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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에서 바울로

by 【고동엽】 2021. 10. 20.

사울에서 바울로

길성남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본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소식지인 ‘선지동산’ vol.41(2006)에 실렸던 글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회심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혹자는 바울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탓에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다가 다메섹(Damascus)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바울도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율법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부패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었기에 악한 충동이나 욕망으로 인해 내적 갈등도 겪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몸에서 자신을 건져줄 구원자를 갈망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참조. 롬 7:24).

그러나 성경의 증거에 따르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바울은 유대교의 신앙 체계에 회의를 품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선조들에게 약속의 언약들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일원으로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도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사망의 몸에서 자신을 건져줄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을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하였으며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였습니다(행 26:9-11). 다메섹에 갈 때에도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행 9:1).

또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빌립보서에서 매우 당당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빌 3:6). 적어도 그는 바리새인들의 경건의 기준에서는 매우 충실하게 율법의 규정들을 지켰고, 율법의 의에 대해 자신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회심하기 전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탄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회심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회심할 이유가 전혀 없던 그가 갑작스럽게 회심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다메섹의 아나니아와 제자들은 물론, 믿지 않는 유대인들도 바울의 회심에 놀랐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도 바울이 그들을 사귀고자 했을 때 다 두려워했고 그의 회심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행 9:26). 요컨대, 바울의 회심은 인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유대교의 신앙 체계에 회의를 느끼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절망한 나머지 구원자를 만나고자 갈망하다가 회심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입니다.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그를 불러 사도로 삼으심으로써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딤전 1:16)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로 바울이 변화된 것입니다. 바울도 이런 사실을 깨닫고 찬송에 가까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4-15).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는 바울의 극적인 회심과 관련해서 한 가지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는데 회심한 뒤에 “바울”로 개명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 자”를 의미하며 바울은 “작은 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참조. 행 26:24). 그래서 많은 설교자들은 바울도 인간인지라 자신이 가장 잘난 사람인양 교만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자 심히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름을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 바꾸었다고 주장합니다. “큰 자”라고 교만하게 굴던 사람이 “작은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설교자들은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을 만나야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며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진실로 겸손해질 수 있다고 강단에서 외칩니다.

이런 설명은 매우 은혜롭기는 하나 옳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은혜로운 설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성경의 증거와 맞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극적인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9장에는 사울이라는 이름만 등장할 뿐 바울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회심 직후뿐 아니라 회심한지 3년이 지난 뒤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사울입니다(행 9:26). 성경 어디에서도 사울이 회심 체험 때문에 자기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13장 9절입니다. 앞뒤의 내용을 함께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행 13:8-12).

이 본문에 기록된 사건은 제1차 선교여행 중에 바울이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구브로(Cyprus)에서 선교 사역을 할 때 일어났습니다. A.D. 46/47년경의 일입니다.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A.D. 33년이나 34년경에 회심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사울이라는 이름이 바울로 바뀐 최초의 시점은 그가 회심한지 무려 13년, 또는 14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이 본문에 따르면, 이름이 바뀐 상황은 회심이 아니라 이방인 선교였습니다.

다음으로, 바울이라는 이름의 뜻이 “작은 자”라는 것은 맞지만, 사울이라는 이름이 “큰 자”라는 설명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울”(사울로스)은 히브리식 이름인 “샤울”을 헬라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샤울”은 “구하다,” “요청하다”(to ask, to demand, to beg for)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샤알”에서 온 것으로 “구하여진,” “간청된”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샤울(사울)이라는 이름의 뜻은 “큰 자”가 아닙니다. 최근에 발간된 권위 있는 히브리어-아람어 사전에 따르면, “샤울”은 “간청된 자”(the one who has been begged for)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사울의 의미를 “큰 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초대 이스라엘 왕을 지낸 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브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베냐민 지파 사람이 사울이었기에 바울의 부모가 아들의 이름을 사울로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사울이라는 이름 자체의 뜻이 “큰 자”가 아니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회심 체험으로 인해서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두 이름의 성격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Paullus)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회심을 통해서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달은 유대인이 히브리식 이름을 버리고 로마식 이름을 채택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얼마든지 “작은”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단어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로마식 이름을 채택하겠습니까?

바울이라는 이름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종종 사용되던 이름이었습니다. 구브로 섬을 통치하던 총독의 이름이 서기오 바울(Sergius Paullus)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행 13:7). 사도 바울이 바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회심 직후가 아니라 출생 직후였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식 이름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수의 성경학자들은 바울의 선조가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갔다가 주인의 호의로 해방되면서 로마시민권을 받았다고 합니다. 바울의 선조는 로마시민의 자격을 취득할 때 옛 주인의 이름인 “바울”을 자기 가족을 나타내는 이름(cognomen)으로 채택했다는 것입니다(고대 로마 시민의 이름은 칼리굴라 황제의 이름Gaius Julius Caesar이 보여주듯이, 세 부분, 즉 첫째 이름praenomen, 둘째 이름이자 가문의 이름nomen, 셋째 이름이자 가족의 이름cognomen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자기 가족의 이름인 “바울”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는 본래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서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을 가졌고, 동시에 로마 시민으로서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이자 바나바의 사촌(개역 한글판에는 “생질”이라고 번역했으나 옳은 번역이 아니다. 골 4:10)인 마가도 이름이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식 이름인 “요한”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식 이름인 “마가”(Marcus)입니다.

이상의 논증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회심 때문에 자기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개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본래 그의 이름은 두 개였습니다. 그는 유대인 사회에서는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사용하다가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면서 로마식 이름인 “바울”을 사용하였습니다. 선교지 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낼 때에도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라는 이름이 회심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이방인 선교와 관련해서 사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튀빙겐 대학교의 저명한 신약학자 마틴 헹겔(Martin Hengel)도 새로운 이름으로의 전이가 바울이 회심을 체험한 시점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어 유대 그리스도교적 환경으로부터 이교도의 환경으로 옮겨가는 시점에서 일어났다고 옳게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상황에서 비(非) 유대적인 이름을 사용한 것은 자신을 복음 선포의 대상자인 비(非) 유대인들과 동일한 지위에 두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고전 9:21).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무리 은혜로운 설명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연 그것이 옳은 설명인지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참조. 행 17:11). 성경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도 말씀을 주의 깊게 살피고 해석하여 회중에게 “올바른” 은혜를 끼치고자 힘써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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