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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론! (4)

by 【고동엽】 2021. 10. 21.

 

 


 



▶성령론! (4)


6. 성도의 예배를 위한 성령



◇ 예배란 중생한 성도가(인생이)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말씀 안에서 행하여 지는 산 제사인데, 축복과 보호를 받게 되며 피조물로서 신에 대한 의무이자 생활의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 성령을 가리킵니다.
진정: 진리, 참된 예배, 참된 교리가 내재한 예배.


1) 예배란 성도의 행위기에 성령으로 중생한 자들의 예배이니 예배는 결국 성령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2) 예배를 받으실 이가 영이시기에(하나님) 예배는 성령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3) 예배도 마찬가지로 모든 기독교의 행위는 성경(말씀)을 토대로 시작되고 반성되고 이룩하는 것이므로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를 드리는데 진리의 말씀은 충만하나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배는 경건만이 아니라 성령의 신령하신 인도가 개입되어야 완전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또 영감적인 데에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면 진리를 경시하는 태도를 유발할 수 있고 교리나 신학적 바탕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게 되는 약점들이 있습니다. 예배는 말씀과 함께 성령의 뜨거운 감화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성경적 예배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성도의 찬송은 성령으로



성령으로 중생하게 되면 새로운 인격적 변화가 있고 그 표현은 영적인 찬송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고전 14:15)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엡 5: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찬송은 전혀 인간적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하나님께 드릴 찬송은 영적인 것입니다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찬송은 영감적 가사로서 곡에 맞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드리는 행위가 인간적인 노래가 되어서는 곤란하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불러야 하는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찬송을 부를 수 있으려면,




1) 회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 그들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고 나면 영이 기쁘므로 반드시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2)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찬송은 목소리에나 태도에 근본이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혹 찬송을 기분에 따라 부르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실로 유감입니다. 인간의 감정을 만족하기 위한 노랫가락이 아니며 찬송은 부르기 전에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경건이 포함된 노래입니다.




3) 찬송은


그져 기쁜 태도로 드리게 되는 것만은 아니고 필요하면 눈물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신령한 기쁨이 있고 밖으로는 어떤 회개나 깨달음에 대한 반응으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고요하고 어떤 때는 열광적이고 힘차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경망스런 태도란 있을 수도 없을 뿐아니라 있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찬송하는 정도로서( 시간, 표현, 태도, 영감 ) 알 수 있다 하여도 과언은 아닙니다. 주님을 함께 하며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자는 찬송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함께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 나팔을 불며 찬송으로 이긴 것은 크다란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8. 전도케 하시는 성령




성경에 한결같이 전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충만케 되어 성령으로 전한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과연 성령의 역사입니다. 심령을 구원하는 이 전도는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전 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전 4: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1) 전도자는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14)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2:1-4)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롬 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 성령의 말씀을 따라 전도하는 것입니다


(고전 2: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골 3: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유 1:19)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3) 은사를 사용하시는 성령님


하나님이 전도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은 성경의 약속대로 은사를 주셔서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하도록 하십니다.
(고전 12: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 12:7)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는 성부께서 정하신 예정과 그 뜻대로 성자께서 이루신 성업(聖業)을 통하여 성령께서 적용케 하시는 것이므로 반드시 성령께서 전도를 주도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교리(敎理)로도 못하며 지식으로 전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神學)도 인간의 지혜도 아니며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그 모든 바른 진리가 전달되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연 지식이 풍성하고 철학이 유대교적 신학에 근거한 직설적인 인물이었으나 그가 전도를 하는 중에 성령의 나타나심대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을 잘 알고 인간의 지혜를 세상 초등 학문이라며 모든 인간적 전도의 태도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아덴에서 인간적으로 전도하려다가 실패를 당한 기록이 있습니다. 겨우 몇 명 구원하였을 뿐입니다( 행17:16-34).








9. 성도와 성령 동거의 필요성




1) 성도이면 누구에게나 성령이 내주 하십니다(인침)
(요 3:3-8)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고후 1:21-22)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전 6:17)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2) 충만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하여 성령의 직접적인 동거(同居)가 필요합니다. 신앙은 아는 것으로 현실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적 신앙 생활은 무가치 하고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성도라는 명분을 이용해 더 나빠지게도 합니다.


(롬 7:14-2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갈 5: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3) 주님의 일을 위해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상태의 존재가 아니라 행동의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행동 종교이며 성장 종교이며 전파의 종교입니다.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갈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엡 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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