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리스도인의 생활 철학 (골로새서 3:12-17)

by 【고동엽】 2021. 11. 19.

  그리스도인의 생활 철학  (골로새서 3:12-17)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한심하고 답답한 일들을 자주 경험하곤 합니다. 요즈음 같은 때는 더 더욱 정치를 잘 해서 사회나, 경제가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런데 권력형 부정, 부패가 사건으로 나타날 때면 더욱더 우리는 정치인들의 한심한 작태에 대하여 분노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은 그 마음에 생각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생각, 건전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선한 것을 찾기보다는 악에 쉽게 물들게 마련입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골로새서 1,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성도와 하나님과의 새 관계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 생활철학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예수로 자신을 단장하는 삶
본문 12절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성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그런데 이 부분에 언급된 덕성들은 사실상 사랑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언급된 '긍휼'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에게 나타내는 사랑, 즉 '동정'(compassion)을 뜻합니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긍휼히 여기심을 받습니다(마 5:7). 그리고 '자비'는 친절, 상냥함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긍휼과 자비와 연민의 뜨거운 동정과 부드러움으로 고난 당하는 자와 이웃을 찾아가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본래 노예의 비천함을 표현하는 말이었으나 신약에서는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정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성품인 겸손(마11:29)을 항상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빌2:3-8).
한편 '온유'는 이웃의 무례함과 거친 태도에 대해 관용(寬容)을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모세가 이 성품의 대표자이며(민12:3),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가 이 성품의 대표자입니다(마11:29).
그리고 '오래 참음'은 지치지 않는 사랑 또한 무한정 용서하는 사랑을 뜻합니다(13절).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롬2:4),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덕성인 것입니다(갈5:22).
이 세상은 날이 갈수록 인심이 더욱 흉악해 지고 있습니다. 바쁜 도심의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삭막한 광야와 같은 고독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향기를 발해야 하며 또한 믿음과 사랑으로 따스함과 훈훈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향기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옛날 송나라의 범문공이라는 사람이 관상쟁이에게 가서 자기가 재상이 될 수 있는가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관상쟁이는 범문공에게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관상쟁이에게 당시에 신분이 낮은 의원이 되려고 묻자 그는 왜 그리하려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재상이 안된다고 하니 의원이 되어서 백성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관상쟁이는 그에게 "당신은 재상이 되겠소" 했습니다. 범문공은 놀라서 어찌 말이 왔다갔다하느냐고 따졌다. 관상쟁이는 웃으면서 관상이란 색상이 먼저이고, 다음은 골상이며, 셋째는 심상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골상은 시원치 않아 재상 감이 아니지만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벧후 1:5-7)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선진국들의 특징은 뛰어난 교육과 탁월한 정신에서부터 그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정신에 입각한 장인정신,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 정신, 미국의 실용주의적 과학주의는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애국,애족정신이나 충효사상은 이미 많이 그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 공동화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결과로 인해 외세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입함으로 더욱 정신적, 사상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2. 사랑으로 매는 띠
본문은 좀더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도덕적 차원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건전하지 못해서, 또 이웃과의 불화로 인하여 세상에서 빛된 사명은 커녕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골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변치 않게 대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용서는 은혜를 베푸는 태도입니다. 이 용서는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이상에 언급된 사람에 대한 모든 미덕들은 결국은 주님께 대한 신앙에 입각합니다. 즉, 주님 앞에서 용서받고 그대로 남을 용서하는 심령만이 이 모든 미덕을 비로소 완전히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친히 가르치신 바요, 또한 실행하신 바입니다. 불화를 멈추게 하고 참된 하나님의 평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밖에 없는 것입니다.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사랑은 위의 모든 미덕들을 하나로서 묶습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결국은 "사랑"의 한마디로 설명됩니다(Ramsey). 사랑 없이는 모든 덕목들은 결국 불완전하며, 지속할 수 없으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사랑이란 보통 이상의 거룩한 아가페( )의 무조건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바울도 이 모든 성품 위에 '사랑'이 첨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랑은 다른 성품들이 올바로 발휘되도록 역사(役事)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그 성품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 목적입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의복의 비유로써 하나 하나의 미덕을 옷 입을 것을 권하고(12절), 이제는 그 위에 사랑으로 띠 띠우라고 합니다. 띠는 그 모든 의복을 하나로 통일하고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어느 농촌에서 한창 가물 때에 어느 성도가 논에 물이 다 말라서 양수기로 밤새 물을 퍼 올렸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와서보니 아래 논의 임자가 둑을 터서 그 물을 다 빼앗아 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날도 밤새도록 논에 물을 펐습니다. 그랬더니 그 이튿날도 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너무 너무 화가 치밀어 목사님께 찾아갔더니 목사님께서는 "오늘밤에는 한 번 더 빼앗긴 셈치고 그 고약한 사람의 논에 물을 가득히 채워주시오, 그 다음에 당신의 논에 물을 채우십시오"하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신자는 그 날 밤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이튿날 그 고약한 사람이 찾아와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백하기를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쫓아올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내 논에 물을 대주다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까? 나도 예수 믿겠습니다." 그래서 전도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정복을 꿈꾸다가 실패한 나폴레옹이 세인트 헤레나섬에 귀양가서 말하기를 "나는 수 백만의 대군으로 세계정복에 실패했으나, 나사렛 예수는 한사람의 병정도 없이 온유와 사랑만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3. 고상한 성도 삶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별화된 도덕적 우월성과 변화된 삶입니다. 변화된 삶은 감사가 넘치는 평안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참 평안과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원망과 불평으로 인하여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변화된 성도의 삶은 다음에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안으로 가득한 삶을 영위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말미암은 균형 잡히고 안정된 생활을 누립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참된 평강을 주시기 위함이며. 이것은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리프맨의 저서 「마음의 평안」에서 주인공 젊은이가 어떤 노인을 찾아가 자기의 소원을 말합니다. 노인이 그의 소원을 묻자, 그는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며, 셋째는 뛰어난 외모이고, 넷째는 재능이고, 다섯째는 권력이고, 여섯째는 명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이 소원을 말하는 청년을 지긋이 지켜보면서 "청년, 평안이 없이는 아무 것도 즐길 수가 없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둘째,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참된 친교의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형제, 자매 또는 어머니요, 모친이라고 부릅니다. 한 하나님을 신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교제를 통해서 얻는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특권입니다.
(시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신실하고 믿은 좋은 사람들과 가까이하면 큰 유익을 얻습니다. 반대로 노름꾼을 가까이하면 노름꾼이 됩니다. 포악한 사람, 비굴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바람피우는 사람, 거짓말쟁이, 도박하는 사람... 등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면 큰 낭패를 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그 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생활로 일관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히 임하는 법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세대에 감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삶의 신선한 활력소가 되는 감사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현대병을 이기는 가장 좋은 면역체이며, 보약입니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옛날 중국인들은 요, 순의 백성됨을 자랑하고, 영국인들을 노예로 태어나지 않고 대주인임을 자랑했으며, 스위스인은 자유인임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희랍인의 3대 감사를 말하였습니다. 첫째, 금수로 지음받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둘째,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 세째, 야만인이 아니고 희랍인이 된 것 등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들이 감사하고 자랑할 조건보다 훨씬 더 감사하고 자랑할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디히트리히 본훼퍼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구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즐겁고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차이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결 론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이미 죽었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추한 모습이 자주 발견되곤 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당장 삶의 변화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그것이 점차 외적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단장하고 옷 입듯이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으로 참된 것을 생각을 하고, 진리를 행하고 바른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살피고, 이웃과의 조화를 이루며, 변화된 성도의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새 사람됨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평강과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통한 감사가 넘치는 생활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출처/안재은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