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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주요맥락(1) / 조병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by 【고동엽】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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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주요맥락 (1)

조병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 그의나라교회 담임목사)

 

신약의 맥락을 정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책별로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일괄적으로 살펴보거나, 책의 성격에 따라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묵시서 등으로 고찰하거나, 조직신학적으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신약의 흐름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신약의 주요인물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 사도 요한, 그 외의 공동서신 기자들 (야고보, 베드로, 유다).

 

제1강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만 언급되고 그외에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사복음서는 모두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자세히 보고하는데, 중요한 사항들에 관하여는 일치하게 보고하며 특이한 사항들에 관하여는 상이하게 보고한다. 공관복음에 묘사된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요한복음에 들어있는 세례자 요한의 설명을 비교해 보면 가장 큰 다양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삼 공관복음서도 세례자 요한을 설명하는 범위와 내용에 관한 한, 서로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다. 각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기술함에 있어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반복적으로 요한의 세례가 지시된다 (행 1:5; 1:21-22; 10:37; 11:16; 13:24-25; 18:2; 19:1-7).

 

1. 세례자 요한의 출생

 

1) 요한의 부모

세례자의 출생에 대하여는 단지 누가 만이 말한다 (눅 1:5-15,39-45,57-80). 요한은 제사장가문에서 출생하였다. 요한의 부모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었다. 요한의 부모들은 둘다 헤롯의 악정하에 살면서도 하나님앞에서 의인이며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들이었고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였다" (눅 1:6). 그들은 인격의 본질적인 면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였고, 생활의 행위적인 면에서도 주님의 규범을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공적인 면에서는 제사장으로서 성전봉사에 있어서 보수적인 충실함을 보여주었으며 (눅 1:8-9), 사적인 면에서는 가장으로서 신앙계승을 위하여 적극적인 기도생활을 하였다 (눅 1:13).

 

2) 천사의 예언

요한의 출생은 하나님의 사자가 예언한 것이었다 (눅 1:15-17). 하나님의 사자는 요한에 관하여 두가지로 예언하였다. 첫째 예언은 요한의 인물됨에 관한 것이다 (눅 1:15). 요한은 주님 앞에서 큰 자가 될 것이며, 포도주와 소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며, 모태로 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다. 둘째 예언은 요한의 사명에 관한 것이었다 (눅 1:16-17). 요한은 개인적인 행복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회적인 회복을 위하여 태어났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회복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상호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요한의 인생의 목적이었다 (눅 1:17).

 

3) 요한의 이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름을 얻었다 (눅 1:63). 요한의 이름은 "여호와는 위로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며 기쁨이 될 자로 출생하였다.

 

4) 요한의 성장

요한은 성장할 때 신체와 영혼이 강함을 얻었다 (눅 1:80). 요한은 광야에서 성장하였다 (눅 1:80). 요한이 광야에서 성장한 것은 부모의 용단에 의한 것이었다. 요한의 부모들은 요한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영적인 용단을 내렸다. 요한은 부모의 기도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2. 세례자 요한의 활동

 

1) 요한의 등장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나사렛에 거주하고 있을 때 (마 2:23; 3:1)에 등장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정치로 보면 티베리우스 (Tiberius) 황제 15년이었으며,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재지하고 있을 때였으며, 유대의 정치로 보면 헤롯과 빌립과 루사니아가 각기 분봉왕으로 유다와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으며, 유대의 종교로 보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였다 (눅 3:1-2).

이때 세례자 요한은 유대의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눅 3:2), 유대의 광야에서 등장하였다 (마 3:1). 그는 처음부터 도시에 대하여 어느 정도 적대적인 입장에 있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는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약속을 인내와 은혜와 신실가운데 이루셨다. 하나님의 승리이다.

 

2) 요한의 세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모두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마 3:11/막 1:8/ 눅 3:16; 요 1:26,31,33; 행 1:5; 11:16). 요한의 세례는 흐르는 물에서 시행되었다. 이것은 당시의 바리새인 종파와 쿰란 (엣세네) 공동체가 시행하던 결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게" (마 3:11)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요한의 세례의 대상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갈릴리 그외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세리와 창기, 군인 등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마 3:7; 21:32; 눅 3:10-14). 요한의 인상적인 세례운동은 폭넓은 영향력을 가지고 심지어 소아시아에까지 퍼져나갔다 (행 19:1이하).

 

3) 요한의 생활방식

요한은 생활방식은 아주 특징적인 것이었다.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다 (마 3:4; 막 1:6). 이것은 세례자 요한의 의상과 음식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다. 사람들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 11:18/눅 7:33). 세례자 요한의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이것은 문화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이 험한 옷을 입고 험한 음식을 먹은 것은 문화와 어느정도 거리감을 가진 것을 뜻한다. 둘째로 이것은 쾌락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이 거친 의복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은 것은 인간 자신의 욕심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4) 요한의 교훈

공관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설교, 메시야설교, 신분설교를 한다.

 

(1) 회개설교 (마 3:2,7-10; 막 1:4; 눅 3:3,7-9)

세례자 요한은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3:2)고 외쳤다.

회개요구는 천국이 임박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왜냐하면 회개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회개는 지성적인 각성이나 감정적인 회심이나 의지적인 결단을 넘어서는 것이다. 회개는 영적인 변화이다. 그래서 회개를 외치는 것은 인간에 의한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요구이다. 인간세계 밖으로부터 오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를 외칠 수가 없다.

천국이 임박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국의 임박은 부정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 것을 의미한다. 세례자 요한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한 것이다 (마 3:7).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마 3:10).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이다 (마 3:12). 천국의 임박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이 온 것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마 3:9). 그것은 "능력이 많으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마 3:11). 이것은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는 것과 같다 (마 3:12).

천국의 임박에 대한 인식은 구원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는 것이다. 천국의 임박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천국의 임박에 비추어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성품에 비추어 인간의 성품을 보고, 하나님에 비추어 인간을 볼 때 회개를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세상에 대하여, 인간의 성품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인식에서부터 나온다.

 

(2) 메시야설교 (마 3:11-12; 눅 3:15-17)

세례자 요한의 설교가운데 중요한 것은 메시야가 올 것에 대한 설교이다.

메시야설교에서 요한은 먼저 자신의 신분과 활동의 한계성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요한의 신분은 메시야에 비하면 그의 신들메도 풀기에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요한의 활동은 단지 물세례를 주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어서 메시야의 신분과 활동의 위대성을 드러냈다. 메시야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다. 메시야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메시야의 세례는 두가지 효력을 발휘한다. 구속을 위한 성령세례의 역할과 심판을 위한 불세례의 역할이다. 성령은 구속을 의미하며 불은 심판을 의미한다 (마 3:12; 눅 3:17; 참조. 마 13:30,40,42,49). 메시야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요한은 자신과 예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예수를 신랑으로, 자신을 친구로 비유한다 (요 3:29-30). 요한은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를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주인으로 소개한다. 예수는 신랑이며 요한은 그의 친구일 뿐이다.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한다" (요 3:29).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일이 성취되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예수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의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쁘다. 우리에게도 바로 이러한 요한의 태도가 필요하다. 예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일을 성취하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기의 일을 이루어 기쁨을 가지려 하기에 예수의 일이 망쳐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일을 성취하는 것을 기뻐하는 대신에 예수의 일이 성취되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의 발전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구속사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예수의 시대가 오고, 요한의 시대는 지나간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앞에서 자신이 물러나야 하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사람들을 확보하는 일이나, 자기를 내세우는 일같은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는다. 요한은 자신을 쇠하도록 허용한다. 예수가 흥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참으로 하늘의 일을 알며 말하는 자의 태도이다. 예수와 관계를 맺은 자는 예수가 흥하고 자신은 쇠하기를 노력한다. 예수가 드러나고 자신이 감추어지기를 애쓴다. 이렇게 하여 예수의 사업이 흥왕해지도록 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말하는 자는 예수가 흥해지도록 하며 자신은 쇠해지도록 한다.

 

(3) 신분설교 (눅 3:10-14)

세례자 요한은 세 부류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첫째로 무리에게 (눅 3:10-11). 요한은 무리에게 의복과 음식의 문제를 설교한다. 옷 두 벌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설교는 인생의 가장 절박한 문제를 건드린다. 가장 절박한 인생의 문제에서 회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적게, 작게 가진 상태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그 옆에는 더 부족한 자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세리에게 (눅 3:12-13). 요한은 세리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 ("정한 세")에 관하여 설교한다. 불법적이며 부당한 "더 이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법적인 "더 이상"을 추구하면 그로 말미암아 불법적인 "더 이하"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의 균형을 파괴하고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다.

셋째로 군병에게 (눅 3:14). 요한은 군병에게 칼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칼이 포학과 억압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설교한다. 검은 질서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강탈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롬 13:4 참조).

(4) 기타 설교

공관복음서와 달리 단지 요한복음 만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선재하시는 예수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거 (요 1:15,30), 세례자 요한과 유대인의 대화 (요 1:19-28),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증거 (요 1:29,36).

 

4) 요한의 제자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다같이 분명하게 지적되는 것은 세례자 요한에게 제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마 9:14/막 2:18/눅 5:33; 요 1:35,37; 행 19:1-7).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 (마 9:12/막 2:18/눅 5:33)과 기도(눅 11:1)에 힘썼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이 예수의 주기도문 교육의 동기가 되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파송을 받고(마 11:2/ 눅 7:28), 논쟁을 하고(요 5:35), 보고하고(요 5:26), 세례를 베풀었던 것 같다. 이들은 마지막에 요한의 주검을 매장하였다(마 14:12 / 막 6:29). 요한의 제자들은 소아시아 에베소까지 퍼져나갔다(행 19:1-7). 이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밖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예수의 세례를 받았을 때 성령을 받게 되었다.

 

5) 요한의 기도

단지 누가 만이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쳤다고 언급한다 (눅 11:1). 이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 주기도문을 배우는 동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분명히 기도를 강조한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 자들은 세례를 받고 나서 기도를 하였다 (눅 3:21). 요한의 제자들은 항상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다 (눅 5:33). 요한이 제자들에게 어떤 내용의 기도를 가르쳤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요한기도문에 동인을 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마도 주기도문을 역추적하면 요한의 기도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

 

1) 예수에 대한 요한의 증거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시적으로 활동하였다 (요 3:22-4:3). 세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관하여는 사복음서가 모두다 요한을 예수의 선구자와 예비자로 생각한다 (마 3:3/막 1:2-3/눅 3:4; 마 11:10/눅 7:27; 요 1:23). 요한은 예수를 위한 사람이다. 모든 복음서에서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께서 비로소 요한 뒤에 오신다는 사실이다 (마 3:11/막 1:7/눅 3:16; 요 1:15,27,30; 행 13:25; 19:4). 요한은 물세례자로 설명하고 예수는 성령세례자로 설명함으로써 요한이 예수에게 종속한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 3:11/막 1:7/눅 3:16; 요 1:33). 특히 이 사실은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의 첫번째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요 1:35-42)에서 입증된다.

 

2) 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거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마 17:10-13/막 9:9-13).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의 두 아들 비유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이 시대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알려주신다 (마 21:28-32). 요한복음에도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의 특이한 말씀이 들어있다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 요 5:33-35).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거하신다 (마 11:2-19/눅 7:18-35). 복음서들에서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증거하는 가장 큰 일치점은 요한이 "선지자보다 큰 자"라는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아주 명백하게 이것을 선언한다 (마 11:9/눅 7:26). 세례자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로서 여자가 낳은 자중에 가장 큰 자이다. 마가복음에서 요한은 분명히 복음의 시작에 속함으로써 (막 1:1이하) 요한은 구약선지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물이다. 요한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예수에 대한 첫번째 증인으로 묘사한다 (요 1:7; 10:42). 그 때문에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옛 선지자들에게 속하는 사람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선지자보다 큰 자"이다. (사실상 예수께서 모세와 같은 참 선지자이시다 신 18:18 = 베드로의 설교 행 3:22; 스데반의 설교 7:37.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공백기에서 갑자기 참 선지자이신 예수께서 등장하면 무리함이 생긴다. 그래서 완충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요한이 큰 선지자로 온 것이다. 요한은 스스로 선지자라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렇게 여김으로써 드디어 새로운 선지자 시대가 도래한 것을 알린다. 예수께서 요한을 구약선지자들과는 다른 큰 선지자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절대적인 선지자의 안목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절대적인 선지자였기에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임을 인식하셨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선지자 상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구약선지자들 - 더 큰 선지자 (요한) - 그 선지자 (예수)

 

4. 세례자 요한과 유대인의 관계

 

세례자 요한은 유대인들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다(마 3:7; 눅 3:7). 요한을 선지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지도적인 유대인들은 이런 요한을 향하여 "네가 누구냐"(요 1:19)라고 응수하였다. 결국 유대인들은 요한을 귀신들린 자로 정죄하였다(마 11:18; 눅 7:33). 유대인들은 요한이 의의 도로 온 것을 부인하였고 요한을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마 21:32).

 

5. 세례자 요한의 죽음

 

요한은 아무런 표적도 행하지 않았다 (요 10:40-42). 그러나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선지자라고 불렀으며 (마 14:5; 마 21:16/막 11:32/눅 20:6; 눅 1:76), 장차 올 선지자로까지 기대하였다 (마 11:9/눅 7:26; 요 1:21,25). 이것은 복음서들이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증거하는 아주 중요한 공통적인 생각이다. 요한은 선지자로서 심지어 헤롯의 악행을 지적하였다. 헤롯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가로챈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눅 3:19). 요한은 선지자로서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을 공격한 것이다.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결국 헤로디아의 의견을 따라 요한을 체포하여 투옥하였다. 헤롯의 악행에 대한 강렬한 비판은 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참수당했다. 그의 처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마 14:3-12/막 6:14-29).

 

6. 세례자 요한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

 

세례자 요한은 기독교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다는 것은 요한공동체와 예수공동체의 관계를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몇 명이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두 공동체의 동일기반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모범을 따라 동일한 내용을 설교하기도 하고, 비슷한 기도교육에 임하기도 하고, 같은 방식으로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게 하였다. 이렇게 요한은 기독교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요한을 복음도식에서 항상 첫 자리에 두었다 (후론 참조). 심지어 기독교는 세례자 요한을 구약과 신약을 가르는 중심점으로 보았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 요한을 중심으로 이전에 율법과 선지자가 있고, 이후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있다. 요한 이전의 시간과 요한 이후의 시간이 이렇게 대조된다. 요한을 중심으로 옛 시간과 새 시간이 나누어지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구속사의 분수령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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