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있는 예배-"어떻게"
한 미라 박사(호서대학교 신학부 교수)
Ⅰ. 현대 교회 예배의 문제점
현대 교회는 지금 어떻게 하면 예배를 참되고 신령하며 활력 있게 운영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 학자들이 예배를 갱신하는 방법과 대안에 대해 저마다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교회마다의 여건과 상황의 차이로 인하여 예배 갱신의 모범답안은 있는 것 같지 않다. 본고에서는 현대교회가 당면한 예배의 문제점을 먼저 알아보고 예배 갱신의 대안으로서 생동감 있는 예배의 운영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 교회 예배의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다.
김운용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틀에 박힌 예배와 다양하지 못한 예배 형식이라고 지적하였다. 여기에 설교자의 무능력도 또한 한국 교회 예배의 문제의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배를 새롭게 해야 하는 당위성은 이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예배 분위기는 그 교회의 분위기에서 사실상 조성된다. 예배 장소의 조명과 실내장식 뿐 아니라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 설교의 메시지, 회중의 구성과 참여정도, 그리고 예배 인도자의 자질에 따라 예배 분위기는 결정된다. 예배의 분위가 무거운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생동감 있는 예배를 시도함으로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있는 미국의 빌 하이벨스(Bill Hybels, Willow Creek Church)목사는 그의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지역 주민에게 현대 교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조사결과 지역주민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교회는 언제나 돈을 요구한다. 둘째, 교회 예배는 지겹고 생명력이 없다.
셋째, 교회 예배는 판에 박은 듯이 뻔하며 동일한 것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넷째, 설교는 실제 생활에는 부적합하다. 다섯째, 목사가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무지함을 느끼게 하여 믿지 않는 자들을 오히려 비참한 감정을 갖게 한다. 미국 교회의 문제 중에서도 예배에 관한 것이 두개 이상 지적되고 있다. 예배의 갱신은 미국이나 한국의 교회가 당면한 개혁과제 임에 틀림이 없다. 예배가 기존의 예배 형식만을 고집하면서 설교자 중심으로 예배를 운영한다면 현대 교인들의 실존적 문제와 괴리가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예배 인도는 대부분 목회자 1인이 전담하고 있어 회중의 예배 참여 기회가 거의 없는 것도 예배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예배 분위기는 아무리 설교의 메시지가 좋다 하더라도 결국 회중들에게는 무거운 예배의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이다.
둘째, 현대 교회의 예배는 세대간의 갈등을 첨예화시킨다.
현대 교회의 예배 유형은 예전을 중시하는 전통예배에서부터 예배 목적과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열린 예배, 찬양 예배, 드라마예배 등과 같이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 충실하려는 전통예배는 주로 주일 정기 예배 시간(Sunday services)에 행하고, 열린 예배나 찬양예배등과 같이 젊은층과 구도자를 겨냥한 예배는 목요일에서 토요일 저녁까지 다양한 시간 틀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weekday services). 대도시의 대형교회는 회중의 다양한 시간 선호도에 맞추어 예배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여 새벽예배에서부터 저녁 7시 예배까지 최소 5회에서 최대 9회에 이르는 주일 예배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회중의 욕구에 따라 맞춤식 예배의 형태로 점점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아직 까지도 장년과 노년층이 선호하는 전통예배를 본 예배(main service)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외의 예배는 부수적인 예배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문화에 맞는 찬양 예배 시간을 이용하게 되어 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같은 교회 내에서 다른 시간의 예배를 참석하게 되는, 즉, 예배 참석 시간이 곧 세대간의 특징을 말해주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교회 예배를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한 가족, 한 예배 시간대로 통일 하려는 목회자의 노력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무리 교회가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해도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세대간 갈등의 골을 쉽게 좁힐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세대간의 갈등을 더욱 가속화, 첨예화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예배가 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세대"로만 치부하지 말고 젊은 세대를 교회의 예배 속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교회 예배를 생동감 있는 예배로 개혁해야 한다.
셋째, 현대 교회의 예배에서 과용되는 음악 및 예술적 요소는 예배의 영성을 방해하고 있다.
현대적 예배와 전통적 예배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대 음악을 포함한 예술적 요소들을 사용하느냐 하지 않느냐 이다. 예전에 충실한 전통예배를 주장하는 교회는 현대 예배에서 예술적 요소들(CCM, CCD, 드라마 등)이 예배를 생동감 있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예배 본질인 영성이 방해를 받아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거부한다. 또한 현란한 멀티미디어 사용이나 지나친 오락성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텍스트)보다 비본질적 전달의 형식에 더 치중하게 된다. 현대인들은 교회를 선택할 때 교회의 부대시설,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 그리고 오락을 위한 교회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즉, 그들에게 교회의 신학이나 신앙 노선은 교회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는다. 젊은 층은 기독교적 사회활동(YMCA 등)이나 종교적 록 콘서트 등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구도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입된 음악 및 예술적 요소들이 오히려 영성이 아닌 음악과 예술적 요소에 더 관심을 갖게 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예배에 도입된 현대 음악 및 예술적 요소들은 복음 전달의 도구와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복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교회는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넷째, 현대 예배에 사용되는 멀티미디어전용 기자재는 교회에 재정적 부담을 주고 있다.
예배를 갱신하려는 대부분의 목회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예배실 기자재의 구입이다. 현대 교회는 예배 시설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투자를 하고 있다. 예배실 자체가 대형 파워스크린, 빔 프로젝터(beam projector), 영상 편집기, 방송기기, 대용량 음향기기 등을 다 수용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교회마다 경쟁하듯 고가의 첨단 시청각 기자재를 구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강단의 꽃 장식과 대형 플랜카드 등 예배의 전시적 효과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결국 교회의 재정적 부담을 증가시키고 교인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목회자들이 예배실의 기자재 구입에 적극적이 된 것은 사실 고급화되는 신자들의 요구 때문이다. 교회로서는 요구가 많고 까다로운 신자들과 구도자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기 위해서 교회에 첨단 기자재와 실내장식, 부대시설을 갖추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빠져있다. 그러나 예배가 멀티미디어 기자재를 이용한 버라이어티 쇼(variety show)처럼 회중의 눈요기가 되어 버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교회의 좌석은 채워질 수 있겠지만 교회 예배의 본래 목적인 복음의 전달과 영혼 구원의 사명이 제대로 성취되는지는 의문이다. 생동감 있는 예배는 복음을 전달하는 수단과 도구에 있어서 현대적 이기인 멀티미디어용 기자재를 사용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기자재가 생동감이 있는 예배의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생동감 있는 예배는 곧 돈이 든다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재정이 넉넉한 교회는 기술집약적 예배로 운영되어도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노동집약적인 예배로서 오히려 더 생동감이 넘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섯째, 현대 교회의 예배는 양극화와 퓨전(fusion)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무엇에 더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크게 예전적 예배와 비 예전적 예배로 나눌 수 있으며, 이 구분 안에서도 예배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서는 기존 신자들을 위한 예배와 구도자들을 위한 열린 예배(seeker's service), 청소년, 청년, 장년, 여성들을 위한 예배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며, 찬양이 주가 되는 찬양예배(praising worship)와, 드라마, 춤 등의 예술적 요소가 도입되는 예능적 예배(entertaining worship)로도 구분될 수 있다. 찬양예배라 할지라도 예전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전통적 예배라 할지라도 예술적 요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현대 예배는 전통과 진보, 열림과 닫힘, 예술적 요소의 부분적 사용과 전적 사용등과 같이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면도 있지만, 전통 예배 안에서도 현대 음악 또는 전통 음악(국악)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던가, 찬양 예배 안에서도 춤과 연극 등의 예술적 요소를 접목한 과거 부흥 집회 양식의 예배도 나타나고 있다. 21세기는 예배 양식의 대한 고정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서로 다른 것들, 비 동시적인 것들을 예배 안에서 각각 섞어 놓은 듯한 글로벌 퓨전 예배(global fusion worship)도 선보이고 있다. 예배에 대한 목회자의 목회 신학에 따라 개교회 예배의 독특성과 개성이 두드러지는 것도 예배가 다양화되고 퓨전化되는 이유가 된다. 최근에 들어와서 양극화된 예배의 형식을 예배의 대상과 목적과 시간에 따라 절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일 낮 11시 예배에 청소년과 청년, 대학생들이 자주 부르는 CCM 중에서 장년성도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준비 찬양 곡을 선택하여 도입하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다. 예상외로 장년층에서도 거부감 없이 CCM과 복음성가에 잘 적응하는 교회가 늘어가고 있다. 또한 기존의 전통적 예배의 형식의 기본 틀 안에서 현대적 요소들이 절충된 예배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부산의 부용성결교회는 세대간 갈등극복을 위해 전통예배에 열린 예배적 요소를 첨가한 예배를 실험적으로 실시하였다. 앞으로는 이것의 역현상도 일어날 수 있 다.
Ⅱ. 생동감 있는 예배의 성서적 기초
생동감 있는 예배의 본질은 성서로부터 찾아야 한다. 성서에서 생동감을 찾는 실마리는 "생기와 그것을 불어 넣는 창조주"(창 2:7)와 관련되어 있다. 생동감 있는 예배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는 첫째, 생동감의 근원을 밝히고, 둘째,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생동감 있는 예배의 사례들을 찾아서 생동감을 돋우는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노래와 악기에 대해 성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논의하려고 한다.
1. 생동감 있는 예배의 근원, 하나님
예배를 생동감 있게 이끄는 것은 목회자만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달렸다. 생동감이란 생기가 있음을 의미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에는 생기가 돌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피조물이 병이 들거나 나약해 질 때 생기는 약해지거나 시들해 지게 되어 있다. 살아 있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생기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실 때 하나님은 생기를 코에 불어 넣었다고 창세기는 말한다. 즉, 사람에게 생기가 들어가 비로소 사람이 생령을 소유한 피조물이 되었다. 예배를 생기 있게 만드는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음악과 악기가 아무리 예배 분위기를 즐겁고 생기 있게 하는 도구라 할지라도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 자체가 생기와 생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채로 음악을 연주할 때 그 음악은 죽은 음악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생동감 있는 예배의 모티브는 창조 사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정점을 이루는 신비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세밀히 살펴보면 아담, 즉, 흙의 사람에서 생령이 있는 인격체가 되는 과정은 현대 교회의 예배문화에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하나님은 흙(아다마)으로 사람의 외모를 만드셨다. 모양은 사람의 형상이나 그 형상은 아직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기(루아흐)를 코에 불어 넣으므로 사람의 형상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이식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령이 되었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지금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처럼 모양은 예배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아직 죽은 상태와 같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의 생기(성령)을 받아들임으로서 "생령이 살아 숨쉬는 예배"로 변화될 수 있다. 흙의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령의 존재가 된 과정은 현대교회의 예배 갱신 과정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즉, 성령의 감화와 구원의 감격을 상실해가는 현대 교회의 예배는 생령이 없는 흙의 사람과 같다. 흙으로 만든 아담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접촉되어 아담이 "생명력 있는 인격적 존재"가 된 것처럼 현대 교회의 예배가 말씀과 성령의 연합에 의하여 감동되고 그 속에서 예배하는 모든 자의 생령이 살아 숨쉬며 기뻐하고 찬양할 때 그 예배는 생동감으로 넘쳐흐르게 될 것이다.
2. 성서에 나타난 생동감 있는 예배 사례들
성서는 현대 교회에서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예배가 있었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이들의 예배는 물론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행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 사용한 음악이나 악기는 우리가 현재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그 규모가 크고 화려하고 웅장했음을 알 수 있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 예배- 대 음악제로서의 예배 모형
역대하 5:11~14은 솔로몬 왕이 아버지 다윗이 이루지 못했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 하는 예배 중에서 음악과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본문이다. 레위인 으로서 음악인(musicians, NIV)이라고 명명되고 있는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이 그 아들들과 형제들을 모두 거느리고 레위 성가대원(공동번역)으로서 모시옷(고급린넨)을 입고 심벌즈(cymbals, 제금, 또는 바라)와 하프(harps, 비파, 또는 거문고)와 칠현금(수금, lyres)을 연주할 때 이들과 함께 트럼펫을 부는 사제가 120명이나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다 같이 나팔을 불고 노래를 불렀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그 소리가 한 소리처럼 들렸다. 트럼펫과 심벌즈, 그 밖의 악기에 맞추어, "하나님은 선하시며, 자비하시며, 그 사랑이 영원하여라" 라고 소리 높여 찬양하였다. 이때 하나님의 성전에는 구름이 가득 찼으며, 구름이 어찌나 짙었던지 사제들이 더 이상 예식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찼던 축제적 예배였다.
성서 역사상 가장 감격적인 예배-말씀만으로도 감격적인 예배의 모형
느혜미아 8장에 나오는 수문앞 광장 예배는 성서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예배로 평가 된다. 바벨론 70년의 포로기 이후 고레스 칙령에 의하여 고토에 돌아온 그들은 제2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을 건립했다. 7월 1일이 되자 자발적으로 수문앞 광장에 모여 에스라에게 법전을 통독해줄 것을 청하며 7일간의 감격적인 초막절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 감격적 예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남 여 또는 신분의 차별이 없이 모두가 나와 듣고 은혜를 체험하는 사경회와 축제적 성격의 예배이었다. 이 예배의 특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중의 자발적 요청에 의한 말씀 중심의 예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사모했던 예배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내려준 모세의 법전을 에스라에게 가져오라 요청하였다(느 8:1). 둘째, 전 공동체가 성과 신분을 초월하여 참여한 평등한 예배였다. 남 여, 노 소, 노예, 귀족의 구분(경계)이 무너진 연합체의 예배였다(느 8:2). 셋째, 일상을 전폐하고 시간을 다 바쳐 드려진 전 회중의 전적 헌신 예배였다. 에스라가 새벽부터 정오까지 큰소리로 법전을 읽었고 백성들은 귀담아 들었다(느 8:3). 넷째, 말씀(율법)의 권위 앞에 영적 반응과 감동이 일어났던 예배였다. 에스라가 특별히 만든 높은 나무 단 위에 올라 가 서서, 율법 책을 펴들고 읽자 온 백성이 일어났다. 에스라가 높으신 하나님을 칭송하자 온 백성도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며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하였다(느 8:5-6).
다섯째, 학사며 제사장인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면 "레위인 교사"들이 말씀을 회중에게 알아듣기 쉽게 해석 주었던 최초의 교육적 예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3인의 레위인 교사들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배웠다(느 8:7-8). 여섯째, 눈물과 감격으로 시작되었던 예배는 축제로 변하였다. 온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 한마디 한 마디를 들으면서 울었다. 그러자 총독 느헤미야가 이렇게 말했다. "가서 잔치를 차려 배불리 먹고 마셔라. 이 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나 슬퍼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 주시리라." 레위인 교사들도 온 백성을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조용히 있어라. 이 날은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 말라." 온 백성은 그 가르침을 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돌아가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먹고 마시며 좋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느 8:9). 이 예배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가장 감격적이고 성대한 절기의 축제이자 성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배였다고 평가된다.
선구자 히스기야왕의 임직 예배- 음악과 감동이 있는 임직 예배의 모형
이 예배는 히스기야 왕이 등극한 첫 해 첫 달에 대신들과 성직자들과 더불어 그의 통치를 시작하는 새로운 각오를 하나님 앞에 다짐하고 제직들에게 속죄와, 헌신을 촉구하며 감사로 끝나는 예배였다. 처음 16일간은 성전을 정결케 한 후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는데 제사 시종을 음악과 더불어 행하였다는 것이 특색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임직에 앞서 결심과 헌신을 강조하는 예배이므로 엄숙해야 할 것 같으나 히스기야 왕은 번제의 시작부터 끝까지 악기의 연주와 합창을 도입하고 있다. 현대 교회 목회자도 이렇게 파격적인 예배를 준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이렇게 제사를 지낼 때 악기를 연주케 하는 것이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해 명령하신 것이다(대하 29:25). 다윗의 악기라 일컫는, 심벌즈(타악기), 하프, 거문고(현악기)와 여기에 관악기인 나팔을 사용하였으며, 합창대는 악기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여 음악의 웅장함을 더하였다. 그런 다음 왕은 일행과 더불어 하나님께 경배하고 이어서 레위인 합창대가 다윗 왕과 아삽(음악가)의 시(작사)에 맞춰 즐겁게 찬양한 후 그들도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경건함도 이 예배의 특징이었다(머리를 숙여 하나님을 경배 하였다, 대하 29:30). 히스기야왕은 무거운 분위기로 갈 수도 있었던 임직 예배인데도 불구하고 이 예배를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음악의 향연으로 승화시켜 지루하지 않고 감동적인 예배로 이끌었다. 번제를 올리는 제사의 배경 음악으로 악기 연주와 합창을 도입시키고 경배와 찬양을 번갈아 운영한 히스기아왕의 예배 형식은 현대 교회 다양한 행사의 예배에서 악기 연주와 합창의 조화로운 사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성서적 단초가 된다고 본다.
춤사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다윗의 예배- 새로운 음악과 춤을 도입하는 예배의 모형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송축하고 예배하는데 있어서 개성이 강한 유별난 왕이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시인이며 예술가 왕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송축하는데 있어서 왕의로서의 체면도 권위도 개의치 않고 그의 음악적 재능과 예술적 감각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표현한 가장 인간적이고 대중적인 왕으로 평가 될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과정에서 드렸던 이 예배는 우선 야외에서 출발하여 실내로 들어가는 독특한 예배의 정황이다.
먼저 하나님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자 다윗은 살진 소로 제사를 드린다. 그런 다음 다윗은 다시 모시 에봇(제사장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덩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영역성경에는 다윗은 그의 온 힘을 다하여(with all his might)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이어서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은 함께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며(shouting)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 행진을 하였다. 하나님의 궤가 다윗의 도성에 들어 올 때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 덩실덩실(영어로는 껑충 껑충 뛰며 빙글빙글 돌며, leaping & whirling: 상당히 격렬한 춤으로 상상됨) 춤을 추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보고 이를 비웃었다. 다윗은 미리 예비한 성막에 궤를 안치하고 또 다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제사를 드린 다음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윗은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모여 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떡 한 개, 마른 대추야자 한 뭉치, 건포도떡 한 개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공식 행사를 마친 다윗이 자기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돌아오자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조롱하였다. 미갈은 여종들과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왕의 신분으로 몸을 거의 다 드러낸 격렬한 춤을 춘 다윗을 비난 한 것이다. 그러나 다윗왕은 미갈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나님은 그대 아버지(사울)와 그대 집안을 다 제쳐 놓으시고 나를 택하여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소. 나는 그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었소. 나는 앞으로 이보다 더 천한 춤도(하나님 앞에서라면) 출 것이지만, 여종들은 나를 높이게 될 것이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다윗은 그의 예배에서 만큼 표현의 자유를 만끽한 왕 이였다. 왕이 덩실덩실 빙글빙글, 껑충껑충 뛰는 춤을 춘다는 것은 마치 현대 교회 목회자가 예배시간에 테크노 댄스를 추는 것과 견줄 수 있는 파격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성서가 춤을 춘 사람을 분명하게 밝힌 경우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다윗, 미리암, 입다의 딸정도 이며 대부분은 주로 백성들이나 또는 무리가 춤을 추었다고 말한다. 한국 교회 예배에서 춤을 도입이 악기나 노래만큼 용이 하지 못한 것은 한국 사회가 갖는 춤에 대한 편견과 고정 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춤 하면 자동적으로 천한 계층의 사람들이 추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한 춤바람을 연상하며 그것은 부정한 남여나 하는 불륜 행위 정도로 간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나이 많은 세대에서는 '춤'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한다. 한국 교인들에게 춤은 경망스럽고 천하여 성스러운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만 치부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교회에 지배적으로 남아 있음을 본다.
다윗왕 시대에도 이러한 춤에 대한 편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춤사위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 표현대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를 선도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젊은층들도 함성 지르며 기타, 드럼, 섹스폰 등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로 춤으로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들의 예배에는 생기가 넘친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도 미갈 처럼 이들의 춤과 노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바로 다윗의 후예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윗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음악과 춤을 선보였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청년들이 하는 새로운 음악과 춤을 예배에 도입하였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라고 누가 판단 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현대 교회의 문제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예배의 죽음이다. 죽은 예배는 죽은 나사로의 모습과도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선포를 통하여 동굴 안에서 썩은 나사로를 부활(갱생)시킨다. 이로써 나사로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가 되었다. 그러나 산자가 되었던 나사로는 아직 수의를 입은 상태에선 산 자라고 볼 수 없다. 옛 자아, 옛 구습에 묶여 있는 한국교회 예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현대 교회의 예배는 수의에 묶인 나사로처럼 무거운 분위기의 타율적 예배를 드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산 자가 입은 죽은 자의 수의"를 못 마땅히 여겨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나사로가 수의를 풀자 비로소 "생동감, 생명을 지닌 삶"을 갖게 되었다. CCM을 비롯한 현대 음악을 교회 예배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생동감 있는 예배는 교회의 예전이다 전통의 권위다 하며 예배의 자유를 꼭꼭 묶고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의 고답적인 편견의 붕대를 풀어 주어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Ⅲ. 예배에 있어서 CCM, CCD, 드라마 및 멀티미디어 활용: 효과와 문제점
최근 일부 교회에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예배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예배의 대중예술화이다. 여기에서 가장 많이 선호되고 활용되는 대중 예술적 요소들은 CCM, CCD, Drama이다. 둘째, 이들을 도입할 경우 예배는 기획과 연출이 불가피하다. 셋째, 주로 젊은 세대를 위한 열린 예배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넷째, 이러한 예술적 요소의 예배에서의 활용에 대한 철저한 신학적 검증이 없다. 즉, 누구도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새로운 장르별 예배 예술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소개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선보이는 예배 예술의 새 장르를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빈번히 활용되고 있는 세 가지 예배 예술에 대한 효과와 문제점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1. 예배에서의 CCM의 활용
CCM의 정의와 특징
CCM이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약자로서 동시대적인 크리스천 음악, 또는 현대기독교 대중음악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90년대 초부터 미국의 젊은이들과 pop가수들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에 예수 찬양과 하나님 찬양, 복음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중음악이라고 해서 CCM자체를 저급한 음악으로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클래식 음악만이 교회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는 시대의 요구와 맞지 않는다. CCM의 멜로디와 리듬은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를 다 수용한다. 그러나 CCM에서 다루는 가사 만큼은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간구, 개인적인 신앙 고백과 감사(CCM중 30~40%정도를 차지한다), 둘째, 복음의 내용과 전파, 셋째, 성도간의 교제, 넷째, 도덕적인 권고,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 가정의 행복, 인류의 평화, 인종차별, 약물과 마약 사용에 대한 경고 등이 CCM을 일반 대중음악과 차별화 시키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CCM의 세부 장르로는 포크, 컨트리, 랩, 펑크, 하드록, 아카펠라, 하드코어, 재즈, 메탈 등 다양하며 찬송가로 불려지는 곡들도 리메이크 되고 있다. CCM의 장르 구분도 시대의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
CCM과 복음성가의 차이
CCM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이다. 실제로 이 음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CCM대신 '가스펠송'이란 말과 이를 번역한 '복음성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복음성가와 CCM의 차이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음악의 스타일(리듬과 멜로디)면에서의 차이다. 비교적 객관성을 띤(즉, 누구나 다 쉽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easy listening & singing, slow rock이나 ballard 형식의 노래가 많음) 것은 복음성가이고, CCM은 연주하는 자의 곡 해석이 보다 자유롭고 주관적이다. 스스로가 CCM이라고 하기 전엔 쉽게 구별이 잘 안되는 다소 난해한 CCM도 있다(특히 헤비 메탈, 갱스터랩 같은 최근의 젊은 CCM 밴드들의 연주에서 필자도 그들의 음악의 난해성을 느낀다).
둘째, 가사의 차이다. 복음성가의 가사는 직유법을 사용하여 복음과 기독교적 가치관등을 전달하는 반면, CCM은 주의 깊게 들어야 비로소 복음의 내용과 기독교적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은유적 가사 전달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세대의 차이이다. 대중음악의 선호도에 있어서도 세대별로 좋아 하는 음악 장르가 다르듯이 30대 이하는 CCM을, 30대이상은 복음성가를 선호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개인차이는 있지만 대개 10대에서부터 30대까지의 젊은 크리스천들은 CCM을 선호하며 복음성가 가수와 CCM가수를 확연히 구분한다. 30대 이상의 회중은 템포가 느리고 직접 가사의 의미가 전달되고 교회 예배에서도 무리 없이 부를 수 있는 복음성가를 더 선호한다. 결국 세대의 차이는 스피드의 차이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세대이고 디지털은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그리고 인터넷도 초고속으로 하는 세대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호하는 CCM은 비트가 빠른 음악이다. 비트가 빠른 음악으로도 예수를 찬양하고 은혜를 경험한다고 하는 젊은 세대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세대들 간의 차이가 크다. 한국 교회에서 사실 세대 차이를 보이는 분야가 음악만은 아니다. 목회 모든 분야에서 교역자 간에도, 회중 간에도 세대차이는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세대차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기 때문에 각 세대별로 선호하는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겠다고 하는 회중들의 개성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목회적 탄력성과 융통성이 필요한 때 이다. 최근 CCM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보니 CCM을 서로 자기 잣대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히 눈에 띤다. 비트가 강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를 내는 음악만을 CCM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 상황에서 CCM은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을 거의 다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애정을 갖고 보면 헤드 뱅잉(head banging, 록커(rocker)들이 머리를 흔들고 노래하는 모습)으로 찬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볼 수 있다.
CCM을 사용하는 예배 사례들
CCM이 예배에서 사용되는 것을 보면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첫째, 주일 저녁 예배 또는 주일 오후 예배 시 특별 순서에서 CCM이 연주 또는 공연 된다. 천안 중앙 감리교회는 주일 저녁 예배시 특별행사로서 PK(Promise Keepers)라는 CCD 댄스 팀과 A.Men 이라는 CCM 보컬팀을 초청하여 공연 한바 있고, 사랑의 교회의 경우 "주말 교회"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CCD와 함께 CCM이 활용되고 있는데 대체로 과격한 CCD나 난해한 CCM은 사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사랑의 교회 주일 5부 예배(오후 3시)는 찬양예배로 드리고 있는데 사용되는 음악은 복음성가와 부르기 쉬운 CCM이다. 둘째, 열린 예배시 주로 복음성가와 함께 예배에 사용된다. 열린 예배는 교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개 주일 오후나 저녁에 열린다. 그러나 '꿈이 있는 교회'는 주일 11시 예배(1부)를 열린 예배로 드리고 있으며, 온누리 교회는 정규예배로서 주일 저녁 7시 예배를 새신자를 위한 열린 예배로 정례화하고 있다.
교회마다 CCM과 복음성가 그리고 기존의 교회 음악과 찬송가등을 다양하고 독특하게 사용하고 있다. 열린 예배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은 오프닝에서부터 끝까지 CCM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복음성가와 기존 찬송가를 CCM 양식으로 편곡하여 부르기도 한다. 사용되는 악기도 다양하나 특징은 교회마다 드럼, 키보드, 일렉 기타, 베이스 와 신디싸이저(synthesizer)는 기본이고 여기에 교회마다 섹스폰, 트럼펫, 하프, 체로, 바이올린등과 같은 클래식 음악 악기도 혼용되고 있는 양상을 띤다. 때로는 가사 없는 CCM인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이 올갠이나 피아노를 대신하여 전주, 묵도의 배경 음악, 헌금 찬양, 후주에 이르기까지 사용되는 교회도 있다. 셋째, 교회 안과 밖에서 열리는 특별 예배로서의 찬양 콘서트는 예배라기보다는 이제 CCM 콘서트로 발전하고 있다. CCM은 그 성격과 본질이 교회 예배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새로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교회 목회자와 장년 성도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 교회의 정기 예배에서 보다는 교회 밖에서 연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는 젊은이들의 CCM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 기성세대가 선호하는 찬송가를 포기하고 CCM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CCM은 교회 밖에서 예배라기보다는 찬양콘서트의 개념으로 더 발전해가고 있다. 찬양 콘서트에서는 현재 유행하는 CCM 노래들이 CCD와 함께 연주되는데 찬양 인도자와 사회자 또는 교회 자체의 CCM 사역자들이 이끌어가면서 "찬양-간단한 말씀-찬양"의 순서로 진행된다. 일반 대중 음악 콘서트에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것처럼 CCM 찬양 콘서트에도 CCM 가수들과 CCD그룹에 대해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는 이제 청소년들의 CCM과 CCD에 대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 사역의 기획과 연출 및 제작까지도 지원해주어야 한다. 하드록과 힙합댄스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잘 믿고 싶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을 교회에 남게 하기위해서는 교회가 그들의 음악적 눈높이를 맞추어야 할 때이다.
2. CCD의 올바른 이해와 활용 방법
CCD란 무엇인가?
CCD란 Contemporary Christian Dance(현대적인 기독교의 춤)의 약자로써 10년 전부터 시작된 워십 댄스(worship dance)에 비해, 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말한다. CCD는 최근 기독교 청소년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문화장르로서 어깨춤부터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동작까지 모든 스트리트 댄스(street dance, 힙합, 랩, 팝핀, 재즈 등)를 일컫는다. CCD의 특징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CCD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춤이다. CCD는 찬양 뿐 아닌 전도의 도구로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무의미한 춤동작의 표현에 그친다면 세속적 음악에 맞춘 안무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둘째, 크리스천들의 춤은 찬양의 가사를 묵상하고 그 가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춤이다. 즉, CCD를 하는 것은 다윗처럼 온 몸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이다. 어떤 조건 속에서 춤을 추더라도 CCD는 여흥을 위한 춤이 아닌 "춤으로 표현된 예배"로 승화 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CCD사역자들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일반 연예계 댄서들보다 실력이 열등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춤의 유행이 이렇게 변해가니까 우리도 따라가자'가 아니라 '크리스천의 춤 문화'가 오히려 춤의 유행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중문화가 이끌리는 "문화 위의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의 춤꾼들이 되어야 한다.
CCD와 워십 댄스(worship dance)의 차이
CCD를 기독교적 춤으로 이해할 때 예배에서 이것보다 더 먼저 소개되고 더 다양한 세부 장르를 가진 춤의 분야가 있다. 이것을 워쉽 댄스라고 한다. 워십 댄스란 좀 더 부드럽고 경건한 경배의 춤으로 분류될 수 있다. 워쉽 댄스란 워쉽(경배, 예배)과 댄스(춤)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몸 찬양, 경배의 춤, 몸으로 드리는 예배 등으로 불리 운다. 즉, 워쉽 댄스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경배의 마음을 춤으로 표현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워십 댄스와 CCD가 다른 점은 동작과 표현상의 차이이다. CCD가 조금 더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춤이라면 이것은 요즘 청소년들에게서 유행하는 춤의 양식을 따른다. 따라서 빠른 비트의 CCM과 힙합, 재즈, 팝핀 등과 같은 최신 음악의 장르에 맞춘 춤이다. 이에 반해 워십 댄스는 주로 사용하는 음악이 복음성가와 찬송가, 전통적인 교회음악이다. 자연히 워십 댄스는 클래식 발레에서부터 고전 무용 같은 느림과 여유로운 춤사위로 표현된다. 아직까지 교회 예배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예식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CCD는 자신들의 문화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신앙의 춤인 것이다. 구원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인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워십 댄스를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교회와 신자들에게 CCD는 더욱 교회 예배에로의 진입이 어렵다고 전망된다. 그러나 힙합과 재즈, 록 음악과 춤을 듣고 추며 자란 신세대가 성인이 되는 20년 후 교회 예배는 지금의 음악에서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CCM이나 CCD와 같은 음악 성향은 글로벌 시대 신세대들의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예배에서 활용 가능한 CCD
빠른 비트의 음악에 따라 현란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이제 대학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교회 안과 밖의 찬양 집회에서 춤을 추는 청소년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전문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P.K., 멘토, 솔라이트 등과 같은 CCD 댄스 그룹이 있어 개교회의 주말 특별 프로그램(예: 사랑의 교회 '주말 교회' 작은 음악회)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며 교회마다 청소년 CCD 댄스그룹이 교회의 중·고등부 특별 찬양 예배나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 중·고등부가 대상인 예배나 캠프, 수련회 등에서 CCM과 CCD는 필수적인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CCD가 얼마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급속하게 호응을 얻고 있는지는 '낮은 울타리 아카데미'와 개교회 등에서 CCD에 관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낮은 울타리'의 경우 재즈, 힙합, 워십 댄스 강좌를 개설해 2개월(매주 월요일)동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CCD 교육기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전문사역자가 거의 없어 2~30여 개에 달하는 미션 스쿨과 교회안의 CCD 동호회는 춤동작이나 음악 등을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호서대학교의 기독교 연예학과가 신설됨으로서 CCD 사역자를 양성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낮은 울타리 아카데미'측은 "문학의 밤, 홈커밍 데이 등 일련의 교회행사에서는 CCD의 사용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한다. 그러나 CCD 매니아라 할지라도 신앙적 근간이 없으면 복음전파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CCD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영적인 훈련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예전 같으면 `불경한 짓'으로 치부될 법한 CCD가 교회 행사 때에 선보이는 등 교회 예배와 행사에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러나 신성한 교회에서 어떻게 힙합 바지를 입고 세속적인 춤을 출 수 있느냐고 우려하는 목회자도 많다. CCM의 교회 음악으로의 수용여부를 놓고 수년간 갈등하여 왔던 기성세대들에게 CCD는 더욱 부담스러운 것이 되고 있다. 현란한 춤동작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발상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CCD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CCD는 현대 청소년들을 전도하는 유력한 문화적 수단이다. 아직까지 청소년들에게 교회 문화는 진부하고, 예배 시간은 지루한 시간이라고 인식되어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문화와 글로벌 음악에 길들여진 신세대 청소년들에게 느린 템포의 교회 음악이 있는 예배는 흥미조차 유발되지 않는다. 청소년 교세가 줄어드는 것도 이제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회는 조용하고 엄숙한 예배에서 남여노소 누구나 다 생동감 있게 드릴 수 있는 예배로 거듭나야 한다. 언제까지나 전통적인 예전과 고전 음악에만 구속되어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교회는 젊은이들이 사라진 노령화된 공간(空間)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바울은 전도 하는 대상과 눈높이를 같이하여 그들에게 다가갔으며(고후 9:19~23) 시편에서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다. 다윗은 온 몸으로 추는 격렬한 춤사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 춤과 음악에 대한 청소년들의 문화적 갈증이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갈급하다. 교회 청소년들에게도 이와 같은 욕구가 있는데, 교회는 장년 회중 중심의 예배에만 관심을 갖는다. 교회에서도 청소년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열정과 감격과 신명나는 예배가 체험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현재 CCD사역을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P.K(promise keepers)의 리더 장광우는"현재 교회 문화는 일반문화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독교와 젊은이들의 춤추는 문화를 접목시키는 적절한 방법이 제시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춤은 철저히 도구가 될 뿐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의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현대 청소년들은 둘 이상 모이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들에게 춤이란 이제 하나의 문화요 커뮤니케이션이다.
3. 예배에서 사용되는 드라마
예배 드라마의 종류
예배 시 사용되는 드라마의 종류로는 스킷 드라마(skit drama, 짧은 희곡 드리마), 연극, 뮤지컬(musical), 슬라이드(slide), 역할극(role play)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스킷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1)스킷 드라마
스킷 드라마(Skit Drama)는 결론이 유보된 짧은 극으로서 설교의 조력자, 수업 시 설명의 보조수단(교사 일인극도 가능),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복음을 전달할 때 주로 사용한다. 스킷 드라마는 헤럴드 라스웰(Harold D. Lasswell)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요소인 다섯 가지가 구성 요소가 된다. 즉, C = S - M - C - R - E에서 다섯 가지 요소는 첫째, source: 누가 전달하는가(화자- 드라마팀, 교사, 설교자), 둘째, message: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복음), 셋째, channel: 어떤 경로로 전달할 것인가(드라마) 넷째, receiver: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회중), 다섯째, effect: 어떤 효과를 얻을 것인가(설교의 조력자)이다.
2)연극
듣기 중심의 예배에 익숙한 한국교회는 더 생동감 있는 예배로 갱신하기 위하여 연극을 꼭 필요로 한다. 예배에서 연극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는 무대이며 우리는 그가 준 역할에 충실히 연기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둘째, 기독교의 본질을 연극이라는 종합 예술을 통해 전파하려는 선교적 필요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연극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연기되는 예술로서 신적 임재에 대한 참여와 나눔이 수반된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연극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로서 주요절기 및 축제절기 등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시기에 빈번히 활용되었다. 또 5세기경부터 마임(mime)형태로 시작하여 후에 대사가 포함되기도 하면서 10세기 경에는 교회 안에서 특히 성탄절이나 부활절 혹은 성 금요일예배등에서 예배의 시작과 끝 혹은 막간의 짧은 드라마가 예배에서 활용되었던 예들이다. 다만 이것들은 예배와 분리된 독자적 연극이기보다는 예배의 메시지를 극화하기 위해서 삽입된 것들이었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부림절에는 축제형식의 연극이 행해졌다. 페르시아의 아각 출신 하만의 음모로 유대민족이 말살되기 직전의 위기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구출된 시기를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이 만들어 진 것이다. 아달월 14일과 15일 축제 기간에 행해진 부림절 연극은 단막극의 형태로 전해 내려왔다. 극의 대사는 산문과 운문이 혼합되어 있고 판토마임과 춤이 등장하며 마지막은 구원을 알리는 합창으로 장식한다. 나라 없는 설움 속에 고난 받던 유대인들에게 부림절 연극은 구원을 열망하는 종합 예술적 예배였다.
3)뮤지컬(Musical)
뮤지컬은 기독교 문화 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분야이다. 2001년 3월, 제8회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한 "더 플레이"는 문화 기획 나들목이 1999년에 제작한 '오마이 갓스'가 다음해 '갓스'(2000)로 바뀐 뒤 다시 '더 플레이'(2001)로 탄생한 것이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최근 기독문화예술원이 국립극장에서 올린 '블루 사이공'이 있다. 직접적으로 복음을 드러내진 않지만,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기독교 뮤지컬의 성공은 현재 공연을 준비하는 기독교 단체들에게 더욱 도전을 주고 있다. '낮은 울타리'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큐 안젤릭 뮤지컬' 팀 역시 규모는 작지만 꾸준히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 '큐 안젤릭' 팀은 뮤지컬을 배우려는 청소년들과 성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 노래, 연기 등을 훈련받으며 매년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성경적 메시지를 감동적이고 재미있게 꾸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공연한다. 이 외에 각 교회에서 운영하는 뮤지컬 팀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 누리교회,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등은 예배, 특히 새 신자를 위한 예배에서 뮤지컬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드라마를 활용한 예배의 사례
여성교회 드라마부는 1994년도 성서연구 주제를 "예수"로 정하고 "예수와 인간," "예수와 사회," "예수와 생명," 예수와 민족"이라는 소주제들로 세 편의 드라마를 시연했다. 드라마제목은 ①시험받은 예수 ②무궁화 꽃이 죽어갑니다 ③한국여성예수였으며 이 내용은 여성교회창립 5주년기념 드라마자료집인「한국여성예수」속에 수록되어 있다. 1995년 1월에 시연한 드라마는 예수가 민족차별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현재 한국에 계속 취업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루었다. 다음은 여성교회에서 실시한 드라마 예배의 순서이다.
드라마 예배 순서
*표는일어서서(설 수 있는사람)
사회자 : 목사
명상및 전 주 (촛불 밝힘) 맡 은 이
평화의 징울림 맡 은 이
*찬 양 우리찬송가 238번"찬양하라 내 영혼아" 다 함 께
*여성교회 기도 다 함 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이름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소서. 오늘도 굶주린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을 용서하겠사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악에서 구하옵소서. 사랑과 평화와 정의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송 우리찬송가 245번"여기 오소서"1,2,3절 다 함 께
성 서 봉 독 마태복음 20:1-16 맡은이
기 도 송 우리찬송가 245번"여기 오소서"1,4,5절 다 함 께
찬 송 우리찬송가 47번"하나님 뜻을 이루소서" 다 함 께
드라마 시연 "나좀 뽑아주세요" 드라마부
출연자: 5인
찬 송 채플찬송가 225번"저 평등의 땅에" 다 함 께
명상과 응답 다 함 께
공동체 시간 다 함 께
찬송과 봉헌 우리찬송가 252번"작은 세상" 다 함 께
감 사 기 도 맡은이
응 답 송 우리찬송가 263번"여성교회의 노래" 다 함 께
*공동체 축도 다 함 께
*파송의 노래 우리찬송가 248번"가서 외치라" 다 함 께
*평화의 인사 다 함 께
스킷 드라마를 예배에 활용하고 있는 '꿈이 있는 교회'에서는 주일 1부 예배를 열린 예배로 드리고 있는데 그 예배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킷 드라마 예배와 내용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다.
'꿈이 있는 교회' 열린 예배 순서
김 집사의 세상 돋보기
아름다운 음악과 묵상
찬양의 기쁨
말씀 읽기
스킷 드라마(설교의 조력자)- 아래의 대본 참조
기도
말씀(설교): 스킷 드라마의 내용으로 시작하여 본문과 관련지으며 설교 한다
말씀속의 그림이야기(설교 후의 요점을 슬라이드로 다시 정리하여 보여줌)
헌금
축복기도
위의 예배순서에서 스킷 드라마는 설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설교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설교 제목과 성경본문과 스킷 드라마와를 관련지으려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설교에 몰입하도록 회중을 자극하고 돕는 역할을 한다. 스킷 드라마가 설교의 전개를 어떻게 돕는지에 관해 좀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설교 제목과 성경 본문을 아래의 대본과 관련지으면서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성경 본문: 출 14:10-16
설교 제목: 1%를 바꾸면 내가 변하고 3%가 바뀌면 세계가 변한다.
스킷 드라마: "어리석은 사람"
등장인물: 승무원(voice acting, 목소리로만 연기),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남자 1, 2, 3이 기내 좌석에 앉아 있다.
승무원: (비행기 안에서 기내 방송을 통하여 목소리만 들린다) 이제 곧 출발하오니 안전 밸트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남1의 옆 좌석에서 졸고 있는 남2의 머리가 자꾸 남1의 어깨로 떨어진다. )
남1: LA까지 12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아우, 나 이제 죽었다.
(이때 아기 울어대기 시작 한다)
남1: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기 울음소리는 정말 싫어. 12시간동안 아기가 운다면, Oh No!, 코고는 소리는 참아도 얘 우는 소리는 정말 못 참아.
(이 때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린다)
남1: 하나님 이번 추락사고에서 저를 살려주세요. 꼭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절대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살께요.
승무원: (기내 방송을 통해 목소리만 들린다) 승객여러분, 고르지 못한 비행관계로 비행기가 잠시 요동 하였습니다.
남1: 그럼 빨리빨리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런 거 하나 예측 못하나?
남1: (옆 좌석에서 졸고 있는 남2를 보면서) 또 시작이야 또. 아우 이걸 그냥 나둬 버릴 수도 없고..... 아우, 짜증나.
드라마 예배의 효과
스킷 드라마를 활용하는 예배의 효과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배가 지루하지 않고 참여하는 즐거움이 있다. 둘째, 설교가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즉, 어렵지 않기 때문에 보고, 느끼고 이해하기 쉽다. 셋째, 감동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넷째,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이 없다. 다섯째, 누구에게나 쉽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여섯째,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안산 평강교회에서는 현재 매주 드라마 예배를 실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드라마 예배를 통하여 배우로서 참여한 회중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또한 성경 속의 인물들이 되어보는 역할극을 통하여 성경을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진다(act out). 드라마 예배를 실시한 이수부목사는 이것을 통하여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도 교회 생활에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회중 모두가 교회 활동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교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4. 멀티미디어 예배의 효과와 문제점
멀티미디어란?
김영석은 1990년대 이후 새롭게 개발된 미디어를 뉴미디어란 말 대신 멀티미디어(multimedia, 다중매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멀티미디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영상, 음성, 데이터 등 이질적인 형태의 정보를 디지털 신호라고 하는 단일한 신호처리방식에 따라 통합적으로 처리하고 전송하고 표시하는 미디어"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멀티미디어는 "영상과 음성, 데이터 등의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이루어진 메시지 혹은 서비스를 하나의 미디어를 통해서 제공하는 기기를 말하는 것으로서,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디지털 압축, 전송, 복원기술을 사용하여 CD-ROM이나 DVD와 같은 다양한 저장매체와 여러 가지 네트워크 수단을 이용하여 미디어와 이용자 혹은 미디어 이용자 간에 쌍방향적인 정보검색 혹은 정보교류가 가능한 복합미디어"
최근에 들어와서 멀티미디어는 다음 네 가지 특징의 것으로 정의한다. 첫째 멀티미디어 정보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 둘째, 하나의 단말기를 통한 다양한 정보형태의 통합적 처리(intergration), 셋째, 정보이용의 상호작용성 혹은 양방향성(interactivity), 넷째, 디지털화된 통합정보가 유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정보전송의 네트워크성을 멀티미디어의 특징으로 첨가 하고 있다. 또한 멀티미디어를 정보의 내용, 정보의 전달경로(pipeline), 그리고 단말기의 특성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정보내용(content)의 측면에서 멀티미디어는 문자, 음성, 데이터, 도형, 정지영상 및 동영상 등 다양한 정보형태를 통합적으로 처리하는 미디어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멀티미디어의 조건은 자료의 디지털화 및 그것의 표준화된 압축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보전달경로의 측면에서 멀티미디어는 양방향 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멀티미디어라 하면 CD-ROM이 장착된 컴퓨터나 텔레비전 수상기에 장착된 게임기 등에서만 인식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보 전달 경로는 멀티미디어 정보를 실시간(real time)으로 공유할 수 없고 또 그 정보에 대한 접근도 제한적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인터넷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형의 멀티미디어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네트워크형 멀티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미디어 이용자 당사자간에 즉각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역통신망과, 인터넷, 혹은 초고속 종합정보통신망(ADSL)을 이용한 영상전화, 원격영상회의, 문자와 음성, 그리고 영상전송이 동시에 가능한 차세대 개인휴대 화상통신(IMT 2000) 등이 모두 네트워크형 멀티미디어에 포함된다. 휴대폰으로 설교와 교회 행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셋째, 멀티미디어를 단말기(platform)의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멀티미디어 단말기는 텔레비전과 컴퓨터이다. 지금까지 멀티미디어는 주로 비디오 게임 산업이나 CD계열의 패키지 소프트웨어 산업에 치중되어 있었으나, 앞으로는 케이블 TV나 전화회사의 유무선 네트워크망을 이용한 양방향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개념으로 진보되어갈 것이다. 멀티미디어 단말기는 무선 인터넷 사용의 보편화로 무선 랜(LAN)이 장착된 휴대용 노트북(현재 Tablet PC가 개발되어 노트북과 PDA를 합친 것 같은 초소형 PC)단말기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 아직도 개인용 유선 데스크 탑 컴퓨터를 단말기로 하는 경우는 컴퓨터 주변기기들(CD-ROM, DVD-ROM, 사운드 카드, 동영상 카드 및 동영상 편집기 및 프로그램 등)이 장착되어야 멀티미디어 정보를 가공, 제작, 처리 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하는 예배 사례
현재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예배를 실시하고 있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본 고에서는 멀티미디어 예배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몇 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그 사례를 알아보려고 한다.
1) 울산 감리교회 멀티미디어 예배
울산감리교회는 '97년 4월부터 멀티미디어를 통한 예배와 교육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Computer Animation 제작 시스템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력교육과 함께 병행하여 '98년 3월에는 오디오 시스템, 비디오 시스템, 컴퓨터 시스템을 하나의 미디어로 통합하는 작업을 마치고 멀티미디어를 통한 예배와 교육 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통합적 메카니즘이 예배와 교육에 적용이 되기 시작한 후 질적 성장과 함께 신자의 수가 300명 이상이 증가하였으며 회중들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예배를 위해서는 목사의 철저한 준비가 요구되어지며, 매체에 담아야 할 내용들을 준비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을 미리 준비해야하고 많은 기계들을 익히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2) 천안 성결교회의 열린 예배 "푸른 초장"
"푸른초장"은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교회에 다녀도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문화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10대에서 40대까지의 젊은이들을 목표로 음악이나 댄스, 드라마와 영상 등 현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문화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열린 예배이다. 참여 회중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불신자 뿐 아니라 전통적인 교회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기존의 젊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포함된다. 천안 성결교회측은 "푸른초장"의 궁극적인 목표가 천안지역에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열린 예배의 장을 제공해주고, 이를 통하여 천안지역에 기독교 문화를 확산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예배는 2001년 10월 28일에 처음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 시행중이다. 열린 예배를 시행한 결과 참석인원이 점진적으로 증가, 회중들이 청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 가 마련되었고, 각 사역팀(찬양, 워십, 드라마 등)에게 은사 활용의 기회를 제공하며, 회중들에게는 이를 계기로 전도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3) 서울 이수성결교회의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예배
1996년 이래로 시작된 이수교회의 멀티미디어 예배는 초창기에 OHP등을 사용하는 예배에서 점차 발전하여 LCD 프로젝터와 컴퓨터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영상과 조명, 음향을 활용하는 예배와 절기행사, 교육 등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수교회의 멀티미디어 예배는 전통과 현대 예배의 조화(blended worship)와 내용과 방법의 적절한 조화, 그리고 본질과 형식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최근에 오픈 한 사이버 교회 "마르지 않는 샘(www.eternalwell.com/org/net)"의 운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회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멀티미디어를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멀티미디어의 예배에서의 활용 효과
위와 같은 개념의 멀티미디어를 교회에서 예배의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크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멀티미디어가 꼭 필요한가, 둘째, 필요 하다면, 무엇을 위해 멀티미디어를 사용할 것인가. 셋째, 멀티미디어를 정보로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서비스차원에서 공유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정보로서 사용한다면 어떤 대상을 위해 정보화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서비스로서 제공하길 원한다면 서비스의 범위(on-line으로 할 것인가 off-line으로 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누구나 멀티미디어를 예배에 활용 할 수 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를 예배에 사용하는 모두가 다 원하는 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문명의 이기를 잘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멀티미디어 예배란 말이 교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멀티미디어를 사용한 예배이거나 멀티미디어 기반 예배(multi-media-based worship)라고 해야 어법에 맞는다. 멀티미디어를 교회가 앞 다투어 사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멀티미디어가 갖는 영향력 때문이다. 첫째, 현대 회중에게 멀티미디어는 친숙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영상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다. 일상에서 쉽게 TV를 통한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져 있기에 교회에서 동영상을 포함한 멀티미디어를 사용할 경우 쉽게 친화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둘째, 멀티미디어로 표현된 메시지는 파지(retention, 把持)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각인된 영상의 이미지는 구두로 전달되는 문자 메시지 보다 강한 인상(impression)과 함께 파지(retention)기간이 오래 지속 된다. 특히 신세대들은 문자보다는 이미지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예: 최근 책 출판에서도 그림, 사진, 컷 등 이미지가 문자와 거의 같은 비중으로 된 책이 출판되고 있음,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ID를 문자보다는 아바타로 표현하는 등). 설교의 주제와 본문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날 사용한 영상이나 이미지는 더 잘 기억한다. 목회자는 회중들이 자신의 설교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복잡한 심적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 회중의 마음에 오래 남는 설교를 하기 위해 구두(oral)로 전달하기 보다는 이미지와 함께 설교의 내용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편리한 멀티미디어에 대해 목회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멀티미디어는 예배에 집중하게 하고 참여를 촉진 시킨다. 영상, 음향에서 발생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회중의 전 감각을 자극하여 전인적(지식, 정서, 의지)으로 반응하게 한다. 영상 이미지를 보는 회중마다 각자 그것을 해석하려고 전 감각을 동원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예배의 순서 속에 몰입 하도록 안내한다. 지난 2년간 호서대학교 신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 예배는 주보 없이 모든 순서를 이미지와 문자가 중심이 된 멀티미디어(동여상은 사용안함)로 안내하며 운영하여왔다. 그 결과 예배시간에 졸거나 다른 짓하는 학생이 현저하게 줄었고 예배 분위기가 쇄신되었다.
넷째, 멀티미디어는 상상을 돕는다. 종교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잘못된 이미지는 오히려 상상을 해칠 수 있지만 심사숙고 하에 제작된 멀티미디어 설교나 예배의 각 순서에 사용되는 자료는 회중에게 자신의 종교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하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직접 자신을 보여주시길 원치 안으셨다. 우리에게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성당 천정에 천지 창조를 그려 넣으면서 자신이 상상하는 하나님을 프레스코화법으로 그렸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하얀 수염 달린 60~70대 할아버지 같은 중후한 인상, 그리고 유럽 남자의 이미지였다. 이후 일본과 중국의 화가들도 각자의 문화권에서 상상할 수 있는 민속의상을 입은 예수의 모습을 그려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운보 김기창이 '갓 쓴 예수'를 그린 적이 있었다.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예수의 십가자 처형을 여성적이고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낭만적으로 묘사했고 12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을 마치 천국에서의 만찬처럼 입체적으로 그렸다. 같은 십자가 처형이라 할지라도 화풍이 다른 파블로 피카소는 비구상(추상화)으로서 예수의 죽음을 묘사하였다. 이렇게 같은 주제에 대해 각기 상상이 다른 그림들을 멀티미디어로 회중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이런 그림들을 감상한 회중들이 어떤 상상을 할지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창조적 상상력을 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멀티미디어를 통해 회중에게 하나님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배는 회중이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르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하나님과 회중사이의 만남을 통해 창조적 상상이 일어나는 시공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구원등과 같은 신앙적 명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문자 일변도로 강론하고 설교해왔다. 예배도 문자 중심이었고 문자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 경로(책, 종이)의 경직성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을 어느 정도는 구속받고 있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물론 촌철살인(寸鐵殺人)같은 설교도 가능한 일이지만 현대인처럼 책과 문자에 무관심해져가는 세태에서 그들의 상상력을 깨우고 자극하여 자신이 신앙하는 대상과 신앙 공동체의 예배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engagement)하도록 돕는 것(edification)이 현대 목회자의 당면 과제임을 볼 때 멀티미디어 예배는 분명 그들에게 매력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배에서의 멀티미디어 활용의 문제점
멀티미디어가 위와 같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또 예배에서의 효과도 크지만 반면에 이에 대한 문제점 역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예배에 있어서 텍스트(성경)가 컨텍스트(멀티미디어)가 되는 기현상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멀티미디어는 그것을 만들고 처리하는 사람의 관점에 의해 그 내용과 이미지가 결정된다. 그러다보니 제작자의 관점이 바르지 못할 경우 겉모양만 화려한 전달 방식 때문에 예배의 본질인 영성에 관한 요소들이 경시될 수 있다. 멀티미디어로 인하여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영성이 없어진 속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둘째, 멀티미디어는 사실 보다 과장된 전달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멀티미디어를 교묘히 활용할 줄 아는 일부 "스타 목회자," "TV 설교가"(televangelist)들은 보여 지는 설교에 능숙하기에 별 노력하지 않고 쉽게 회중을 장악하여 명성과 부를 쌓아가는 수단으로 멀티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
셋째, 멀티미디어의 남용은 오히려 말씀의 파워를 약화 시킬 수 있다. 예배에서 찬양과 광고 기타 순서에는 멀티미디어가 적절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설교를 할 때 어지러운 동영상을 사용한다거나 소란스런 음악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설교의 핵심을 흐리게 되는 수가 많다. 따라서 설교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영상과 음악을 자제하고 문자와 배경 그래픽 정도로서 설교의 요점화를 위해 사용하는 절제가 요구된다. 최소화가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넷째, 네트워크로 송출된 멀티미디어는 교회와 목회자를 쉽게 와해 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가 예배가 일단 실시간으로 인터넷에서 생중계 될 때 이것은 비록 전 국민이 보는 방송이 아니라 할지라도 공중파로 송출되는 것 이상으로 여기며 예배의 모든 순서와 내용을 사전에 철저히 점검하여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 잘못 전달된 설교로 인하여 삽시간에 지탄을 받는 교회와 목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해야한다. 설교를 사이버 상에 올린다고 모든 사람이 그 설교를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며 온라인 설교를 한다고 해서 다 유명한 설교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어법과 모든 조건을 멀티미디어형 목사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시대의 멀티미디어형 목사가 되기 위해선 먼저 목회자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준비가 철저 하지 못한 목회자에 의해 인도되는 예배의 생중계를 통해 오히려 선교 효과가 감소되는 사례가 증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한번 방송된 설교는 지울 수도 되 물릴 수도 없음을 목회자는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 멀티미디어 붐은 교회에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아름답게 보였던 설교단은 이제 묵중하게 메 달린 대형 파워 스크린에 눌려 버릴 것 같고 예배실 벽 이 곳 저 곳에 메어 달린 중형 TV 모니터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연상케 한다. 굳이 저렇게까지 많은 모니터가 왜 교회에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교회가 자주 눈에 띤다. 재정이 여의치 못한 교회도 많은데 욕심 많게도 큰 교회에서는 첨단 장비들을 자랑하듯 설치하고 있다. 절제가 미덕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멀티미디어를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교회가 다 똑같이 고가의 LCD 프로젝터와 초대형 스크린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음향기기도 음악회나 할 때 필요한 최고급 사양을 굳이 주장해야 하는 교회의 허영도 한번쯤 반성해야 할 대상이다. 어떤 기기나 기구를 구매해도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구형이 되고 처치곤란의 폐기대상이 된다. 살 때는 항상 버릴 것을 생각하며 사야하는 것이 현대의 구매 전략이다. 대형 교회는 버전이 낮아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나 멀티미디어 기기와 프로젝터들을 재정이 어려운 교회 개척교회나 인근 교회와 나눠 쓰는 미덕과 아량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재정이 소규모인 교회는 자신의 교회 재정에 맞게 중고 멀티미디어기기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이다. 잘만 사용한다면 멀티미디어는 분명 예배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해 예배의 개혁도 일으킬 수 있는 막강한 힘도 있다. 예배뿐만 아니라 목회의 제 분야에서 멀티미디어는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칼에 손을 벨 수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IV. 생동감 있는 예배를 위한 제언
현대 교회는 지금 예배의 본질과 생기를 되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교회마다 십인십색의 예배 형태가 개발되고 실험되고 있다. 행복이 바로 자신 안에 있는데도 밖에서만 찾으려했던 파랑새의 우를 한국 교회가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교회는 무궁무진한 인력을 갖은 공동체이다. 전문가에서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결국 예배의 회복과 갱신은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에 있는 회중들의 능력을 얼마나 잘 개발해서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생동감 있는 예배는 분명한 성서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 생동감의 근원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다. 성서는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기뻐하시며 신앙의 조상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현대에서 사용되는 음악, 춤, 드라마와 같이 예술적 요소들의 예배에서의 사용에 대해 성서는 분명하고도 잘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현대 예배에서 음악과 춤과 드라마를 예배에서 활용하는 것은 성서적으로도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현대 음악인 CCM도 성서에서 말하는 "새 노래"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예배 시 사용하는 기타, 드럼, 트럼펫 등과 같은 악기의 사용도 성서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다 가지고 있다.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왕들의 예배에서 악기는 빼놓을 수 없는 요건이었다. 구약의 예배는 정결의식과 제사와 감사의 고백과 찬양으로서 예전과 축제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제사는 엄숙히 법도에 따라 집행되지만 그 이후의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찬양으로 이어지고 회중들의 축하와 감사가 이어지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화하는 것이 구약의 예배의 특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의적인 춤이 예배에서 행해졌음을 다윗의 언약궤 이동 과정에서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예배 에서 춤이 도입된 것은 사실상 미리암의 소고춤 이후부터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한 드라마의 활용 효과는 에스더와 모르두개의 연극적 전략을 통해 민족을 구원한 사건에서 성서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부림절에는 어린 아이들이 에스더 이야기를 극적으로 재연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예배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요소는 크게 예술(art)과 미디어(media)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두 가지 요소들의 조화로운 활용으로 예배는 생기를 띠게 될 것이다. 앞에서 필자는 예배에서 활용되는 예술적 요소들로서는 음악, 춤, 그리고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고, 미디어적 요소로서는 멀티미디어를 다루었다. 이들 요소들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원칙은 첫째, 예배 목적(정규 예배, 열린 예배, 특별 헌신 예배, 찬양 예배 등)과, 둘째, 대상(장년, 중고등부, 여선교회, 제직, 구도자, 새신자 등)과, 셋째, 교회 상황(대도시, 농촌, 대형, 중형, 개척, 전원, 위성교회, 주말 교회 등)에 따라 적절하게, 절제의 미학을 지키며 활용해야 한다. 너무 지나쳐도 너무 부족해도 안 되는 것이 예배의 예술과 미디어의 합성(blending)이다. 음악은 예배의 생동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미국 새들백(Saddleback) 교회의 릭 무초우(Rick Muchow, 음악 목사)는 음악은 예배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한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 한다- I.M.P.A.C.T. 즉, Inspiration(영감), Movement(움직임), Praise(찬양), Adoration(경배), Commitment(헌신), Tie it together(하나 됨)를 뜻한다. 그는 "예배에서의 음악의 역할은 예배의 순서 순서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줌으로서 참여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교회의 경우도 새들백 교회와 마찬가지로 예배에서의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배 중에 연주되는 찬양도 현대 음악과 악기(전자기타, 드럼 등)를 주로 사용하며, 심지어 메시지에 연관 있는 내용이면 대중음악도 등장시키도록 하여 구도자들에게 생소함을 최소화 한다. 예배의 순서에서 찬양이 차지하는 시간은 보통 15-20분이며 가사가 무대 앞 파워 스크린에 비춰진다. 이 교회의 찬양의 특징은 함께 노래하는 분위기 보다는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는 식으로 잘 훈련된 수십 명의 찬양 팀과 밴드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경우에도 예배에 있어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사랑의 교회나 온누리 교회도 한국형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배의 전체적인 진행은 주어진 주제에 따라 약간의 순서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음악을 통해 시작된다. 음악은 현대 음악을 많이 사용하며 밴드 연주와 함께 부르는 찬양을 약 20분 정도 할애 한다.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는 한국교회의 문제는 "전통의 영을 깨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를 위해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개혁은 "교회 음악 또는 예배 음악"이라고 지적했다. 외그너는 아직도 한국교회가 전통 음악을 고집하는 데에 대하여 안타까워했다.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있는 예배이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한국 교회가 젊은 교회, 미래가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예배는 청소년들이 열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음악이 예배의 갱신을 좌우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며 이것은 한국교회의 대개혁을 예고하는 것이다. CCM은 젊은이들에게 치유와 응집력과 영적 감동을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교회, 온누리 교회, 사랑의 교회와 같이 구도자(Seekers)를 중심으로 하는 열린 예배에서 CCM을 사용하는 것은 CCM이 예배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첫째, 예배에 사용되는 CCM은 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성서는 이것을 뒷받침 해준다. 다윗은 사울의 분노와 시기로 창을 들고 있을 때 오히려 수금을 타며 그의 병(분노)을 치료하였다(삼상 18: 8~14).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이유는 대부분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이다. 젊은이들이 CCM에 열광하는 이유도 CCM의 멜로디와 가사가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CCM속에 담긴 은유적 가사는 그들의 내면의 상처와 고독과 방황을 쉽게 공감하게 하여 자신의 문제를 치유하는 영적 감동을 갖게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CCM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응집력이 있다. 특히 현대 CCM은 서로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사고가 있다. 이러한 그들만의 문화는 사람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는 선교적 수단이 되기에 충분하다. 예배 인도자는 영적으로 전문적으로 늘 깨어 준비하는 자이어야 한다.
교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목회자가 예배 인도자가 되는 경우, 그 역시 예배인도와 찬양인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찬양 인도에선 목회자의 세련되지 못한 진행으로 인해 오히려 예배의 진행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찬양 인도는 반드시 전문 훈련을 마친 찬양 사역자에게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예배인도를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능 있는 평신도와 젊은이들을 전문 사역자로 훈련시키는 목회 계획이 필요하다. 이제는 교단 차원에서도 찬양인도나 음악 사역자에 대한 자질을 비난하거나 견제하지만 말고 보다 적극적인 양성 및 훈련 계획을 세워야 할 때이다.
예배에 참여하는 CCM, CCD 사역자들은 신앙적으로나 전문적으로 철저히 검증된 후 세워야 한다. 아무리 젊은 층이 선호한다하여도 찬양 인도와 음악 및 춤의 공연에 참여하는 사역자들은 CCM과 CCD만이 아닌 교회 음악이론과 워십 댄스라는 큰 장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예배의 예전에 대해서도 배운 후 예배에 참여시켜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CCM, CCD 사역자는 예배를 영적으로 인도 하는 것보다 음악적 기교나 오락성 위주로 예배를 생각하거나 이끌 수 있으며 공연 하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예배하는 자가 아닌 상업성으로 공연을 하게 될 유혹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Drama를 예배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획과 연출에 대한 계획이 사전에 세워져야 한다. 예배 순서에서 드라마는 현장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예배 시간의 누수현상과 소음 등 예배 전체 분위기가 흩으러 지지 않게 하는 철저한 연출과 기획력과 진행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만 해결되면 대상에 관계없이 회중의 몰입과 집중력이 가장 높은 것이 또한 드라마 예배이다.
그러나 연기하는 회중과 각본의 미숙함은 오히려 드라마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 올수 있다. 정규 예배 시간에 연극은 주로 설교를 돕는 스킷 드라마가 효과적이다. 드라마와 설교를 관련지어 매주 드라마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설교는 반드시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제스추어, 마임, 대사가 살아있는 단막극을 통해 설교자의 메시지는 더 강하게 회중의 머리와 마음에 각인되는 효과를 가질 수 있기에 점차 많은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활용하고 있다. 멀티미디어는 교회 예배의 예술적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예배 효과를 극대화한다. 멀티미디어가 예배에서 선호되는 이유는 그것이 회중의 참여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듣기만 하는 예배는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멀티미디어의 양방향성 특징 때문에 회중들에게 역동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는 예배에서 인간의 5감각 기관을 다 동원 하는 미디어이다. 따라서 회중들은 들으며 보며 느끼며 상상하며 결단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음악과 몸 찬양조차도 멀티미디어와합성함으로서 더욱 진가를 발휘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디지털화된 예배를 실시간으로도 공유할 수 있다. 음악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예배는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반면 그에 따른 문제점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멀티미디어 활용의 문제점을 참조하길 바람). 현대 예배는 예술적 요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라는 예배 컨텐츠와 전달 경로를 필요로 한다. 예배는 다양한 미디어와 예술을 동시에 통합해야 되는 종합 미디어 예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멀티미디어가 있는 예배는 확실히 생동감을 찾게 될 것이다. 예배에 활용되는 음악, 춤, 드라마는 멀티미디어의 옷을 입으면서 비로소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생동감 있는 예배란 구원의 역동적인 감격이 수반되어야 하는 예배이다. 따라서 제사가 아닌 예배, 두려움이 아닌 감격, 용서가 아닌 감사가 되어야 하는 예배이어야 한다.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유사성을 지니는 동시에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 구속의 제사는 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와서 제물을 드리는 행위(죽음)을 통하여 죄 사함과 화해를 청구하는 대리적 제사였지만, 신약의 예배는 구원(구속)을 경험한 성도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헌신을 결단하는 직접적 예배(immediate worship or firsthand worship)였다. 구약의 제사가 두려움과 용서를 구하는 죄인의 몸부림이었다면, 신약의 예배는 감사와 헌신을 고백하는 의인들의 축제이었다. 선교 2세기로 접어든 한국 개신교 교회는 개혁할 것이 너무 많다. 그 중에서도 예배는 개혁의 0순위이다. 예배가 활기차야 교회가 성장되기 때문이다. 예배가 젊어져야 한다. 구원의 감격을 온 몸으로 찬양하고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예배로 거듭나야 한다. 지나치게 제의적 예배는 성도들의 참여를 제한하기 때문에 성령과의 호흡을 원활하게 할 수 없다. 예배에서 젊은이들은 생기 그 자체이다. 그들이 오지 않는 예배는 자연히 생기를 잃어 가게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다윗의 격정적인 춤사위를 기뻐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온갖 악기로 연주하며 새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하였던 히스기야왕의 레위 합창대처럼 모두 다 일어나 경배와 찬양, 구원의 감격이 살아 숨쉬는 예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예배,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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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료실
출처 : 하얀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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