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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6~10)

by 【고동엽】 2024.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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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靈)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한 노인이 송어 낚시를 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이 이 노인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송어를 잘 낚지 못하는데 유독 이 노인만은 쉽게, 또 많이 낚습니다. 신기하게 여긴 청년이 한참을 지켜보다가 노인에게 묻습니다. "노인장께서는 낚시질을 참 잘하십니다. 어떻게 이처럼 잘하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청년에게 일러줍니다. "송어 낚시를 하는 데는 네 가지 비결이 있네. 첫째, 한눈을 팔지 말 것, 둘째, 미끼를 잘 사용할 것, 셋째,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것. 넷째,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는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일세." 저는 여기에 단서(但書)를 하나 붙여야 하겠습니다.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사항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무릇 사업의 성공 비결이 되기도 하지만 특별히 선교의 성공 비결이 되기도 합니다. 전도하는 방법이 또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집중(concentration)해야 됩니다. 마음이 둘로 셋으로 갈라져서는 안됩니다. 흔히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력이 좋다 나쁘다, 머리가 좋다 나쁘다 하지만 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머리좋은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고 합니다. 문제는 집중력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 쏟아 집중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상대방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미끼가 무엇입니까? 송어 낚시를 하려면 송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됩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합니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의 취향을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또 정치하는 사람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르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연애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취미와 성향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사랑의 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집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잘 알아 거기에 적절히 대응해야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는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하게 군다고 되는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오래오래 인내하여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넷째로는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낚시질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마는 단 1초만 늦어도 안됩니다. 물렸다고 판단되는 바로 그 순간에 탁 잡아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미끼는 이미 빼앗긴 다음입니다. 이것이 낚시하는 비결입니다. 이렇듯 적절한 시기를 포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나간 다음에 울고불고하고, 또 힘을 써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만사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적기(適期)를 바로 포착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대충 세 가지로 그 자세를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철저한 이기주의입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도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는 비참해집니다.
일생을 다 살고 보면 결국 가슴을 치고 후회하게 됩니다. 완전히 실패한 삶이었음을 양심으로부터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도 나를 성원하지 않으며 하나님마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이와 같이 이기주의자는 끝내 절망하고 말며 고독하게 됩니다.
둘째는 나에게 손해가 생기지 않는 한에서 남을 도우면서 살고자 하는 보통사람의 자세입니다. 여유가 좀 있으면 도와주고, 남들이 다 돕는 일이라면 나도 한푼 건네줍니다. 여유가 없으면 그만둡니다. 이렇듯 나 먼저 챙기고 그 다음에 남을 돕겠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리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뒤에 가서 후회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내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도우려 하는 자세입니다. 실은 여기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남에게 주고 내가 쓸 것을 남에게 줍니다. 남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참된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위대한 사도 바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소아시아에 복음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가 처한 소아시아 근방을 두루 다니면서 방방곡곡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협력자도 얻고 성과도 거둡니다. 한 번 전도하고 두 번 전도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습니다. 다시 계획을 세우고 좀더 효과적으로 선교사업을 정착하고자 하는 단계에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영이 길을 막는 것을 느낍니다. 또한 환상을 봅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저희를 도우라고 합니다.
이 환상을 본 후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낯선 땅 유럽으로 넘어갑니다. 굉장한 모험을 각오한 것입니다. 단순히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복음을 들고 건너가는 순간입니다. 이 역사적인 계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놓는 일입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갑니다, 중대한 결단입니다. 오늘날 같지 않은 그때에 모험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주님의 부름을 따라 간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릇 일에는 목적이 분명해야 됩니다. 우리가 때때로 낙심하게 되는 것은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적절하게 말합니다. "실패는 죄가 아니다.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다" --- 그렇습니다. 실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실패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습니다.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확실한 목적이 내 생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목적은 확실해야 합니다. 그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합당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알고 있더라도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행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기회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쳐버리면 안됩니다. 모든 일에는 제 때(right time)가 있습니다.
그 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충실한 마음가짐입니다. 같은 일을 하되 가득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고 싶은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결혼주례를 할 때마다 당사자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 바로 이것입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화끈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 같지만 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은사(恩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둘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봉사하고, 함께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마음속에 거룩한 마음이 생겨서 사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늘 강조합니다. 바로 어제도 결혼 주례를 했습니다. 두 사람을 세워놓고 신혼여행을 갈 것이냐고 물었더니 간다고 대답합디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보았습니다. 신혼여행 가서 돌아올 때까지는 쓸데없이 이상한 유행가 나부랑이는 부르지 말고 듣지도 말고 반드시 찬송가를 불러라,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아름답게 되고 사랑이 우러나게 될 것이다--이렇게 일러줬습니다. 여러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선물입니다. 누구나 일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많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감격을 가지고 하는 사람은 많지 못합니다. 그래서 필경은 낙심하고 쓰러집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매우 신비로운 용어로 중요하게 다룹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받기만 하던 사람이 남을 도우면서 살게 된다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미처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받는 것만 기뻐할 줄 알고, 주는 기쁨을 생전 체험해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요? 도울 수 있는 비결, 다시 말하여 봉사의 철학은 이러합니다.
첫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돈이라고 내 것인 줄 아는 오해, 내가 사는 집이라고 내 집인 줄 아는 오해가 그것입니다. 금새 남의 돈이 되고, 금새 남이 집이 되고 맙니다. 내 돈일 수 없고 내 집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한시바삐 깨닫는 게 현명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은행에 저금을 해놓았다고 해서 내 것입니까? 오늘밤에 내가 죽으면 그 돈이 누구 것이 됩니까? 어떤 사람은 넓은 땅을 차고앉아 욕심을 부립니다. 다른 사람도 못쓰게 하면서 '이것은 내 것이다'하고 버팁니다. 세상이 손가락질을 해도 태연합니다. 한심한 사람들이지요. 소유의 개념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잠시 맡아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 청지기입니다.
둘째, 내가 가진 것이 다 받은 것입니다. 본래 없었던 것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언제 내가 있었습니까? 언제 부하게 살았습니까? 돌이켜보면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잘살고 있습니다. 언제 이랬던 적이 있습니까? 본래 가졌던 것이 아닙니다. 없던 것을 받은 것입니다. 전부 하나님께로서 받은 것입니다.
셋째, 언젠가는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언젠가는 내 손에서 사라집니다.
넷째,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쓸 수 있는 기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안 하면 못하게 됩니다. 지금 안주면 못 주게 됩니다. 지금 안가면 못 가게 됩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당을 짓느라 5년 동안 돈 때문에 무진 애를 쓰며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돈 있는 어느 권사님이 이자놀이는 하면서 헌금은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저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당신이나 잘하면 됐지 남의 이야기는 해서 뭐합니까"하고요. 얼마 후에 보니 그 권사님이 가진 돈을 몽땅 날렸습니다. 그제야 권사님이 제게 와서 울며 하소연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헌금이나 할 것을……"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돈 안 받으십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후회가 없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좋은 일 할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사람답게 살 것을…' 다 잃고 만 이제 와서 어찌하겠습니까? 이제는 마음이 간절해도 할 수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정력이 없고 기력이 없습니다. 다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후회뿐입니다. 얼마나 딱한 모습입니까?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하여 재산을 송두리째 날리더니 "목사님, 꼭 헌금한 것만 남았습니다"하고 씩 웃습디다. 그렇습니다. 헌금한 것은 틀림없이 남은 것입니다. 오늘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선교에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반드시 생각해야 될 기본 원리입니다. 기독교 증거의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누구나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고, 예수의 복음을 들어야만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 없이 구원받을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 : 14-15)" ---- 복음은 반드시 전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의 유일한 매개체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선교의 궁극적 범위는 온 세상입니다. 누구든지 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대하여 친히 말씀하십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7, 14)." 종말의 기준은 환난과 재난과 전쟁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 있습니다. 북녘 땅은 멀지도 않은데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저 먼 만주 흑룡강성, 소련에까지도 방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어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고 찾아와서 인사까지 하는데, 지척의 저 북녘 땅만은 아직도 그대로 입니다. 꽉 막혔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친구 교수 한 분이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그에게 얻어들은 이야기입니다. 평양에 체류하는 일주일 동안 김일성 대학에 다니는 아주 우수한 학생 하나가 안내원으로 동행을 했답니다. 좀 친해진 다음에 넌지시 한번 물어보았답니다. "성경이라는 책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수천 가지의 언어로 번역되어 온 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성경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 "그런 것이 있습니까?" 오히려 반문하더랍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이라는 말조차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니,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땅 끝까지 온 세상 온 인류 가운데에 단 한사람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또한 성도의 비결은 말씀의 능력과 성령에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 할 때에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전도자와 성령을 고용하시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당신의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주님의 사람을 선택해서 그를 통하여 복음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고용된 자입니다. 그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특별히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도우라'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큰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이 기회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듭니다. 자기의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교 전략(mission strategy)을 따릅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하나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0절)." 바울은 이렇게 인식하고 모험의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도 복음이 전파되기에 이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야 될 일입니다. 물론 이곳에도 할 일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저곳으로 갔습니다. 해외 선교를 하자고 하면, 우리 나라에도 달동네도 많고 할 일이 많은데 굳이 밖으로 나갈 것이 어디 있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대체로 말만 많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가까운 곳에도 할 일이 많은데 꼭 먼 곳까지 가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6․25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에 세계의 16개국이 도왔습니다. 군인을 파송하고 많은 물자를 대주면서 자유를 지키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의 나라에는 거지가 없을까요? 그들의 나라에는 할 일이 없을까요? 그들 나라에도 문제가 많지만 우리를 도우러 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문제가 많고, 달동네도 많고, 복음 전할 곳도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눈을 세계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곳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충분히 준비해서 내일 갑시다'하며 기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큰 시험입니다. 내일 할 일은 내일 또 있습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할 것이요 내일로 미루면 내일에는 후회할 뿐더러 내일 일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문이 닫히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회를 기다려야 하기도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에는 포착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 시각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다 하겠지' '유능한 사람도 많은데 굳이 내가 해야 되나 뭐.' 이런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시기에 나를 쓰시고자 하십니다. 바로 여기에 내 생의 보람이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령이 인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입니다. 영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7절)"---무슨 뜻입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말씀이요, 내게 주신 은사요, 목적에 합당한 일이 될 때에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이 기뻐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은혜가 가득차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가로막고 있다---답답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고 있는데 마게도냐로 오라는 환상을 보고야 '내 갈 곳은 저기다' 하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는 기쁨을 얻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이 기뻐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빌립보로, 아덴으로, 그리고 로마에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이 인도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 안에 얼마나 충만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있습니까? 그래야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가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좋은 군인은 반짝반짝하게 구두를 닦고, 훈장을 달고, 모자를 쓰고, 상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생명을 내걸고 앞으로 나아가는 군인이 가장 우수한 군인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바르게 순종하는 사람 ---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작자 미상의 시 한편을 소개해봅니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밝지만 내일은 구름이 모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닐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지면 노래부르기에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응답합니다. 즉시로 응답합니다. 이와 같이 도움을 청하는 자의 소리를 들을 때가 행복한 순간이요,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내어줄 때에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깃듭니다. 이것은 특권입니다. 복음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는 기다리고, 열린 문으로는 들어가십시다. 현재 동유럽 공산권의 문이 열렸습니다. 성경 한 권을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는지 모릅니다. 여행자들이 가방에 성경 한 권을 깊숙이 감춰서 들어가 들킬까봐 벌벌 떨며 전하던 비밀스러운 선교정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문이 활짝 열려 삼천만 권의 성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성경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루마니아를 맡았습니다. 이제 저들이 삼백만 권을 요구합니다. 그럴만한 것이, 각 교회마다 성경이 한 권씩밖에 없답니다. 그 동안에 있던 성경을 다 불살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신학대학에도 성경이 한 권밖에 없답니다. 루마니아는 2천5백만의 인구를 가졌는데 그 중 교인은 8.5%라고 합니다. 이런 형편에 성경이 없다니 말이나 됩니까? 최소한 삼백만 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적어도 백분의 일은 보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닫혀 있는 저 북녘 땅 --- 내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마는 기다립시다. 그리고 열린 문을 향하여 들어가 가능한 것을 가능케 함으로 주의 뜻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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