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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초청

by 【고동엽】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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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초청

(마11장28-30)

<총동원전도주일설교>

 

시작하는말

어떤 큰 부잣집에 생일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옷차림이 허름한 선비가 그 집에 들어가려 하자 문지기가 가로막았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으나 결국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선비는 돌아가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왔습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들여보냈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선비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옷에다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옆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선비는 대답했습니다. “이 집은 사람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옷을 초대했으니 옷도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소?”라고 대꾸했다고 합니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가려서 초청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나 초청을 하셨습니다.

 

잔칫집 비유를 보면은 그 지방의 유지 급이 되는 자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히 사양을 했습니다. 주인이 이르기를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마22:9-10)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은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눅14:21)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내노라고 하는 자들은 물론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을 초청하셔서 은총과 축복을 주시기 위하심이셨습니다.

 

1.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들은 오늘도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힘겨운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보천리길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외롭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네팔의 셰르파들은 몸집이 작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20, 30㎏의 여행 가방을 대여섯 개씩 짊어지고 히말라야를 오릅니다. 8000m 고도에 하늘의 성처럼 떠 있는 안나푸르나를 트레킹 할 때 셰르파들은 보이지 않고, 첩첩이 짐을 쌓아올린 큰 광주리가 혼자 저절로 움직이는 것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셰르파들이 거대한 짐을 옮기는 비법은 한가지라고 합니다.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그들은 묵묵히 고된 노역을 하는 착한 소처럼 느릿느릿 걷습니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말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오늘도 무거운 짐을 지고 우보천리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현지인들이 한국인임을 알아차리면 “빨리 빨리”를 연발합니다. 적은 돈 내고 많은 것을 보려고 하니까 빨리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속사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은 말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오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무거운 짐에서 빼어내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사람의 무거운 짐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 인줄 너희가 알지라”(출 6:6-7)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지고 갈 짐들이 너무 많습니다. 가정에도 많습니다. 부모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식이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형제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도 짐이 많습니다. 상급자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급자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료가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구석구석에도 짐이 많습니다. 이웃이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이든, 가난한 자이든, 병든 자이든, 누구든지 초청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든, 가난한 자이든, 병든 자이든, 누구든지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그에게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신분 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아무런 제재나 제한이 없는 초청으로 오늘도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로 나가는 자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죄를 범한 인생은 죄의 와중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계속 죄를 범함으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참조, 롬 6:23). 이러한 인생의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법으로는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대속적인 사역으로 인하여 우리는 죄와 그 형벌이 주는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아울러 영원한 안식을 약속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값없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고귀한 것이라 도저히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써만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원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를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즉시 그의 평강과 위로는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2.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 최장수 부부로 기록된 영국인 “퍼시 애로스미스(105)와 플로렌스(100)” 부부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였던 플로렌스는 1925년 6월1일 마을의 작은 교회에서 다섯 살 연상의 청년을 신랑으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8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이 부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해로할 수 있었습니까?” 남편의 대답은 “항상 아내에게 ‘여보, 사랑해요’라고 말했지요.” 아내의 대답. “전 남편에게 늘 ‘여보, 미안해요’라고 말했지요.” 이 부부는 평생 서로를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화를 품은 채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전날 아무리 다퉜더라도 아침이면 사랑으로 용서하고 새로운 날을 맞았습니다. 이 부부가 삶을 통해 실천한 성경말씀은 에베소서 4장 26∼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멍에를 같이 메고 인생길을 걸어왔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사랑의 멍에입니다.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자기가 지신 멍에를 지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멍에는 어떤 멍에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여 기쁘게 짊어지신 멍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30)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내 멍에는 쉽고”를 “내 멍에는 편하고”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내 멍에는 너희에게 알맞고”라고 번역했습니다.

 

중동에서 소가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을 보면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고 합니다. 어미 소에게 멍에를 메우고 어린 소의 목덜미를 멍에 속에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어미 소가 열심히 멍에를 끌고 가면은 어린 소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소는 쉽게 멍에를 메고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면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게 됩니다. 주님이 멍에를 대신 메어 주시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멍에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메고 그와 함께 동행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회심 이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친 것도 그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명에를 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메는 멍에는 예수님께서 함께 메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20).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오히려 훨씬 더 쉽습니다. 그리고 가볍습니다. 할 만합니다. 재미납니다. 즐겁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은혜가 됩니다. 열매가 맺어집니다.

 

3.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악마에게서 배울 것이 없습니다.

악마들이 모두 모여 인간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 결과 악마들은 인간을 붕괴시키는 특수무기를 만들기로 합의했습니다. 드디어 연구진은 3개의 특수 도끼를 완성했습니다. 우두머리는 도끼를 들어 보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세 도끼 중 하나만 사용해도 대부분의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다. 세 도끼를 모두 사용하면 넘어지지 않을 인간은 하나도 없다.”라고 하면서 악마들은 낄낄거렸습니다. 그들이 만든 첫 번째 무기는 붉은 도끼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슴속에 움트는 믿음을 찍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파란 도끼였습니다. 이것은 마음속 희망을 잘라내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까만 도끼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사랑의 줄기를 베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믿음 희망 사랑”을 잃으면 곧바로 절망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배우면 그의 인격과 성품,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까지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로 배운 바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배움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미국의 대부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Vanderbilt)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재물이 신앙이며 존재 이유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흑인 하녀가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그 곡은 찬송가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밴더빌트는 조용히 찬송가 가사를 음미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예수의 속성이 아주 쉽게 표현돼 있었습니다.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 죽을 자의 생명, 추 한 자의 정함, 죽은 자의 부활….’ 그때 밴더빌트의 입술이 조금씩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과 지식, 명예를 포기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손한 약자가 됩니다. 그리고 쥐고 있던 것을 모두 놓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빛을 찾습니다. 신앙은 사망을 삼킵니다. 신앙은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참조, 마 28:19, 20).

 

끝맺는 말

사람들마다 “일생에 거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일에, 또 어떤 사람은 악한 일에 일생을 걸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1866년 영국의 한 대학에서 아프리카 탐험과 선교에 대해서 증언해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이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하는 등 아프리카 탐험에 크게 기여했던 그는 이날 “가장 힘들었을 때 어떻게 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언어가 안 통하는 사람들, 저를 불신하는 사람들, 심지어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괴로웠을 때,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주님의 말씀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 영원한 진리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삶의 방향은 바른 것인가?, 삶의 푯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지 말고 위를 향한 믿음 위에 서서 문제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서 방향감각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의 위로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출처: 신삼철 목사/ 천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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