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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하여

by 【고동엽】 2021. 10. 20.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하여

존 칼빈 저 (January 16, 1537)

지형기 譯

개 요

1537년 1월 칼빈에 의해 사역자회(Council of Minister)에 제출된 본 논문은 격렬한 논쟁을 낳으며 그 온전한 형태로나 제출되어진 형태로 채택되지 않았다. 성찬식에 있어서, 일상적으로 준수되었던 분기별 시행을 지지하면서, 월별 시행에 대한 요구는 거부되었다. 권징(discipline)의 소개와 출교(excommunication)나 권징 회의(disciplinary council)의 설립 모두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비록 신앙 고백이 이전에도 채택되어 왔지만, 의회는 시민들에 의해 추종되는 행정관들 자신들이 그것을 고수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권고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혼 문제들을 다룰 위임제도(Commission)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첫 번째 부류의 중요성(first class importance)을 가지고 있는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신정주의적 정치(theocratic government)의 원리들인데 이는 그것이 성취된 초기 단계에서 제한적인 성공은 아니었다.

본 문

존경하는 위원회 여러분!

만약 교회 안에서 우리 주님의 성찬이 늘, 그리고 보다 자주 기념되지 않는다면, 교회가 제대로 질서지워지고 다스려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며, 그리고 그러한 훌륭한 감독 하에서 충심으로, 그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그것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주제넘게 나설 수 없는 것 역시 확실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회를 흠없이 보전하기 위해서는 출교(黜敎)의 권징(displine of excommunication)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중함과 순종함을 가지고 복종하기를 원치않는 자들을 바르게 할(correct)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말미암아 공적 헌신(public devotion)의 형태로 시편을 찬송하는 것이나, 그분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름으로 모든 자들의 마음이 기도다운 기도를 드리고, 한 마음으로(with one accord) 하나님께 대한 찬양다운 찬양과 감사다운 감사를 드리도록 각성되고 고무되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교화(edification)에 매우 유익된 것입니다.

셋째로, 신앙에 대한 이유를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복음적 교리가 쇠퇴하도록 방치되지 않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이들을 순전한 교리로 보전하는 것은 엄격하게 요구되며 매우 필요한 것이며, 또한 그 내용이 부지런히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hand to hand), 그리고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보존되고 전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결혼 문제에 대해 로마카톨릭주의자들이 시행하는 가혹한 행위와 그들이 강요한 악한 법률로부터 많은 논쟁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문제들이 기꺼이 통제될 수 있는 확실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 권할 만하며, 만약 어떠한 의견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것들을 수습하기위해 적절한 단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초기부터 이 시(市)에 존재했던 문제와 혼란에 대하여, 복음이 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인식되기 전에, 단순히 사람들의 태만이 복음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라면, 잠시 동안 모든 일들을 합당한 질서로 따르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소나마 이곳에 주님의 통치를 세워주시기를 그분께 호소해 왔으며,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함께 협의하는 것은 선하고 유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모사로 삼고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장차 그러한 일들이 되어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영의 도움을 간구한 후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확증하신 지식에 관하여 우리가 숙고해온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직임에 관련된 분야를 취급하는 것으로부터 여러분 자신들을 금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의 기쁨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본 논문의 형태로 당신들에게 제시하는 것으로써 결론에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는 우리의 충고가 거룩한 복음의 말씀에서부터 연유한 것임을 아신다면, 주님께서 그분의 선하심으로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지식을 주셨기 때문에 이러한 준수들이 당신들의 시에서 받아들여지고, 지켜지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그분의 교회를 보존하는 질서(ordinance)가 진실로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기꺼이 따르는 것이며 이는 모든 정부와 행정의 확실한 권징이며 더구나 교회의 치리(ecclesiastical)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식이 적어도 매주 마다(every Sunday at least) 권징으로서 지켜져야 함이 마땅합니다. 신실한 자들이 받는 큰 위로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유익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에 제시된 약속에 따라 모든 부분에서 교회의 회중이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몸과 피, 그분의 죽으심, 그분의 살으심, 그분의 영, 그리고 그분의 모든 유익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권고(exhortation)을 함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은혜로이 확증되어진 놀라운 일들에 대한 그분의 찬양을 고백함으로써 이해하며 찬송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한 화평에 참여하며 하나이면서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의 형제적 관계로 연합되어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일 년에 두 번 내지 세 번 기념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회중이 모이는 대로 자주 사용해야만 하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빈번한 실행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며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 주님의 제자들이 성찬의 질서를 좇아 빵을 나누기를 계속했던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준수는 또한 초대 교회에 늘 지켜졌던 일들이며, 모든 신자들의 이러한 교제를 대신해서 한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는 무서운 불경스러움이 자리한 미사의 가증스러운 행위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사 안에서 성찬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폐기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나약함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만약 성찬식이 그렇게 자주 시행되게 되면, 이러한 거룩하고 훌륭한 신비가 오해된다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전히 굳건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더욱 강해지기를 소망하는 한편, 이러한 거룩한 성찬이 한 달에 한 번, 현재 설교가 전파되는 세 장소, 즉 성 피에레(St. Pierre), 리우(Riue) 또는 성 젤바이스(St. Gervais) 중 한 군데서, 한 달에 한 번은 성 피에레에서, 한 번은 리우에서 또 한 번은 성 젤바이스에서 시행하며 계속해서 그러한 순서로 시행되어짐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그 시행이 도시에 있는 교회의 사분지 일만이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늘 시행되어야 할 것이며 편의를 위해서 시간은 전 주에 모든 장소에서 결정되고 광고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멸의 원인이 없고 이러한 높은 신비로움이 가능한 최고의 위엄으로 취급될 것이며,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모든 것을 사역하는 직무가 맡겨진, 말씀의 사역자들이 우리 주님의 몸과 피의 형태와 성례인 빵과 포도주를 분배하는 방식이 매우 권고할 만한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행이 규모있게 그리고 혼란과 부적절함 없이 시행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러한 질서를 사람들이 마땅이 준수해야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삼는 것과, 혼란을 피해야 함을 지지하고, 적절하다고 사려될 만한 방식을 당신들에게 제공할 것을 제안해 왔으며, 그것이 잘 시행되도록 우리는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특별한 경외심을 가지고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요구되는 원리적 규범은 바로 그들의 머리가 되시며 한 몸과 한 영 안에서 다른 지체들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에 연합되기 위해 명령되어지고 제정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일들을 행치 아니하는 그들의 그릇된 행실과 악한 삶으로써 선포하고 증거하는 자들이 성찬식에 나아오는 것과 교제하는 것으로 인해서 더럽혀지고 오염되지 않는 성찬식(Holy Supper)입니다.

이러한 성례식에 대한 모독으로 인해 주님은 심각하게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례식을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한 자들에 대해서 바울에 의해 언급된, 그토록 커다란 복수의 관점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것과 관련된 이러한 오염이 우리의 태만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보호물에 의존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규정을 적합하게 하는 자들이, 이러한 교제에 나아오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임이 인정되는 권징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의 구주는 그분의 교회 안에 교정(correction)과 출교(黜敎)의 원리를 세우셨는데, 훈계를 받은 후에, 회개에 이르고 바른 길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며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이 교회의 몸으로부터 추방을 당해야 하며, 부패한 지체들처럼, 회개하고 자신들의 결점과 오류를 인식할 때까지 끊쳐져야 함을 주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정의 방식은 마태복음 18장에서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을 경멸하지 않도록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디모데전서 1장과 고린도전서 5장에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음탕하고, 탐욕스럽고, 우상을 숭배하며, 중상하며, 술취하고, 강도짓을 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있다면 이러한 질서가 우리의 교회 안에서 반드시 자리해야 합니다. 즉, 그 질서가 발견되어지는 동일한 이유와 그것이 산출하는 유익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이용하도록 하게 할 것이며, 그토록 정확한(express)한 명령이 없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치 그분의 교회가 모든 사악함 속에서 방탕하는 악한 자들의 단체인 것처럼 모독과 수치를 당하실 수 없으십니다.

둘째로, 저들의 죄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고 놀람으로 교정을 받은 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며 자신들을 회개하도록 해야합니다.

셋째로, 다른 사람들이 저들의 삶의 방식으로 타락하거나 일탈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예를 통해서 과실과 같은 명백함(manifesting)으로부터 자신들을 돌이키게 됩니다.

이러한 질서의 사용과 시행은 몇 몇의 악한 감독들이나 차라리 감독의 자리를 대신한 강도들이 자신들의 사악한 탐욕을 위해 그것을 폭정으로 바꾸고 남용할 때까지, 잠시동안 특별한 효용성과 기독교를 위한 유익함으로 초대 교회(ancient Church)에서 지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비록 그것이 구주께서 그분의 교회에 보증하신, 실제로 가장 유익하고 좋은 것들 중에서 하나라고 할지라도, 로마카톨릭의 지배안에서 행해지는 출교(黜敎)보다 더욱 치명적이고 사악한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이제, 거짓된 감독들이 신실한 자들의 무리로부터 빼앗아 자신들을 위한 출교의 권리와 권력으로 이끌어갔기 때문에 이러한 결점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것은 실제로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를 강탈해 간 이후로 그들은 그것을 모든 종류의 사악함으로 바꾸었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질서를 준수함이 없이 그것의 진실된 상태를 지켜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봄으로써,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모욕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복수에 의해서 처벌받게 될 것으로 인해 생기는 엄청난 두려움을 고려해 봄으로써, 교회가 관여하고 있는 것과 우리가 따라 살고 있는 말씀의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용으로 인해서 그것을 비난하고 타락시키는 어떤 부적절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분들이 진리 안에서 보존되고 쉽게 타락하지 않는 신실한 자들 가운데서, 합당한 삶과 증거를 가진 사람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뽑고 명하기를 신중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저들은 시의 모든 구역에 고루 거주해야 하며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람들을 치리할 수 있어야 하며, 만약 그들이 어떤 사람에게서 발견된 결점을 주목할 때 사악한 것으로 보여진다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권면하며 저들이 회개하도록 형제의 열정으로 권고하기 위해서 그것에 관해 몇 몇의 사역자들과 상의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충고가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의 고집스러움이 교회에 보고되어질 것이라고 충고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면, 이러한 권징(discipline)이 얼마나 큰 유익인지요!

그가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우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지명된 사역자가 회중가운데서 공적으로 그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가 취해질 것인지를 발표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완고함(hardness of heart)으로 지속될 것인지의 여부가 드러날 것이며 이 때가 바로 출교를 시행할 때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서 쫓김을 받는 것이며 그의 일시적인 혼란을 위해서 악마의 손아래 남겨지는 것인데, 이는 그가 그의 참회함과 회개의 좋은 증거를 드러낼 때까지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로써 수찬 정지를 당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저들이 그와 친밀한 관계가 없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설교를 들으러 나오는 것을 빠뜨릴 수 없는데, 이는 주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셔서 올바른 길로 돌이키도록 하실지를 증명하시 위해서 그러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정되어 질 악한 자들은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에 의해서 여러분들께서 이미 지칭한 자들입니다. 앞서 말한 논쟁들이 감지되기 전에 부모님이나 이웃과 같은 다른 사람들이 그 악한 자들을 알았을 때, 그들 자신들은 권고를 해줄 수 있으며, 그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인식할 때, 그들은 그들의 직무에 따라서 이미 임명된 자들에게 그 문제를 넘겨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 교회 안에서 출교를 줄이며, 출교의 온전함에서 그것을 보전하며 이러한 교정없이는 교회가 진행되어 나갈 수 없는, 한 좋은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만약 출교되는 것을 비웃기만 하고 그러한 물리침에서 생활하며 죽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는 모든 일탈자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며 방만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과 그분의 복음을 그토록 경멸하며 비웃는 것을 당신들께서 오랫동안 참고 처벌하지 않고 남겨두셔야 할지의 여부를 심사숙고하시는 것이 의무일 것입니다.

게다가, 복음에 있어서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부인하며, 그럼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되는 모든 미신들이 정박하고 있는 이 도시의 일군(一群)의 거주자들이 존재한다는 심각한 의구심과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깨닫기를 갈망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알아내는 것으로 그 첫째 일을 삼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이는 만약 참으로 선한 이유를 가지고 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해왔던 우리 회중으로부터 출교되어 추방당할 필요가 있다면,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 자들에게서부터 지체로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자들을 분간하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둘째로, 신앙의 구분보다 더욱 커다란 구분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며, 따라서 믿음 안에서 우리와 연합된 자들이 저들의 부도덕으로 인하여 출교되어 홀로 남게 된다면, 이러한 자들이 종교적인 면에서 모든 것이 우리와 반대되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 안에서 인내할 수 없는지에 대해 더욱 커다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려했던 이러한 점을 보완하는 것은 여러분들께 여러분들의 도시에 사는 모든 거주민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앙의 이유를 말하도록 제한하는 바인데, 이는 저들이 복음과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왕국을 로마카톨릭주의자들의 왕국보다 사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그때 위원회의 신사들인 여러분 각 개인이 위원회 안에서, 믿음의 교리가 참으로 모든 신실한 자들이 한 교회에 연합되어 있는 그러한 고백임을 보여주는 신앙을 고백한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모본으로 인해서 여러분 각자가 따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게 될 것이며 그런 연후에 몇몇의 장관직에 관여하고 있는 여러분의 몇몇 동료들을 임명하시고 그들 각자에게도 동일한 것을 요구하셔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어떠한 교리들이 적절하게 지켜져야 할 지가 이런 일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한편, 교회에서 불려지기를 열망하는 시편찬송이 있는데, 우리는 고대 교회에서, 그리고 입술과 마음으로 회중가운데서 부르는 것이 좋다고 말한 사도 자신의 증거에서 그 예들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적용해 보지 않고서는 이것으로부터 생기는 유익과 교화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확실히 만물들이 그러하듯이, 신실한 자들의 기도들은 매우 차분한데, 그것은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당황해 해야 합니다. 시편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들어올리도록 감동시키며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일깨우며 칭송하는 열정으로 우리들을 이끌어 갑니다. 게다가 로마카톨릭과 그에 속한 자들이 교회로부터 빼앗아간 유익과 위로함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진정한 영적 찬송이 되어야 하는 시편을 어떤 이해함 없이 저들 가운데서 중얼거리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이러한 방식은 특별히 우리들에게 유익이 될 것으로 사려되며, 전부터 몇 몇의 겸손한 교회들로 하여금 노래하도록 한 유산들은 모든 사람들이 부르는데 익숙할 때까지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사람들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 들으며 진심으로 입으로 불려지는 것을 따라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회중을 조롱거리로 몰아넣기 위해 오만함으로 행동하는 어떤 자들이 여러분께서 채택하신 질서들을 방해하러 나아오는 것을 여러분께서는 허락해서는 아니됩니다.

세 번째 사안은 의심 없이 자신들의 신앙을 교회에 고백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지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인해, 고대에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에 있는 각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명확한 카테키즘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증언의 형식이 되었으며 그 각각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개인적으로 이 카테키즘으로부터 배우며, 저들의 신앙을 입증하기 위해 교회에 나아와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믿음의 고백을 보여주는 그들의 세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이 늘 고백과 믿음을 연결시키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진실로 마음을 다해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 구원을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옳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질서가 적절하고 적당했었다면,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만과,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무례함과 큰 무지로 여기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녀들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나타난 부모들의 경멸함의 관점에서, 지금은 그것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제정되도록 우리가 충고하는 질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가르쳐져야 하는 간단한고 단순한 기독교 신앙의 요약이 있다는 것이며 한 해의 일정한 시기에 그들은 질문받고 시험받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충분하게 가르침 받았음이 증명될 때까지 각각의 능력에 맞게, 더욱 충분한 설명을 받기위해 목사들에게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이 이러한 요점을 배우고 그들이 지정된 시기에 목사들 앞에서 자신들을 제시하는 수고와 부지런함을 명령하는 것이 귀하들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카톨릭주의자들이 결혼의 경우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해온 것만큼, 사악하게 차이를 결정하고 모든 사리를 거스르는 그들의 기쁨으로 위계를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에서 종종 이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논쟁들을 재고할 필요가 요구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지하게 여러분에게 그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당신들의 동료 중에서 특정인들에게 ,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것인가를 보다 잘 확증해 줄 수 있는 몇 명의 사역자들과 연합하여서, 야기되어 질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책임과 임무를 위탁할 것을 제안합니다.

전술한 사역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와 연결된 위임자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들로부터 질서를 세울 것이며 그런 후 그들은 그것에 의해서 이러한 사안들을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은 앞으로 진전되기 전에 승인을 위해서 사후에 당신들에게 제시되어 질 것입니다.

존경하는 위원회 여러분 !

여러분께서 이러한 알림과 권고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라고 여기신다면, 이제 우리는 여러분께서 한 마음으로, 그러한 것들이 우리에게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비롯되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며, 본 진술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유지하고 그러한 통합 안에서 교회를 보전하기 위해 그러한 질서들이 어떠한 중요성과 결과들을 갖게 될지 고려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사려들은 여러분께서 자신들을 여러분의 직무에 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한 질서로 여러분의 지역구민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로 여겨지는 것들을 부지런히 시행하도록 하는 것에서 태만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몇몇 이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될 어려움으로 인해 여러분께서는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자신께서는 주님께서 그분의 은혜를 갈망하도록 은혜를 허락하신 모든 사안들 안에서 충분하게 경험해 오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되어진 것을 따르기로 노력한 이래로, 그 분께서 성공적인 결말을 향해 우리의 진취심을 진보시키시고 발동케하실 그분의 선하심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능으로 하시는 모든 일이 성공적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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