 믿으며 살 것입니까? 건강을 믿겠습니까? 권력자를 믿겠습니까? 학식과 실력을 믿겠습니까? 아니면 재물을 믿겠습니까? 우리가 영원히 기댈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고 말씀 밖에 의지할 것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7-9)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요란하고 환란과 고난과 풍파가 많지만 말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감싸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갈대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12:1)고 할 때 “말씀을 쫒아 갔고(창12:4)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평생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물질의 복을 부어주셨고 영토를 그 후손들에게 주었고 그 후손이 거대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강단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쫒아 살아보십시오. 강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2)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이룰 줄 확신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문맥을 보면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고 하였습니다. 75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를 때 그 에게는 아들도 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12:2)“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하였고 (창15:5)“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으리라”고 하였고(창17:19)“네가 정녕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라“고 하였고(창22:17)”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며 네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도록 하나님의 약속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꿈은 100세에 이루어졌고 약 400년 후에는 200만이 넘는 거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꿈을 품지 않거나 꿈을 잃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욜2:28-30) 고 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 3,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83%가 미래에 대한 꿈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청소년들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컴퓨터 채팅이나 오락에만 빠져 있는 듯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54%가 하루 3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락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평생 구걸만 하던 한 할아버지가 어느 집 주인을 찾아 햄버거 사 먹을 돈을 얻은 뒤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먼지 묻은 바이올린을 줬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주인은 바이올린의 먼지를 닦다가 깜짝 놀랐다. 1704년에 제작된 수십 억 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인이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았다면 굶주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뭘 지니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평생 구걸 인생을 산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노인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꿈은 가나안 정복이었습니다. 그들의 꿈은 이루어 졌습니다. 청교도들의 꿈은 북미에 기독교 국가를 세우고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축복받는 민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꿈을 이루어 졌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미국입니다. 링컨의 꿈을 흑인 노예를 행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꿈이 이루어 졌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꿈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나는 나침반이나 선박의 성능을 믿고 항해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를 움직이는 동력은 꿈과 소망이다. 나는 지금 이사야서를 읽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고 하면서 계속 항해를 해 나갔습니다. 그는 드디어 북미 대륙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후퇴와 후회가 없습니다. 오직 전진과 성취만 있을 뿐입니다. 만약 콜럼버스가 그 절망적 상황에서 다수의 뜻에 따랐거나 되돌아갔다면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도전하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에 의해 다시 쓰여집니다.
우리 교회는 3,000교세 비젼과 선교 비젼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하여 주신 원대한 꿈을 한시라도 접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하여 그 푸른 꿈을 이루도록 하실 것입니다.
“꿈은 길을 만듭니다.”“꿈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칠을 봅니다.”“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꿈을 갖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꿈은 현재를 이기게 합니다.”“최고가 되는 꿈을 꾸면 최고가 됩니다.”“하나님은 꿈꾸는 자의 편입니다.”
꿈꾸지 못할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를 위한 꿈을 꾸시고 자녀들이여 미래를 향한 꿈을 꾸시고 사업하는 분들이여 사업에 대한 큰 꿈을 꾸시고 직장인들이여 20, 30년 후의 자신과 자신의 삶의 모습에 대한 영롱한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꿈꾸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3) 모험하는 사람입니다(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받을 땅에 나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험적인 신앙을 칭하는 말입니다. 75세의 노인이 아내와 조카와 종들을 데리고 안정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먼 미지의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대단함 모험입니다. 아브라함의 모험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한 것입니다. 모세의 가나안 정복의 모험은 광야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모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놀이 기구 중에 번지점프만큼 사람 스릴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보는 사람도 즐겁게 합니다. 저는 놀이 기구들 중에 모노레일이라든지 하늘에서 땅을 뚝 뚝 떨어지게 하는 거라든지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타 보았는데 번지 점프를 못 해보았습니다. 그것 한 번 해 보게 해 달라고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한 번 꼭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번지 점프에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끈을 발목에 단단히 묶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립니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다 땅에 거의 닿을 때쯤 되면 발목에 묶여 있는 줄이 더 이상 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믿음의 사람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담대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말씀의 줄에 우리를 묶어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번지점프를 하려면 높은데 올라가서 줄을 달아매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거의 밑바닥에 닿으려 할 때 줄이 잡아 줌으로 땅에 처박히지 않고 다시 위로 퉁겨 오릅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한 후에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허공으로 내 던져지는 모험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줄이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땅에 처박히지 않고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내게 하십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를 움키려 하면 사자나 곰의 수염을 잡고 싸워 들짐승을 쳐 죽였습니다(삼상17:34-35)어린 소년이 사나운 맹수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어 준다는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으라”고 할 때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얻은 것이 없어도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6)하며 모험을 감행할 때 두 배가 가라앉으려 할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주저함 없이 모험을 즐겼습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자마자 “ 주여 만일 주님이 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14:28-29)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 위로 걷는 초유의 일을 해 보았던 것입니다. 모험을 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앙은 목숨을 건 모험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난관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때는 모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청교도들은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들은 신대륙 아메리카의 건설 자들이 되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건너가 탐험하며 복음을 전파한 리빙스톤은 만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미개한 대륙에 폈습니다. 그는 그의 일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바쳤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에 담대히 들어가 선교회를 조직하고 복음을 전파한 허드슨 테일러는 아무 후원자도 없이 오직 하나님만 믿고, 그 믿음으로 중국 내지 선교를 성사시켰습니다. 이것은 모험적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계 3대 선교사 중에 가장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홀로 아프리카 정글 속에 들어가 흑인들의 병을 고쳐 주며 봉사하던 알버트 슈바이처는 백인들의 흑인들에게 저지른 죄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선교와 봉사에 생애를 바친 성자입니다. 신앙은 이 같은 모험을 감행할 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생의 험한 길을 무릅쓰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지 않는 신앙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모험에 인생을 걸겠습니까?
(4) 언어가 다른 사람입니다. (창17:15-16)
아브라함의 나이 99살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17: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창17:16)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 가 되었고 사라는 90세가 되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자식을 낳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이름을 통해서 그들의 입술의 고백을 바꿔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어는 언제나 초이성적이요, 초감각적이요, 초 합리적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 언어들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 아들이 태어났고 “손을 내 밀어 바다를 가르라”바다가 갈라졌고, “여리고를 돌라 무너지리라”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모두 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죤 뉴턴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낙심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으나 믿음의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낙심되는 것들이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길로 들어가는 신호이다”
믿는 사람의 언어는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워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낙심하게 한다든지, 절망하게 한다든지, 불가능하다든지, 소위 김새게 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미국의 캔사스에 있는 어느 유명한 성공자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의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한 이상 당신은 무조건 적극적인 말만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지켜라. 만일 미국에 있는 가정이 이 교훈을 따른다면 가정생활은 윤택해지고, 이혼율이 감소되고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좋은 말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고, 소망을 주고, 힘이 막 솟아오르게 합니다. 존경하는 사람의 말 한 마디에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뀝니다.
반대로 말 한마디에 실망하게 되고 낙심천만하게 되고 좌절하게 되고 꿈과 용기를 다 잃고 나 같은 인간이 살아서 뭐하겠느냐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언어를 사용하도록 힘서야 합니다. 부정적인 언어는 모두 다 마귀가 주는 언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녀를 축복하고 가족을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하고 성도를 축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을 의지하며 살고 꿈을 안고 살고 모험을 하며 살고 언어가 언제나 영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반열에 세워지기를 축원합니다.
출처/박인걸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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