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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구약개론 녹취 1

by 【고동엽】 2021. 10. 28.

오늘은 구약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한글 번역 성경입니다. 구약은 원어가 히브리어 성경이고 신약은 헬라어 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타낰이라고 부릅니다. 왜 타낰이라고 부르냐면 성경에 세 개의 장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장르는 토라 율법서, 느비임 예언서, 케투빔 성문서입니다. 토라, 느비임, 케투빔에서 앞에 있는 자음하고 모음 아를 붙이게 되면 타낰이 됩니다. 토라의 티긑, 느비임의 니은, 케투빔의 키엌 여기에 모음 아를 붙이게 되면 타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글 성경은 구약 성경을 네 개의 장르로 나눕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토라 율법서 또는 모세오경이라고 말하고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를 역사서라고 합니다. 그 다음 욥기부터 아가까지를 시가서라고 말하고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를 예언서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세 개의 장르로 나누었는데, 우리 한글 성경은 네 개의 장르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장르를 네 개로 나눈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바로 70인경 때부터입니다. 70인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한 최초의 번역 성경인데 이때 사용된 언어가 헬라어입니다.

 

이후에 초대교회가 구약을 읽을 때 히브리어로 된 구약이 아닌 70인경으로 번역된 구약을 주로 읽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세 개의 장르가 네 개의 장르로 전환된 것은 70인경 때부터이고 70인경의 장르 구분을 그대로 받아 안고 있는 것이 우리 한글 성경입니다.

 

지금도 히브리어 성경을 보시면 세 개의 장르가 있고 제일 처음 본문이 창세기이고 마지막 본문은 역대기입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제일 처음 본문이 창세기이고 마지막 본문은 말라기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권수가 24권입니다. 한글 성경은 39권입니다. 정리하자면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한글 구약성경은 몇 가지 주요 차이가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은 장르가 세 개이고 한글 성경은 네 개로 나누고 있고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총 24권인데 한글 성경은 39권입니다.

 

그런데 권수는 다르지만 내용은 똑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를 유대인들은 한 권으로 봅니다. 우리는 상하 두 권으로 나누었습니다.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를 유대인들은 한 권으로 봅니다. 이것을 70인경부터 한 권씩 나누어서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 12권의 소예언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권수는 다르지만 내용과 분량은 같습니다. 중요한 차이는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역대기로 끝나는 히브리어 성경과 달리 한글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로 끝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변화는 70인경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70인경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기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는 모르고 헬라어만을 알고 있는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 교포 2,3세대를 위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헬라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의 국책사업과 연관하여 이 번역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후자와 연관하여 70인경이라고 하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주전 3세기에 이집트의 왕, 바로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로는 한 사람의 고유한 이름이 아닌 조선시대의 왕을 지칭하는 타이틀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모든 왕은 바로라고 하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주전 3세기의 이집트의 바로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거대한 도서관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예로부터 학문의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참고로 AD 1세기에 3대 학문도시가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발상지인 아테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사도바울이 태어났던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 이 세 곳이 AD 1세기의 대표적인 3대 학문도시입니다.

 

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주전 3세기에 이집트의 왕인 바로가 거대한 도서권을 지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도서관에 고대 근동에서 각 민족들이 가장 사랑했던 책들을 비치하려고 했고, 당시 이집트의 공용어가 헬라어였기에 헬라어로 책을 번역해서 거기에 비치하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인구가 100만명이었는데 그 중 30만명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가장 사랑한 책은 토라였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을 만들면서 유대인이 가장 사랑한 책도 헬라어로 번역하여 거기에 비치하려고 했던 겁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토라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이 가능하려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을 번역자로 참여시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인데, 각 지파에서 6명씩의 랍비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잘 아는 랍비들을 총 72명을 뽑았습니다. 이들 72명을 뽑아서 옆 사람의 것을 컨닝하지 못하도록 각방에 모셨습니다.

 

그러면서 토라를 번역하게 했는데 놀랍게도 72명의 사람들이 똑같이 70일만에 번역을 완료하게 됩니다. 그후 각 사람들이 번역한 것을 모아서 비교해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번역을 한겁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이 번역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랍비들의 개인적인 역량과 능력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과 도우심이 임한 것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임한 특별한 문서로 이해하게 되면서 70인경에 권위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처음에는 72인경이라고 불렀으나, 72라는 숫자는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고대 근동 특히 이스라엘에서 5개의 숫자가 아주 중요한 완전수입니다.

 

3, 4, 그리고 3과 4를 더한 7, 3과 4를 곱한 12, 역사의 한 주기라고 생각한 10 이것이 완전수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40일, 70제자, 120문도, 400년 이런 식의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이런 식의 숫자가 나올 때는 이것을 물리적인 숫자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완전수로 보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40이라는 것을 분해하게 되면 4와 10의 결합이죠. 4와 10 모두 완전수입니다. 그리고 완전수의 결합도 완전수입니다. 초대교회의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다 라고 사도행전 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의 120을 분해하면 10과 12의 결합입니다. 10과 12 모두 완전수입니다. 120문도라는 것은 실제 물리적으로 계수를 해보니 120명이 모였다는 말도 되고,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할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70을 분해하면 7과 10의 결합입니다. 70인경은 완전하고 온전한, 신의 영감이 임한 번역이라는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주전 3세기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을 처음에는 72인경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가장 완전한 번역이라는 의미로 70인경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70인경으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첫 번째 변화로는 성경의 책 제목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에는 책의 제목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것처럼 책의 제목이 생긴 것은 70인경 때부터입니다.

 

옛날에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글을 쓴 후, 이것을 이어서 두루마리처럼 들고 다녔습니다. 두루마리로 감싸있으면 어떤 것이 내가 찾고 있는 본문인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두루마리를 펼쳤을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 또는 앞부분에 나와 있는 중요한 단어를 그 책의 제목처럼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라는 두루마리를 펴게 되면 제일 먼저 단어가 브레시트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브레시트라고 부른 겁니다. 레위기라는 두루마리를 펴게 되면 바이크라 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옵니다. 민수기를 펴게 되면 베미드바르라는 단어가 앞 부분에 나오는데 ‘광야에서’라는 뜻입니다.

 

민수기가 광야 여정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이런 식으로 두루마리의 제목을 붙인 겁니다. 그러다가 70인경 번역시 각 권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은 다음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뽑아서 책의 제목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두루마리를 읽어보니까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게네시스라고 부른 겁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는 창세기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두루마리는 탈출에 대한 이야기여서 엑소더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것처럼 성경의 책의 제목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 바로 70인경때부터 입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히브리어 성경은 장르가 세 개입니다. 토라 율법서, 느비임 예언서, 케투빔 성문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세 장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했지만 장르 사이의 권위를 구분하였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어떻게 구분하였냐면, 여러분 성막이라는 것을 아시죠?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성막은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성막을 자세히 보시면 세 개의 공간으로 구분됩니다. 성막의 동쪽 문으로 들어오게 되면 제일 먼저 뜰이 있습니다. 좀 더 들어오면 성소가 있고 더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막이라는 공간 안에 뜰도 있고 성소도 있고 지성소도 있는 것입니다. 성막 전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지만 여기서 가장 거룩한 공간은 지성소입니다. 그 다음은 성소입니다. 그 다음은 뜰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성막의 세 공간과 연관시켜 비교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하고 성막의 모든 공간이 거룩하지만 가장 거룩한 곳은 지성소와 토라입니다. 토라는 지성소에 비유됩니다. 예언서는 성소에, 그리고 성문서는 뜰에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어떻게 배치했냐면 가장 거룩한 말씀을 앞에 배치한 겁니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은 가장 거룩한 토라가 가장 앞에 나오고 다음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각 권으로 보게 되자면, 히브리어 성경은 제일 먼저 창세기가 나오고 마지막에 역대기가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역대기를 장르상 성문서로 이해한 겁니다.

 

이런 식의 성경 배치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순서로 바꾼 것이 70인경부터 입니다. 70인경으로 번역하면서 첫째 책의 제목을 달았고, 두 번째 태초의 창조부터 주전 400년경의 말라기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성경을 재배치한 겁니다. 그래서 이 태초의 창조, 전 역사, 족장시대, 출애굽, 사사시대, 왕정시대, 남북분열시대, 포로기, 포로귀환 이후, 중간기 이런 식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재배치한 것이 70인경부터이고 그 배치순서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 한글 번역 성경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원래 성경에는 장과 절이 없습니다. 이 장과 절이 없다는 것은 뭘 생각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냐면 신약이 총 27권인데 그 중 21권이 서신서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별명이 편지의 글입니다.

 

신약성경의 약 4분의 3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을 때 1장 1절 이런 식으로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쭉 기술하였을 겁니다. 원래 성경에 장과 절이 없었다는 것은 서신서를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장과 절이 없게 되면 제일 불편한 것이 성경의 특정 말씀을 찾는게 어렵습니다.

 

장과 절이 없는 두루마리에서 말씀을 찾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지금 우리처럼 장과 절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과 절이 생기다보니까 안 좋은 점이 있습니다. 성경을 끊어 읽게 된다는 겁니다. 특별히 한국 교인들은 송구영신마다 성경일독 결심을 많이 합니다. 평일에는 3장 주일에는 5장 읽으면 일독할 수 있다,

 

그래서 일수 도장 찍듯이 체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꾸 끊어 읽으면 안 좋은 점이 성경은 원래 장과 절이 없다보니 흐름이 중요한데 끊어 읽을 경우 맥락을 연결하기 쉽지 않고 단절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성경읽기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장과 절이 있는 성경을 읽고 있지만 성경을 끊어 읽지 않고 전후문맥을 살피며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에 원래 장과 절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잠언 31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여기 보면 누가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겠느냐, 그런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진주를 소유하는 것보다 귀한 일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방금 드린 설명처럼 원래 성경에는 장과 절이 없습니다. 제가 잠언 31장 10절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원래 성경에 근거해 보면 이 말씀은 잠언을 끝내는 부분에 있는 것입니다.

 

잠언을 끝내면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건네고 있습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 진주를 소유하는 것보다 귀한 일인데 라고 질문하면서 끝내는 것이 잠언입니다. 참고로 지금 우리 한글성경에는 현숙한 여인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분들이 그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현숙한 여인이 되어야되는데 하면서 걸음도 조신하게 걷고 말도 천천히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현숙한 여인이라는 번역은 너무나 한국식 번역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는 ‘에쉐트 하일’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현숙한 여인이라는 뜻보다는 능력 있는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집안도 잘 다스리고 사람들에게 은사와 능력에 맞게 일도 잘 분담하는 능력 있는 여인을 말하는 겁니다. 잠언은 이처럼 능력 있는 여인을 누가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겠느냐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진주를 소유한 것보다 귀한 일인데 라고 질문을 하며 끝납니다. 이번에는 룻기 3장 11절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보아스라는 남성이 룻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가 현숙한 여자인 것을 안다, 여기도 현숙한 이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언어는 에쉐트 하일로 능력있는 여인입니다. 잠언은 질문을 합니다. 누가 능력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 진주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인데 이렇게 질문을 하며 끝나는 것이 잠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룻기에 나오는 겁니다. 룻과 같은 여인이 능력있는 여인이다, 누가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습니까, 보아스와 같은 남성이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는 잠언은 질문하고 룻기는 대답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잠언 다음에 룻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룻기가 사사기 다음에 나옵니다. 왜냐하면 룻기 1장 1절에 보시면 룻기의 시대적 배경이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70인경으로 번역하면서 태초의 창조부터 주전 400년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성경을 재배치 하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사사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사사기와 룻기를 함께 모은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잠언은 질문하고 룻기는 대답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잠언 다음에 룻기가 나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원어 성경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제일 먼저 다른 언어로 번역한 성경이 70인경입니다.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70인경 성경을 번역하면서 두 가지 수정을 가했습니다. 첫째는 책의 제목을 달았고 두 번째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성경을 재배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중요한 본문일수록 앞부분에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토라, 예언서, 성문서의 순서로 배치했는데 70인경 때부터 태초의 창조부터 주전 400년까지 시간적 순서대로 성경을 재배치했습니다. 지금 우리 한글 성경은 70인경의 배치 순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기억해야 할 것이 히브리어 성경은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역대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창세기는 총 50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족보 이야기가 10번이 나옵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별명이 족보의 책입니다. 역대기를 보시면 역대상 1장부터 9장까지 이스라엘 12지파의 족보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창세기부터 역대기까지의 순서로 성경을 배치했는데 창세기와 역대기 모두 족보가 나옵니다. 이런 것을 수미상관 구조라 하는데, 족보로 시작해서 족보로 마무리 하는 것이 히브리어 성경의 배치 구조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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