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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유산과 종교의 회귀

by 【고동엽】 2021. 10. 27.

본회퍼의 유산과 종교의 회귀

 

디트리히 본회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2월 4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행한 강연

 

 

볼프강 후버, 이신건 옮김

 

 

1.

디트리히 본회퍼가 일평생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종교가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그의 신학을 볼 때도 그렇지만, 그의 생활을 볼 때도 역시 그렇습니다.

신학에 관해 말하자면, 본회퍼는 다만 그의 첫 논문, 즉 박사학위 논문 Sanctorum Communio(성도의 교제)만을 교회론 연구에 바친 것이 아닙니다. 본회퍼의 신학적 구상은 교회의 현실성에 온통 집중되었습니다. 1932년 여름 학기에 개설한 교회의 본질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교회는 신학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기도 합니다. ... 교의학은 계시의 장소인 교회와 함께 출발해야 합니다.”

그의 생활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생애의 결정적인 전환을 교회를 위한 헌신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본질에 관해 강의했던 바로 그 시절에 경험했던 위대한 해방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습니다:“그 때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의 생활은 반드시 교회에 속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그의 직업도 바로 이와 같은 깨달음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즉 그는 먼저 런던 교회에서 일하였고, 그 다음에는 특히 고백교회의 부목사 교육을 위해 일하였습니다. 교회를 위한 이와 같은 그의 헌신은 이제 그의 모든 관심이 교회와 목사직의 갱신에 모아졌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본회퍼는 교회를 교리나 교의학적 이론의 대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생활양식으로도 이해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양자, 즉 학문과 생활은 서로 맞물려 있었습니다. 핑켈발데(Finkelwale) 신학교에서 행한 강의에서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교회가 증언하는 진리는 이론적 추론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교리의 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진리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의 생활양식을 창조합니다. 순수한 교리를 설교하는 교회라도 진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진리의 본질은 이 교회의 생활양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생활양식은 예수를 뒤따르는 것이지, 민중과 가까이 지내거나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를 뒤따르려는 바로 이와 같은 결심은 본회퍼로 하여금 이 세상 안에 온전히 머물면서 신앙하는 법을 배우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 자신과 맹세하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그는“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름에 신실하게 응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부름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것은 - 공동생활, 예배, 성도의 비밀훈련이 갖는 상당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 홀로 경건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미래의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대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나치 정권의 폭력 행위로 인한 도전 가운데서 디트리히 본회퍼가 예수의 제자직(弟子職)이라고 불렀던 것과 그의 매형 한스 폰 돈아니(Hans von Dohnanyi)가 품위(Anstand)라고 불렀던 것은 합치되었습니다. 즉 한스 폰 돈아니는 그와 그의 처남이 걸어갔던 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디트리히와 나는 참으로 정치가로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다만 품위를 갖춘 한 사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행동은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를 질문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과 생활, 아니 교회와 품위가 왜 그렇게도 멀리 동떨어질 수 있었습니까? 테겔((Tegel) 감옥 안에서 본회퍼는 이와 같은 질문을 점점 더 심각하게 제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은 본회퍼가 그 당시의 사람들이 현대에 갇힌 신앙의 종교적 상황이라고 불렀던 것에 관해 전개하였던 논쟁의 배후에 깔려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질문이 계기가 되어 본회퍼는 현대인의 성숙성과 신앙의 종교적 해석 사이에 벌어진 틈에 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종교에 대한 질문은 결국 본회퍼의 중심적인 신학 질문이 되었습니다.

본회퍼가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방법이 오늘날에는 낯설어 보입니다. 비종교의 시대라는 그의 주장이 남긴 영향은 상당히 양면적입니다. 종교가 회귀하는 시대에 종교의 종말에 관한 본회퍼의 주장이 어떤 의미를 줄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먼저 저는 본회퍼의 생애 중에 종교라는 주제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Widerstand und Ergebung(저항과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옥중 서신들 속에서 종교라는 주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의 주제에 관한 본회퍼의 주장이 지금 우리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만약 도움이 된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살펴볼까 합니다.

 

 

2.

본회퍼가 보여준 모범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그의 생애와 그의 신학이 특히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밀접한 결합의 핵심에는 신학자의 길에서 그리스도인의 길로 들어선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증언하였듯이, 26세의 나이에 산상설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연구 활동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절에, 히틀러가 아직 권력을 잡기 전에 그는 산상설교를 완전히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의 앞에 펼쳐질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스스로 비판하면서 말하였듯이, 이와 같은 만남은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와 같은 만남은 이미 구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못한 그의 윤리적 입장을 명료하게 밝힐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 평화와 정의에 대한 의무가 본회퍼의 결정적인 기본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양심의 깨끗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책임이 기독교 윤리의 지배 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도 결합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는 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였고, 그 대신에 장차 고백교회의 목사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치 정권의 불법을 공공연히 비판하였고, 그 결과로 글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히틀러 군대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확신하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의 객원교수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독재자가 종말을 고한 후에 독일의 미래를 위한 책임을 떠맡기를 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독재자의 나라로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저항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불가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투옥되었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책임과 대리(代理)는 일찍부터 이미 본회퍼의 생애의 주제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신학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매우 강한 확신을 지닌 나머지, 본회퍼는 남을 위한 존재를 윤리의 주요 개념으로 삼았고, 남을 위한 교회를 교회론의 주요 개념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남을 위한 존재(Proexistenz)라는 기독교의 중요한 사상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영위되고 교회 안에서도 경험될 수 있는 상호성을 지나치게 강하게 부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 순더마이어(Theo Sundermeier)가 남을 위한 존재라는 기독교적인 요소를 이보다 더 포괄적인 기독교적 개념, 즉 공동체적 축제, 상호 간의 배움과 나눔을 가능케 하는 상생(Konvivenz)의 개념 안으로 수렴하자고 제안한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이와 같은 상생의 개념이 디트리히 본회퍼가 핑켈발데 신학교의 시절에 실천하였고 신학교가 강제로 폐쇄된 후에는 글로 남겼던 성도의 공동생활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본회퍼는 개신교적인 영성을 탁월한 형태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본회퍼가 그의 작은 책 속에서 설명하였던 이와 같은 공동생활의 영성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른 통찰과도 결합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신학자의 길에서 그리스도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종교적 인간으로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는 통찰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개념에서 핑켈발데 시절의 영성은 의심할 나위가 없이 종교에 관한 하나의 견해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회퍼가 종교를 위해 선택하는 언어들이 얼마나 풍성한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앞에서 부끄러움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공동생활을 하려고 오직 형제들만을 배려하는 우리의 배타성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쉽사리 망각되곤 하지만, - 예를 들어 말하면, - 그리스도교 형제들의 사귐은 우리가 매일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은총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귐은 오직 짧은 기간 동안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로 하여금 깊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 깊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삼아 서로 사귐을 나눌 수 있음은 오로지 은총 외에 다른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3.

이와 같은 인용 구절은 예컨대 본회퍼가 종교적으로 음치(音癡)였다고 말할 수 없게 합니다. 이 말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자신에 관해 주장하였던 말인데, 최근에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도 이와 같은 어법을 쓴 적이 있습니다. 본회퍼가 종교를 상대화하였고, 심지어 비종교 시대로의 변천을 말했으며, 비종교적인 기독교의 가능성에 관해 질문했을 때, 그가 말하려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종교에 대한 필연적인 비판을 예민하게 느낀 그 자신의 종교적 실천이었습니다. 종교 비판은 1944년에 씌어진 신학적인 옥중 서신들 안에서 집중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종종 간과되는 사실로서 본회퍼의 신학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종교비판적인 용어들은 초기의 문헌들에서도 이미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본회퍼는 핑켈발데 시절에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안의 존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불렀던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로부터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설립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 부분이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오순절 사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새로운 종교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행위에 관한 복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명이 압류되었다는 말입니다. 종교가 세속보다 우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위가 종교와 세속보다 우월합니다.

이와 같은 출발점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 신학에서 더욱 발전됩니다. 신앙은 삶의 행위로서 종교의 부분적인 특징과 대립됩니다. 본회퍼가 비판한 것은 결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특정한 형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회퍼는 인간적인 경건을 통해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는 종교를 비판하였습니다. 본회퍼는 현대의 조건 아래 독특한 방식으로 형성된 종교의 한 형태에 주목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단지 종교적 자의식의 표현 형식으로 이해하는 종교입니다.

본회퍼가 바라본 종교는 예수의 무력(無力) 안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을 붙잡는 종교입니다. 본회퍼는 성서에 나오는 특별한 장면, 즉 겟세마네 장면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이해를 설명합니다.

이 장면의 주제는 신약성서 전체의 주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예수는 무력하게 고난을 받는 자로 그려집니다. 절망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향해 외치며, 그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낙심한 그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고 있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 자고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 장면을 종교적인 인간이 하나님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들을 뒤집는 장면으로 해석합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이 없는 세계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도록 요구를 받는다면, 이를 통해 그는 하나님이 없는 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특별히 종교적인 인간이 된다는 뜻이 아니며, 그 어떤 방법을 근거로 그 어떤 것들(죄인, 회개하는 사람 혹은 성자)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하나의 인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합니다. 종교적인 행위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듭니다.

이와 같이 짤막한 편지 속에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우리가 비종교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용감하게 주장하게 된 기본 동기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종교의 종말에 관한 그의 주장은 성금요일(고난)의 신학 안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19세기 초에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hlem Frierlich Hegel)이 성금요일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고, 이로부터 하나님의 죽음에 관한 철학적 이론을 발전시켰다면, 디트리히 본회퍼는 십자가에 이르는 예수의 길을 - 그 가운데서 특히 겟세마네 장면을 - 실존적으로 해석하고, 그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은 종교적 실천이 아니라 세속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모습을 띠는 삶의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이러한 해석은 헤겔의 주장에 어금버금할 정도로 대담합니다. 더 매력적인 것은 디트리히 본회퍼 자신의 삶의 상황이 겟세마네 장면의 이러한 해석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래서 그의 해석은 매우 정당한 힘을 얻게 됩니다.

그의 친구와 그 자신을 반역죄로 몰아간 소송으로 인한 직접적인 고통 가운데서, 적시에 -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도 적시에 - 거행될 것 같은 히틀러 암살 시도를 기다리는 가운데서, 이와 같은 극도의 긴장 가운데서 본회퍼는 자신의 생애를 결정짓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종교의 종말에 관해 설명한 일련의 편지들은 1944년 4월 30일에 씌어지기 시작하고,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하기 이틀 전인 1944년 7월 18일에 끝맺습니다. 이로써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지금까지 품어오던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1944년 7월 18일에 씌어진 마지막 편지에는 제가 인용하였던 겟세마네 장면에 관한 묵상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무슨 이유로 그가 종교의 종말에 관해 대담한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까?

이런 생각이 불안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본회퍼 자신도 인정합니다. 그래도 그는 이런 생각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일어난 것은 그가 자신을 계속 뒤흔든 하나의 질문을 해명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기독교 혹은 그리스도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학적 언어로나 경건한 언어로 더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내릴 수 있을 듯한 고독한 내면이나 양심의 영역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와 더불어 현대적 의미에서 종교의 시대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실로 본회퍼도 종교적 전제(前提)와의 철저한 결별을 선언합니다. 즉 그는 종교적 형태의 기독교와는 단호히 결별합니다.

본회퍼가 이와 같은 종교적 전제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종말을 맞이했다고 그가 말하는 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계속 질문되고 있습니다. 그가 현대인의 종교 이해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기독교의 2천년 역사의 특징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화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이해를 역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내면성과 관련되어 있는 하나의 특별한 삶의 영역인 하나님 관계에 관한 표상을 지적합니다. 그가 지적하는 하나님의 표상이란 인간의 설명의 가능성이 - 여전히 - 한계에 부딪혔을 때에 설명을 끌어들이는 미봉책을 말합니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종교의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약점과 인간적 가능성의 한계를 이용하려는 경향성입니다.

본회퍼가 확신하기로는, 이런 종류의 종교는 현대인의 성숙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도 결국 종교가 아니냐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됩니다. 이에 맞서 본회퍼는 말하길, 종교는 다만 기독교의 겉옷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겉옷은 서로 다른 시대마다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와 종교를 구분하는 사람은 비종교적인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본회퍼가 주장하는 기독교란 세상 속에서 영위되고 세상의 세속성에 참여하는 기독교를 말합니다. 물론 그가 말하는 기독교란 결코 세속화된 기독교, 알맹이가 빠져버린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알맹이로 돌아가는, 그리고 원초적인 이해로 되돌아가는 기독교를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행동 특징은 다시금 새롭고 혁명적인 그 무엇으로 경험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회퍼가 기독교의 종교적 겉옷을 벗어버리려는 이유는 그 본질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은 결정적이라는 말입니다. 정의와 진리로 인도하는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본회퍼는 전통적인 잣대로 볼 때에는 비종교적일지는 모르지만 해방과 구원을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언어를 찾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순환 논리는 끝을 맺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의 편에 섬으로써 이러한 언어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제9시에 예수는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본회퍼는 마가복음의 수난 이야기로부터 한 구절을 취하여, 고난과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리스도의 무력(無力)을 하나님 이해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바로 여기서 그는 기독교 신앙과 종교의 차이점을 봅니다. 본회퍼가 새로운 기독교 이해로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거짓된 하나님 표상을 버리고 성숙한 존재로 발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숙한 세상은 자신의 무력을 통해 세상 속에서 힘과 자리를 얻는 성서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4.

본회퍼의 사상을 20세기 중엽으로부터 21세기 초엽으로 옮겨놓은 일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실로 인간의 성숙성에 관한 표상은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자기 결정과 가지 실현은 고상한 미덕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결정짓는 것은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소유하려는 소원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현대인이 계몽주의와 세속화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중심에서, 대단한 행운의 시간에 자신의 삶을 창조주의 선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과 슬픔의 상황에서 그들은 - 비록 시대의 언어를 쓸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지만, - 신앙의 언어 속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합니다. 종교의 출처를 모호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사회의 세속화라는 표상은 현대의 발전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합니다. 물론 세속화의 개념이 유용하게 쓰이는 중요한 상황들은 존재합니다. 예컨대 특히 국가와 그 법질서의 세속화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화의 개념으로는 사회적 발전을 보편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현대 사회의 복합적인 특징을 우리는 세속화의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자신의 종교적 형태를 부인한다면, 다른 종교들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회에서, 예컨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 현대화를 위한 투쟁은 세속화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 특징만이 아니라 법질서의 세속성조차도 거부하는 대중적인 저항 운동을 야기합니다. 종교적 근본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초엽의 특징이 되고 있는 종교적 헌신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놀랍도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인간이 종교의 의미를 새롭게 추구하는 유일한 형태가 결코 아닙니다. 확산되는 경제주의(經濟主義)에 저항하는 가운데서 인간의 삶의 영적인 차원에 관한 물음이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특히 개신교에서는 오랫동안 다만 세상 경험을 해석하는 하나의 견해로만 여겨지던 기독교 신앙이 초월적인 관점에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단지 정치적인 배우와 사회윤리적인 조언가로만 인식되던 교회가 다시금 거룩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오랫동안 노인과 병자를 위한 섬김의 활동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헌신이라는 대답이 제시되었습니다. 비록 이와 같은 대답도 의미가 있지만,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거룩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 영혼을 위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간의 삶의 종교적인 심층(深層)이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교회가 이와 같은 심층에 관한 논의에 관해 분명한 방향을 제공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영적인 능력과 포기될 수 없는 신앙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에게 다시금 인정을 받고 주장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독교의 변증을 통해, 혹은 신앙에 대한 온갖 해명과 변명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개연성을 천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회퍼는 이와 같은 시도의 약점을 분명히 설명하였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앙의 체계적인 부실화를 막고, 경험과 지식을 위한 신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지식은 공적으로도 새로운 주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금 종교의 세계와 자신의 신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의 척도에 쏠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지식이 인간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질적인 삶에 반드시 요구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신앙의 지식이 다시금 인정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성서의 개념들을 종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종교적으로 해석해야 합니까? 오늘날의 전망 아래서 비종교적인 해석에 관해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본회퍼가 겟세마네 장면의 주석에서 발전시켰던 관점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제기한 문제의 급진적인 성격을 우리가 완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해석의 바탕으로 삼았던 신앙과 종교의 대립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는 맞지 않습니다.

종교는 오늘날에도 많은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종교는 사적인 영역으로 추방된 경건한 감정의 침전물로,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통제 기구로, 자살 폭탄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순교자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교는 구원과 해방의 힘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에 달려서 극도의 고독을 감수한 자, 종교적 지도자로부터 배척을 받고 정치권력과 가까운 동료의 배반으로 인해 사형선고를 당한 자의 이름으로도 종교는 그와 같은 힘을 발휘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믿고 인간을 위해 고난과 무력을 감수한 신앙도 종교이며, 종교적인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하고 해방하는 기독교 신앙의 능력을 논박을 통해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언제나 새롭게 간구되고 선포되며 영위될 따름입니다.

종교를 배격한 본회퍼의 입장은 지지될 수 없습니다. 종교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현실의 한 부분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종교는 언제나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인 형태가 되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종교적 형태를 배제하면서 신앙을 유지하려는 것은 주제넘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주장을 유용하게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본회퍼의 신학이 대체로 지니는 장점은 그가 현대인에게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가 신학적으로 종교비판을 하게 되었던 것은 바로 그가 현대인의 과학적 의식(意識)과 대면하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이미 성숙해진 인간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개념을 통해 본회퍼는 유럽에서 과학적 진리 의식의 지배 아래 발전되어온 근본적인 입장을 파악합니다. 인간의 성숙성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은 지성적 솔직성의 명령입니다. 그에 반해 미봉책으로 이해된 하나님을 제시하기 위하여 과학적 인식 상황의 빈틈을 이용하는 것은 지성적으로 부정직한 일입니다. 본회퍼는 그 당시에 널리 펴져 있는 - 교회 안에도 퍼져 있는 - 의식이 바로 이와 같은 영향 아래 있음을 보았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종교를 근거로 삼아 자연과학적 견해들을 거부하는 최근의 논쟁을 바라보는 사람은 미봉책의 종교가 오늘날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는 기독교 신앙과 걸맞지 않습니다.

본회퍼로부터 신학적 사고의 도움을 받은 사람도 종교가 개인의 삶과 공적인 영역에서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본회퍼의 주장을 근거로 삼아 기독교 신앙이 내적으로 불가피하게 종교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헌신이 성숙성의 포기 위에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듯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강요하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명분으로 세계의 생성과 생명의 발전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서의 창조 신앙을 창조과학적 세계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강요의 예를 들면, 인간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 신앙을 악용하고, 그래서 하나님 자신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로 끌어들이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근본주의적인 종교 형태가 오늘날 도처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본회퍼가 역설한 성숙성의 척도 앞에서 이와 같은 일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인간의 종교성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 종교 자체가 유일한 궁극적인 현실성으로 설명되고, 하나님의 현실성이 인간의 종교 활동과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종교적인 것을 - 본회퍼가 핑켈발데 시절에 이미 주장했듯이 -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종교적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최고의 가치를 위해 봉사하는 신학은 내적으로 불가피하게 종교에 관한 단순한 해석, 인간의 종교성에 관한 해석학이 될 것입니다.

그에 반해 종교가 회귀하는 하는 바로 이 시기에도 하나님의 현실성과 인간의 종교를 진지하게 구분해야 할 강한 근거가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구분은 양자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위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이러한 구분의 토대 위에서만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교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렇게 될 때에만 종교는 본질 그대로, 즉 인간의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일평생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종교가 아니라 교회였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회퍼의 신학적 충격은 오늘날 종교의 회귀와 결부되어 있는 경험과 더 이상 충돌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경험을 잘 다루어 나감으로써, 기독교의 진리가 새로운 종교적 물결에 휩쓸리기보다는 그에 맞서 설명과 방향 제시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본회퍼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종교의 회귀를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인간의 성숙성을 존경해야 하며, 신앙은 전인(全人)을 사로잡는 삶의 행위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로 오늘날 - 종교가 회귀하는 시대에 - 디트리히 본회퍼에게서 배울 수 있는 교훈입니다. <기독교사상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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