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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2,922편)〓/치유 설교

약함과 강함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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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과 강함
고후 12:10


사도 바울은 사도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 27권중 24권을 기록할 정도로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은 사도였으며 지혜와 학문이 뛰어난 분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와 환상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잘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울은 다른 사도 보다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적으로 하나의 큰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은 육체의 가시, 사단의 가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쓴 성경의 문맥으로 볼 때 고칠 수 없는 질병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병은 당시에 고칠 수 없는 병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지금 같으면 암이나 고질성 성인병인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엄청난 은혜를 받은 그가 어떻게 그런 못쓸 병에 시달림을 당하고, 다른 사람을 고치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었을까 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분이 그 병으로 말미암아 병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병을 고치지 못한 것과 병에게 눌려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에서 병을 고치지 못했어도 병 때문에 더욱 위대한 삶을 산 바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수 없이 많은 문제와 괴로움을 격고 삽니다. 병, 사업상의 난관, 직장 문제, 가정 문제, 자녀들의 문제, 여하튼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각기 육체의 짐을 지고 힘겹게 세상을 살아 갑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날아 갈 것 같은 무겁고 수고로운 짐들이 많습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그 문제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고민거리가 있습니다. 문제를 안고 문제 해결이 안되면 인생살이가 고달퍼져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릴 때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함 받기 위해 세번이나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했다고 말했습다. 유대인들이 간절히 기도를 했다는 것은 한 번 정도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적어도 40일 이상을 열심히 기도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광야에서 40일을 간절히 기도했다면 아마 예수님처럼 40일 금식 기도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바울은 자기의 문제를 위해 연속으로 40일씩 세번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병이 있는 것보다 건강해야 하나님의 일도 잘 할 수 있고, 전도자의 고민과 괴로움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괴로워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에게 붙은 사단의 가시를 빼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한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몸이 건강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파서,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다른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 병을 고처 주시옵소서. 아마 어떤 환자도 바울처럼 간절히 40일씩 금식을 하면서 세번 기도를 한다면 병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울면서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 하나님의 응답은 9절 말씀에 네가 나에게 그톡록 간절히 기도하고 간구했으니 내가 너를 고처 주겠노라 하시지 않고 “너는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아 가지만, 그것은 내가 너에게 준 최고의 은혜다. 내가 줄 은혜가 너에게 충분히 임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되는 응답입니다.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이 은혜지 어떻게 병을 지고 사는 것이 은혜일 수 있습니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은혜지 어떻게 문제를 안고 사는 것이 은혜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상식적인 응답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닭음도 주시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응답을 받았을 때 조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괴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10절). 이 말씀 ‘하나님! 저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병을 가지고 연약한 육체 속에 살아 가지만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의 위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특별히 내가 약할 때 강합니다. ‘내가 연약해서 쓸어지고 넘어질 때 저는 하나님의 강하심을 깨닭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 고백을 통해 우리가 배울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인간은 살면서 약해지고, 또 너무 약해질 때가 종종있습니다.
어쩌면 강한 순간보다 오히려 더 약한 순간이 많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하루 아침에 병으로 쓸어져 버리는 수가 있고, 그렇게 모든 일에 적극적이요 자신 만만했던 사람이 너무 약해져서 조그마한 일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등생도 낙제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앞서 나가던 사람이 넘어져 오히려 가장 뒤어처져 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좌절과 실망으로 심신이 극도로 초최해져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도, 육체도 모두 약해져서 불쌍하게 되여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약해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을 바른 자세로 극복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난관에 판판히 약해져서 넘어져 버린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겟습니까?
인생을 성공한 사람은 문제가 없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던지, 그 문제를 잘 감당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가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믾은 문제들을 제기시켜 주십니다. 이것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주고 풀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반드시 학생들이 풀만한 문제를 출제하고 정답을 마련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시험하실 때 문제의 정답을 마련하시고 출제를 하십니다. 즉 반드시 문제에는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하실 때는 우수한 사람을 뽑아 시상을 하시고자 하시는 목적을 가집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으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7절)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와 은사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신학을 정리하게 하시고 주님을 위한 위대한 전도자로 세워서 많은 교회들을 세우게 하십니다.
이런 것들이 아무리 바울이라해도 그를 교만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이 됩니다. 그런 우려를 미연해 방지하시기 위해 바울에게 육체의 질병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잘해도 교만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종으로서 많은 일을 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우리들이 교만하므로 우리들을 나추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산상 보훈에서“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그 사람에게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자기를 나출줄 아는 사람,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 하나님만을 높일 줄 아는 사람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신앙이란 원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개입시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려 듭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자기의 영광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져서 타락하여 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이듯,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그런데 부패한 인생은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낮아지지를 못합니다. 바울 사도 같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오직 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에게 낮아질 수 있는 길, 즉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일을 잘하고 축복을 유지하고,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에게 질병을 주어 교만해 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을 깨닭은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나에게 있는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계속 은혜를 주시기 위한 안전 장치일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모든 죄의 뿌리’요 ‘죄악의 어머니’입니다. 사람이 멸망을 받는 죄는 불신앙이요, 저주를 받는 죄는 교만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교만에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며. 어느 누구도 교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특히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에게 어려운 숙제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녹일 줄 알고 자기를 연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숱한 고난이 닥처 올 때마다 자기를 더 나추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 57:15에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사시고, 겸손한 자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약할 때 그 때가 바로 참으로 강해질 때입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약해 질 때 인생살이에 대한 생각이 깊어 진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 인간이 무엇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형제가 누구며, 이웃이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은 숱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은 그 날들의 풀과 같으며 영화는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 103:15-16)”이라고 합니다.
솔로몬도 인생을 살면서 온갖 것들을 다 가져 보고 격어 본 후에 “헛되고 헛된 것이 인생살이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 것만이 인생의 목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하신 말씀도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의 말입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할 때, 형통할 때 교만하고 방자히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 겸손히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진리를 위해 사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남의 것으로 치장하여 새의 왕이 될려한 가마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선호하는 돈이나 명예, 가정의 배경, 학문등은 우리들이 가지고 잠시 사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인생을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흔히 그런 것들이 인생의 무엇을 결정하는 것처럼 착각과 오류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홀로 남아 있는 그 순간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고 경정되는 그 순간이 옵니다. 내게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외롭고 고독할 때가 옵니다. 혼자 먼 길을 가야 할 때가 옵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여 있는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은 원래 천재적인 음악가 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과 귀가 먼 다음에 더욱 위대한 음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곡들도 사실 그가 장애자가 된 후에 작곡한 작품들입니다. 시편 62:5-6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를 쫓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곁사람은 후패해져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그 때 하나님을 더 잘 믿게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째, 우리가 약할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더 커집니다. 담대해 집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를 우리 곳으로 할 수 있는 지름 길입니다.


창 32장에 야곱은 하란 외삼촌 집에서 21년간 종 노릇을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네사람의 아내와 12명의 아들과 딸 하나와 그리고 많은 재산을 모아 금의 향향을 합니다. 21년전 거지와 같이 하란에 왔던 야곱이 이렇게 많은 축복울 받았으니 의기 양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가? 형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자기를 마중 온다는 것입니다. 동생을 마중 나오는데 무슨 군대가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까? 이것은 마중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21년전에 장자의 축복을 사기를 당하여 빼앗긴 분풀이를 하려 나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21년의 수고와 노력이 다 쓸대없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처자식이 죽을 것이고 다른 종들도 죽을 것입니다. 야곱은 여러가지 꾀를 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얄팍한 꾀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얍복 강 건너 편으로 먼저 보낸 뒤 혼자 강가에 엎드려 하나님에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는 필사적인 기도였습니다. 몸부림을 치며 부르짓는 기도었습니다. 자기도 살고 가족도 살려야 하는 기도었습니다. 그는 과거에도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일이 있었지만 그 때의 기도와 지금의 기도는 달랐습니다. 밤을 세워 지도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천사와 씨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천사와 씨름을 한 것이 아니라 천사를 붙들고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가족을 살려 주시옵소서. 죽음이 닫아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시옵소서’ 날이 밝아 오자 그 천사는 응답이 없이 하늘로 올라 가려 합니다. 야곱이 그래도 놓지를 않자 그 천사는 야곱의 환도 뼈를 쳤습니다. 야곱의 대퇴골이 부서져 위골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살려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드디어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묻고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말입니다. 즉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이긴 사람, 누구를 두러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 무엇을 걱정할 것입니까?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기도를 말합니다.
야곱도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문제가 있거든 최선을 다해 그 문제를 풀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최선보다 하나님의 도움심은 몇 천배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최선은 우리들의 경험이나, 물질, 인간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기도하는 일생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도, 감옥에 갇혔을 때도,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도, 왕에게 엄청난 문제를 제시 받았을 때도,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도 그는 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책에서 우리가 존경하고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용사들입니다. 모든 것을 기도로 해결하고 해결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도없이 훌륭한 사람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이르켜 흑인을 해방시킨 경정적 동기가 된 '엉클 톰스 케빈'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스토우' 부인이라는 평범한 시골 여자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죽었습니다. 그 부인은 그 딸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는 그 슬픔과 비애를 신앙과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슬픔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더 고통을 당하고 살고 있는 흑인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흑인의 어머니들은자식을 키우면 생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 큰 슬픔을 보았던 것입니다. '스토우' 부인은 그 사실들을 자기의 슬픔과 신앙으로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엉클 톰스 케빈'이라는 책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밀턴은 소경이 되었습니다. 전혀 앞을 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주 위대한 영감을 주셨는데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타락한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받아 기록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실락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은 은혜를 체험합시다.


1880년 일본인으로 드물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야스나리 가바다'라는 작가는 가시관을 물고 자살을 했습니다. 그가 죽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늙고 병들자 그는 그 몸을 자기가 원하는데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좋은 작품을 썼으나 그 자신의 인생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을 믿고 살았드라면 결코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깊이와 성공 실패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어려움에서 더욱 찬란해 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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