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칼빈신학방법의길잡이:기독교강요 이해를 위한 칼빈의 신학적 전제요소들 - 안명준

by 【고동엽】 2021. 11. 6.
칼빈신학방법의길잡이:기독교강요 이해를 위한 칼빈의 신학적 전제요소들

안명준(평택대학교, theologia.co.kr)


I. 서론


한 저자의 작품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서문에 나타난 내용을 바르게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 서문에서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1559년 라틴어판, 1560년 불어판)에서 자신의 저술 동기와 배경을 직접 언급한 것은 칼빈의 신학 방법을 탐구하는 사람에게 귀중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칼빈은 1559년 8월 1일 라틴어 최종판과 1560년 프랑스어 판을 출판하면서 독자들에게 자신의 저작 동기와 목적에 대한 숨김없이 내용을 밝힌다. 그리고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게 보내는 헌정사에서도 그의 저작 동기를 진술하는데 이런 내용들을 통하여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그의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 그리고 신학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 서문에 나타난 이런 자료들을 통하여 기독교 강요를 보다 더 칼빈의 의도에 따라 이해하기 위한 신학적-해석학적 전제 요소들을 조사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적이다.


칼빈의 신학적 전제 요소들이 서문의 내용들에서 분석되고 해석된 결과들은 기독교 강요의 이해에 필수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며, 향후 칼빈의 신학 원리와 칼빈의 신학 방법론 연구에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문에 나타난 이런 기초적 요소들의 윤곽이 들어나면 강요를 이해하는데 보다도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 신학적 해석에 의해 분석된 자료들을 근거로 칼빈의 신학방법론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 갈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그 전제적 요소들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칼빈이 서문에서 밝히 자료들을 분석하고, 아울러서 서문들의 내용들과 칼빈이 기독교 강요의 본문에서 자신이 설명한 것들을 상호 연관성을 통한 해석적인 순환방법을 보여준다.

II. 신학적 전제 요소들

1. 칼빈의 저작 의도

칼빈이 이 작품을 쓰게 된 첫 번째 근본적인 동기는 1535년 초 자신의 고국에서 일어났던 피의 박해로 인한 큰 아픔에 대한 진정한 변호가 담겨져 있다. 이 저작은 표면적으로 당시 문제가 되었던 많은 신학적인 주제들에 대한 그의 변증적-신학적 해석 이었지만, 모든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는 내면의 모습은 자신의 고국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현장에서 생과 사를 좌우하는 치열한 대립과 기독교를 부패시킨 헛된 교리에 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키려는 칼빈의 울부짖음이 강렬하게 내포되어 있다. 1536년 기독교 강요를 저작한 첫 번째 목적에 대하여 칼빈은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자신의 의도는 다만 종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본지침을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 자신은 특별히 자기의 동포 프랑스인들을 위하여 이 글을 저작했다고 한다. 칼빈은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리스도에 주리고 목말라 있다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영적무지의 프랑스인들에게 칼빈은 예수 그리스를 바르게 알리기 위하여 이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1545년(1560년 불어판) 불어판에서 구원의 교리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이 책을 이미 라틴어 저술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썼고, 이제 자기의 프랑스 국민을 위해 불어로 라틴어판을 번역하였다고 밝힌다.


두 번째 강요의 저작 목적은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제공하는 것이다. 성경을 올바르게 알려는 자들을 위한 훈련 지침서이다. 따라서 강요는 성경을 어떻게 다루는 방법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로마서에 대한 해석학적 확장이라고 불리워 질 정도로 성경 해석에 대한 심도 있는 방법들이 많이 나타난다. 칼빈은 강요에서 교리에 대한 언급을 다루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성경 주석들은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에 근거하여 저술하려고 한다. 이런 해석적 방법을 통하여 성경 안에서 어떤 것을 추구해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한다.

2. 신학적 완성을 향한 열정적 보완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한 순간에 완성시켜서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25년 정도의 전 생애를 바쳐서 이 대작을 중단없이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이런 일을 통하여 그는 풍성한 신학의 완성을 향하여 달려갔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완성하기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순수한 복음에 대한 그의 눈물과 그리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아픔들이 있었다. 칼빈은 1533년 11월 1일 니콜라스 콥의 파리 대학 총장 취임 연설에서 복음적 연설 내용으로 문제가 되어 일어났던 사건으로 도피 생활이 시작되어, 수많은 오해와 치열한 신학적 논쟁, 자신이 가진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주옥같은 유산으로 이 기독교 강요를 후대에 남겨 주었다. 이런 기독교강요는 그가 한순간에 만족할 만한 완성된 작품이 아니었다. 주제들의 요약적 해석에서 시작된 1536년 라틴어판에서 1559년 라틴어 최종판(1560년 불어판)까지 출판되면서, 끊임없이 주제들에 대한 해석이 증보되고, 그것들이 새롭게 재 배치되면서 칼빈의 신학의 사상체계를 완성하여 나갔다.


칼빈이 처음으로 시도했던 1536년 기독교 강요는 다루는 주제들과 그 해석에 있어서 소책자에서 나타나듯이 가볍게 수행되었다(leviter, maiorer ex parte ut in minutis operibus fieri solet defunctus eram). 칼빈은 1536년 강요 초판에서 대부분 그 주제를 요약적으로 다루었다. 헌사에서 칼빈은 기독교 강요의 형식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간단하고 초보적인 가르침의 적당한 형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런 형태는 후에 그의 교리문답서에서 잘 나타난다. 교리문답서 1539년 라틴어판과 그것을 번역한 1541년 불어판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목회 경험을 근거로 작성되었는데 질문하고 답변하는 방식의 교리 문답서였다. 칼빈이 언급한 간단하고 초보적인 가르침의 형태라는 것은 칼빈이 나이가 젋고 경험이 부족하여 그의 신학적 능력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요를 요약적으로 짧게 쓴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시점에 신학적 수준은 당시 다른 동료 개혁자들에게 대 학자로 인정 받을 정도로 전반적인 자신의 신학이 형성되어 있었다.


1509년에 탄생한 그로서는 적어도 1535년 8월 1일 이전에 바젤에서 강요를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였으니, 그의 나이는 26살 정도에 대작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물론 1532년 Calvin's Commentary on Seneca's De Clementia(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 1532. 4.4)에 대한 주석이 나왔다. 그 작품에서 칼빈의 인문주의자의 학문성을 충분하게 볼 수 있고, 고전을 역사적-문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그의 비평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멀러에 따르면 칼빈은 이 작품에서 세네카의 산문의 자연스러운 문체(the unlabored style)를 칭찬하나, 그의 주제의 사치스러운 장황성(luxurious verbosity)을 비판하며, 질서 있는 배열, 혹은 적절한 배치(orderly arrangement or proper dispositio)가 세네카의 관용론에서 부족하다고 한다. 이런 해석의 간결성과 신학 주제들의 배치에 대한 논의는 기독교 강요 서문에서 그리고 그 작품의 구성과 신학적 해석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 후에 Psychopannychia(영혼수면설)은 대략 1534-5년 사이에 완성되었지만 1542년에 출판되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죽음과 마지막 부활사이에 영혼은 잠들어 있거나 죽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따라서 칼빈은 잘못된 교리로부터 동포 신자들을 보호하고, 프랑스의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은 이 이단적 주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며,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불멸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쓰기 이전에 이미 그의 신학의 골격이 형성되어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칼빈은 이미 성경해석의 적절한 방법(간결성과 용이성)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벌써 1539년 10월 18일 로마서 주석 서문에 있는 Simon Grynaeus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3년(1536년) 전 그래니우스와 대화를 언급한 내용에서 이루어 졌다. 그렇다면 칼빈은 그의 신학체계를 뼈대를 세워가는 23살 나이에 회심하기전 마지막 인문주의 학자로서 이론과 방법에 근거한 활동을 시작하고 25살 전후로 최초로 부분적이지만 인간론과 종말론을 다룰 수 있는 성경적 신학자의 첫 발걸음을 걸었으며, 1535년 26살의 나이에 기독교 강요의 원고가 적어도 1535년 8월 23일 바젤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그의 신학의 전체 형태가 이미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의 증보판의 필요성을 독자들의 호평으로부터 찾는다. 그래서 그는 최선의 노력으로 평생 증보(it has been enriched with some additions, accessione locupletatum)하고 주제들의 순서를 재 배열하었다. 여기서 칼빈 사용한 용어 accessione 은 라틴 고전작품에 나오는 수사학적 용어로 어원이 accessio로서 주로 새로운 것을 첨가하고, 구체적이며, 정의(설명)가 완성된 증보이다. 기독교 강요의 초판 이후에 칼빈은 논의할 것이 많아서 그것이 새로운 것들이 차츰 증가되어 완성을 향해 가는 의미를 이 단어가 보여준다. 주제들의 순서를 재배치하는 것은 1559년 마지막 판에 언급되었다. 칼빈이 사용한 digestum은 씨세로나 퀼틸리안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데“ 질서 있게 배분 혹은 배치하는 것”, “질서있게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목적에 의해 주제들을 질서있게 새롭게 배치를 시도하였다. 이 두 용어가 보여주는 것은 칼빈이 첫 강요에 주제들을 새롭게 첨가하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신학적 논쟁을 통하여 증보되고 주제들을 재 배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보완, 재배치는 칼빈의 사상의 발전과 그의 신학 활동의 고민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시기와 현장에서 자신의 신학이 도전 받고 발전하고 성경적인 신학을 향하여 자신의 방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것을 알 수 있다. 포드 루이스 배틀즈는 칼빈의 신학적 견해는 1559년 판까지 결코 실제적 변화가 없었으며, 1559년도 강요에서 썼던 모든 것들은 그의 모든 삶에 다소 차별없이 적용되었다고 오랫동안 주장되어 온 견해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신앙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일관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많은 발전이 있었고, 재고하였고, 고쳤다고 한다. 루이스 배틀즈는 강요의 5판을 비교해 보더라도 이것이 보여진다고 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칼빈은 초기에서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더 완성을 향해 발전해 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네카를 썼던 인문주의자에서 시작하여, 회심 후 기독교강의의 초판을 1536년에 쓰고 많은 연단과 논쟁을 통하여 그의 신학적 사상은 성경적으로 더 풍성하게 성숙해 갔던 것은 분명하다. 신복윤 교수도 기독교 강요는 칼빈이 전생애를 통하여 수정하고 재구성하고 증보하여 만든 가장 가치 있는 일대 저작이라고 말한다. 멀러도 같은 의견으로 칼빈은 강요를 편집의 조정을 하였고, 논쟁을 통하여 그의 사상이 우선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3. 교회 공동의 유익

칼빈의 자신의 신학적 활동이 하나님의 교회 공동의 유익을 위한 것임 말한다. 이런 교회의 유익은 정당한 방식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교회와 성직자 중심 원리가 아니다. 칼빈은 경건의 순수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보존할 것을 당부한다. 오늘날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의 신학적 전제와 방법을 고집한 나머지, 성경적 판단과 교회의 공동체의 최고선을 고려하지 않고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학 만들기에 급급해 있다. 이와는 반대는 칼빈은 강요의 저작과 로마서 주석 같은 작업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신학 활동은 주님의 교회를 확장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돕는 일로 말한다. 자신은 병든 몸을 가지고 죽음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에게 보답하려는 그의 열정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교회에 많은 유익을(some richer fruit for the church of God than herefore) 희망하였다. 칼빈은 이것이 자신의 my only prayer라고 한다.



이런 그의 자세는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도 교회의 유익을 위한 자신의 해석의 목표를 고백에서도 나타난다. 칼빈은 자신의 노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무슨 유익을 성취할 수 있는가 관심이 많았으며, 자신의 로마서 주석 작품이 교회의 공동의 유익만을 위하여 작업했으며, 유익을 끼치려는 목적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칼빈은 교회의 교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과 공적 유익을 위하여 열심을 가졌으며, 경건의 순수한 가르침을 유지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을 주는 것이 자신의 목적임을 말한다. 그러나 교회를 올바르게 유익을 주는 것은 교회에 무작정 굴복하고 성직자들에게 맹목적 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경건의 순수한 교리를 가르키고 후대들에게 계승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마지막 인사에서도 자기의 작품에서 독자들의 유익을 바라는 그의 사랑의 표현이 기록되었다. 독자들을 위한 칼빈의 애정은 1545년(1560판) 서문의 첫 문장이 바로 자신의 독자들이 자신의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에 대해서 언급한다.

4. 성경의 열쇠로서 기독교 강요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독자들에게 주는 성경의 열쇠로 본다. 어떤 학자는 기독교 강요를 성경을 가리켜 주는 칼빈의 집게 손가락이라고 한다. 기독교 강요는 그 기초를 성경의 주해(exposition of Scripture)에 둔다고 신복윤 교수는 말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강요는 성경해석 원리를 바르게 세워준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글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목적에 이바지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는 교리적 신학적 중요 요점을 체계화한 교리학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해석의 산물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야 말로 로마 카톨릭 신학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석하고 해체하고 재 해석한 해석학적 신학으로 완성된 명작이다. 칼빈의 의도를 확장한다면 신학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신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신학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인데, 이런 목적을 위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다. 신학은 성경이해를 위해 봉사하는 학문이 되어야지 성경을 비판하고 성경을 조정하는 활동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방식은 칼빈의 모델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진정한 신학적 방법은 성경에 의해 형성되고 검증되어 성경의 의도를 밝히는 목적을 따라야지 성경위에서 그 권위적 역할을 행사한다면 중세 로마 교회의 방식을 따를 뿐이다.


강요의 목적을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접근하고 그리고 어려움이 없이 그 안에서 발전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신학 후보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중요한 자신의 신학 방법론과 관련의 내용들을 설명한다. 자신의 강요를 진술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의 개요를 채택하고(embraced the sum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순서대로 배열된(arranged in such an order)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강요를 올바르게 파악을 한다면, 성경에서 특별히 어떤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성경의 내용들을 목적에 연결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칼빈의 강요의 중요한 역할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독자들을 성경으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강요는 존재하는 것이다. 칼빈은 프랑스어 최종판에서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건전하고 올바른 이해로 이끄는 방법을 열어 주는 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약속한다. 칼빈은 1539년 강요 2판에서 첫 주석인 로마서 주석(1539, 10, 18)을 비롯한 모든 성경 주석을 시도할 경우 위의 언급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성경을 다루는 방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을 말한다. 자신이 실제 성경의 모든 주석 또한 자신의 말로 언급한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으로 다룰 것을 말하고 그의 일생 실천하였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를 칼빈이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말한 의도에 따라서 해석되고 분석되고 연구되어 모든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때, 그가 기독교 강요에서 사용한 신학적 방법론이 그 형태가 들어날 것이다.


칼빈의 신학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칼빈이 사용한 자료들의 논리적 증거없이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은 통합적인 결론이 아닌 부분적인 결과로 귀결되기 쉽다. 칼빈의 신학 방법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서 다른 학자들의 기존의 미흡한 주장을 가지고서는 기독교 강요에서 나타난 칼빈의 신학 방법론을 순수하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가능한 칼빈이 말한 본문들과 그것들의 전후 문맥에 의해서 분석되어는 것이 첫 번째 연구자들의 자세일 것이다. 멀러의 주장처럼 현대적 신학 개념의 전제들을 가지고서는 부분적인 결과만을 도출해 낼 것이다. 강요가 성경을 위한 열쇠로서 그 목적을 가진 것같이 신학의 목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런 목적 안에서 신학자의 의무는 성경을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도록 원하시는 것의 요지(sum)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한다.



만일 로마 신학자들이 이런 일에 충성스럽지 못한다며, 그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도적한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시대 이후 그들은 성경의 순수한 말씀을 왜곡시키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슐라이에르마허를 시작으로 현대 신학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성경의 진정한 의도를 파괴하고 인간의 이성의 판단으로 만 성경을 취급할 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향하여 칼빈은 신학자의 본문에 대하여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칼빈은 신학자는 상상이 금물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의 한계와 이성의 한계에서 만들어 낸 개념들이 결코 삼위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다고 한다. 칼빈은 신학자의 의무는 그리스도만 갈망하고 바라보며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이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 나타나는 날 까지 그만을 구하며 배우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사람이 조작한 것을 섞지 않도록 할 것이며, 사람이 자기 생각을 첨가할 때 하나님의 신비는 더렵혀 진다고 보았다. 칼빈은 자신의 작품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배우 일에 도움이 되도록 자신의 열정을 쏟아낸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앞에서 선 진정한 신학자였다. 신학자의 임무란 말로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확실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우리의 양심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신학자와 대조적으로 잘못된 신학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다루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칼빈은 Lombard를 잘못된 학자로 자주 비판하는데, 그가 성경의 빛을 보지 못함은 성경에 대한 훈련이 없다고 한다. 또한 소르본느 신학자들은 아무근거 없이 닥치는 대로 성경 귀절을 제시한다고 한다. 그들은 성경을 잘못 인용한다고 한다. 칼빈은 성경을 탐구하는 자세로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신학자의 의무는 바로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의 참된 목적이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는 진정한 열쇠의 역할 이였다.

5. Sola Scriptura와 Analogia Scriptura에 의한 신학적 논증

칼빈은 철저하게 자신의 주장들을 sola scriptura와 analogia scriptura의해서 자신의 신학적 논증의 뿌리를 두었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모든 잘못된 이단들과 대적들에 대한 강력한 무기는 자신이 주장한 교리들이 철저하게 오직 성경적 가르침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언제나 성경을 인용하고,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면서 신학적 논리를 전개했다는 것이다. 신복윤 교수는 말하기를 칼빈은 자신의 사상의 원천을 성경에 두었으며, 자기의 사상의 기초를 성경에 두었으며, 칼빈은 신앙과 행위 문제에서 성경을 유일하며 가장 안전한 안내자로 확신했다고 한다. 칼빈은 1545(1560) 불어판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더욱더 성경의 유추(analogia scriptura)를 주장한다. 즉 하나의 구절을 더 친숙한 구절로 이해 할 것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칼빈은 강요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에 절망하지 말고 한 구절이 다른 구절에 대해 더 잘 설명해 주기를 바라면서 전진할 것을 당부하면서, 성경에서 인용한 증거들에 중요성을 더하기 위해 성경을 의지할 것을 주장한다. 칼빈의 이 주장은 신학의 방법론 위해서 올바른 신학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어떤 학자들 보다도 어떤 교부들 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두었으며, 성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 자기의 신학적 진술을 논리적으로 증거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계시 의존적 사고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학하는 자(sacrae Theologiae candidatos)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ad divini verbi lectionem ita)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여러 계명들은 헛되고 어리석은 것으로, 인간에게는 생명의 거룩함이나 완전성이 없기 때문에, 칼빈은 성경이야 말로 완전한 교리를(Holy Scripture contains a perfect doctrine)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들에 대한 비판에서 성경은 칼빈의 강력한 무기였으며, 오직 성경의 권위로서 로마 교회의 권위를 비판하고, 잘못된 그들의 신학 교리를 1536년도 강요에 있는 프란시스 1세에게 보내 헌사에서 지적한다. 성경에 대한 이런 태도는 칼빈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요 1권 7장 1절에서 칼빈은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Dei voces)을 직접 듣는 것처럼, 성경의 기원이 하늘로부터(e caelo) 유래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신자들로부터 완전한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칼빈은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교회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성경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사실에서 얻게 된다고 한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 서문에서 위대한 교사는 율법과 복음 철저하게 구별할 수 있는 자라고 했다. 이것은 루터가 성경을 좀더 자신의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칼빈은 구별을 인정하였지만, 연속성과 통일성을 말하였다. 즉 칼빈이 성경에 대한 이해는 좀더 신학적이기 보다 통합적이며 전체적인 흐름에서 철저하게 성경의 순수한 가르침을 해석하려는 그의 강한 의도가 많았다. sola scriptura와 analogia scriptura에 더욱더 철저한 칼빈을 성경적 신학자로 만들게 했으며 기독교 강요 전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은 원리이다.

6.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교리인 복음 강조

칼빈은 1536년 기독교 강요의 부제에서 구원의 교리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준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의 교리를 배우는 자들을 돕기 위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구원이라는 단순한 기독교의 진리를 매우 소중하게 언급한다. 바로 칼빈의 강요가 이 목적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헛된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으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1545년(1560년) 프랑스 판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원의 교리 안에서 교육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요지를 발견하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역할임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작업은 소위 에라스무스와 같은 인문주의자들이 사용한 기독교 철학(Christian Philosophy)의해서 수행될 수 없음을 단호히 말한다. 칼빈은 강요 3.7.1에서 철학자의 방법이란 오직 이성만 의지하고 성령에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인문주의자를 탈피한 칼빈이 이제 말씀의 신학자로서 구원 교리의 중요성을 자신의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에 하나로 언급하며, 바로 이 기독교를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보여 준다. 이런 내용은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칼빈은 자신의 목적이 종교에 열심을 내는 자들에게 참된 경건(veram pietatem)을 이루는 것에 초보적인 기초를(rudimenta) 전하고, 그리스도에 대해 주리고 목말라하는 프랑스 형제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적은 지식도 바로 알고 있는 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강요를 쓰게 되었다고 그 동기를 말한다. 칼빈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며,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 2:15)였다.

7. 믿음의 분수대로(ad fidei analogiam)

칼빈에 따른 믿음의 분수(analogia fidei)는 성경 해석의 원리와 성경에 대한 신앙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포함하고 있다. 칼빈은 프란시스 1세의 열심과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 우리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 성경적 안내를 한다. 칼빈은 그것이 믿음의 분수에 따라서(secundum analogiam fidei) 프랑스의 복음주의자들의 신앙을 검증되기를 희망하였다 칼빈은 롬 12: 6에서 바울은 모든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ad fidei analogiam) 하라고 주장하여, 성경 해석의 명백한 표준을 세웠다고(certissimam amussim posuit, qua probari scripturae interpretatio debeat) 주장한다. 칼빈은 만일 신앙의 규칙에(fidei regulam) 따라 자신들의 신앙이 검토되기만 한다면, 승리는 분명히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칼빈에 따른 믿음 분수(analogia fidei)는 우리의 모든 존재가 하나님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덕과 선이 우리에게 없으며, 우리는 죄의 노예이며, 장님이며, 절름발이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약한 존재이며, 우리의 자랑과 공로를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는 것인데 바로 이런 것들은 신앙과 일치(fidei convenientius)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로가 되는 선행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이 신앙에 적합하고, 신앙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대하여 확실한 기대를 가지는 것보다 더 신앙과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칼빈은 주장한다.


로마서 12장 6절 주석에서 칼빈은 믿음의 분수를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대목의 설명에서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유능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주석가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계시에 대한 특수한 은사로 이해하는 자들이 견해를 따르고자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의 예언이 단순히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것을 설명하는 특수한 은사에 지나지 않는 것은 모든 옛날 예언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와 당신의 복음 안에서 결론이 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아 세례와 할례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믿음의 분량(the proportion of faith)에 따라서 모든 성경적 해석을 조사해야 한다고 한다(Ad hanc anagogen et comparationem nos manuducit Apostoli regula, qua omnem scripturae interpretationem ad proportionem fidei exigere iubemur. Rom. 12: 3, 6)". 사도들이 유아세례를 주었다는 증거가 복음서에 분명히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 반박할 때 칼빈은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로 믿음의 법칙에 만족해야(we are content with the rule of faith) 한다고 한다.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칼빈은 신앙의 분수(analogia fidei)를 신앙의 순종(the obedience of faith)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것은 제롬과 같은 신학자들이 주장한 풍유적 해석을 반대하고, 교회 법전에 의존하는 방식을 탈피하여,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의무를 말한다. 이 원리는 교부들의 권위에 무조건 의존하는 것도 아니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풍유적해석도 아니며, 교회의 전통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오직 성경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8. 로마 카톨릭 신학에 대한 성경적 비판

칼빈은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복음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고, 복음을 바르게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에 대하여 호소한다. 이 내용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칼빈이 진정한 복음의 교리를 증거해야 할 이유와 그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변호하는 신앙고백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들이다. 성경을 왜곡시켜 해석의 오류를 만들었던 많은 신학자들을 비판한다. 여기에 제롬을 비롯한 소르본 신학자들을 언급한다. 칼빈이 이들에 대하여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의 해석의 실수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적, 교리적, 제도적 교회의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해석을 통하여 자신들의 교리들을 유지하여 교회를 부패시키고 성도들을 바른길로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교부들의 교리를 자신의 교리로 채용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로마 교회가 중시하는 것들 가운데 미사, 연옥, 성지 순례, 성직자 결혼금지와 같은 것들은 성경 말씀을 왜곡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오직 성경의 말씀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들으며, 그의 명령을 소중히 여기고 성경의 단순성을 혼란하게 하지 말며, 사변적 신학이론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타락한 이유는 그들은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는데서 나온 것이다. 오직 성경만으로 교회와 신학을 개혁한 칼빈의 의도가 바로 프란시스 1세게 보내 헌사에서 잘 나타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전체적인 내용의 발원은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비 성경적 교리들과 전통에 대한 비판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9. 교부들의 주장에 대한 철저한 성경적 검증방식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란 성경과 교부들의 권위적 문서와 그들의 주장에 일치하는 신학적 교리에 대하여 철저한 해체를 시도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잘못된 교리를 교부들의 주장에서 가져온 것을 다시 재 평가한 칼빈은 교부들의 정통 사상과 정당한 성경적 해석에 대해 동의했지만, 왜곡된 성경해석에 대해서는 칼빈이 교부들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교부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서 성경적인 근거에 평가를 내리며, 무조건이며, 자의적으로 로마 교회가 아전인수식으로 교부들의 사상을 함부로 주장한 헛된 교리를 우상과 미신으로 비판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존 크리소스톰, 오리겐(Origen), 어거스틴과 키프리안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게 인용하였다.



초기에 칼빈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크리소스톰을 특히 선호한 것처럼 보이며, 점차 기독교의 중요 핵심 교리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영향이 증대하였다. 특히 자유 의지와 성례전, 은총론과 예정론과 같은 교리에 관한 문제는 전적으로 어거스틴에게서 의존하였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해석이 가끔 지나친 교리적 해석으로 장황하게 된 점에 대해 동의를 하지 않았다. 칼빈은 교부들의 성경적 주장들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성경만이 그 자신의 신학의 유일한 원천이요 규범이요 신학 방법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칼빈은 교부들의 전통적인 주장들도 성경 본문에 근거한 정확한 주장인 항상 검증하여 평가하였다. 칼빈은 자유의지에 대한 교부들의 주장을 자신의 책 Treatise on Scandals에서 비판하였다. 심지어 그의 선배였던 마르틴 부처에게 신학과 목회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처가 교부들의 작품들을 분별력없이 무차별로 인용하자, 칼빈은 부처가 교부들의 성자 기도관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한 것에 대해 비난하였다.

III. 결론

결론적으로 칼빈이 기독교 강요 서문과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보여주는 자료들은 기독교 강요의 이해를 위한 중요한 안내자의 역할을 미리 보여주는 신학적 전제들로 받아 질 수 있다. 기독교 강요를 수정하고 보완하며 그리고 재 배치를 통하여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신학의 완전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작업은 그가 성경에 철저하게 따른 진정한 신학자의 자세를 보여 준다. 그는 교회의 유익과 성도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그의 열정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까지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순수하게 전하기 위한 그의 사명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오직 성경만으로 신학의 활동을 이루었으며,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 방법도 일관성 있게 그의 삶에서 사용되었다. 그의 신학의 강조는 구원의 교리임을 빼놓을 없을 것이다. 그가 참된 구원의 복음을 그의 동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영적 사랑도 매우 감동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런 작업이 신학자의 임무라는 것은 칼빈에게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다.


기독교 강요를 어떻게 하면 바로 이해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저자의 진정한 저작 동기와 목적을 바르게 이해할 때 효과적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요소들이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한 칼빈의 신학적 방법론을 온전하게 찾기 위하여 필연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다. 칼빈은 철저하게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인식하였다. 국가의 지도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해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철저하게 사람이 보는 것과 대조를 시켰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그의 자비 욍 자랑할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햇다 (고후 10: 17-18).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한 그이 강한 비평은 어떤 개인적인 감정 보다는 그들이 성경을 왜곡시키고 바른 순수한 교리에 따르지 않는 모습에 그의 역설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랑도 엿 보인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성경적-해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해석에 대한 걸작으로 간주 될 수 있다. 칼빈의 바로 이 작품은 중세로부터 지금까지 오류와 왜곡, 미신과 우상숭배, 인간의 공로와 성직자의 성직 남용, 교회와 교황의 절대적 권위를 버리지 않고 점점 말씀으로 멀어져 가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보여준다. 그들의 신학에 대하여 칼날처럼 번득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이신 주님께서 오심으로 그들의 인간 행위적 종교놀이 극장은 파괴될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 서문에 나타난 교훈은 단지 신학적 이해를 위한 전제가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우리의 부패와 비 성경적 신학행위와 말씀을 왜곡시켜 자기 만족으로 도취된 오늘의 기독교을 재 점검하고 수정해 줄 수 있는 해석학적 검증의 도구이다.

출처 : 비교적 젊은 개혁주의자들의 아지트!
글쓴이 : 하늘형상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