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와 있는 말씀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면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구약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요즘 신학계에서는 구약이라는 표현보다는 제1성경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합니다. 구약, 신약 이런 식의 표현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구약보다 신약을 더 중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다,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성취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약, 신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보니까 은연 중에 구약보다 신약을 더 중시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이 뭐냐면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한 것이 AD 397년인데 이때 신약 정경을 확정하면서 초대교회가 구약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이 더 중요한 겁니다. 구약이 있고 그 다음에 신약이 있는 겁니다. 구약을 신약이 대체한 것이 아니라 구약은 여전히 유효하고 거기에 신약이 플러스 알파로 존재하는 것이지, 신약이 구약을 대체한 것이 아니란 것을 교부들이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읽은 유일한 성경은 구약입니다. 초대교회가 읽은 유일한 성경도 구약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창세기, 에스겔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곳곳에 이사야, 에스겔 등 무수하게 많은 구약의 말씀들이 거기 담겨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같은 묵시 문학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 사용된 단어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겁니다. 구약이라는 것을 모르고 신약을 읽으면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가 구약은 용도 폐기 되어지고 신약만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이 너무 중요한 겁니다. 구약을 근거로 하여 신약이 탄생한 겁니다. 구약이 핵심이고 신약이 부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알게 모르게 언어에 지배를 받습니다. 구약, 신약이라는 표현을 쓰다보면 은연 중에 구약보다 신약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본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신학자들은 구약, 신약이라 부르지 않고 제1성경, 제2성경 이렇게 부릅니다. 그렇게 되면 뭐가 더 중요한 느낌이 들죠? 제1성경이 더 중요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은연 중에 구약, 신약이라고 부르면 신약을 중시하는 경향이 큰데, 제1성경, 제2성경 이렇게 부르면 제1성경을 더 중시하고 그 제1성경 아래에서 제2성경을 해석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 신약을 정경으로 채택한 교부들이 원하던 모습입니다. 구약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신학자들은 제1성경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왜 구약이라는 표현보다 제1성경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가, 그것은 구약을 흘러간 언약, 구약은 그림자, 신약은 실체 이런 식으로 구약을 신약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제1성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구약이 39권인데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은 유월절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목사님은 구약을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라 하시는가 라고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켜주실 때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이 애굽 탈출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는 것은 출애굽의 시작입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까지 진군하여서 그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7부족을 몰아내고 그 땅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전혀 다른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 주제는 출애굽에 이스라엘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에 실패했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이 바라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1~3단계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1단계는 애굽을 탈출하는 겁니다. 여기서 애굽은 고유명사도 되고 보통명사도 됩니다. 애굽이 고유명사가 되었을 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집트를 말합니다. 애굽이 보통명사가 될 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매 시대마다 존재합니다. 그 세력이 주전 15~13세기에는 이집트였습니다. 주전 8세기에는 앗수르였습니다. 주전 6세기에는 바벨론입니다. AD 1세기에는 로마입니다. 매 시대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대적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통명사화 된 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라는 것이 과거 이스라엘만 경험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시대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압제 가운데 시달리는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통치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사건입니다. 신약 골로새서 1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흑암의 권세로부터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 흑암의 권세의 지배 가운데 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하나님나라 백성 삼아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출애굽은 바로의 통치, 애굽의 지배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겁니다. 여기서 탈출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의 탈출, 둘째는 정신의 탈출입니다. 애굽의 통치로부터 몸이 탈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굽이 심어준 가치관, 세계관, 문화로부터 탈출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몸은 애굽을 나왔지만 그들의 가치관, 세계관, 문화는 여전히 애굽적이었습니다. 출애굽이 안 된 겁니다.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으로 힘있게 걸어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떤 반역을 꿈꾸었습니까? 자발적으로 걸어나왔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 거죠. 그것 때문에 광야 여정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야기가 민수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출애굽 1단계부터 실패했습니다. 몸은 탈출했지만 정신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다가 교회로 몸이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지배 받던 세계관과 가치관과 삶의 문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라 하고,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슈브라는 것은 걸어가던 길을 완전히 되돌리는 겁니다. 운전할 때 유턴이 있죠? 이 방항으로 가다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슈브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라는 것은 메타, 바꾼다는 겁니다. 노이아는 인식, 관점입니다. 인식과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계관을 바꾸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 말씀을 배우면서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 회심이라 합니다. 몸이 교회에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으면 몸은 교회에 있지만 나누는 대화나 함께하는 모든 것이 결국 세상일의 연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가 필요한 겁니까? 몸만 교회로 올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과 삶의 문화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몸은 출애굽을 했지만 정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은 애굽을 탈출했지만 여전히 애굽을 그리워했고 애굽적인 삶을 연장하여 살아가다 출애굽 1세대 대부분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민수기가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1단계부터 실패한 겁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뭐냐면 출애굽기 12장 37~38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출애굽 하냐면 애굽의 통치가 너무 싫었던 사람들이 다 나온 겁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야곱의 후손들이고 나머지 부류는 중다한 잡족입니다. 보통 신앙인들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는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할 때 탄생한 겁니다. 우리가 보통 야곱의 70명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시켜 주셨다, 이게 출애굽 사건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출애굽 했던 사람들이 야곱의 후손들만이 아닙니다.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왔습니까? 야곱의 후손과 중다한 잡족입니다. 바로의 통치가 싫었던 사람들이 애굽을 나온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고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출애굽 구원한 야훼 하나님이다, 그때 출애굽한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출애굽 구원사건 이후에 시내산 언약 체결을 통해서 탄생한 겁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은 야곱의 열두지파 후손 뿐만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이 나왔고 그들이 하나님만 믿는 이스라엘로 새롭게 전환된 시점이 시내산 언약체결 때입니다. 이때 중다한 잡족들이 이스라엘 12지파로 편입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유다지파로 편입된 갈렙입니다. 갈렙은 원래 그니스 사람입니다. 그니스는 에돔의 후손입니다. 조상을 거슬러 가면 에돔의 후손이었는데 출애굽때 갈렙 집안이 함께한 겁니다. 시내산 언약체결 이후에 이스라엘이 12지파 연맹공동체가 될 때 갈렙집안은 유다지파로 편입됩니다. 이후에 갈렙이 유다지파의 대표가 된 겁니다. 출애굽 했던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한 것처럼 야곱의 후손들만 나온 것이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나왔고 이들이 이스라엘로 재탄생한 시점이 시내산 언약사건입니다. 그러면서 중다한 잡족들이 열두지파로 편입됩니다. 이것은 제가 이후에 성경 본문을 강의할 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애굽이 싫었던 사람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한 자리가 시내산 언약사건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정리해보면 출애굽 1단계는 몸의 탈출과 정신의 탈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몸은 탈출했지만 정신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이 39권인데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은 유월절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목사님은 구약을 출애굽에 실패한 이스라엘의 이야기라 하시는가 라고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켜주실 때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이 애굽 탈출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굽을 탈출하는 것은 출애굽의 시작입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까지 진군하여서 그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7부족을 몰아내고 그 땅에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전혀 다른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 주제는 출애굽에 이스라엘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에 실패했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하나님이 바라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은 1~3단계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1단계는 애굽을 탈출하는 겁니다. 여기서 애굽은 고유명사도 되고 보통명사도 됩니다. 애굽이 고유명사가 되었을 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집트를 말합니다. 애굽이 보통명사가 될 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매 시대마다 존재합니다. 그 세력이 주전 15~13세기에는 이집트였습니다. 주전 8세기에는 앗수르였습니다. 주전 6세기에는 바벨론입니다. AD 1세기에는 로마입니다. 매 시대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대적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통명사화 된 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라는 것이 과거 이스라엘만 경험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시대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압제 가운데 시달리는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통치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사건입니다. 신약 골로새서 1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흑암의 권세로부터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 흑암의 권세의 지배 가운데 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셔서 하나님나라 백성 삼아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입니다.
출애굽은 바로의 통치, 애굽의 지배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겁니다. 여기서 탈출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의 탈출, 둘째는 정신의 탈출입니다. 애굽의 통치로부터 몸이 탈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굽이 심어준 가치관, 세계관, 문화로부터 탈출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몸은 애굽을 나왔지만 그들의 가치관, 세계관, 문화는 여전히 애굽적이었습니다. 출애굽이 안 된 겁니다. 출애굽 1세대는 가나안으로 힘있게 걸어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어떤 반역을 꿈꾸었습니까? 자발적으로 걸어나왔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 거죠. 그것 때문에 광야 여정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야기가 민수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출애굽 1단계부터 실패했습니다. 몸은 탈출했지만 정신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다가 교회로 몸이 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지배 받던 세계관과 가치관과 삶의 문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라 하고,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슈브라는 것은 걸어가던 길을 완전히 되돌리는 겁니다. 운전할 때 유턴이 있죠? 이 방항으로 가다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슈브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라는 것은 메타, 바꾼다는 겁니다. 노이아는 인식, 관점입니다. 인식과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계관을 바꾸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 말씀을 배우면서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 회심이라 합니다. 몸이 교회에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으면 몸은 교회에 있지만 나누는 대화나 함께하는 모든 것이 결국 세상일의 연장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가 필요한 겁니까? 몸만 교회로 올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과 삶의 문화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몸은 출애굽을 했지만 정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은 애굽을 탈출했지만 여전히 애굽을 그리워했고 애굽적인 삶을 연장하여 살아가다 출애굽 1세대 대부분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민수기가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1단계부터 실패한 겁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뭐냐면 출애굽기 12장 37~38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출애굽 하냐면 애굽의 통치가 너무 싫었던 사람들이 다 나온 겁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야곱의 후손들이고 나머지 부류는 중다한 잡족입니다. 보통 신앙인들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는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할 때 탄생한 겁니다. 우리가 보통 야곱의 70명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시켜 주셨다, 이게 출애굽 사건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출애굽 했던 사람들이 야곱의 후손들만이 아닙니다.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왔습니까? 야곱의 후손과 중다한 잡족입니다. 바로의 통치가 싫었던 사람들이 애굽을 나온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고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출애굽 구원한 야훼 하나님이다, 그때 출애굽한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백성이 되길 원합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출애굽 구원사건 이후에 시내산 언약 체결을 통해서 탄생한 겁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은 야곱의 열두지파 후손 뿐만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이 나왔고 그들이 하나님만 믿는 이스라엘로 새롭게 전환된 시점이 시내산 언약체결 때입니다. 이때 중다한 잡족들이 이스라엘 12지파로 편입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유다지파로 편입된 갈렙입니다. 갈렙은 원래 그니스 사람입니다. 그니스는 에돔의 후손입니다. 조상을 거슬러 가면 에돔의 후손이었는데 출애굽때 갈렙 집안이 함께한 겁니다. 시내산 언약체결 이후에 이스라엘이 12지파 연맹공동체가 될 때 갈렙집안은 유다지파로 편입됩니다. 이후에 갈렙이 유다지파의 대표가 된 겁니다. 출애굽 했던 사람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한 것처럼 야곱의 후손들만 나온 것이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나왔고 이들이 이스라엘로 재탄생한 시점이 시내산 언약사건입니다. 그러면서 중다한 잡족들이 열두지파로 편입됩니다. 이것은 제가 이후에 성경 본문을 강의할 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애굽이 싫었던 사람들이 나와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한 자리가 시내산 언약사건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정리해보면 출애굽 1단계는 몸의 탈출과 정신의 탈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몸은 탈출했지만 정신은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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