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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 2,345편◑/종려주일 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마태복음5:1-8

by 【고동엽】 2021. 10. 20.

마태복음5:1-8

사순절 마지막 주간입니다. 종려주일, 고난주일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시며 은혜 받으시고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열 살 된 아이가 하루는 자기 집 목욕탕 마루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볼 때까지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을 거예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잖아요? 그러니 저에게도 나타나실 수 있잖아요!”
침묵의 시간이 오래 흘렀습니다. 마루바닥에 꿇은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아이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좋아요 하나님, 이제 제가 눈을 감겠어요.
내가 눈을 뜰 때까지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주세요.”
아이는 눈을 감고 잔뜩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세면대와 욕조만 보일 뿐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얘야, 괜찮니? 너 목욕탕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니?”
귀에 익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는 투덜거리듯 혼자 말을 하였습니다.
“하여튼, 부모가 있으면 모세가 되는 게 쉽지 않다니까!”
실망스럽게도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무려 30분이나 하나님께 드렸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의 웨스턴신학대학원에서 영성훈련과정을 강의하고 있는 “복음주의 여성 센터” 설립자이며 대표인 "Gary Thomas"가 1994년에 쓴 책, "Seeking the Face of God"-“뿌리 깊은 영성은 흔들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게리의 이야기이다.)

요즈음 같이 편리하고 빨라진 세상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고갯길을 넘어 장을 보아오려고 하면 한나절이나 하루 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들은 잠간이면 쉽게 해결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의 삶은 더 분주하고 바빠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조용히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시간이 점점 적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주함과 소음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릴 시간도 공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여섯 번째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삶의 분주함과 복잡함 때문에 하나님을 뵈올 시간과 공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거나,
지었어도 깨끗이 회개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
그래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보다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청결한 마음”이란 그보다 더 강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 καθαλ?? 라는 말은, single-heartedness 로 번역이 됩니다. 동기가 순수하며, 생각이 진실 된 온전히 한 마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둔 단순한 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6:19-34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

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대등하게 무게중심을 겨룰 정도입니다. 하나님과 돈 둘 중에 무엇을 삶의 주인으로 섬길 것이냐를 물을 정도입니다. 분명한 것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에 집중하는 것은 다 돈의 문제입니다. 돈만 있으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돈의 전능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입니다.
만약에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돈을 그 정도로 신뢰한다면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는 격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한 마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복잡한 사람입니다.
일마다 헷갈립니다.
일과 믿음의 문제가 상충이 될 때마다 갈등이 일어납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가야 하느냐? 돈이 생길 때마다 고민입니다. 십일조헌금을 꼭 교회에 바쳐야하는가? 피곤한데 꼭 새벽기도를 나가야 하나? 교회에 나간다고 꼭 성경대로 살아야 하나? 예수님은 마음을 단순하게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십니다. 단순한 사람의 마음은 헷갈리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의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사실 이들은 대단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였습니다. 애굽에서만도 어마어마한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넜을 뿐만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습니다. 반석에서 솟는 물을 마십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메추라기 고기를 먹습니다. 날마다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혹 몰라도 이들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만나를 날마다 거두라 하였을 때,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어기고 이틀 먹을 분량을 거두어 와서는 다음 날 아침 다 나가서 만나를 거두는데 자기는 늦잠을 즐기고 어제 거두었던 만나를 먹으려고 내어보니 완전히 썩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 두 돌 판을 받아서 내려오는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었다며 금송아지를 숭배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지도자들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는 지금까지 은혜와 기적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판단하십니다. 430년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 출애굽의 세대들을 물갈이하기로 결심하십니다. 그래서 광야를 40년 동안 맴돌면서 그 세대가 다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입니다. 그 땅의 기존 백성들을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에게 분배하는 일을 다 마치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여호수아24:14,15)

야고보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야고보서1:6-8)

‘로렌스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비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전부 가지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비워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홀로 소유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동고동락하시면서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많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천국의 소망을 일깨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ㄷ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대답을 들으시고 마침내 당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결심하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우리의 삶은 소음과 분주함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분주함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훈련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프랑수아 페네롱의 말이다.
“낮 동안, 그리고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동안,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익숙해지자. 우리 마음이 심하게 요동함을 보는 그 순간 마음의 모든 움직임을 멈추자.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모든 즐거움에서 자신을 떼어놓자. 헛된 생각과 꿈을 버리자. 공허한 말을 하지 말자. 하나님을 구하자....그러면 반드시 그 분을 발견할 것이다.”

둘째는 고요함에 들어가는 실제적인 방법은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음성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셋째, 많은 것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 제한해야합니다.
우리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신문을 읽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서 며칠 동안 신문을 안보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독서를 하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지식욕에 절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다른 것을 포기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넷째,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할애해서 하나님 앞에 머무십시오.  

‘리차드 포스트’는 “영적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에서 마음을 단순하게 하는 10가지 훈련을 제안합니다.
1.물건을 살 때 채면이 아니라, 유용성을 보고 삽니다.

2.중독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격합니다. -라디오, 스트레오, 잡지, 비디오, 신문, 책이든,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모두 다 버리십시오.

3.물질을 나누어 주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삶의 연륜이 더해갈수록 집안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제 방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들인 책들이 좀 있습니다. 이 책들을 몽골에 신학교건축을 완공하면 선교사들의 계속교육을 위하여 다 보낼 작정입니다. 작년에는 2500권의 책을 모아서 중국신학교에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4. 매스컴에서 선전에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충동구매를 하지 마십시오.
    
5.물질을 소유하지 않고서도 그 물질을 즐기는 법을 배우십시오.  
얼마 전에 마당이 족히 200평은 되어 보이는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을 보았습니다.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더 크고 넓은 훨씬 더 아름다운 정원이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정원은 한곳에만 있지 않습니다. 한 곳이 실증이 나면 또 다른 곳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각종 체육시설이 다 되어 있습니다. 정원을 관리하는 유급직원들만도 여러 명입니다. 그 정원은 언제나 개방하여 누구나 함께 즐기도록 했습니다. 종교교회담임목사에게 이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정원이 어디 있느니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공개하겠습니다. 경희궁이 저의 정원입니다. 언제 구입 했냐구요? 처음부터 내 아버지께서 소유하고 계신 것이고 지금도 아버지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기 때문에 또 돈을 주고 살 필요는 없습니다. 사직공원도 제가 누리는 저의 공원입니다. 남산과 북한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한 가지 팔아먹지 못하도록 등기만 제 이름으로 넘겨주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등기해 놓는 순간부터 괴로움이 많아집니다. 소유하지 않고도 즐기는 법을 배우십시오.  

6.창조물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느끼도록 하십시오. 땅을 가까이 하십시오.
가능한 한 많이 걸으십시오. 새들의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돋아나는 풀과 잎사귀의 신비를 기뻐해보십시오. 사방에 보이는 다양한 색깔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누려보십시오.

7.가능한 한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보다 빨리 구입하려고 애를 쓰지 마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조금 늦게 가져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8. 사람들과의 대화를 정직하게 하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태복음5:37)

9.다른 사람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지 마십시오.  
10.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일에 장애가 되는 무엇이든지 피하십시오.

욥은 동방의 의인이라 불리는 큰 부자입니다. 참 행복하게 살면서도 경건하게 삽니다. 자녀들이 함께 모여 큰 잔치라도 하고 나면 혹시라도 죄를 짓지 않았을까 하여 다음 날 새벽이면 하나님 앞에 나가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으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기도합니다. 그의 범사가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대견스러웠고 자랑스러운 인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시작됩니다. 모든 제산이 다 부도처리가 됩니다. 열 명의 자녀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하는데 강력한 토네이도가 불어와서 한순간에 다 죽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욥의 온몸은 헌데가 나서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보다보다 못해서 입을 엽니다. “당신 그러고도 하나님 믿는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세요.”  욥의 주변에 그렇게 많던 사람들 다 떠납니다. 어느 날 멀리에서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기가 막힌 현실을 보며 일주일을 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입을 열어 욥을 공격합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번갈아가며 욥을 정죄합니다. “너, 죄짓지 않고 망한 사람 봤냐? 회개해라.” 친구들과 욥의 변론은 지치도록 계속됩니다. 친구들도 지치고 욥도 지쳤습니다. 세 친구는 비켜서자 이번에는 그 변론을 처음부터 다 듣고 지켜보았던 젊은 친구 엘리후가 나타나서 욥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욥은 마침내 고백합니다.

“주께서 무소불능 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기42:2-6)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고난을 당하는 동안 그는 수 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그 동안 쏟아내었던  많은 말들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하나님 앞에 끝까지 순전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번거로운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전에는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이 지금은 내가 눈으로 주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발견한 다음에 비로소 욥은 엄청난 축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영원한 언약을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 약속은 언제나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시간 우리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많은 고통을 당하고 인간관계의 그 복잡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생각은 너무 복잡합니다. 우리의 삶은 피곤합니다. 지쳐있습니다. 말하기조차 싫습니다. 다 그만 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와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 복잡한 생각과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을 하면서 지은 죄들을 깨닫게 합니다. 정말 죄인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죄인입니다. 죄를 십자가 앞에 쏟아 내놓을 때 하나님은 그 곳에 용서와 회복의 주님으로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복잡한 마음을 비워 하나님께 내어놓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너무 많이 아는 척하였습니다. 예수님 없이 마치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 양, 내 자신이 의의 기준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내가 재단하고 판단하였습니다. 단순히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정죄하였습니다. 내가 한 말로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회개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지금 내 마음 속에 주님이 오셔서 저를 영원히 다스려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음이 단순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 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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