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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는 교회들의 바른 자세 / 이승구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by 【고동엽】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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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는 교회들의 바른 자세
이승구 교수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주께서 신약 교회를 이 세상에 세우신 이후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주의 뜻에 순종하며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도 하였고, 또 때로는 하나님의 의도를 망각하고 자신들의 하려고 하는 것(agenda)을 가지고 자신들의 일을 하여 오기도 하였다. 이 역사의 과정을 살피는 이들은 누구나 교회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하여 그렇게 파악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만일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신약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이단에 속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그 뜻대로 전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무엇이 교회가 추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뜻인가라고 할 때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일단 그것에 대해 “오직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형식상 개신교적 원리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천주교회는 성경과 함께 지금도 동일한 권위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교황의 공적 선언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 개혁시대의 소위 신령파(Spiritualists)에 속하는 이들도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에 자유주의적 입장을 따라 가는 분들도 오직 성경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며, 신령파적 전통을 유지하려는 퀘이커나 오늘날도 직접적 게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분들도 이 오직 성경의 원리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개신교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오직 성경의 원리에 따르지 않는 분들은 형식적으로는 개신교에 속해 있으나 개신교의 원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안에도 그런 사람들, 즉 형식적으로는 개신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개신교회가 그에 터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인 “오직 성경”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아니 어떻게 따져 보면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을 매우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오직 성경”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는 이상한 위치의 개신교도들이 있게 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계시가 주어지고 있던 시대의 교회와 정경이 닫혀진 이후 시대의 교회를 구별하며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사도행전에 묘사된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들 가운데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우리들 가운데 있기 쉬운 것이다. 새해의 표어로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표어를 내 건 교회가 많은 중, 그 때의 생각이 정확히 그런 생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바라보면서 초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옳다. 또한 초대 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에서 찾아보려는 것도 옳다. 그러나 그것을 오늘날의 교회가 사도행전의 교회와 똑 같은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신약 교회의 초기 시대의 독특한 성격을 잘 고려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교회의 모습을 매우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의 교회와 우리 시대의 교회의 역사적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사도행전이 묘사하고 있는 교회를 살펴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도행전 이 기록하는 교회는 사도들이 살아 있는 교회였었다. 즉, 계시가 사도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시대의 교회였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교회는 사도들이 살아 있지 않고, 그들의 사도적 가르침이 신약 성경에 성문화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도적 가르침을 받으려면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만 사도적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오직 성경”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만일에 우리가 신약 성경에 나타난 사도적 가르침만을 따르려 하지 않고, 그에 더하여 다른 게시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아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 시대의 교회에서 가장 강조 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의미의 “오직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를 가지고서 사도행전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의 원리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의 사도행전 읽기에 있어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세 가지 삶의 정황(Sitz im Leben)이 있다고 여겨진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모여 기도하는 모습으로부터, 그렇게 기도하는 공동체에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독특하게 임재하시고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사도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진정해 가는 신약 교회의 삶의 정황이다. 사도행전 기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의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교회의 모습을 누가의 영감된 기록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실제 처음 신약 교회의 모습과 다른 것이라든지 하는 의심의 해석학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영감하신 성령님을 믿고, 결과적으로 성경을 믿는 것에는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그 교회의 모습이 바로 초기 신약 교회의 모습이라고 믿는 것도 포함시키는 것이다. 오늘 날에는 누가의 기록으로부터 초기 신약 교회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것을 너무나도 순진한 것(naive)으로 여기며 비판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영감된 기록을 무시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성경을 신봉해 기는 이들의 바른 태도이다. 우리는 누가의 영감된 기록을 통해서 신약 교회가 시작되던 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고 해야 한다.

두 번째는 누가가 이 기록을 기록하고 있는 시기의 교회의 삶의 정황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만일이 주후 63년경에, 또는 거의 주후 70년경에 누가가 이 기록을 하고 있다면 그 시기 교회가 처한 상황이 이 기록에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 이 두 번째 삶의 정황이 우리가 앞서 언급한 기록 대상이 되는 주후 30-62년경의 교회의 삶의 정황을 무시하게 하거나 배제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왜야하면, 사실 현대의 비판적 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이 두 번째 삶의 정황을 기록으로부터 정확히 추출해 내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이 많은 추론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세 번째는 읽는 이들이 속해 있는 교회의 삶의 정황이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21세기 초 한국 교회이라는 삶의 정황 속에서 사도행전을 읽는다. 이것이 우리가 이 본문에 접근하는 우리들의 삶의 맥락(context)이 된다. 현대의 독자 반응 비평, 책임 있는 독서의 주장에 반해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정황이 모든 것을 주도(dictate)하지 않도록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누가를 사용하여 사도행전이라는 본문(text) 주신 하나님의 의도(divine authorial intention)가 우리의 삶의 맥락(context) 가운데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하지, 우리의 맥락이 본문의 의미를 좌지우지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 바로 이런 사도행전에 대한 바른 해석을 지향하면서 지난 번 한국성경신학회 제 20차 논문 발표회에서 발제된 몇 편의 글들을 보다 많은 독자들을 위해 제시한다. 손영목 교수께서 누가가 시편의 본문을 어떻게 사도행전 가운데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소위 간본문성(intertextuality)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하여 주셨고, 허 주 교수께서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다양한 회개의 모습을 주해적으로 드러내면서 2007년 회개를 말하던 한국 교회의 회개에 주는 의미를 제시하였고, 김정훈 교수께서 사도행전 7장에 나타난 스테반의 강한 논의의 의미를 잘 드러내어 주셨고, 장석조 교수께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회심과 소명의 의미를 분석해 주셨다.

이는 모두 성령께서 누가를 사용하여 드러내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우리의 정황 가운데서 잘 드러내어 보려고 노력한 산물들이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같은 태도를 가지고, 즉 하나님의 의도를 존중하면서 사도행전의 기록 대상이 되는 30-61년 경 교회의 모습을 매우 존중하면서 우리들 각자의 사도행전 읽기를 시도하기를 원한다. 부디 한국 성경 신학회의 이런 노력에 많은 분들이 같은 마음으로 동참하여 성경의 빛에서 한국 교회를 신약 성경이 말하는 교회 되게 하는 일에 같이 힘써 가기 원한다.

[출처] 사도행전을 읽는 교회들의 바른 자세 (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CKRIRF)) |작성자 주나그네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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