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개혁신학의 과제
유해무(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우리서 ‘개혁신학’의 과제를 다루려고 한다.1) 개혁신학의 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개혁신학의 역사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유럽 신학계는 지난 세기에 ‘개혁신학이 무엇인가’라는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했었다. 또 우리 한국교회는 영미 교회의 피선교국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배경인 특히 미국에서의 개혁신학 이해도 고려되어야 하리라 여긴다. 우리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더듬어 본 뒤에 계속하여 개혁신학의 과제를 다루려고 한다.
1. 개혁신학의 원리
개혁파는 루터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렇지만 “1560년대까지는 ‘개혁’(Reformed)이란 명칭은 개신교 내지 복음주의를 뜻했고, 루터교를 포함했다. 1590년대 이후 비로소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구분이 명료해지게 된다.”2) 즉 로마교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통칭하여 복음주의자로 불렀다면, 루터파는 Concordia(1580)의 출간 이후 복음주의자로되 특히 성만찬과 기독론에서 루터의 입장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통칭하여 복음주의-개혁파라 했다.3) 독일 내의 개혁파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하여 공인받았다. 그러므로 개혁파는 루터파와는 달리 뚜렷한 한 무리가 아니라 다양한 집단에 대한 명칭이기도 하다. 즉 루터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화란 개혁파들이 정죄한 항변파도 개혁파이고, 또 영국성공회나 그것으로부터 분리한 감리교 역시 개혁파에 속한다. 이런 입장을 로마교회도 수용하였다. 이런 다양성이 이후의 논의에 모종의 애매성을 줄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Zwingli, Bullinger, Calvin, Lasco 등이 주축이 되어 있다. 지역적으로는 스위스, 불란서, 화란, 西독일, 영국과 스코틀랜드, 헝가리, 폴란드와 주변 동구 등이 포함되며,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와 이들의 선교를 받은 한국 등이 이에 포함된다. 교리적 특징은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인 권위로 삼으며, 설교가 예배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성화가 강조되며, 이것이 성찬 참여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언약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삶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의 확립과 하나님의 영광을 삶의 목표로 삼기도 한다. 교회 정치에서는 위계적인 질서를 거부하며, 장로회에 의한 합의를 기초로 삼는다.4)
그런데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개혁파의 원리’를 찾는 시도가 19세기 독일신학에서 유행하였다. 즉 개신교와 로마교를 비교하는 가운데서, 개신교는 형식적 원리는 성경의 권위요, 내용적 원리는 이신칭의라는 식의 원리론이 등장한다.5) 이런 시도는 다시 루터파와 개혁파의 원리를 찾는 운동으로 진전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을 받은 스위스 개혁신학자 슈바이처(1808-1888)는 “루터파 개혁은 내용 원리와 더불어 인간론에 머물렀다. 인간 안의 어떤 소여가 구원을 얻게 하는가의 질문에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대답한다. 개혁파에게도 이것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이지는 않다. 그들의 질문은 인간과 구원의 관계가 아니라 누가 구원을 주며 형벌을 주는가의 문제이다. 즉 피조물이냐 하나님이냐의 문제이다”라는 말로 개혁파의 독특성이 인간론적 차원이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임을 말한다.6) 이 발언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의도는 개신교는 로마교의 극복이요, 개혁신학은 다시 루터신학보다 높은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화란의 개혁신학자들에게도 전수되었다.
바빙크(1854-1921)는 “개혁파는 역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념 곧 하나님의 작정에까지 추적한다. 루터파는 구원역사에 만족하고서 하나님의 작정에 침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개혁파에게는 선택론이 교회의 심장이지만, 루터파에게는 이신칭의가 교회의 생사가 달려있는 조항이다. 전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처음과 마지막 관심사이지만, 후자에게는 인간의 구원이다. 전자는 이교사상과 우상 숭배를 대항한 투쟁이지만, 후자는 유대교나 행위에 의한 거룩을 대항하여 투쟁한다”고 강변한다.7) 이런 식의 개혁파 원리 고수는 벌코프(L. Berkhof; 1873-1957)를 통하여 우리 한국에 전달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개혁신학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면서 하나님의 작정을 강조하는 개혁신학만이 신학적이라고 부각시킨다. “루터신학은 덜 신학적이며 보다 더 인간론적이다. 루터신학은 일관성 있게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지는 않으며, 비록 만물이 신적으로 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만물을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본다.”8)
이처럼 개혁신학의 특징을 예정론,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영광으로 꼽는 일반적인 경향의 배경에는 19세기 독일과 화란 신학의 배경이 있으며, 우리 한국에는 주로 미국을 경유한 화란 신학을 통하여 도입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치적인 의미에서의 개혁신학이 아니라, 포용적인 의미에서 ‘개혁신학’을 사용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구별은 특정 역사 해석의 전제 위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며, 또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 때문이다.9)
2. 한국에서의 개혁신학의 맥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가 영미의 장로교회의 피선교국임을 고려한다면, 한국교회는 아무래도 이런 종교개혁 당시 서유럽의 영향이나 지난 세기의 개혁파 원리 추구보다는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의 장로교 전통을 통하여 역사적인 개혁신학과 접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스덴(G.M. Marsden)이 미국개혁신학에 대하여 정리한 개관(槪觀)이 한국에서의 개혁신학의 전통을 정리하는 데에도 좋은 틀을 제공한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역사적 배경 이해도 실제로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역사 속에서의 현존은 역사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현실은 복합적인 요인들로 형성되며, 그 속에 있는 자로서 현실을 바로 파악하는 것은 가히 모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세로 마스덴의 틀을 사용하려고 한다.
마스덴은 미국의 개혁신학의 전통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정통적인 교리주의, 문화주의와 경건주의로 본다.10) 교리주의는 청교도적 경건과 엄격한 칼빈주의의 전통인데, 스코틀랜드 장로교전통은 강력한 고백주의로서 미국 장로교의 구파와 구학파 전통을 이루었고, 영국 장로교전통은 미국의 대각성운동에 호의적이었고, 미국장로교의 신파나 신학파로 연결되었다. 물론 양자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1758년의 구파/신파의 연합에서 볼 수 있다. 신학파 전통은 경건주의적이면서도 문화적인 형태를 취하는 융통성을 나타내었다. 전자의 전통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PCA와 CRC의 보수 세력 등에서 나타나며, 후자의 전통은 Wheaton College, Fuller Seminary,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Gordon Cornwell Seminary, Christianity Today, IVP등에서 볼 수 있다고 정리한다. 한편으로는 이 유형들이 상호 포용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편에서는 때때로 상호 배타적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정리에 기초하여 한국 내에서의 개혁파 전통을 분류하려고 한다. 한국에 온 초기 장로교 선교사들은 성경관에 있어서는 확실히 구파/구학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신조나 타교파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신파/신학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당수의 선교사들은 신학 교육에 있어서는 구학파 전통에 서 있으면서 핫지(Ch. Hodge)와 워필드(B.B. Warfield)가 가르쳤던 프린스톤(Princeton) 신학교 출신들이었고 더러는 맥코믹(McCormick) 신학교의 출신들이지만, 학생 시절에 직접, 간접으로 무디의 부흥설교를 통하여 감화를 받았으며,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았다.11) 그러므로 초기부터 장로교와 감리교가 공동으로 부흥회를 개최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한국 장로교 목사들이 철저한 칼빈주의자로 교육받지 못한 데에는 가령 상당수의 목사들이 개혁주의를 하나의 세계관을 가진 사상 체계로 이해할 수 있는 소양을 갖지 못했는데, 이로 보건대 초기 장로교선교사들이 이를 전수할 능력도 있었는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문서적인 신학이나 고백은 실천적인 신앙 활동과 항상 이원론적 괴리를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복음성가 사용이나, 전도, 선교, 출판, 교육 및 사회 운동 등에서 초교파적 활동 등은 신파의 특징인데, 현재의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신파/신학파의 전통을 잇고 있다. 또 전천년설 역시 신파의 중요한 특징이다.12) 게다가 신앙고백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파의 전통이다. 선교사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12신조를 소개하는 데에 만족했다. 빌리 그래함의 대중 집회, 순복음운동의 절대적인 영향, 풀러학파가 창안한 교회성장론 등이 60년대 이후의 한국교회, 장로교를 지배한 것을 고려한다면, 한국 장로교회는 신파의 전통을 잇고 있다. 여기에 재미있는 것은 신학 교육의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신학교육은 개혁주의를 말하면서 구파의 전통을 전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직 성경관을 하나의 다리로 삼아서 구파와 신파의 전통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신파의 전통은 때때로 개방적이고 자유적일 수 있다. 이것이 한국장로교회가 안고 있는 위험이다.
우리는 구학파의 대표자로 죽산 박형룡을 들 수 있다. 박형룡은 “한국 장로교회의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념을 조장하는 데 그 누구보다도 크게 공헌한 신학자였다”.13) 그는 구학파 신학교들에서 설파된 칼빈주의 정통 신학을 근본주의로 이해하였고,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표방하는 데 정통주의 또는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하였다.14) 이 신학은 구주 대륙의 칼빈 개혁주의에 영미의 청교도 사상을 가미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파적인 전도 방법을 분명하게 거부한다.15) 그럼에도 한국의 보수적인 장로교회 신앙에는 근본주의와 세대주의, 혹은 경건주의적 신앙이 뒤섞여 용해되고 있다. 부흥운동으로 영적인 각성을 경험한 교회이기 때문에, 회심과 개종을 촉구하는 선교와 전도가 일차적인 과제요 성장을 추구한다. 이런 것은 확실히 신파적인 경향이며, 이것들은 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강조하는 공통성 때문에 개혁신앙과 별 구별 없이 수용되었다.16)
그런데 문화주의는 보기에 따라 한국에서 정착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마스덴(Marsden)이 언급하는 문화주의는 미국 자체의 기독교화를 주창하였다. 이것은 주일 성수와 노예제도 폐지, 반(反)진화론과 금주/금연 운동 등에서 나타났듯이 사회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이었다. 또 다른 흐름은 화란의 카이퍼와 도예벨트의 사상을 따르는 문화주의를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주일 성수와 신사참배 반대운동, 독립 운동과 절제 운동 등이 이런 문화적인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세계관 운동은 최근에 소개되어 젊은이들 가운데서 유행하고 있다. 이런 운동들은 한시적인 것도 있고, 조금 지속적인 운동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세상의 주인되심을 설득하고 확립하는 운동은 한국 개혁신학의 전통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이에 반하여 성경관에서 개혁신학의 입장을 떠난 자들은 문화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이다. 독립을 원하던 상당수의 초기 지도층 인사들은 사회, 정치적인 복음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초기 선교사들의 보수적인 복음 운동과 “교회의 비정치화 정책” 결의(1901)와는 달리 협성회와 독립협회 운동, YMCA 운동 등을 통하여 사회적 구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조류는 60년대 이후 정의와 인권 문제에 깊이 관여하였고, 기독교의 토착화 운동과 민중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17) 그러나 이들은 단군전 건립이 논의될 때 침묵을 지키거나 더러는 옹호적인 발언을 한 이들도 있다. 이의 대표로 우리는 장공 김재준과 그의 영향 하에 있는 신학자들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유럽의 전통과 영미의 전통을 동시에 수용한 대표적인 인물로 박윤선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요소들이 균형있게 발전되었느냐는 것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형룡이 해방 이후 ‘개혁주의’라는 말이 점차로 많이 쓰여지는 데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개혁주의란 말을 제한 없이 막연히 사용하여 마치 유럽 대륙에서 발전된 개혁주의를 우리 교회에 새로이 직접 수입해 오려는 것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18)
우리는 이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 중에는 박윤선도 있다고 추측된다. 그는 미국 장로교신학교인 웨스트민스터 출신으로서 짧은 화란 유학 시절 이전에 고려파의 신앙 노선을 1950년에 발표하면서, 웨스트민스터신조들을 개혁주의 신앙의 체계로 보며, 신학자로는 바빙크, 카이퍼, 워필드, 하지, 메이천, 벌코프 등을 들고 있다.19) 그는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개혁주의는 “성경을 바로 깨달으려는 주의”로 정의하면서, 성경을 믿되 성경을 바로 해석한 그 내용대로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20) 그가 말하는 개혁주의는 주로 칼빈의 신학을 기조로 삼는다. 그는 주로 칼빈을 인용하면서, 개혁주의 원리들로 하나님의 주권, 성경의 권위, 종으로서의 인간관, 자연과학의 발전에 기여와 수용, 그리고 일반은총의 수용 등을 들고 있다.21)
이런 글에 볼 수 있듯이, 박윤선은 화란신학의 노선에서 칼빈을 수용하며, 개혁신학을 소개하고 정립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개혁신학을 의식하면서 설교한 것은 1937년 이후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유학한 직후부터이다. 그는 C. Van Til의 지도 아래서 카이퍼, 바빙크, 스킬더, 흐로쉐이드, 흐레이다누스, 리델보스 등을 읽고서 특히 강의와 주석에서 그들을 인용하고 소개했다.22) 그가 1960년에 고려신학교를 떠나 총회신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이후, 총신과 이를 떠나 1979년에 개교한 합동신학교도 개혁신학이라는 말을 비로소 즐겨 쓰기 시작했다.23) 이를 볼 때, 또 한편으로는 구라파 대륙의 개혁신학의 전통을 접목하려는 시도도 상당히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신학사상은 개혁주의이며, 그는 말씀과 기도의 목사였다.24)
이렇게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을 간략하게 개괄하면서, 현재의 형편을 점검해 보려고 한다. 한국의 장로교회가 칼빈주의 또는 개혁주의 전통에 속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5)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의 대부분의 현실은 Marsden이 미국에서의 개혁파의 형편을 평가한 것과 비교하면 유사한 점들을 보게 된다. 즉 미국이나 한국의 개혁파 공동체에서는 교리주의, 문화주의 및 경건주의가 공존하면서 시점에 따라 어느 한 조류가 득세하거나 경시당한다. 성경의 권위는 인정되지만, 성경의 주석에 근거한 설교를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백은 서면상 수용하지만, 실제의 목회와 교회 생활에 지침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파의 존재는 사실상 신앙고백적 이유보다는 인간적이요 정치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생성되고 존속되는 면이 강하다. 주석적인 설교를 듣지 못하고 고백에 철저하지 못한 성도들은 개방적이다. 이 개방성은 대표적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데서 나타난다. 게다가 여가 문화의 발전으로 신자들의 예배 참여도는 현저하게 하락하고 있다. 또 많은 성도들이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는데, 신파적인 부흥과 성장이 명목상의 신자들을 많이 양산함과 동시에 이들에게 일상적인 삶에서 성도로서의 문화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을 거의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신학교일수록 그 학교의 학생들은 교실의 가르침보다는 목회 현장에서 성공한 다른 선생들을 많이 두고 있다.
구파적인 보수성이 신파적인 개방성과 적응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즉 박형룡이 비판한 신파적인 전도와 목회 방침을 대부분의 장로교회의 목사들이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순복음운동과 교회성장학이 득세할 때, 개혁신학은 한국형 개혁목회학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신파적인 방법론을 개발한 대형 개교회들이 출현하였고, 성장의 정도에 따라 목회자가 대우를 받는 자본주의적 목회가 정착되고 말았다.26)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 돈과 권력과 성적 타락의 제물이 되고 있다. 특히 장로교회의 직분제도 중에서 목사직은 중세적인 권위를 구가하면서 목사직의 계층화를 야기했고, 목사,장로 간의 힘 싸움은 한국교회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또 신앙고백적 명분이 없이 분열된 교파들은 초교파 연합활동에 열심을 내고 있다.
3. 한국에서의 개혁신학의 과제
1) 주경신학의 강조
60년대부터 90년대 전반까지 한국교회가 누렸던 양적 성장은 이제는 안타깝게도 지난 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거품 경제에 이어 한국교회의 거품 성장은 그 모습이 발가벗겨져 가고 있다. 성장 일변도의 목회 정책에서는 설교의 위치가 중요하지만 큰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설교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지이다. 그런데 한국의 목회에서는 말씀 사역보다는 다른 대인 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목사는 설교자라는 직분보다는 다양한 접촉을 통하여 교인들을 다루는 경영자적인 면모를 지니게 된다.
이런 연고로 한국교회에서 설교다운 설교를 듣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읽고 독자적으로 주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신학 교육 자체가 형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확실하게 구파의 전통이다. 그러나 말씀을 말씀대로 주석하고 주석한대로 설교하여 성도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설교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다. 본문과 설교 자체는 아무런 관련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당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고수한다. 그러나 성경을 구원역사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모범론적으로 해석하고, 아전 인수격의 적용을 시도한다. 성경이 정말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한다면, 어찌 감히 설교의 본문이 되는 성경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신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이 지식은 인격적인 사귐을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모두 신학을 행하며 신학자이다. 다만 학문으로서의 신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중에 있는 자만이 행할 수 있는 특정 형태의 신학일 따름이다. 우리는 길(道)이 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요 14:6).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마 11:27).27) 아들은 계시를 주시나, 오순절 뒤에 아들을 알 수 있는 계시는 성령이 주신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전 12:3). 이와 같이 삼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학이며, 신학 작업 자체는 이미 성령론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영적인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방법은 ‘기도’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지혜를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다. 앞으로의 목회는 말씀에 기초하여 성도들을 사로잡는 말씀 위주의 목회이어야 할 것이다. 이미 신파의 방법론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것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개혁신학의 목회론의 출발점은 성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주경 실력의 함양과 주경 자체에 있다고 할 것이다. 신파적인 교회 부흥에 압도당한 과거를 씼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임을 확신하면서 당당하고 주체적인 목회를 시도해야 하겠다.
성경 언어 교육이 갈수록 저하되는 현상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자세와 불가분의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개혁신학은 성경을 원어로 읽거나 적어도 원문을 ‘콘트롤’ 할 수 있는 설교자를 배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서 언급할 연합 사업의 일환으로 개혁신학에 서 있는 성경 주석의 간행 사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화란 교인들의 가정에 한 질씩 꼿혀 있는 구약,신약 주석(Korte Verklaring)은 바빙크의 제안과 독려를 주석학자들이 수용하여 공동 작업을 통하여 이룩한 노작이다. 교회를 성경 비평적인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변증학적인 노력에 앞서서 올바른 주석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 목회 현장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
신파적인 조류가 현장에 대한 관심을 크게 보이는데, 이 때문에 성경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여 질 위험은 상존한다. 이에 반하여 구파의 경향에는 현장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현장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보다는 폐쇄성을 추구할 때 자주 나타난다. 성경 본문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장과 설교의 대상인 청중에 대한 이해를 아예 무시하거나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신학은 교회의 학문이다. 즉 교회가 목회를 위하여 영위하며 목회 현장을 염두에 두고서 신학 연구와 교육은 이루어져야 한다. 흔히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는 성장되지 않거나 그 속도가 떨어진다는 말을 한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으나, 목회는 사람을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김인데, 청중을 고려하지 않는 설교나 목회는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이 오로지 천박하고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방법론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신학은, 설교자에게 영감을 주어야 하고 신자에게 삶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어야 한다. 교회의 목회적 현실을 섬기려는 자세가 아니라 학적 성취 만을 추구하는 성경 연구는 맹목적이며, 성경적 근거 없이 교육학, 대중 문화, 경영학, 심리학과 철학에서 목회 기법을 도입하는 목회는 공허하다. D.F. Wells는 미국의 복음주의가 신학을 무시하고, 현대의 저급한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맹공을 가한다. 그는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지 않은 목회 기법은 결국은 신학적 자유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고 경고한다.28)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의 선교로 복음화된 이상, 미국교회의 영향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미국에서 도입된 경영학적인 교회 경영 방식과 심리학적인 교인 이해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자본주의적 시장 경영식 목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29) 그러므로 신학교육이나 목회는 신학적 기초 위에 실천적이어야지, 오직 목회 현장 만을 중시하는 직업교육이나 목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30)
이 현장을 문화라는 말로 표현하자면, 건전한 의미에서의 ‘토착화’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토착화나 민중신학론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정하기 전에 우리는 한국의 개혁교회 안에도 ‘토착화 작업’이 은연 중에 진행되었고, 또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만열은 한국 문화와 기독교의 접촉에서 물질 문화는 ‘적응’했고, 행동 문화는 ‘충돌’했고, 정신 문화 특히 기독교의 가치관은 도리어 한국 문화에 ‘몰입’되어 갔다고 분석한다. 그는 한국 기독교의 인간관과 가치관 등에서는 성경 본위의 기독교 본래의 성격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31) 일차적으로 바로 이런 부분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따라서 세상성(인간 문화 일반)에 대한 비판 없는 문화 신학이란 문화종교론일 뿐이며, 인간과 하나님의 구분 없는 합일이란 문화신학의 현상적 신비주의일 뿐이다.”32) 총체적 개념으로서 문화 자체는 그것의 우상성과 더불어 먼저 십자가의 신학에 의하여 심판받아야 한다. 이런 비판적 관점에서 교인들의 삶의 터전인 현사회에 대한 연구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와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나 맹목적인 수용은 경계되어야 한다.
3)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시도
한국교회의 성장과 더불어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특히 오순절운동의 성령론이 개혁파 목사들과 목회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와중에서 특히 오순절운동과 마틴 로이드 죤즈의 ‘성령 세례론’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총신의 차영배의 특유한 성령론은 장로교회 안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고신교단도 한 동안 성령론 논쟁의 진통을 겪었다. 한국교회는 교회 성장을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면 단순 논리로 성장과 부흥이 없거나 미약한 곳에는 성령님이 사역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가능할 수 있겠다. 물론 성령님의 사역을 떠나서 교회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을 유도할 수 있다면, 결국 성령님의 자유는 제한되며, 과연 성령님의 진정한 사역인지 의심되는 현상들이 한국교회 안에는 비일비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령 사역을 특정한 과시적인 현상들에만 국한했던 성장 일변도의 성령론 이해를 개혁신학은 분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개혁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교의사적으로 볼 때 개혁의 의미는 성령론의 발견과 발전에 있다”.33) 개혁은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이 중세 교회의 제도 속에 갇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중세는 성령님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경배하기는 했지만, 일차적으로 사역이나 사역의 결과로 파악하였고, 특히 인간 속에 부어져서 신앙과 사랑을 이루는 은사(donum)로 이해하였다. 성령은 바로 성례를 통하여 부어진다고 가르쳐졌다.34) 이것은 성령의 물화(物化)이에 반하여 개혁자들은 성령이 성부의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진리를 전파했다. 이런 식으로 삼위일체론이 설교를 통하여 선포되었다. 성령님의 주된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심이며, 이 믿음이 없이는 성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렇게 칭의와 선택도 삼위의 사역임을 개혁은 발견하였다.35)
흔히들 개혁신학에는 성령론이 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 간략하게 소개된 이 기조를 떠나면 이미 개혁의 후예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다. 지금까지 성령 사역으로 알려진 과시적인 은사들은 성령 사역의 지극히 적은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포괄적으로 성령론을 파악하려고 한다.
먼저 성령강림은 일차적으로 구원서정에 포함되기 보다는 구원역사적인 사건이다.36) 이스라엘은 첫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그리고 오순절 없이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 그리스도의 죽음/부활과 상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37) 이처럼 오순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의 최고 목적이다.38) 그리스도의 구원은 성령에 의하여 그의 몸인 사도적 교회에 주어지며, 이는 교회의 성령론적 측면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성육신과는 달리 성령강림은 단회적이지 않고, 첫 사건이다.39)
우리는 이미 살펴본 성령님의 사역을 근거로 하여 성령론을 확대해야 함을 주장하고 싶다. 사도신경에는 비교적 장황한 기독론의 고백 뒤에 ‘성령을 믿는다’는 간단한 고백만이 나온다. 그러나 실상은 바로 뒤에 성령 사역의 장소로서 교회가 언급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죄를 체험하고 종말론적인 영생을 소망한다.40) 즉 교회와 사죄 체험 및 종말론적 영생의 기초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터’(고전 3:11)이시며, ‘화목 제물’(롬 3:25)이시요, 우리의 ‘마지막’(계 1:8)이시다. 그렇지만 이것들의 구체적 실현은 성령님의 사역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구원론, 교회론 및 종말론은 바로 종말론적인 성령의 사역이다. 그런데 성령론의 특징은 하나님과 우리가 ‘동역자’(고전 3:9; 고후 6:1; 살전 3:2, συνεργος; 막 16:20)로 사역하는데에 있다(IV,i,6).41)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성령론이 없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
구약에서의 성령의 사역은 소위 신령주의적 의미에서 ‘영적’이지 않던 것처럼, 또 오순절 성령 강림 시에 나타난 강한 바람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짐과 방언 등에서와 같이 성령은 가시적이며 육체적인 방식으로 사역하신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성령 사역은 이처럼 성령론적인 가현설을 거부한다42) 우리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의 성령이나, 우리의 과제는 성령 사역의 ‘상대적 독자성’이다. 성령 강림 자체는 성육신과 비견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요, 시도이다43). 일차적으로 ‘성령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이 확립된다. 성령이 하나님과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라면, 성령은 먼저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할 뿐 아니라, 우리 상호 관계와 나아가 우리를 담고 있는 세계와도 연결한다. 전자를 특별 사역이라 하며, 우리가 이것을 집중적으로 다를 것이나, 일반 사역인 후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일반 사역은 대개 ‘일반은혜’이라는 관점으로 논의된다. 성령은 또한 성도의 ‘신격화’(벧후 1:4)를 주관하신다.
4)교회 연합을 선도하는 개혁신학
한국교회의 토착화론이 지닌 큰 약점이 있다면, 反서구적인 기치 아래 취하는 反敎義적인 태도일 것이다. 이것은 단지 서구 사상 자체에 대한 비판의 정도를 넘어서서 성경 자체도 서구 사조로 가득 차 있다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한다.44) 이런 태도는 반역사적이거나 무역사적인 지경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혁신학은 “성경을 바로 깨달으려는 주의”로서 톡특성과 동시에 포용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즉 동서양의 모든 신학을 포괄하는 카톨릭(보편적) 신학을 수립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합된 신앙고백이 작성되어야 할 것이요, 이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45)
교회의 단일성은 선물이면서도 우리의 사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분열(σχισμα, 고전 12:25)을 하나의 조건으로 유전받았다. 고대교회의 교의 결정은 많은 이단들을 축출했고, 동서교회의 대결은 결국 분열로 종결되었다(1054). 16세기의 개혁은 서방교회의 분열을 의미한다. 개혁 안에도 각양 교파로 분열되었고, 특히 국가교회를 대항하여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교회’는 미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의 배경도 이런 ‘자유교회’이다. 그러나 초기 장로교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설립하였고 교구 제도를 고수하였다. 이 아름다운 교회연합을 한국교회는 파수하지 못하고, 수 많은 분열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한국 개신교회, 특히 개혁교회의 안목은 지극히 제한되고 말았다. 특히 우리에게 루터파나 성공회는 생소하며 로마교회에 대한 이해는 아주 피상적이다. 더우기 동방교회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하다 하겠다. 이는 ‘공교회’에 대한 고백이 실천되지 못하고 있으며, 신학 연구의 안목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좋은 증거이다. 이 현상은 보수주의를 표방할수록 강하게 나타난다.46)
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조각내는 것이다(요 17,21). 칼빈은 “교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인함이다”47)고 말한다. 실제로 칼빈은 개혁의 교회를 단일교회로 연합하기 위하여 이론이나 실천에서 어떤 개혁자보다도 더욱 열심이었고, 단연 주도적이었다. 그를 ‘공교회주의자’라 칭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48) 또 육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거역한다.49) 연합은 우리의 사명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다는 것은 다양성을 의미한다(고전 12:29). 이것을 개혁은 만인제사장직으로 인정한다. 공교회성(고전 12:13)에 대한 무지나 무시는 하나의 은사를 절대화하는 식으로 대개 나타난다. 이에는 반드시 정죄(고전 12:14 이하)가 뒤따르고, 분열의 불씨가 배태된다. 다만 여기에 한 은사가 결여되어 있다(고전 13:1 이하). 곧 모든 은사를 꿰는 고리는 사랑이다(엡 4:3).
한국교회는 교회사에서 전무후무한 양적 성장을 기록했다. 이제는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에게까지 사랑 안에서 성장해야 하겠다(엡 4:15-16).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엡 4:12). 그러나 우리는 성장의 한 요인으로 분열을 꼽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50) 죄와 마찬가지로 교회분열도 하나의 음울한 수수께끼로서, 있을 수 없으면서도 있는 현실인데, 이에는 현실 인정을 통한 해명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회개와 자복만이 있을 뿐이다.51) 한국교회는 칼빈의 공교회적인 연합의 자세를 배워서, 사랑 안에서 참된 연합을 함으로 세계교회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52) 한국 개혁신학은 교회성장을 성경적으로 잘 정돈하며, 또 이 연합에 선도 역할을 맡아서, 진정한 의미에서 칼빈의 후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직분 간의 알력, 교회가 아닌 기관의 신학교육 관여53), 초교파적 활동에 대한 당연한 태도 등 교회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도 개혁신학의 후예들은 함께 풀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소여로서의 교회의 단일성은 현실적인 분열에 대한 반성과 회개 없이는 고백될 수 없다. 이것은 이 단일성을 이루신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은혜와 성령의 교제에 비추어 철저하게 자기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즉 분열된 현실이 아니라 회개와 자기비판 속에서 은사로서의 교회의 단일성을 연합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출발하면서 소망을 가지고서 나누어져 있는 교회들을 향하여야 한다. 분열이 일어났던 과거가 아니라, 상대교회의 현재의 모습을 일단은 사랑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기 교회가 아니라 상대 교회를 중심으로 삼는 태도의 전회이다. 이때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잣대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성령의 은사로서의 인내가 어떤 다른 곳보다 더 필요하다. 교회연합의 실현은 하나님의 선물로서만 주어질 것이다.54)
바로 이런 연합 작업에 개혁신학은 앞장서야 할 것이다. 성도의 모든 삶은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표현일 따름이다.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닫고, 현장인 교회와 사회를 직시하면서 신지식의 확장을 꾀할 때, 개혁신학은 필시 공교회적인 사명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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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본고에서는 개혁신학, 개혁주의, 개혁파 등의 용어들을 자유롭게 동의어로 사용할 것이다.
2). 김영한, ⌈현대신학과 개혁신학⌋ (서울: 한국기독교사상연구소, 1990), 297.
3). H. Heppe, Ursprung und Geschichte der Bezeichnungen 'reformirte' und 'lutherische' Kirche, Gotha 1859, 68-95.
4). L. Coenen, "Reformierte Kirchen", in H. Burkhardt & U. Swarat, ed., Evangelisches Lexicon fur Theologie und Gemeinde III, Wuppertal-Zurich 1994, 1670-1672; J.T. McNeill, The History and Character of Calvin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4); J.H. Leith, Introduction to the Reformed Tradition.
5). 이런 시도는 Schleiermacher, Neander, Mohler, Schenken, Hase, Schweizer, Baur, Biedermann 등 19세기 신구교 신학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H. Voigt는 Johann Gerhard(1582-1676) 이후에 이런 구분이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Fundamentaldogmatik, Gotha 1874, 366-396.
6). Die Glaubenslehre der evangelisch-reformierten Kirche, dargestellt und aus den Qullen belegt I, Zurich 1844, 42-43. 그는 성만찬론을 예로 들면서 로마교의 화체설은 피조물 숭배이며, 루터파의 공재설 역시 이 흔적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개혁파의 영적 임재설은 우상 숭배를 완전히 벗어난 발전이라고도 한다. 물론 그는 개혁파 예정론에서 피조물이 아니라 오직 주권자 하나님의 지배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cf. B.A. Gerrish, "Grace and Limits of History: Alexander Schweizer on Predestination", in idem, Tradition and the Modern World, Chicago 1978, 99-150.
7). 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Kampen 41927, 151. 이런 입장은 카이퍼(1837-1920)에게서도 발견된다, A. Kuyper, Encyclopaedie der heilige godgeleerdheid I, Kampen 21908, 214; Het calvinisme, Amsterdam-Pretoria 1899, 15. 카이퍼와 바빙크의 지도교수였던 J.H. Scholten(1811-1885)은 A. Schweizer를 읽고서 개혁파로 개종한 인물이었으며, 그도 동일한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De leer der Hervormde Kerk II, Leiden 41870, 1ff; G.B. Wurth, J.H. Scholten als systematisch theoloog, 'S Gravenhage 1927, 196.
8). 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100; cf. 420. 벌코프의 작품이 수십년간 한국 신학교육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가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는 편인데, 연구할만한 주제로 여겨진다.
9). 사실 19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런 식의 루터파와 개혁파의 구분은 이제는 의미를 잃었다, G.C. Berkhouwer, Geloof en rechtvaardiging, Kampen 1949, 47-71; idem, De persoon van Christus, Kampen 1952, 241f; idem, De verkiezing Gods, Kampen 1955, 32f, 342f, 372f; J.T. Bakker, Coram Deo, Kampen 1956, 19, 72, 83, 89; W.H. Velema, De leer van de Heilige Geest bij Abraham Kuyper, 'S-Gravenhage 1957, 50. 이런 식으로 원리를 파악하려는 운동의 후유증으로 우리 한국교회는 원치 않는 피해를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루터에 대한 올바른 연구와 이해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속히 해결되어야 할 신학적 과제로 여겨진다.
10). G.M. Marsden, "Reformed and American", in D.F. Wells, ed., Reformed Theology in America: A History of its Modern Development (Grand Rapids: Eerdmans, 1985), 1-12.
11). 김영재, ⌈한국교회사⌋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142-156, 특히 145-147. 그는 전성천과 한철하의 평가를 싣고 있다. 박용규는 마포삼열의 표준성경주석의 서문을 인용하면서 선교사들이 웨스트민스터신조들을 상당히 존중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장로교사상사⌋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2), 70. 그러나 그는 전성천만 인용할 뿐, 한철하는 인용하지 않는다.
12). 박용규는 개혁주의를 강조하고 전통적인 칼빈주의를 주장했던 초기 선교사들이 세대주의 종말론을 앞장 서서 보급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상게서, 287.
13). 박아론, “박형룡의 신학사상”, 신학사상, 제 25호, 1979, 여름, 212.
14). 박용규, ⌈한국장로교사상사⌋, 305; 박용규, “박형룡 박사와 근본주의”, 박용규 편,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6), 331-403, 특히 351, 402 참조.
15). 박형룡,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1976), 박용규 편,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35-52, 특히 37.
16). 김영재, 상게서, 347-348. 그는 이 문맥에서 신파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17).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서울: 전망사, 1982), 334-337.
18). 박형룡, 상게 논문, 48.
19). 김영재, ⌈한국교회사⌋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283.
20). 박윤선,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정암 박윤선목사 자서전. 성경과 나의 생애⌋ (서울: 영음사, 1992), 79-82.
21). “바른 신학: 개혁주의 신학의 주요 원리”, ⌈정암 박윤선목사 자서전. 성경과 나의 생애⌋ (서울: 영음사, 1992), 199-213.
22). 정성구, “박윤선 목사의 신학과 설교 연구”, 합동신학교출판부 편,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 (수원: 합동신학교, 1995), 392 이하. 정성구는 한국장로교회에서 칼빈연구를 처음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34년도 ⌈신학지남⌋이며, 1937년에야 처음으로 Hamilton선교사가 ⌈신학지남⌋에 칼빈주의라는 말을 처음 쓰면서 3회에 걸쳐서 칼빈주의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형룡도 같은 해에 L. Boettner, The Reformed Doctrine of Predestination을 ‘개혁주의’가 아닌 ⌈칼빈주의 예정론⌋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했다, 395.
23). 박용규, “박형룡 박사와 근본주의”, 박용규 편, ⌈죽산 박형룡 박사의 생애와 사상⌋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6), 402. 박용규는 각주 145번에서 이를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4). 박형용, “박윤선의 생애와 신학 사상”,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 106-108; 김명혁, “말씀과 기도의 목사, 박윤선”, ⌈박윤선의 생애와 사상⌋, 92-96.
25). 김영재, 상게서, 30.
26). 기독교 종교사회학자인 노치준은 한국교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개교회주의’로 부르고 있다, “한국 교회의 개교회주의”, 이원규 편저, ⌈한국 교회와 사회⌋ (서울: 나단, 1989), 39-69.
27).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님은 교훈하셨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 없이 알려지지 않는다. 성자의 계시를 받은 자마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 Irenaeus, Adversus haereses, IV,vi,4. 하나님은 하나님에 의하여 알려진다는 말은 성자는 성부를 계시한다는 말이다(마 11:27). “하나님을 그 사역들로부터 출발하여 ‘근원자’라 명명하는 것보다는 성자로부터 출발하여 ‘성부’라 부르는 것이 훨씬 경건하며 정확하다”, Athanasius, Discourses Against the Arians, I,ix,34.
28). D.F. Wells, No Place for Truth, Grand Rapids 1993, 97-115.
29). G.M. Marsden, Reforming Fundamentalism: Fuller Seminary and the New Evangelicalism (Grand Rapids: Eerdmans, 1987), 243.
30). E. Farley, Theologia: The Fragmentation and Unity of Theological Education (Philadelphia: Fortres Press, 1983), 127ff.
31). 이만열, “한국 문화와 기독교”(1987), 기독교사상 편집부 편, ⌈한국의 문화와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76-78. 오순절 운동이 한국 개혁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 운동의 대표적이 교회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이다. 이 교회는 한국교회가 성장했을 때, 기독교가 한국인의 종교의식 혹은 심성을 잘 헤아려서 기독교의 신앙으로 해답을 주력했다고 자평한다. 즉 그 교회의 성장의 비결 중의 하나는 ‘토착화’라는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편, ⌈오순절 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서울: 1993), 69.
32). 김지철, “‘한국문화신학’은 십자가의 거침돌을 제거했는가?”, 한국기독교학회 편, ⌈복음과 문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159. 김의 이런 류의 발언에 대하여 김경재는 “해석학적 원리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한국문화신학 형성과 ⌈기독교사상⌋”, ⌈한국의 문화와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188.
33). J. Koopmans, Het oudkerkelijk dogma in de reformatie, bepaaldelijk bij Calvijn, Wageningen 1938, 102. Luther, Zwingli, Bucer와 Calvin은 각각 ‘성령의 신학자’라는 별호를 받았다, Y.-B. Choi, De verhouding tussen 'pneumatologie en christologie' bij Martin Bucer en Johannes Calvijn, Leiden 1996, 7.
34). R. Seeberg,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I, Leipzig 31920, 375.
35). Koopmans, 104.
36). Contra 차영배, “R.B. Gaffin 교수의 견해와 그 문제점” (1989), ⌈성령론⌋ (서울: 경향문화사, 1990), p. 50. 그는 R.B. Gaffin과의 논쟁에서 이런 주장을 관철하려고 H. Bavinck를 인용하는데, 그의 시도는 정당하지 않다, 유해무, “바빙크와 제2의 축복”, ⌈개혁신학과 교회⌋ 제 2호, 부산, 고려신학대학원, 1992, 31-57.
37). 유월절과 오순절은 연대기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경륜적으로는 나눠질 수 없다. 삼위 하나님의 본체, 의지 및 사역에서의 단일성은 양대 잔치로 동일하며, 같은 구원사역을 보완적으로 완성한다. 성자의 파송을 받은 성령은 유일한 목적, 곧 교회시대에서 성자의 사역을 완성하는데 있다, J. Breck, "The Lord is the Spirit", in G. Limoris, ed., Come, Holy Spirit, Renew the Whole Creation, 1991, 66.
38). N.A. Nissiotis, "The Importance of the Doctrine of the Trinity for Church Life and Theology", in The Orthodox Ethos (Oxford: Holywell Press, 1964), 62.
39). 칼빈은 “이 능력이 사도들의 말에서만 시위되었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날마다 계시되어진다”고 주석한다, Calvin, The Acts of the Apostles I, 51(행 2:2); “Der Heilige Geist aber wurde Pfingsten ausgegossen, um immer wieder ausgegossen zu werden. ... Das Herabkommen des Geistes aber ist nicht nur das Ereignis der Pfingsten, sondern der Anfang einer in der folgenden Zeit sich uber die ganze Erde ausbreitenden Geistausgießung. ... Der Empfang des H. Geistes treibt den Menschen nach vorwarts zum Empfang immer neuer Geistesgaben bis hin zur volligen Verwandlung seiner Verganglichkeit in die neue Kreatur", Schlink, Okumenische Dogmatik, 538; cf. 720.
40). Y. Congar, Je crois en l'Esprit Saint (1979-1980), ubergez. von A. Berz, Der Heilige Geist (Freiburg, Herder, 1982), 45ff, 53ff. 그러나 성령을 ‘교회의 영’으로 전락시킨 로마교의 이전 오류는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성령을 ‘종교적 인간의 영’으로 만든 개신교의 어떤 오류 역시 피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T.F. Torrance, “The Relevance of the Doctrine of the Spirit for Ecumenical Theology”, in idem, Theology in Reconstruction, 229-239를 참조하라.
41). 이것이 성령 사역의 구원역사적 요소이다, O. Cullmann, Christus und Zeit (Zurich 1946), 203; W. Kreck, Grundfragen der Dogmatik, Munchen 31985, 28.
42). O. Weber, Grundlagen der Dogmatik I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55), 598; II, 269-270. 그는 성령론적 종속설도 없다고 주장한다. 성령론적 종속설이란 세상적인 소여와 인간적인 자질 위에다 성령의 능력을 상급처럼 관 씌우려는 모든 시도를 말한다.
43). A.A. van Ruler, Theologisch werk II, 50; V, 166; VI, 9-14.
44). 김광식, “기독교의 토착화 시론”, 기독교사상 편집부 편, ⌈한국의 신학 사상⌋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3), 259-278.
45). 이는 차영배의 입장이다. 김영한, ⌈현대신학과 개혁신학⌋ (서울: 한국기독교사상연구소, 1990), 510에서 재인용.
46). 20세기 초 인도교회의 연합, 캐나다와 호주 교회의 연합에 성경 비평과 신학적 현대주의의 영향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연합운동 자체가 보수주의의 무관심을 정당화시키지는 않는다.
47). 칼빈, ⌈기독교강요⌋, IV,i,10.
48). W. Nijenhuis, Calvinus Oecumenicus. Calvijn en de eenheid der kerk in het licht van zijn briefwisseling, Hague 1959.
49). “Jede Spaltung der Kirche unter volkischen oder rassischen Gesichtspunkten und vollends die Spaltung in juden- und heidenchristliche Gemeinden ware die Verleugnung des Heiligen Geistes", Schlink, Okumenische Dogmatik, Gottingen 1983, 540.
50). H.A. Snyder, The Community of the King, Downers Grove, Illinois: IVP, 1977, 128-132; 한역, 그리스도의 공동체, 김영국 역, 서울: 1987, 173-177. 스나이더가 소그룹의 확장이라는 건전한 입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불필요하게 교회는 은사적이지 제도적이지 않기 때문에, 분열에 의한 성장을 정당화하려는 점에는 따를 수 없다. 이는 속회나 구역회를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의 발전으로 보는 그의 감리교의 배경에서 연유한다. 우리는 교회성장의 이름 하에 분열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반대할 뿐, 분리 개척과 이에 의한 교회성장을 장려한다. 부산 영도의 제1영도교회가 주축이 되어 영도 지역에 10번째 교회를 지금까지 분립, 개척한 것은 아주 훌륭한 귀감이다. 스나이더는 결론 부분에서 이에 근접하는 제안도 한다, 185; 한역, 250; cf. D. Watson, I Believe in the Church, London 1978, 331-355.
51). 가시/불가시적 교회의 구분이 교회의 연합을 방해하는 이론적 근거로 오용될 수도 있다, G.C. Berkhouwer, De kerk I, Kampen 1970, 42f.
52). 니버(Richard Niebuhr)는 교회 일치를 위하여 미국교회의 분열의 경제적, 정치적, 지역적, 문화적 및 인종적 배경을 종교사회학적으로 잘 분석하고 있다,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1929), 노치준 역, 서울: 1983. 그는 애초에 신조를 중심하여 미국교회의 분열상을 분석하려고 했으나,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다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한국교회에는 교회일치를 위하여 이런 방법 뿐 아니라 신조의 관점에서도 한국교회의 분열역사의 배경을 살피려는 노력이 너무나 미진하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있어야 될 것이다.
53). 가령 ‘횃불회’와 같은 단체는 대단한 재정적인 위력으로 교회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54). 교회연합에 대해서는 E. Schlink, Okumenische Dogmatik, 694-708을 참조하라.
55). 신학 연구의 자립을 위하여 유능한 신학자 양성과 도서 확보 및 연구 환경 조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연합을 통한 신학 연구의 자립을 위하여 동서양 고전을 읽을 수 있는 專門 언어교육기관의 설립을 고려해볼 만하다.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신학 고전들을 원전에서 번역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한, 신학의 독립은 요원하리라 본다. 또 토착화의 작업을 위하여 한문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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