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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2:1-15 주님의 심정

by 【고동엽】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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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2:1-15 주님의 심정

 

히2:1-15절까지 말씀으로 주님의 심정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냉장고에 여러장의 메모지를 붙여놓은 것을 딸이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옛날에는 기억력도 좋고, 노래도 잘 부르셨던 어머니였는데, 이제는 늙으셔서 자꾸 잊어버리니까 빨래 55분까지, 시장에 콩나물, 간장 하나하나 써 놓을 것을 보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우리 어머니가 많이 늙으셨구나 생각하면서 옛날 자기가 자기 엄마에게 교복 안 빨아 놨다고 발 동동구르고 큰소리치고, 참고서 안 사준다고 투정부렸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또 자기 동생도 자기 원하는거 안 사준다고 문을 쾅 닫아버리고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맘이 아팠겠는가 그런걸 생각해보면서 냉장에 붙은 메모지를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눈물이 나서 어머니가 그때 얼마나 맘이 아팠고 얼마나 그때 서운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뒤에서 꽉 보듬고는 어머니 제가 할께요. 자기도 시집가 보니까 어떤 것들이 맘이 아프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늘 가서 도와드리려고 애를 썼다고 하는 어떤 사람의 글을 봤습니다.

어머니 심정을 이해를 하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옛날에 자기가 자기 맘대로 했던 그건것들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는 글을 보고 저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도 생각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뒤돌아보면 부모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 아프게 하고 또 나만 생각을 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그 마음을 읽는 그런 사람이 되야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뛰어나다고 설명을 해 가는 과정 속에서 예수는 믿었으나 확실하게 서지 못한 성도들에게 돌아가려고 하니까 그렇게 얘길 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다. 그 다음에 천사보다 뛰어나다고 말을 하면서, 오늘 여기 2장으로 말이 이어져 갑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나다 그러니까 천사가 한 말을 듣고도 말을 순종을 하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을 받았는데 예수님의 말은 더욱더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다 증거하셨고, 또 그것에 큰 역사가 있었던 것을 알지 않느냐 하면서 예수님이 성육신해서 잠깐동안 낮아졌을 뿐이지 그분은 천사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라고 얘기하면서 그분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것은 믿는 많은 사람들을 영광에 들어가게 하려고 그런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하면서 예수님과 성도가 하나님에게서 나서 형제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성도가 하나로 합해진 결과 사망과 마귀를 없이 하실려고 그런 것이다. 라고 얘길 하면서 천사보다 뛰어난 것은 그 말을 그렇게 하고 있는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심정을 잘 이해해야 되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떤 주님의 심정인지 보겠습니다.

3-4절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정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

첫 번째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주님의 심정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부터 보면 그러므로 합니다. 이 그러므로는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뛰어나므로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가라. 이 복음의 말씀을 들은 것을 더욱 더 간절히 삼가야 된다. 혹 떠내려갈까 염려스럽다. 절대로 그것을 떠내려가지 말라고 하면서 설명을 합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도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고 하면 어찌 그 하나님의 공변된 보응을 피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설명하면서 이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 주님이 말씀하셨고, 그 다음 들은 제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해 줬고, 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표적들과 기사들과 능력과 성령을 주신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도 증거 하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증거를 해 주셨다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그 주님의 심정을 꼭 가슴에 새기고 다녀야 됩니다. 히브리서 기사는 들은 것을 삼갈지어다 라고 말하면서 천사들이 한 말도 공변 된 심판이 있는데, 우리주님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등한히 여긴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라고 설명을 하고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우리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정성을 다하여 우리가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됩니다. 더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없어져 버리지만 말씀만은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아무리 좋아도 얼마못가면 다 지나갑니다. 지원이가 장난감을 사주거나 옷을 사주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합니다. 그런데 얼마못가서 그거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나중에는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우리도 똑 같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좋아도 조금 지나면 별로에요. 그러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살리는 것이요, 우리를 구원시켜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은 나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버리면 절대 안된다고 주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애타게 지금 그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항상 하루에 4장씩 읽으면 1년이면 1독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책으로 공부하면 66주가 걸리고 화요일공부로 15장씩 공부를 하면 76주가 걸립니다. 그래서 항상 1년에 한번 정도는 성경을 읽는 그 안에서 늘 들으려고 하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생명 된 삶을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하고 관계없는 모든 것들은 헛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는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어머니라는 분도 연세가 들면 자꾸 잊어버려서 냉장고 위에 붙여놓지 않으면 다 태워버리고, 시장에도 한번 다녀와 놓고, 잊어 버려서 또 한번 가고 그런데 또 잊어버려서 또 한번 갑니다. 우산도 늘 잃어버리지요. 어디 갔다 온것도 잊어버리지요. 그러고는 자꾸 까먹어 버리고 우리는 그렇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말씀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귀한 것이라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주님의 심정을 잘 이해를 하고 어는 형편 어느 처지든지 말씀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우리의 모든 문제도 말씀으로 해결해야 됩니다. 말씀속에 들어가서 주님 심정을 이해를 하면 우리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때 믿은지 얼마 안돼서 자꾸 유대주의 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히브리서를 쓰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모든 것보다 뛰어나다고 설명하는 과정 속에서 오늘은 천사보다 뛰어나다 라고 하는 그 말을 하는 일환 중에 오늘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정말로 하나님이 나한테 말씀하신 그 말씀이 가장 귀한 것을 알고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그 주님의 심정을 이해하고

잠언23장12절을 보겠습니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이것이 주님 심정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이 지식의 말은 주님의 말씀 그 말입니다. 잠언서 지혜, 지식은 전부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구원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떠난 삶은 헛된 삶이 되기 때문에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관심을 갖고 늘 말씀을 떠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되는 것 너무나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 살아계실 때 자기 위주로 살았던 것을 나중에 깨닫고 많이 울게 됩니다. 주님이 코너에 몰리니까 자기가 먼저라 주님 심정으로 가는 것은 생각지 않고, 주님 잡혀갔을 때 제사장 집에 있을 때 그 당이지 그러니까 아니라고 3번이나 거짓말하고 부인하게 됩니다. 그 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네가 나를 닭 울기 전에 3번 부인할꺼다 라고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그걸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닭이 꼬끼오 하고 우니까 그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는 막 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는 경우도 있고, 또 이런 설교를 통해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고, TV연속극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도 있고, 신문을 통해 말씀할 때도 있고, 어떤 친구를 통해 직장동료를 통해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나를 오픈 시켜놓고 왜 저걸 듣게 하시고, 왜 이걸 보게 하시나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귀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첫 번째 주님 심정은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시려는 주님의 심정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 히브리서 2장으로 다시 가겠습니다.

9-10절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두 번째 주님의 심정은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살게 하시려는 주님의 심정인 것을 우리는 꼭 기억을 해야 합니다.

9절에 보면 오직 우리가 천사들 보다 잠깐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예수님을 말합니다. 지금 성육신해 오셨기 때문에 잠깐 동안은 천사보다는 못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는데 이를 행하심은 성육신해서 죽으신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려 하신 것이고 또 10절에) 만물이 인하고(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보존하시는 하나님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하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심에) 저희 구원의 주(예수님을)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다. (고난받은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하늘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분이 고난받는 거 마땅한 겁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죽게 해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실려는 주님의 심정인 것을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시고 우리는 살게 하시려는 그 심정을 꼭 기억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 때 내가 잘 되려고 하고, 내가 높아지려 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고, 내가 무엇인가 돼서 거기에 대해서 영광을 받고 내가 살고 싶은 것이지 우리 주님은 이렇게 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이해를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9-10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쓰셨는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시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뭐하려고요 하늘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그분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그분이 죽으셨다는 그분심정을 잘 이해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서 보는 것도 주님의 은혜의 듣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요, 걸어가고 숨쉬는 것도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그분이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삶 속에서 내가 얼마나 느끼느냐가 신앙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은 그분에 인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한가지 한가지를 생각할 때마다 요것도 주님의 은혜요, 저것도 주님의 은혜요,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해 죽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통사고 날 때 상대를 밀어서 상대는 살리고 죽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고 거기다 돌로 만들어 표시를 하고 그 사람한테 포상을 합니다. 요즘에는 물에 빠진 사람이 많이 생겨납니다. 요번에도 40대 남자가 자기자식이 물에 빠지니까 건지려고 하다가 다른 애들이랑 6명 건지고 그 남자는 죽었더라구요. 너무나 안타깝던데 바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얼른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살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세상에 그런 사람이 드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떤 것을 봐도, 들어도, 해도 다 주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바로 이 히브리서 기자도 그런 주님의 은혜를 많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다 라고 지금 9절에 그렇게 얘기합니다. 10절에도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럽니다. 그것이 오직 주님이 하실 일이라고 생각을 하며 했다는 것입니다. 대신 죽으신 것.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대신 죽으려고 하신 그분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우리를 위해서 그분이 희생하시고 나를 살려내는 그분은 밑에 들어가고 나는 위로 올려놓고 나는 숨쉬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숨 못 쉬고 죽어버리는 그리고 나는 사니까 자기는 죽어버리는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는 주님의 삶. 그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줄려고 그분이 오셨다 그렇게 여기다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어디서 깨달았냐면 제가40일 금식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픕니까? 밥을 120그릇을 안 먹으면 중량이 20킬로그램 빠집니다. 금식을 다하고 났는데 배가 별로 안고파요. 오산리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금식을 했냐고 물어서 나는 내가 금식을 하지 안는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으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신거에요. 우리주님은 배고프시고 나는 배부르게 만들어 주신거에요. 그리고는 나보고는 금식했다고 그러셨어요. 제가 그것을 깨닫고 눈물이 핑돌았어요. 우리주님은 그러신 분이란 거죠. 그런 심정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됩니다. 우리의 신앙수준은 그분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삶에서 많이 느끼는 것이 신앙수준입니다.

우리는 더 많이 마가복음10:45절 같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목숨을 줄려고 하는 우리 주님의 심정을 잘 이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막달라마리아는 7귀신 들렸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막달라마리아는 예수님이 일하시는 모든 곳에는 다 좇아 다녀녔습니다. 늘 도우려고 애를 섰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시려 할 때도 그 장소에 있었고 나중에 부활하실때도 제일 먼저 가서 부활하신 주심을 만납니다. 왜그랬을까요? 막달라마리아 가슴에는 어떻게 했는가를 많이 느낀겁니다. 그분이 오셔서 자기를 살렸고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그분이 죽으신 현장까지 보고 주님이 죽으신 것은 나를 살릴려고 죽으셨구나 라고 깨달으니까 시체에 향을 발라드리려고 향품을 갖고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으니까 예수님을 이용해서 잘돼보고 싶은 것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갑니다. 그러나 어떻게 됐는가 먼저 가보고 싶었어요. 일찍 가보니까 우리주님이 부활하셨어요. 그리고는 부활하신 주님이 막달라마리아에게 얘기를 합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바로 이 막달라마리아는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앞에 문제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잘살고 못 살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을 삶에서 얼마나 느끼고 그분심정을 얼마나 이해를 하느냐 이것이 우리의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된 사람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 삶으로 일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이 되려고 하고 대접받으려는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막달라마리아는 7귀신 들렸던 사람이었지만, 그 문제 속에서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심정을 깨달아서 부활하신 주님에게 제일 첫 번에 관심 있게 만났던 사람이 이 막달라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마리아는 아하~ 나를 살리려고 주님이 죽으셨구나를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를 살리시려고 그분이 죽으셨다고 하는 심정을 삶에서 더 많이 이해하고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14-15절 보시겠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세 번째는 마귀의 종로릇 하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 14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여기 혈육이란 말은 피와 살을 가졌다 그말입니다. 피와 살을 함께 가졌기 때문에)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예수로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이 말은 하나님이지만 성육신해서 사람의 몸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말미암이(이 말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무얼 했느냐) 마귀를 없이 (하실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 그랬다.

마귀의 종노릇 하지 않게 하시려는 우리 주님의 심정을 이해를 해라 그 말입니다.

여기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종노릇 하는 삶이 참 많습니다.

나에게 속고, 세상에 속고, 내 욕심에 속는 경우 많습니다. 그건 전부다 마귀에게 속은 겁니다. 우리는 내 자신에게 속았으면 벌써 마귀에게 속은 겁니다. 마귀는 괜찮게 보이고 나에게 육신적인 욕심을 부추깁니다. 세상의 잘됨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하나님하고 관계를 멀게 하려고 그러나 그것을 모릅니다. 그것을 모르고 내가 잘되면 만족스럽게 살아갑니다. 벌써 그 사람은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주님이 죽으셔서 마귀를 없이 하시고 종노릇 하지 않게 하실려고 올바로 깨닫게 하실려고 우리주님이 죽으셨다고 여기다가 써놓고 있는 겁니다. 항상 우리를 속여서 넘어트려서 주님과의 관계를 멀리해서 단절시켜서 우리주님의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오늘도 호시탐탐 내 욕심 안에 들어오고 내 생각 안에 들어와서 환경에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생각 속으로 끌어가서 내가 마귀의 길로 따라가게 만듭니다. 종노릇하게 만든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마귀는 거짓이다 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내 안에 금방 합세가 되어 버립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그쪽으로 종노릇하러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모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베드로전서5장8-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는 우리를 속이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서 현란하고 여러 가지 사람도 동원하고 문제도 동원해서 넘어트리고 주님심정을 알지 못하게 하려고 주님안으로 못들어가게 하려고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됩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눈을 씻고 소경이 눈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주님 심정을 알아버린 사람입니다. 그 소경이 앞이 안보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 때문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우리 주님얘기 밖에 하지 않습니다. 누가 낫게 해줬냐고 하니까 주님이 낫게 해 줬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자기 아버지,어머니는 눈이 안 감겨봐서 모릅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는데 자기 아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출교시킬까 싶어서 거짓말합니다. 또 와서 눈뜬 소경에게 물으니까 그분이 낫게 했다고 또 하면서 이상하네 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합니까 라고 자신있게 얘기합니다.

그분이 소경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 소경이 됨으로 우리 주님의 심정 안으로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소경이 안됐던 부모는 예수님 심정을 모릅니다.

우리도 세상살 때 내 앞에 문제가 없는 것이 좋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면 안됩니다. 내 앞에 문제는 곧 주님 심정 안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던 그 소경은 주님을 제대로 만나서 입에서 나온 모든 말마다 주님만 얘기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실려고 우리 주님이 죽으신 것을 잘 알고, 우리 입에서는 자꾸 요것도 주님이 해주셨고, 저것도 주님이 해주셨다는 그런 얘기를 우리 입에서 늘 해야될 줄 믿습니다.

부모같이 거짓말하고 주님심정 안에 못 들어가서 그 때는 눈에 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눈이 감긴 사람과 똑 같습니다. 실로암소경은 소경 된 것 때문에 영적으로 눈이 떠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형편만 보지 말고 내가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늘 점검해 보며 마귀를 대적해 이겨서 주님심정 안으로 더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돈합니다.

주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심정을 얘기합니다.

첫 번째는 말씀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네 대신 죽어서 너를 살게 하려는 것 기억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귀의 종노릇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심정을 이해하시고 주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는 주님을 삶에서 더 인정해드리고, 더 감사해서 우리주님이 나를 볼 때 네가 내 마음을 아는구나 라고 하는 그런 말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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