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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도회 헌신 예배
마리아의 눈물
누가복음 1:46-56
세상에는 주님을 위해 산 사람도 많고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생명도 드리고 재산도 드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누구보다도 주님의 모친이셨던 마리아 보다 더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이 시간 우리들이 마리아의 헌신이나 신앙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너무 많이 있지만 마리아의 헌신을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헌신 생활에 가일층 진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예배에 제목을 「마리아의 눈물」이라고 한 것은 주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1. 마리아 하면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 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눅 1:38]" 가브리엘의 성령으로 잉태된다는 소식을 점하고 한 이 말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이라 할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주의 계집종의 순종’이였습니다. 이 순종은 절대적인 순종이요 영원한 순종이며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무한대의 순종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이 말로 자기 마음을 표시한 후에 마리아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습니까? 남자를 알지 못하는 결혼을 앞둔 순결한 처녀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을 하고 드디어 아기를 해산했습니다.
주님께서 잉태하셨을 때 마리아는 언니를 찾아 간 일이 있었습니다. 자매가 오랜만에 만나 그 동안 되어진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언니를 찾아 간 일을 성경은 보통 여인들이 할 수 잇는 일로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에 의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천사도 아니오 완전한 사람도 아닐진대 어찌 아기를 잉태하여 고민과 염려가 없었을 것이며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지라 언니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리아를 위해 놀라운 확신을 주셨습니다. 제사장의 부인이요 믿음의 사람인 언니에게는 이미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한 세례 요한이 잉태 되여 있었는데 그 세례 요한을 통해 마리아가 잉태하고 있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심으로써 마리아의 염려와 근심을 덜어 주시고 넘치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맡은 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따라 올 수 있는 희생과 헌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고독이요, 외로움이요, 오해며, 어떻게 보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든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청년처럼 오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름에 있어 있을 수 있는 ‘버리는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주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여러분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버리는 고통’을 각오해야 참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2. 마리아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마리아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기도, 약속의 기도, 묻는 기도, 소원의 기도가 아니라 찬양의 기도, 순종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 고백적인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가 죄인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큰 영광입니다. 그 영광이 너무 크고 찬란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오는 고통이나 괴로움은 생각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쉬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들을 나열하면서 피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 틀린 기도들입니다. 그런 기도는 자기 과신과 불 신앙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종됨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며, 우리가 자격이 있어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뜻을 이루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른 막대기를 쓰시기도 하시고 당나귀를 쓰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쓰시기도 하십니다.
마리아는 이 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지랭이 같은 자기를 불러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을 하게 하신 일에 대해 “주님의 계집 종”의 신앙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연구하지 말고 핑개하지 말고 주님의 일군 되였다는 그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주님의 일에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정말 겸손하고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3. 지혜로운 어머니입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 가니라[눅 1:56]" 그것은 언니인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엘리사벳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로서 마리아는 하나님에게 3개월 간 헌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언니와의 신령한 교제 생활은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가장 지혜롭고 총명한 처신이 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일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아기가 잉태하면 대부분 엄마들은 책을 서서 보고, 태아 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일을 한 것입니다.
4. 자식을 하나님에게 바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8일 되던 날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모시고 성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위해 결례를 행했습니다. 그 때 시므온이라는 노인 선지자를 만났는데 그 분이 예수님에 대해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5]" 그렇게 하나님에게 되도록 바칩니다. 이 예언의 말 가운데 효도한다. 이 아이 때문에 부모가 영광을 얻을 것이다. 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지식을 하나님에게 바친 제물이 되게 하십시오.
5. 마리아는 사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늘 생각하는 소위 호강이라는 것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늘 슬프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가난하게 자라신 예수님, 핍박당하신 예수님, 죽으신 예수님, 딱 한 번 예수님 부활하셨을 때 그 모습을 보시고 기뻐 하셨겠으나 그 때 예수님은 이미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도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주님 때문에 당하는 슬픔이나 고통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오직 말없이 애타 하시고, 떨어지지 않는 눈물을 깊이 삼킬 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과 제자들의 음식 시중, 빨래 시중등 온갖 시중을 들면서 혹시나 자기 때문에 주님의 일에 지장 될까 염려하는 계집종이요, 어머니요, 헌신된 한 여인의 길을 갑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일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랍니다. 주님의 종된 것만으로도 찬송을 해야 하는데 작은 일을 하고 큰 것을 바라고, 적은 봉사를 하고많은 것을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시험에 들고 불평이 생기고 터부니 없는 자기 평가와 보상 심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식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것만 바라시도록 하십시오. 자식이 부모님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합니다만 더욱 은혜가 깊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자식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걸림이 되지 않도록 해 줘야 할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계집종으로 살뿐입니다.
물른 자식은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자식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예수님을 대하시고 예수님은 죽으시면 서도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시고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효도를 하셨습니다.
6.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리아의 기쁨이요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어머니의 생명이 하나였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 하니라[눅 2:19]".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하여 모든 것을 마음에 생겼느냐 가 중요합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의 생명과 하나 된 어머니의 생명에서는 여러분들도 마리아 못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왔습니다. 아이는 그 일을 잊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복수를 했습니다. 그런 것을 마음에 두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나는 예수님의 믿음과 사랑과 기도와 은혜들을 기억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식을 보는 기쁨이 어디에 있으며, 슬픔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식들에 대한 애정 깊은 존경심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자식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놀랍게도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세속적인 일들로 인해 희로애락하고 자식들의 장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썩어질 것에 두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못하는 자식을 보는 두려움이 있어야 자식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가 될 것이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식에 대한 슬픔 때문에 울며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부 못하는 것, 건강치 못한 것, 다른 아이들 보다 잘 생기지 못한 것, 심지어 어떤 어머니들은 어린 자식의 생일 파티를 일류 식당에서 못해 준 것 때문에 좌절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하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자식을 기른 그 어머니나 그런 어머니에게서 자란 자식들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입니까?
마리아 같은 어머니, 예수님 같은 아들들이 우리 교회에서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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