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단계 신앙 (왕하 2:1-11)
<서론>
본문에 요단강 골짝 아벧므흘라에 무명 농부였던 엘리사가 그의 스승을 끝까지
따름으로 스승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았다. 세상과 육신만을 위해 살던 그가 하나
님의 사람이 되어 귀히 쓰임받는 일꾼이 되었다. 그 비결은
<본론>
1. 엘리사는 스승을 따라 길갈서 출발했다.
이곳은 옛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글고 요단강을 도강한 지역이
다. 신앙의 영적의미는 길갈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한다. 신앙의 년조도 말씀에
두지 않으면 문제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거울이요 등불이요, 양약이며 영혼의 식물이고 성령의 검이고 생수가 되
고 불이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 네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
다 (호4:6) 끌려 다니고 따라 다니는 신앙에서 자발적이고 성숙한 신앙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기고 알기를 즐기고 순종 하기를 즐기는 참된 길
갈에 엘리사의 신앙을 닮아가자.
2. 엘리사가 두번째 간 곳은 벧엘이였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 떠나 가나안에 도착하여
최초 제단 쌓던 곳이요, 야곱이 외삼촌 집 도망하면서 노숙하며 제단 쌓던 곳이
다.
신자가 성경을 잘 외우고 잘 알아도 예배를 등한시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
어지지 않으면 헛것이다.
오늘날 길갈은 통과 했으나 벧엘의 신앙에 이르지 못한 신앙은 없는지요? 교회
는 영혼의 양식이 공급되는 곳인즉 교회 출석을 잘 함으로서 믿음이 자라고 영
육이 축복 받게됨을 명심하자.
3. 엘리사는 줄기찬 인내로 벧엘을 지나 여고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가려는데 부
딪친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리고의 철웅성을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너뜨린 곳이다.
신앙이 보다 전진해 나가려면 우리를 가로막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불란서의 당대의 문예 부흥가요 계몽주의자요 무신론자였던 불테르도 바다에서
파선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구원을 빌었고 그의 사후에 볼테르의 살던 집이 불란
서 성서공회 성서공회 창고로 사용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괴테는 눈물겨운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 맛을 모른다고 했다. 신
앙생활에서 여리고 같은 장벽의 문제앞에 좌절되지 말자.
아브라함은 25년간 야곱도 20년간, 요셉도 13년간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
년간 연단이 끝난후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문제가 클수록 축복도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 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37:5-6) 불퇴진의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다.
4. 엘리야를 따라 요단강을 나갔다.
이 강은 이스라엘민족이 40년 광야생활서 하나님을 불순종하다가 회개함으로
요단강을 하나님께서 갈라 주시어 육지같이 건너 가나안 복지로 당도케 한 곳이
다 예수님도 (마3:13) 요단강서 세례받은 곳이다. 요단강은 모든 불신앙을 청산
하고 인본주의 아닌 하나님 중심 가나안의 새 사람으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스승과 제자가 요단강을 건넌후 대화중에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 회리바람으
로 엘리야를 산 체로 하늘로 오르며 겉옷을 떨어 뜨릴 때 엘리사가 자기 옷을 짓
고 겉옷을 주워 은사를 받음으로 스승보다 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했다.
오케스트라에 북치는 사람은 수많은 각종 악기틈새에서 우두커니 앉아 이따금
한번씩 북만 치는데 모통 눈으로는 별 볼일없는 악기로 보이나 그 북이 있어야
오케스트라가 제대로 되는 것처럼 인생은 누구나가 하나님이 베푸시는 대연주회
에 한몫씩 맡은 연주자다 피리를 불던 북을 치던 제소임을 다 하는데서 보람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 이 혼탁한 사회에 엘리사같은 지칠줄 모르는 인내심을 갖고 갑절의 영
감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시대를 주도해 나가는 크리
스천이 되자.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4:1-8 ) (0) | 2021.10.12 |
---|---|
복음을 전하자 (요3:14-17 ) (0) | 2021.10.12 |
문병호박사의 칼빈의 교회론/조직신학회 (0) | 2021.10.12 |
칼빈의 경제관/안명준 (0) | 2021.10.12 |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인간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지식 (0) | 2021.10.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