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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신학

by 【고동엽】 2021. 11. 10.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신학

손석태 (철학박사, 개신대학원대학교 총장)

1. WTS의 개교 역사


미국의 신학 교육은 18세기까지 특별한 제도나 학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느 목사라도 자기의 학생을 자기가 데리고 지도하고 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경우 일반적으로 인정된 교과과정도 없었다. 그러던 중 1812년 뉴저지의 프리스톤에 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의하여 Theological Seminary of Presbyterian Church 가 공식적인 신학교로 처음 설립되었다. 이 신학교는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와 Catechism을 그들의 교리와 신학의 표준으로 삼았다. 프린스톤의 첫 교수는 당대의 최고의 신학자였던 Archibald Alexander였다. 그로부터 프린스톤의 모든 교수들은 철저하게 개혁주의 신앙(Reformed Faith)을 신봉하여 개혁신학의 유지와 발전과 전파에 혼신을 다하며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프린스톤 신학교는 New England와 New School Theology에 반하여 the Old School Theology의 성경적 체계를 고수하였다. Archibald Alexander를 이은 교수들로는 Charles Hodge, J. A. Alexander, B.B. Warfield 그리고 Gresham Machen 등이었다.


PC USA의 프린스톤 이사회는 1924년의 Auburn Affirmation 의 서명에 동참한 두 사람을 이사로 선출하게 되어 지금까지 견지해온 Old School의 신학적 전통이 흔들리게 되었다. Auburn Affirmation은 1910년 종래의 보수주의자들이 목사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Five Point Deliverance (1. 성경의 영감과 무오,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속적 죽음, 4.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5.예수 그리스도의 생시의 기적 행하심)에 대한 반대 운동이었다. 1929년에 이르러 프린스톤 신학교는 modernist들과 indifferentist 들의 세력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프린스톤 신학교의 교수들 가운데 Robert Dick Wilson, J Gresham Machen, Oswald T. Allis and Cornelius Vantil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Reformed Faith를 사랑하고 충성하며, 여전히 프린스톤 125년의 전통적인 성경을 중심한 신학을 가르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1929년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여 Reformed Faith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2. WTS 의 창립자, 메이첸과 그의 신학


메이첸은 19세기 말 고등비평, 무신론적인 진화론, 그리고 막스의 사회주의 등이 신학과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적 배경 가운데 한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사립학교를 거쳐 1901년에 John Hopkins University를 졸업한 후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에 들어갔다. 프린스톤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논문을 썼으며, 이 논문은 후에 Prinston Theological Review (1905-6)에 게재 되었다. 이후 그는 독일의 Marburg로 가서 Adolf Jülicher, Johanes Weiss, Wilhelm Herrmann등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Princeton에서 배운 그의 신학적 입장을 심각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Machen 은 Marburg에서 당대의 가장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자 W. Wousset 가 있는 Götingen으로 갔다. 그러던 중 그는 1906년 Princeton 신학교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고 이를 수락하여 신약학 Department 소속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교수 생활을 하며 1914년에야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Princeton에서 W. P. Armstrong, Francis Patton 등의 도움으로 독일에서 받은 자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1912년에 그는 Christianity and Culture 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리고 1915년에는 History and Faith를 출판하게 되며, 이 두 책은 Machen 신학의 기초가 된다.


Machen이 자유주의 영향력으로부터 그의 전통적인 신앙을 회복해가며, 그는 성경의 고등비평의 파괴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를 대항하는 길은 역사적 자료에 대한 강조와 적절한 “상식적인 성경의 해석” (common sense inter- pretation)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의 역사적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강조하고, 현대주의자(Modernist)들의 신학을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1926년에 이사회에서는 그가 변증학 교수가 되기를 원하였고, 메이첸도 이를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사장 J. Rose Stevenson 이 주도하는 이사회 (the Board of Director)에는 이를 반대하였다. 이로 인하 여 the Board of Director는 해체되고, 새로 a Single Board of Trustees 가 학교를 장악하게 되었고, 이들 가운데는 Auburn Affirmation 에 서명한 두 명이 이사로 임명되었다. 메이첸은 이들과 자연히 갈등을 겪게 되었고, 1929년에는 결국 프린스톤의 교수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메이첸은 그와 뜻을 같이 한 자들과 더불어 1929년 가을에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새로 세우게 되었다. 메이첸은 그의 개교 연설에서 분명히 WTS가 Old Princeton의 신학적 전통을 이은 후계자가 될 것을 천명하였다.


“나의 친구들이여, 비록 프린스톤 신학교는 죽었을지라도 , 프린스톤 신학교의 숭고한 전통은 살아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전통이 손상됨이 없이 계속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는 모호함과 타협에 기반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는 정직한 기반 위에서 구 프린스톤의 지켜나갔던 동일한 원리들을 지켜나가는 데 힘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메이첸은 개교 연설에서 성경의 무오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기술된 개혁주의 신앙을 지킬 것을 천명하였다. 메이첸은 신약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15년에 “역사와 신학” (History andy and Theology)에서 “신약을 공부하는 학생은 먼저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모든 성경의 중심과 핵심은 역사이다”(The student of the New Testament should be primarily an historian. The center and core of all the Bible is history.)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역사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증명하기 위하여 힘썼다. 이러한 소신 때문에 그의 역사적 문법적 성경 주석은 항상 강해적이고, 변증적이었다.


메이첸의 성경관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혁주의 입장을 따랐다. 그는 기계적 영감(the mechanical type of dictation)을 부인하였다. 반면에 그는 성경의 저자들이 그의 개인적인 자유로 여러 정보나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사용하였으나 그 사료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은 참으로 무오한 (truly infallible) 것이며, 사람의 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in the word of man)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법적-역사적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 복음주의자나 개혁주의자들은 건전한 기독교 신학의 참 기초와 원천이 되는 과학적 역사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메이첸의 신관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섭리로 항상 끊임없이 그의 창조물을 돌보시며, 통치하신다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앙을 견지하였다. 메이첸은 특히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강조하였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대로 믿는다(We can believe in him only as we know him) 고 그의 저서 What is Faith? 에서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자연과 우리의 영혼과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그 자신을 계시하신대로 그를 알아야 하며, 우리가 그를 알 때는 그를 믿고 그의 주권적인 은혜에 우리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이첸의 인론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이다는 전제하에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으나 스스로 하나님과 화해할 마음이 없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찾아와 손을 내밀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의 인간론은 그의 사후 그가 라디오 강좌에서 강의한 것을 출판한 것으로 The Christian View of Man이 있으며, 이 책에서 인간의 창조, 생명의 언약, 인간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 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인간의 타락 교리(The Doctrine of Fall)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메이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한다. 그의 책 The Virgin Birth of Christ (1930) 와 The Origin of Paul's Religion (1921)은 다같이 동정녀의 몸에서 낳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증거하고 주장한다.


메이첸의 구원론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Justification by faith alone)는 것으로 개혁자들의 그것과 동일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대의 일부의 개혁주의자들 처럼 “순종이 믿음의 일부이다.”(Obedience is part of faith), 즉 “Justification by obedient faith"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그에게 행위라는 것은 믿음의 결과이지 믿음의 일부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의 결과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확언한다. 성령에 대해서 메이첸은 따로 특별히 강조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논할 때는 빠짐없이 성령의 역할을 언급한다. 구원론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우리 죄인들에게 적용하는 일은 성령의 역사이며(The application of Christ's saving works is action of the Holy Spirit), 사람의 중생과 성화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메이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그리스도께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 점은 교회의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1934년 졸업식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어떤 다른 권위로부터 얻은 것이라면, 만일 여러분이 그것을 총회나 노회의 공고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면 여러분 은 목사의 가운은 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는 목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에수 그리스도께 불충한 것이고, 여러분은 고귀한 신임을 배반 하는 것입니다.”


이 때는 Independent Board와 갈등 가운데 있는 때이기도 하였지만 메이첸은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성령으로 조명된 성경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의 생활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칼빈의 가르침대로 성령과 말씀의 불가분리의 관계를 견지하였다.


메이첸의 종말론은 무천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일찍이 PCA에서 Westminster의 신앙고백을 개정하려고 할 때에 전천년설에 대한 여지를 남기려는 시도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하였다. 메이첸은 전천년설에 대하여 “잘못된 성경 해석법” 때문에 틀린 것이고 결국에는 해로운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첸은 그것이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기에 전천설을 믿는 이들과도 얼마든지 성도의 교제를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세대주의에 대해서는 개혁교회의 신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보기에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였기에 전통적인 전천년설과 같은 천년 왕국에 대한 견해를 가졌지만 본질은 세대주의적 체계 안에서 전천년설을 신봉하기 때문에 이 둘이 결코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코필드의 가르침에 대하여 “만약 여기 저술된 내용들을 저술된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신앙은 개혁교회의 신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런 사람은 장로교 내에서 목사나 장로 또는 집사가 될 권리가 없다”고 선언했다. 메이첸은 세대주의가 자유주의 못지않게 잘 못 된 신학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리고 역사의 완성하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consummation of all things). 특히 그는 만물이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생에 대한 소망을 굳게 믿었다.


3. 웨스트민스터의 신학


메이첸의 신학은 메이첸 개인의 신학이 될 수 없었다. 그의 신학과 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신학적 뿌리요 뼈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실바 교수는 그의 교수 취임 연설에서


“개혁신학에 대한 뜨거운 헌신, 역사적 전통 수호에 있어서의 숭고한 열정, 성서 원 어에 대한 주석의 강조, 경건과 지성을 조화시키려는 다짐, 반대 견해에 대하여 학자 적 정중함과 완벽성으로 대처하려는 의욕, 이리저리한 특성들은 서로 결합되어 프린 스톤 신학교의 개교로부터 1920년대까지 교계와 학계에 탁월한 존재가 되게 하여 주 었으며,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설립 동기도 그러한 탁월성을 보존하려 는 것이었다.”


고 웨스트민스터의 설립 동기를 말한다. 프린스톤은 분명 시대적 사명을 안고 설립되었으며, 100여년 동안 좋은 학문적 신앙적 전통을 이어왔지만 대륙을 건너 New England를 강타한 자유주의의 바람은 결코 막지 못하였다. 웨스트민스터신학은 구 프린스턴의 이러한 신학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3.1 성경의 영감과 무오


웨스트민스터 신학의 출발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이다. 그래서 실바 교수는 “성경 무오와 그 함의하는 바가 웨스트민스터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실로 적어도 현 교수진은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그 호흡이라는 신념을 포기하느니 연구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만큼 성경의 영감과 무오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신학적 대전제이었다. 메이첸이 100년동안 지켜오던 구 프린스턴 신학교의 신학 전통, 즉 Five Point Deliverance를 Auburn Affirmation으로부터 지키려고 했던 것도 바로 성경의 영감과 무오로부터 출발한다. 메이첸은 프린스톤에 불기 시작한 자유신학의 바람, 특히 고등비평이근본적으로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부인하는 것이며, 동정녀 탄생이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성경의 영감이나 역사성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이를 변증하고 수호하는 것이 프린스톤 100여년의 신학 전통은 물론 기독교 자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학은 자연히 성경의 영감과 무오의 교리가 그 출발점이 된 것이다.


메이첸 이후 웨스트민스터 교수들은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지키기 위하여 1946년 The Infallible Word (무오한 말씀)을 출간하였다. 이는 WTS 교수들의 성경에 대한 그들의 신학과 신앙을 천명하는 글이었다. 이 책은 처음에는 미국의 신학계와 교회에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지만 차츰 학계와 교계는 이 issue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비 칸은 이 책의 출판에 대해 “1946년 논문집에서의 성경의 정확 무오성에 대한 웨스트민스터의 강력한 강조는 곧 죽을 신학적 공룡의 마지막 절규가 아니라 처음에는 사소한 시비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전쟁의 최초의 총성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 이후에도 E. J. Young은 Thy Word Is Truth (1957), Van Til은 The Protestant Doctrine of Scripture (1967), 그리고 Edmund P. Clowney는 Another Cofession (1965)등의 책을 저술 출판함으로 WTS는 계속적으로 이 전통적인 성경관을 지키고 변증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가운데 1973년 교수진들은 『성경과 신앙고백』(Scripture and Confession)을 출간하여 신앙고백에 비추어 볼 때 명백히 드러난 왜곡되고 변질된 신앙 노선을 밝히고 반대하며,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확고부동한 그들의 신학적 입지를 밝혔다.


1974년에 들어와 Van Til 은 『신해석학』(The New Hermeneutics)을 출간하여 성경관의 논의의 중심주제가 해석학의 문제로 옳겨가기 시작했다. 반틸의 전제적 접근은 그의 제자 John Frame에 와서 더욱 성경의 무오성에 대하여 열렬하게 주장되었다. 그는 “그는 인간의 언어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옮길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에 있어서도 주인이시기 때문이다.”고 주장하여 “어떤 인간의 언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주장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교수진들은 1988년 『성경무오와 해석학』(Inerrancy and Hermeneutics: A Tradition, A Challenge, A Debate) 라는 책을 Harvie Conn 교수의 편집으로 출판해 내놓았다. 칸 교수는 그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목회자들에게 일종의 ‘계속교육’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런 의도로 인하여 논문들은 비록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사안들을 소개하면서도, 보다 대중적 필체로 쓰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는 또한 이 책이 도처에 학구적인 평신도로 알려진 분들께도 유익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주 목적은 목회자를 도와서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진행되었으며, 그 발전은 어떻게 분석될 수 있으며, 성경무오를 계속 신봉하는 자가 그것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는 지까지도 이해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 리의 목표는 방어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긍정적이다.”


이 책의 주된 관심사는 여전히 성경 무오에 대한 것이다. 1970년 이후 복음주의 학계에 논의된 성경의 영감과 무오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정리하고, 개혁주의 전통의 틀 속에서 좀 더 확장되고 정제된 의미의 성경의 무오를 변증하려고 한 것이었다. 여기서 웨스트민스터 교수들은 성경의 무오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책임있는 성경 해석이 전제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결국 올바로 이해된 저자의 의도에 호소함이 성경 무오에 대한 고전적 확언에 필수 요소인 것이다. 주경 과제를 행하지 않고도 성경의 무오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 까지 말한다. 즉 해석학을 떠나서는 성경 무오에 대하여 거의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1970년대에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의 주된 논쟁점인 무오(Inerrancy) 와 무위(Infallibility)에 대하여 WTS는 Inerrancy를 변증하는 문제는 해석학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경 무오와 영감의 교리는 신학의 다양한 발전과 더불어 새롭게 변증되고 좀더 정교하게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요구되었다. 특히 쏟아져 나오는 각종의 성경 비평 논의 가운데서 성경의 영감과 무오의 교리는 기독교와 교회를 지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이러한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교수들은 고민하고, 토론한 가운데 거의 전체 교수들의 의견이담겨진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영감과 성육신』 (Inspiration and Incarnation) 이라는 책을 Peter Enns 교수가 내놓았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성경관을 견지하며 동시에 성경 외적인 증거와 자료들을 설명해내기에 보다 적합한 페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으로 성육신의 유비(Incarnational Analogy)를 사용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성경의 “성육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이 고대 근동의 역사와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고대 근동의 문헌과 자료의 적절한 연구야 말로, 말하자면 성경의 인간적인 특질에 대한 연구야 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과 학문적 증거 사이에서 겪는 괴리감을 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웨스트민스터의 이러한 성경관은 전통적인 성경의 저작성과 통일성을 견지하게 하였고, 나아가서 성경 해석학 분야에서 자유주의적인 성경 비평을 철저하게 배격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시의 점진성, 성경 신학, 나아가서 언약신학의 기초를 확고하게 했다.


3.2 계시의 점진성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의 성경해석학


WTS의 성경 해석은 기본적으로 역사적-문법적 해석이다(Historical-Grammatical). 성경 저자와 독자의 상황, 성경의 문자와 어법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냐에 따라 성경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Princeton 신학교의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강조는 WTS에서도 여전했다. WTS는 M. Div. 학생들에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각각 10학점씩 요구한다. 그러나 이 20학점은 졸업 학점에 계산되지 않았다. 성경신학 분야의 석박사 과정의 구술시험에는 반드시 헬라어나 히브리어 성경 본문을 교수들 앞에서 읽고 본문 비평을 하고, 번역하고 해석하도록 요구하였다. 이것이 메이첸의 소신이다. 그는 성경 주해에 있어서 중심은 성경 원어 연구로부터 시작되며 신학의 보수는 경쟁력있는 학문이 뒤따라야 함을 역설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경이야말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취급해야 할 내용의 중심이요 핵심이다. ...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 신학교의 학생들이 단지 번역본들로가 아니고 성령께서 교회에 주셨던 대로 성경을 읽고자 한다면 그들은 그 성경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를 잘 취급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래에 발족된 WTS의 히브리어 연구소는 구약성경의 컴퓨터 Text를 개발하여 요사이 computer의 구약 성경은 거의 Westminster Text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WTS의 성경 해석은 계시의 점진성을 전제로 성경 전체의 맥락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구속사적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계시의 과정은 구속사와 더불어 진행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주어진다. 구속사는 획일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 행위로 말미암아 구분된 시대별로 진행된다. 따라서 성경신학은 계시의 역사성과 점진성과 그것이 선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통일성을 인식하고 체계화하는 것이다. 성경신학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진행과 신학적 통일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 모두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WTS의 가르침이며, 이는 Vos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Vos의 성경신학은 항상 성경해석의 기초이다.
Poythress 는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성경해석의 기본적인 단계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로 어떤 본문이든지 그 책이 쓰여질 당시에 특정한 상황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해석하기 위하여는 저자의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전제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에 어떤 본문이건 그 책이 쓰여질 당시 저자가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정경들을 context로 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어떤 구절이든지 전체 성경을 context로 하여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 계시를 주실 때부터 그의 나중 말씀들이 이전 말씀들 위에 기초하고 또 그것들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 해석이 신뢰할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문법적- 역사적 주석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고 Poythress 교수는 주장한다. 우리의 문법적-역사적 주석이 인간 저자에게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오히려 인간 저자의 본래의 의도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저자들은 그들이 당시에 전하는 말들을 성령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법적-역사적 주석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성경 모든 부분들 속에서 말씀하신 것들 간의 관계를 살펴봄으로 성경을 종합적으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평신도들의 의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평신도들의 해석은 어떤 때에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결론이 성령의 역사하심에 성경 지식을 종합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WTS는 신약과 구약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견지하며 해석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이다. 신약의 특별계시는 구약의 구속사의 그리스도 중심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구약 안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계시는 신약을 떠나서는 제대로의 모습을 들어 내지 못한다. 말하자면 신약성경 없이는 구약의 의미를 완전하게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한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 성경을 거부한다고 한다고 할 때, 그것은 구약의 해석학적 목표를 거부해버리는 일이고 그것은 구약의 부분적 의미까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의식적으로 해석의 방향을 뒤틀어버리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WTS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견지하며 현대의 모든 고등 비평, 소위 성경비평에 대 문 비평은 철저하게 훈련시키지만 각종의 현대 비평학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Literary Criticism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갖게 되었다. Poythress 교수는 우리가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현대 성경비평을 배척하는 것보다 만일에 그것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부합된 결과를 가져왔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현대 성경 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교리와 상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방법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 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Longman은 “문학적 접근법은 몇몇 전문가의 눈에는 이전의 모든 접근법을 대체 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양식(form), 편집(redaction), 또는 모든 전승사 방법론과는 완전히 맥을 달리하는 전혀 다른 방법론이다. ... 문학적 접근법들 간의 차이점들은 접어 두고서 일반적으로 문학적 접근법이 성경의 문학적 본질을 명백히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자들 간에 많은 도전을 준다. 그 도전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성경의 교리에 잠재적인 위협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경의 해석에 도움을 주는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요사이 성경신학 교수들은 문예적 접근을 많이 시도한다. 그러나 Longman 이 지적한 대로 문예적 기교들이 자칫 성경의 역사성과 무오의 교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TS의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전제한 문법적-역사적, 문맥적, 구속사적,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신학적인 성경 해석은 다른 신학대학원과 분명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3.3 전제론적인 변증학


WTS의 가장 특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변증학 분야이다. 메이첸은 “나는 기독교의 변증학을 믿으며 성경진리의 이성적 방어의 필요성을 분명히 믿는다”고 말했다.


메이첸의 신학은 프린스톤에서 전수받은 대로 기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것이 그 중심이다. WTS의 신학도 구 Princeton의 후계자임을 자임하며, Hodge나 Warfield의 신학을 추종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Van Til의 변증학은 Warfield의 전통적인 실증적 변증학 (Evidential Apologetics)이 아니라 화란의 Doywerd 의 영향을 받은 전제론적 변증학(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이다. Van Til은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에 직접 의존하는 것은 올바른 변증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통해서 거듭난 이성이 계시 의존적으로 사고할 때 비로소 복음을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지, 자율 이성이 스스로 진리를 판단할 수 있거나 진리의 진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Van Til은 변증법은 “성경으로의 추론”(reason to the Bible)이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추론”(reason from the Bible)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불신자와 추론하는 것은 불신자의 자율 이성, 그리고 자연 이성과 어떤 공통분모를 찾고 공유 지대를 찾아서 서로 합의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진리를 그에게 직접 제시하여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하자는 것이다. 죄와 허물 가운데 있는 자연인은 영적으로 죽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데 이들이 성경이 없이,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진리의 말씀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Warfield 는 Van Til과 달리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먼저 이교도들과 이성적으로 합일점을 찾고, 그 다음에 계시를 동원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로마 카톨릭 전통이나 고전적 변증법(Classical Apologetics)을 주장한다. 그러나 Van Til 은 전통적인 칼빈주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우리의 이성이 자율 능력을 사용해서 계시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판단할 자율권을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부의 사람들이 Van Til을 이성적이고, 합리적(rationalistic and scholarstic)이라고 비평한다. 합리주의를 반박하기 위하여 너무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Van Til의 위대성은 합리주의를 반박하기 위하여 합리성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3.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언약신학


WTS의 신학, 특히 조직신학은 Hodge와 Warfield를 잇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이다. 프린스톤 신학교는 전통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WCF)을 지키고 칼빈주의적 개혁 전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세워진 학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본래의 설립 취지가 빗나가자 원래의 Princeton의 신학적 전통을 바로 잡기 위한 운동으로 WTS가 세워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WTS의 신학은 구 프린스톤의 신학 전통을 이어간 것이다.


따라서 WTS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뼈대와 표준은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이다. WTS의 조직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Foundation으로 한 것이다. WTS M. Div 과정의 조직신학 교과과정은 서론, 신론, 인론, 기독론, 구원론, 기독교 윤리(the Dictrine of Christian Life) 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은 Doctrine of the Word of God이다. 구원론을 Doctrine of the Holy Spirit라고 했다. 이러한 교과목의 명칭은 분명 WTS 신학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WTS의 조직신학 대부는 John Murray이다.


John Murray는 그의 조직 신학을 성경 신학의 기초 위에 세워나갔다. 그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은 그 방법론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조직신학과 성경 신학의 상관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조직신학을 “성경적 조직신학”(a biblico-systematic theology)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Murray는 성경신학은 역사의 시점으로부터 특별 계시의 data를 다룬 것이라면 조직 신학은 특별계시를 최종 산물( a finished product)로서 총체적으로 다루는 것이며, 조직신학 방법이 논리적이라면 성경 신학은 역사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조직신학의 중요한 이론과 교리는 철저하고 정교한 성경 주석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Murray 자신은 로마서 주석을 집필할 만큼 성경 주석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러 다양한 조직신학적 주제들을 성경 해석을 통하여 새롭게 조명하거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예: The distinction between the visible church and the invisible church).


칼빈이나 종교개혁자들의 역사적 신학적 후계자로서 WTS 조직 신학의 중심은 역시 언약신학이며 G. Vos, John Murray, O Palmer Robertson, 그리고 Merdith Klein 등이 특히 언약 신학 연구를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언약신학이란 인간의 탁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 (Covenant of Work)을 맺었다는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Suzerain King 이며 사람은 하나님의 vassal king으로서 언약을 맺은 것이다. 하나님은 종주이시고 사람은 그의 속주로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따라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은 아담의 언약적 대표성 아래서 아담과 함께 언약적 연대성을 갖는다. 아담의 불순종과 범죄에 대한 언약적 저주는 그의 언약적 대표성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도 적용되어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된 것이다. 즉 원죄의 언약적 해석이다.


이러한 행위 언약은 자연스럽게 구속 사역(the work of redemption)도 언약적 원리(the covenant of redemption)가 적용된다. 그래서 범죄한 아담을 대신한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달리 확실한 순종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언약적 대표성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의롭게 되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함께 언약적 연대성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대표성 아래로 들어갈 수 있는가? 말하자면 그리스도와의 연대성 아래서 어떻게 사람이 의롭게 되는가? 바로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의 구원 교리는 바로 이 언약적 구조 원리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언약신학은 조직신학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WTS에서 Justification by Faith Alone에 대한 교리를 특별히 강조하고 견지하는 이유는 종교개혁 전통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것이 Covenant Theology의 핵심 Point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교수들 간의 이견도 있다. 한 때 Norman Shepherd의 이신칭의 논쟁이 온 campus가 들썩거리게 한 적도 있었고, 언약신학에 대하여 Murray는 자신을 Revisionist 라고 했고 Kline은 자신을 Classic Covenant Theologian이라고 불렀다. Murray는 전통적인 행위 언약을 “the Adamic Administration"라고 부르고 만일에 WCF에서 Adamic Administration의 관점에서 "언약”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Covenant of Life"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은혜의 요소가 the Adamic Administration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The term 'the covenant of work' to designate the Adamic administration is not an accurate designation. If the term 'covenan' is used, the designation in the Shorter Catechism, 'covenant of life,' is preferable term. 그래서 전정구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As such the principle of works was the means of eschatological justification and life before the fall of Adam, After the fall, however, the principle of works is not operative as the means of justification and salvation. Accordingly in the Old Covenant context the principle of works was not operative."


그러나 Kline은 Murray와는 달리 타락 이전 상태의 언약에 관한 설명은 전통적인 언약신학이 더 잘 부합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율법이 창조 언약의 governing principle 이며 타락 이후에는 율법에 대하여 은혜가 종말론적인 천국에 부여된 governing principle 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Kline 에게는 율법과 은혜라는 반정립(Antithesis)이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사이의 반정립과 더불어 historia salutis ordo salutis을 해석하는 해석의 열쇠가 된다고 말한다.


3.5 종교개혁과 청교도 신학의 강조


WTS는 교회사에 관심을 많이 가진 학교이다. 특히 종교개혁사와 청교도 신학에 대한 강조는 우리 한국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 부분이다. 제 1, 2 대의 역사신학 교수인 Paul Wooly나 Clare Davis는 다같이 저서를 남기지 않는 분들이지만 그들의 가르침에는 유모와 재치가 넘치는 명강의이어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일찍이 메이첸도 역사의 중요성의 강조하며, 심지어 성경학자가 되려면 역사학자가 되라고 했다. 전통적인 교리를 수호하고, 역사를 보존하려면 역사를 아는 것이 필연적이다. WTS의 교회사 부문 박사 과정은 신학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3.6 성경신학적 실천신학


WTS는 일반적으로 이론신학은 강조하나 실천신학에는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WTS는 이론 못지 않게 실천신학을 중요시한다. 필자가 학교 다니전 시절만 하더라도 설교학은 3년동안 매학기 마다 필수로 들어야 했다.


WTS에서는 신학과 실천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실천 이론이 성경신학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학을 가르친 Clowney는 설교와 “성경신학”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 설교를 강조한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의 일관된 구조는 구속사적 구조이다. 성경은 교과서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구속사의 진행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시와 함께 전개된다.” 따라서 설교는 그리스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신학이 성경의 본질적인 메시지인 예수 그리스도에 설교의 초점을 맞추게 한다는 것이다. 설교는 신학적이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신적 메시지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마땅히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설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윤리적 설교와 구속사적 설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신약은 두가지 모두 인정할 뿐 아니라 양자를 대립관계에 두지 않는다. 야고보가 욥과 엘리야의 역사를 인용한 것은 구약 역사에서 윤리적 교훈을 취하고 있다는 명백한 예로 볼 수 있다(약:5:11, 17)”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위치를 점하였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삶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연 구속사적 접근과 윤리적 접근을 대립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구속사적 설교에는 반드시 윤리적인 적용이 따라와야 되며, 이것이 설교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사를 윤리적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경신학적인 구속사 중심의 설교는 아마도 WTS의 독특한 설교 양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WTS의 실천신학의 꽃은 아마도 성경적 상담, 목회 상담이 아닌가 생각된다. Jay E. Adams로부터 시작된 Biblical Counselling은 1970년 대에 유행하던 프로이드 학파의 상담학에 대한 WTS의 Response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WTS는 Counselling도 말씀 사역의 연장으로 보고, 특히 성도들의 구원 이후 신앙 성장(점진적인 성화)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목회로 인식하고 있다.


결론


이상을 살펴볼 때 웨스트민스터의 신학은 한마디로 말씀을 중심한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WTS의 Catalogue는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스스로 밝히고 있다.


1.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 삼위의 하나님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모든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가 되어야 한다.
2. 성경은 “바로 하나님께서 쓰신 말씀”으로서 절대적인 권위가 있으며, 오류가 없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Standard)에 담긴 교리 체계에 의해서 알려진 대로 정통 개혁주의는 성경이 가르친 바를 충실히 그리고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4. 게하르드 보스의 전통에 따른 성경신학, 코넬리우스 반틸의 전통을 따른 전제론적인 변증학은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적용하며, 성경적 세계관을 개발하는 결정적인 방법들(Crucial Methods)이다.
5. 겸손한 생활양식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룩한 애정이 담긴 성숙한 사역이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며, 이사회와 직원과 교수와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민족들을 제자 삼는 일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께서 보내내신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과 열정을 가진 목회자, 문화적으로 예민하고, 신학적으로 능력이 있는 목회자를 요구한다. 한 몸에 한 영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기 원하는 자는 모두 평화의 띠 안에서 성령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6. Westminster는 성경과 개혁신앙으로 알려진 성경진리의 조직적인 강해을 위해 헌신한다.
7. Westminster는 WCF 와 Catechism 이외에도 the Belgic Confession. the Heidelberg Confession, 그리고 Canon of Dordt 등애 다양하고 풍부한 역사적 종교 개혁 전통의 신조와 고백이 조화롭게 담겨졌다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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