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여가를 즐길 동안에도 그들은 ‘주의 날’이라 하여 교회로 향한다. ‘당신은 주일날 왜 교회에 가십니까’ 하고 물으면, 열이면 열 ‘교회에 예배 보러 간다’고 답한다. 그러니 정작 ‘예배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기도·찬양·말씀·헌금, 그것은 예배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예배란 최상의 존재에게 드리는 경의라고 말할 수 있다.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경의·찬양·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대로, 우리 몸과 생활 자체가 산 채로 하나님 앞에서 재물이 되어야 하는 삶이 바로 진정한 영적 예배인 것이다.
교회에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기 전에 우리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하게 되어지는 삶이 바로 예배인 것이다. 예배란 것이 시대에 따라 형식이 변하고, 종파에 따라 예배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해도, 정신과 내용에 있어서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고마움을 인지하는 것이 바로 예배의 본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를 살리셨으며, 우리에게 무한하신 은총과 자비를 베푸셨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와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의 고마움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구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배의 바람직한 정의이다.
궁극적으로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표현이다. 그러기에 예배란 자신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배 속에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 모든 삶의 현실이 표현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예배이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유대인의 전체 생활이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듯 하나님의 백성이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안에서 같이 노동생활 하는 자체가 예배인 것이다. 주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드릴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인 것이다.
주일예배, 설교 들으러 간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예배를 본다고 하지만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변질되었다. 예배를 보러 간다고 말하지만, 좀더 솔직히 말해서 주일날 예배 보러 간다는 것은 찬양을 한다던가, 기도를 드린다던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설교를 들으러 간다는 것이 일차적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유명한 슈퍼스타 목사가 연출하는 예배를 보고 들으러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자니 무대가 훌륭해야 하고 객석이 많은 대형교회에서 입장권 사듯이 헌금을 내고 구경을 보러 가는 것이다.
정작 그곳엔 예배 받으실 하나님은 안 계시고, 어느 사이 하나님 대신 목사가 들림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실린 카리스마 넘치는 설교로 화하여 폭풍처럼 불꽃처럼 일어나 동방의 감람나무라 일컫는 자로 변하거나, 능력 있는 주의 종으로 변모되어 하나님의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성공한 목사들의 설교 내용이 거의 다 천편일률적으로 대동소이하다. 즉 값싼 축복과 세속적인 복을 많아 준다는 것이다. 심하게 예기해서 헌금이란 복채를 내고 목사로부터 복을 사는 것이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거룩함이나 영성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복을 잘 주느냐에 있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 병 고치는 문제, 가정이나 사업이 잘되는 문제, 자기 교회가 물량적으로 성장하는 문제,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요청을 충족 시켜주는 설교를 누가 더 잘하느냐에 따라서 유능한 목사로 존경받는다.
한 예로 집 없는 교인이 집을 하나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목사님이 말하기를 “돌아가다가 마음에 드는 집 하나를 잡고 ‘이 집이 꼭 내 것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네 집이 될 수 있다”해서 그렇게 했더니 되었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드리는데 그것이 바로 헌금인 것이다.
요즘 열린 예배라 하여 새로운 형식의 예배 문화가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믿지 않은 자들을 위한 예배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무슨 페스티발이나 이벤트 행사처럼 비신자들의 문화적 언어를 가지고 기독교의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란다. 비록 그것이 영혼 구원의 목적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다. 결단코 예배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예배를 받으셔야만 한다. 두려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결단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속과 손을 잡으면, 예배는 이처럼 그 본래의 의미에서 훼손되어 악취가 나고 소굴처럼 변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그토록 자랑하는 예배의 실체인 것이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셨는지 내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의 앞의 산 제물이 되었는지,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뒤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선 지금이라도 신령과 진리에 따라 거룩하게 예배 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평신도선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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